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월 26일 (목) 촬영.
부천역 남부역광장입니다.이곳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
농협건물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가 가는 왼쪽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펄벅 문화의 거리가 나옵니다. 경희고려한의원이 있는 골목입니다.
입구에는 펄벅여사의 사진이 있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건너편에 부천역이 보이네요.
골목입구에 지도가 있습니다, 쭉 직진하다가 우측으로 가라고...
펄벅기념관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펄벅문화마을 길은 일방통행로인데 초입에는 파란색으로 칠을 해놓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그런데 상점의 간판들이 낮서네요. 한문으로 된 간판이 더 많습니다. 여기가 중국땅인가 싶을 정도예요.
펄벅여사가 중국에서 사셨던 분이라 중국거리가 되었나봐요.
계속 직진하다가.
이렇게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을 보면,
붕어빵을 파는 노점이 있고 그 옆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횡단보도 건너 빌라앞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부천역에서는 붕어빵이 세 개에 천원인데, 이곳에서는 네 개에 천원입니다.
붕어가 많이 작아진 것 같아 주인장에게 물어 보니,
빵굽는 틀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작아질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빵틀에서 방금 나온 붕어빵을 먹어보니 맛있네요. 눈이 오고 있어서 더 맛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 길은 성주산으로 올라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펄벅기념관입니다.
입구에 펄벅기념관이라고 써 있습니다.
펄벅 Pearl Sydenstricker Buck, 1892. 6. 26, ~ 1973. 3. 6.
국적-미국, 분야- 문학, 사회사업, 출생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힐스보로
주요수상 - 퓰리처상(1932), 노벨문학상(1938), 주요저서 - <대지>, <살아있는 갈대> 등 80여 편
1892년 6월 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힐스보로에서 태어난 펄은 생후 개월 만에 선교사인 부모님과 함께
중국 강소성 진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국에서 대하을 졸업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펄은 결혼과 함께
난징대학ㄱ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34년 중국의 공산화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소설 <대지>로 미국 여성 중 유일하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모두 수상했다.
부천펄벅기념관
1967년 소사희망원 개원식이 있던 날 -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
부천펄벅기념관은 소설 <대지>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펄벅이 전쟁고아와 한국 혼혈아동을 위해
사회사업을 펼쳤던 곳이다. 펄은 1967년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박사(1895~1971)로 부터
부지1만평을 받아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혈아동을 돌보기 위해
부천군 소사읍심곡리(현 부천시 심곡본동현 펄벅기념관 자리)에 소사희망원을 세웠다.
그녀는 생을 마감하기까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 2~3개월씩 머물며 아이들을 손수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1976년 문을 닫을 때까지 9년간 1,500여명의 혼혈아동이 머물렀으며
부천시는 2006년 9월 30일 그녀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펄벅기념관을 세웠다.
개관식에는 펄의 딸제니스 윌시(당시 81세)가 참석했다.
현재 희망원 부지 대부분엔 아파트가 들어섰고 펄벅기념관만 그 터를 지키고 있다.
펄벅기념관으로 들어가면 전시실 정면에 이런 부조가 있습니다.
펄 벅 여사의 약력.
1892 - 6월 26일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 힐스보로에서 출생 후 3개월만에 선교사 부모를 따라 중국 진강에서 성장.
1910 - 미국 버지니아주 랜돌프 메이컨여자대학에 입학, 재학시절 학교 신문에 글을 게재 2개의 문학상 수상
1914 - 미국 랜돌프 메이컨여자대학을 우등으로 졸업,같은 대학 심리학 강사로 일함
어머니의 병 간호를 위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감.
1917 - 농업학 교수였던 존 로싱 벅과 결혼 후 중국에서 생활, 난징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1924 - 중국 생활에 관한 단편 소설과 논문들을 발표.
1930 - 첫 소설 <동풍, 서풍> 발표
1931 - 소설 <대지> 발표.
