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九 章 내기는…?
누군가 말한다.
― 조물주가 이 지상에서 가장 강한 것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인간이라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 조물주가 만든 최대의 걸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곧 여자라고.
여자.
여자에 대한 말은 많다.
마음은 갈대 같고 약한 것이 여자이고, 버들가지처럼 잘 휘어지고 그런가 하면 도저히 내심을 알 수 없는 것이 여인의 마음이라고.
그러나 단 한 가지, 여인은 아름답다.
꽃이 다름답다고 하나 여인의 자태를 따를 수는 없는 것이었고. 밤하늘의 십오야가 고고하다고 하나 여인의 절개에 비견할 수 없는 것이고, 찬바람에 떨고 있는 야생화가 슬프다고는 하나 여인의 눈물만큼 슬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여인들, 그것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인들.
그 여인들이 술을 팔고 웃음을 선사하는 곳이 있다.
화월루(花月樓).
중원제일기루라 불리우는 이곳.
이곳이 얼마나 화려하고 꿈같은 곳인지 들어가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곳이다.
바닥이라는 바닥은 모조리 칠채융단으로 깔려 있고, 사방의 벽은 대리석, 묘안석, 청강석 등등으로 세워져 있으며, 오색궁등이 화월루의 밤을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은자 몇닢만 주어 보라.
감칠맛 나는 여인의 웃음과 교태가 사내의 간장을 살살 녹일 것이고, 젖어 있는 여인의 입술이 언제 그대에게 봇물 같은 사랑을 퍼부을지 모른다.
화월루는 바로 그런 꿈의 기루(妓樓)이다.
* * *
화월루의 가장 깊숙이 자리한 후원의 화려한 내실.
이곳의 화려함은 화월루에서도 첫 손가락 꼽는 곳이다.
헌데 지금 그곳에서는,
"크어……!"
도도한 탄성.
한 사내가 막 술잔을 비우고 입 언저리를 소매로 쓱 문지르며 탁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바로 옥령이 아닌가?
삼 년 전 화월루의 기녀들로 하여금 한 밤중에 나체 활보를 하게 만들었던 문제아.
그가 화월루에서 술이라니.
그의 앞, 한 명의 여인이 옷깃을 추스리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어찌 인간이 저렇게 고울 수가 있단 말인가?
까맣고 긴 눈썹은 무게를 못이긴 양 살포시 내려앉아 있고 세공(細工)이 온 정열을 다해 다듬어 놓은 듯한 고즈넉한 콧날의 선.
그리고 잘 익은 홍시를 쪼개놓은 듯한 타는 입술은 또 어떠한가?
진홍빛 두 뺨은 향불에 사르르 홍조를 담고 있어 더욱더 고혹적이다.
또한 학(鶴)을 닮은 가늘고 긴 목은 서럽도록 희고 안타깝도록 가냘프다.
이런 여인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손, 유난히도 희고 매끄러운,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도 시린 아련함을 주는 옥수(玉手)가 술잔을 건네 받았다.
쪼르르르…….
한 잔의 술이 끈끈한 유혹을 안고 채워지고 여인의 입술은 그 유혹을 마시고 있었다.
문득 술잔을 내려놓는 여인을 바라보며 옥령은 흘리듯이 한 마디를 던졌다.
"모르겠군. 중원제일의 미라고 불리우는 화미화(花美花) 가연연이 나를 이런 은밀한 곳으로 초대하다니……."
― 화미화 가연연.
이 눈 앞의 여인이 바로 화월루의 루주인 가연연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녀가 옥령을 초대하다니.
가연연, 천하의 모든 사내들이 사랑하는 여인으로 선택받은 여인.
그녀의 웃는 얼굴은 음습한 그늘에 잔양(殘陽)이 드리워지듯이 화사했다.
"호호호! 왜 안되나요? 나는 옥공자를 초대해서는……."
