<오사카성 천수각>
해자가 두 겹으로 둘러쌓인 오사카성을 구경한다.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지은 뒤에 그의 후손과 도꾸가와이에야스가가 한판 승부를 벌여 가문의 몰락과 부흥을 가른 오사카성, 지금은 오사카시 제일의 관광지가 되어 박물관으로 변한 천수각과 아름다운 경관이 옛 영화를 보여준다. 조선 궁궐은 해자가 없고, 궁궐담이 낮아 아무나 들어올 수도 있는 민중 친화적인 공간이었다. 해자로도 불안하여 엄청난 바위 끝에 세워진 천수각에서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2. 명승개관
명칭 : 오사카성 및 그 중심건물 천수각 大阪城
위치 : 1-1 Osakajo, Chuo Ward, Osaka, 540-0002 일본/ 大阪市中央区大阪城
입장료 ; 천수각 600엔
둘러본 날 : 2023.4.19.
3. 둘러보기
살육전의 살벌했던 현장, 끔찍한 고난의 현장이 가끔 관광지로 남아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경우가 많다. 구마모토성과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성으로 남아 오사카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들르는 곳, 일본에 오는 사람도 이곳을 찍고 가야 구경 제대로 했다고 하는 곳이건만 이곳에 얽힌 역사는 사람을 편안하게 두지 않는다.
우리는 왕권이나 왕조가 바뀔 때 이렇게 처절했던 적이 거의 없다. 백성들이 상할까봐 경순왕은 그냥 항복했고, 조선왕조로의 변화도 역성혁명이라 할 정도의 무혈입성이었다. 백성들을 생각하는 지도자의 마음이었다. 두 가문이 권력을 놓고 벌인 피비린내나는 혈투에 동원된 인력은 누구였던가. 정작 당사자 또한 편한 잠을 잤을까.
쇼군의 거처 외곽에는 험악하고 용맹스런 동물의 형상을, 내밀한 침실에는 산수화를 그려놨다고 한다. 비록 방 바깥 복도는 모두 바닥을 삐걱거리게 하여 자객을 방지하려 했다지만, 휴식하는 공간에 필요한 것은 편안한 산수였던 것이다. 태조 이성계도 죽어서 묻힐 무덤에는 고향 함흥의 억새를 심어달라고 했다. 동구릉의 태조릉은 지금도 1년에 한번 억새를 심는 의식을 한다.
일본은 권력 최상층과 하층의 거리가 천수각이 뻗어 올라간 높이만큼 멀었다. 해자가 두 번이나 벌려 놓은 거리만큼 멀었다. 상하의 그 거리가 지금도 모두 문화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지나친 친절이나 가업 계승의 고정성, 인간의 부품화, 소극적인 섬세함 등등도 다 그런 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민주화와 대등정신은 상하의 거리와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전에 봤던 구마모토성보다 훨씬 방대하고 정교하여 더욱 감회에 젖게 만든다. 여느 사대부가의 담장같은 창경궁의 담장을 생각하면서 상하의 거리가 안전의 거리가 아니라 불안의 두께임도 함께 확인한다. 군림하려 드는 리더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사카성은 전체가 오사카성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모리노미야역 쪽 입구로 들어섰다. 택시 기사가 천수각에서 가장 가까운 입구라면 내려준 곳이다.
들어가면 아름다운 꽃가게가 즐비한다. 꽃가게 이름이 식물시, 너무 재미있다.
모리노미야 분수 광장
분수대 뒤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제일 작은 잔이 369엔, 밀크커피는 409엔이다. 이제 물가가 우리나 일본이나 비슷하다. 미국이 가장 강한 것은 상혼, 우리 성산일출봉도 이곳 오사카성도 조용히 세를 확보하고 있는 곳이다.
꼬마기차. 천수각까지는 너무 멀다. 그냥 걸어가면 30분 이상 걸어야 할 거 같다.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타야 할 거 같다. 왕복표는 없고, 편도가 200엔? 정도였다.
가는 길이 내내 아름답다. 나무와 꽃, 간간이 보이는 산책객들이 천수각까지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해자와 성벽, 멀리 천수각도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입구 도착. 꼬마기차에서 내려 건너다 보다 오른다.
압권인 풍광이 끝없이 셔터를 누르게 한다. 아름다운 곳이고 높은 곳이다.
실제 다가가보니 이렇게 멀리서 보는 경관이 훨씬 나았다.
다리 건너.
성곽을 쌓은 어마어마한 바위들. 이 바위를 옮겨와 쌓은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여기까진 무료
천수각을 들어가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중학생 이하, 오사카시민 65세 이상은 무료다.
그래선지 중학생인 듯한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직도 교복을 입고 있다. 우리에게 옮겨놓은 교복, 그들도 아직도 입고 있다.
입장료는 600엔
입구 문. 대문을 들어설 때마다 나는 자꾸 문정을 보게 되는데, 중국은 9개, 7개, 5개 순으로 지위와 연관되어 있다. 9개는 황제만 가능, 공자와 태산은 황제급이어서 산동 곡부 공자사당과 태안의 태산사당은 문정이 9개다. 여기는 무관하게 임의적으로 장식용으로만 쓰는 거 같다. 홀수 문정도 있으니 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6세기 오다 노부나가가 시작한 일본통일의 대업을 완수했고, 해외침략의 야심을 품고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정복에 실패했다.
일본의 세력자인 오다 노부나가 휘하의 보병이 되었는데 쾌활한 성격과 세련된 매너 그리고 총명한 두뇌로 인해 사무라이로 발탁되었다. 1582년 노부나가는 가신의 기습을 받고 할복자살했는데, 그는 그 가신을 처단함으로써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았다. 이어 그는 전국을 통일하고자 했던 노부나가의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 일본 전역의 정벌에 나서 통일을 이뤘다. 1585년 천황으로부터 도요토미라는 성을 하사받아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 전역을 정복한 후 2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했으나 조선전투의 불리한 결과에 크게 상심하여 62세의 나이로 죽었다.(다음백과)
대부분의 전시물은 모두 사진촬영 금지다. 일본은 금지사항이 많은 곳이다. 쵤영금지가 이렇게 많은 나라를 별로 못 봤다. 불란서 루블박물관도 모도 촬영가능하다. 이태리 메디치 박물관도 모두 가능, 오스트리아 비엔나역사박물관도 모두 가능, 거기서 브뤼겔 전시를 하고 있는데 소장품이다. 모두 촬영 가능, 일본에 와서 도쿄미술관 전시에서도 봤는데 모두 불가능, 일본은 금지의 나라이다.
-나이데 구다사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 몇 장은 모두 모조품이거나 최근 홍보를 위해 만든 것들이어서 촬영 가능, 실제로 찍고 싶은 것은 모두 불가, 머리에 담아오기는 역부족이었다. 천수각은 관련 전시물의 박물관으로 쓰이는데, '풍신수길오사카성사전'을 하고 있었다.
이하 7층 전망대에서 찍은 풍광이다.
구4사단 사령부청사
여기까지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보니 더 아름답다. 안전과 존엄을 위한 거리가 외로움을 위한 거리가 되어 있는 듯하지만, 하여튼 아름다운 곳이다. 피카소 앙티브 해안 미술관이 생각난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있었던 피카소 말년의 작업실, 지금은 미술관이 되어있는 그곳 말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린 그림은 그 풍광과 별로 관계가 없는 비구상 그림들이 대부분이었고 도기가 주류였다. 풍광을 낭비한 것이다.
이곳에 살았던 그 쇼군들 또한 풍광을 낭비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 살육만 생각했다면 그것은 낭비를 넘어 지독한 오용이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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