1932 - 소설 <대지> 퓰리처상 수상.
1935 - 존 로싱 벅과 이혼 후 리처드 월시와 재혼
1938 -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
1941 - 동서협회 설립
1949 - 입양기관 웰컴하우스 설립.
1950 - 딸 캐럴에 관한 글 <자라지 않는 아이> 발표
1954 - 자서전 <나의세계들 > 발표
196 3 - 한국 배경의 소설 <살아있는 갈대> 발표
1964 - 해외 아동을 돕기 위한 펄벅재단<현 펄벅인터내셔날>설립, 잠베상 수상
1965 - 펄벅재단 한국지부 설립, 오키나와, 타이완, 필리핀, 태국, 베트남지부 설립.
1967 - 부천 심곡본동에 소사희망원 설립,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70 - 미국 버몬트에 정착 후 인도주의사업 후원, 크리에이티브주식회사 설립.
1973 - 3월 6일 폐암으로 사망. 현재 그린힐스 농장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펄벅 인터네셔날 본부가 있다.
전시실 우측의 모습
펄 벅의 사진과 쓰던 책상.
출판된 소설 <대지> 책들, 아래 왼쪽의 청록색 정장본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출판된 책(대지)이 랍니다.
대지는 펄 벅이 중국 난징에서 집필한 작품으로 중국의 독특한 문화를 배경으로 중국인들의 생활상을 그린 소설이다.(현지 설명문)
고(故) 장왕록 교수의 번역서들. <대지>, <새해> 등의 번역서. 고(故) 장영희 교수 기증.
타자기 / 펄 벅이 한국에서 사용했던 타자기.
노벨 문학상 메달 (복제품)
펄 벅이 193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노벨 문학상 메달.
전시장 우측의 모습을 뒤편에서 본 모습입니다.
산수화
펄 벅의 80세 생일 기념 선물
산수화 뒷면에는 소사희망원에서 생활했던 아동 1030명과 펄 벅재단 직원 28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산수화 뒷면, 28명의 직원과 1030명의 아동들의 이름이 써 있습니다.
펄 벅여사의 옷과 가방, 타자기
소사 희망원의 역사
아시아의 혼혈아동들을 도와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시아 각 나라마다 안정된 주거, 건강,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복지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라 생각한 펄벅여사는 1965년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고,
1967년 소사읍 심곡리(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바로 여기에 소사 희망원을 열었다. 혼혈아동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에게 교육과 직업훈련을 시켜 이들의 재활과 사회복귀에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펄벅여사는 수백명의
혼혈아동들이 참석한 소사 희망원의 개원식을 "나의 인생에서 가장행복한 날이었다"고 술회했다.
소사 희망원은 일반 학교나 고아원과는 달리 적성분석부와 개인지도부, 예능원, 재활부 등 4개부로 나누었고,
일반고아들의 예능교육도 담당했다. 2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에는 당시 150여명의 원생들이 있었으며
휴게실, 오락실 등도 갖추어져 있었고 재활부에서는 혼혈아동들의 어머니를 위해 양재, 비서학 등
간단한 기능교육도 진행되었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아주 뛰어난 학생들은 특별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의 기회도 주었다.
당시 펄벅여사는 소사 희망원에 머물면서 그들의 교육을 직접 담당하기도 하였다.
행운의 열쇠 - 부산
부산 시민으로부터 받은 행운의 열쇠
행운의 열쇠 - 서울
1960년 11월 1일 서울특별시로부터 받은 행운의 열쇠.
보석함 /펄 벅의 보석함.
마패
한국인이 펄 벅에게 선물한 마패.
대한무역진흥공사상.
대한무역진흥공사(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1964~1965년에 개최된
뉴욕세계박람회에 참가하여 설치한 한국관에서 펄 벅에게 수여.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 1967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펄 벅에게 수여한 국민훈장.
寶珍珠 액자.
펄 벅의 중국 이름인 '寶珍珠'가 쓰인 액자.
미국 펜실베니아주 퍼카시 그린힐스 농장에 안장된 펄 벅의 묘지 덮개로 사용.
펄벅재단 간판 / 1967년 당시 소사희망원 펄벅재단 간판,
기념관 우측 면입니다.
힘은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고 용기는 가슴속의 의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펄 벅의 한국인 양녀 줄리 헤닝(구순이)님이 기증한 사진.
(좌상) 줄리 헤닝과 이희호. (좌하) 줄리 헤닝과 펄 벅. (우상) 줄리 헤닝의 친필 (우하) 줄리 헤닝과 친모.
수상기념접시
고(故) 이희호 여사가 2000년도에 수상한 펄 벅 인터내셔널(PSBI)'올해의 여성상' 수상 기념 접시이다.
이 수상을 계기로 펄 벅과 한국(부천)의 인연이 조명 받기 시작하였다. 부천시는 펄 벅이 한국의 혼혈아동 및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설립한 '소사희망원'이 있던 자리에 지금의 '부천펄벅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서울특별시명예시민증
1968년 서울특별시로부터 받은 서울특별시 명예시민증.
새해 / 1968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남편의 숨겨진 아이(한국 혼혈아)를 찾아 떠난 아내 로라가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와
사랑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펄 벅의 휴머니티가 잘 드러난 작품이며 1,000부 한정 특별판으로 펄벅의 서명이 있다.
동풍서풍 / 1930, 펄 벅의 첫 소설.
전통적인 동양의 사고방식을 가진 중국 여인이 서양식 교육을 받은 남자와 결혼하며 겪게 되는 동서양 문화의
갈등과 변화의 과정을 그린 소설로, 동서양 간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집필한 펄 벅의 초기작이다.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 1963
1963년 미국에서 발표된 소설로 같은 해 한국에서도 영문학자 장왕록의 번역에 의해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라는
제목으로 동시 출판되어 큰 화재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로서
구한말부터 1945년 광복되던 해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한 가족의 4대에 걸친 파란 많은 삶을 통해
과도기의 한국 역사와 문화를 치밀한 고증 작업과 극적인 구성 및 탄력 있는 문체로 형상화한 대작이다.
작품의 첫머리에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하는 등 한국의 지리. 문학, 건축, 혼례식과 장례식
각 절기에 벌어지는 행사와 가정의례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한국과 한민족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야말로 책의 주인공이 한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작가인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하여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펄 벅은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한민족의 민족성을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으로
이루어냄으로써 다시 한번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는 <대지> 이후 최대의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펄 벅이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고 평가하였다.
펄 벅 기념관.
펄 벅 여사 흉상 /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주요저서 대지. 살아있는 갈대. 등.
1892년 6월 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힐스보로에서 태어난 펄 벅은 생후 3개월 만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
진강에서 성장하였다.이후 미국 랜돌프 메이컨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세기의 명작 <대지>를 집필하였다.
그녀의 대표작인 <대지>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던 작품으로 당시 미국 여성 중 유일하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여류작가가 되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펄 벅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도주의적 부분,
특히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인종 간의 이해를 위한 가교 형성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1949년에는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태어난 아시아 여러 국가의 혼혈아동을 위하여 입양기관 웰컴하우스를
창설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시작하였다. 펄 벅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1963년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펴낸 이후 그녀는 1965년 혼혈아동 복지기관인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했고,
1967년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현 펄 벅기념관)에 '소사희망원'을 세웠으며
10여년 동안 한국의 혼혈아동을 위해 복지사업을 펼쳤다.
펄 벅은 일생동안 소설과 수필, 극본, 인물전기, 아동서적에 이르기까지 116권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전 세계 혼혈아동을 위해 차별 없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다 1973년 3월 6일 81세로 사랑하는 아이들의 곁을 떠나
생가가 있는 웨스트버지니아 그린힐스 농장에 안장되었다.
위대한 소설가이자 혼혈인의 영원한 어머니였던 펄 벅은 그녀가 떠난 지금도 세계인들의사랑을 받고 있다.
펄 벅 기념관을 나와,
성주산으로 올랐습니다. 이 길은 펄 벅무지개 길이기도 합니다.
우측길은 베드민턴장으로 가는 길이고 아랫길이 펄 벅 무지개길입니다.
베드민턴장 담장 아래로 걷습니다.
나무가지 마다 내려 앉은 눈이 꼭 목화송이 같네요.
베드민턴장의 지붕이 하얀 눈으로 덮혔네요.
약수터도 지납니다.
좀 큰 길로 나오니 앞에 절이 보이네요.
원래 성주산가는 길은 오른쪽인데 절은 왼쪽에 있습니다.
절에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입구에 한국불교 태고종 성주산 수려사란 표식이 있네요.
절은 극락전과 산신각만 있는 아주 작은 절이였습니다.
극락전.
극락전에서 본 종무소.
극락전의 외부모습입니다.
산신각.
수려사에서 본 부천 시가지.
고드름이...
성주산 정상까지 가려던 계획을 접고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바로 옆이 하우고개입니다.
|
첫댓글 바위솔님!~~ 오늘도 감사함 장착하고 옛날을 추억하며 잘 보고 갑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정작 부천사람은 못 가본 곳을 탐사하셨네요. 펄벅재단에 문제아들도 많았지요. 그 기념관 자리는 유한양행 공장터 였었는데 모르긴해도 펄벅여사와 유일한박사와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펄벅님과유일한박사는 미국에서 정부기관에함께
근무하며인연을
맺어습니다
지금의기념관주변
땅 만평도유박사가
기증한 땅입니다
그냥 가지고있었다면
큰부자가되었겠죠
펄s.벅... '대지'
옛날, 집엔 책(대지)이 있었고,
언니들이 죄다 그 책을 읽는 걸 봤기에
나도 읽겠다고(여고1) 늘 끼고 다녔는데
난 결국 끝까지 못읽었다는 것...ㅋ
부천에 펄 벅 기념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성주산에도 가 본 적이 없어요.
수려사 미륵부처님은
입술도 빨갛게 바르시고... ㅎ
폭설 내린 날이어서 풍경이 멋집니다.
잘 보고 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네요~~
걷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바위솔님 수고 하셔습니다~~
구석 구석 곳곳이 찾아가셔서
사진을 자세히 찍어서
설명도 자세히 쓰셔서
안갔지만 가본듯
오늘도 잘다녀왔쓰요
눈덮힌 풍경두 참좋았쓰요
걸어서 골목속으로~~
구석구석 찾아가서 정보공유해주시는 바위솔님감사합니다 오늘은 어디로 가셨을까 궁금?ㅎㅎ
넘 잼나서 몇번씩 읽었던 "대지" ᆢ 급습하는 메뚜기떼들상상하며~
"살아있는갈대"는 안 읽어봤는데 읽고있는책다읽으면 읽도록 제 독서목록에 찜해둡니다
소래산 둘레길을 주욱 따라가다보면 성주산 정상 표지가 정자에 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물가가 다올라 진즉에 붕어빵 천원에 세마리가 두마리 되었는데 네마리라니 호기심발동입니다.ㅋ
성주산 수려사가 태고종이군요.
태고종은 대처승, 처자식을 두는게 종법상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얼마전 뉴스에서 해인사 스님과 비구니의 성추문 들었는데, 태고종이었으면 괜찮았을것을 하는 생각이...
아이고야.. 직접 실사하고 자료 작성하는데 올리는데 애쓰셨어요.. 대단 대단
인천 트래킹의 보배이십니다.
부천에 펄벅 기념관이 있는지 처음 알았네요..
성주산은 여러번 갔어도
벌 벅 기념관은 못가봤네요
"대지" 로 익숙한 분.
부천 나들이 곧 해야겠습니다.
사진,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