그녀는 교태로운 웃음을 지으며 한 손으로 입술을 살며시 가렸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오. 다만 삼 년 전의 사건으로 견원지간(犬猿之間)이어야 할 사이가 우습게도 술잔을 마주하고 있으니."
"호호호… 재미있지 않나요? 이렇게 마시는 술이… 사실은 그때 옥공자를 보고 싶었어요. 헌데 갑자기 항주에서 사라지셨더군요."
말을 하는 그 순간, 가연연의 눈빛은 신비한 예기를 머금었다.
"사실은 나름대로 일이 좀 있었던 것 뿐이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또 영영 항주에서 떠나신 게 아닌가 하고 은근히 걱정을 했지 뭐에요."
"하하하… 그래서 이렇게 왔지 않소?"
"호호호! 나도 꼭 오시리라 믿었어오."
"헌데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무엇이오? 단순히 술을 마시자고 부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옥령은 가연연의 화사한 얼굴을 똑바로 정시했다.
"아이,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여기서 술을 마시고 나는 옆에서 술을 따르고 있다는 거에요."
그녀는 세차게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섬섬옥수를 들어 옥령의 잔을 철철 넘치도록 가득 채웠다.
"사실… 당신을 부른 것은 하나의 내기를 하자는 거에요."
"내기?"
그것은 너무도 상상 밖의 말이 아닌가?
"그래요."
"호오… 중원제일미녀와 내기를 한다? 마음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구려."
"호호호… 역시 듣던대로 호쾌하시군요."
"그래, 무슨 내기를 하자는 건지… 술마시는 내기는 아닐테고."
"재미있는 내기 일 거에요."
가연연은 일부러 말의 꼬리를 빙빙 돌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유혹이 끈쩍끈쩍 서려있는 몸짓으로.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옥령.
"이거 내 심장이 그런대로 쓸만 했으니 망정이지 약했다면 벌써 숨이 넘어 갔겠군."
"말씀드리죠. 당신과 내가 서로를 유혹하는 내기에요."
"서로를 유혹하는 내기?"
참으로 괴상한 제안이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유혹하는 것이 내기의 방법이라니.
"그것 참 재미있는 방법이군. 그래 어떻게 유혹을 하는 것이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자신의 품에 안기게 하면 되는 거에요."
"오호라… 그러니까 당신이 내 품에 안기게 되면 당신이 지는 거군."
"호호호, 그 반대일 수도 있구요."
"조건은……."
"지는 사람이 한 가지의 어떠한 부탁이라도 들어주는 거에요."
"설마 죽으라는 부탁은 아니겠지……?"
"그럴 수도 있지요."
"좋아, 좋아. 중원제일미녀를 껴안아 보고 죽는 것도 괜찮지."
그는 단숨에 한 잔의 술을 쭉 들이켰다.
은은한 취기 탓으로 그의 얼굴은 서서히 상기되고 있었다.
"그런데 장소는 어딘가?"
"바로 소녀의 침실이에요."
가연연은 바로 옆에 자리한 그녀의 침실을 가리켰다.
연홍색 휘장이 길게 드리워진 침실은 묘한 욕정의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침실이라… 아무튼 나는 여자 복은 있는 놈이군."
가연연은 말없이 침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뒤를 옥령이 취한 듯이 뒤따르고 있었으니.
* * *
여자가 얼마나 유혹의 덩어리인가는 하늘도 모를 것이다.
더욱이 은은한 향촛불 아래서 그것도 여인의 비밀이 웅크리고 있는 침상에서 한꺼풀 한꺼풀 옷을 벗어가는 여인의 자태.
그 모습은 죽어 관 속에 들어가 있는 노인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것이다.
하물며 옷을 벗고 있는 여인이 중원제일의 미녀인 화미화 가연연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단언하건데 사내의 정열이 있다면 아니, 설사 같은 여인의 몸이라 하더라도 그 화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르르르…….
미끄러지듯이 여인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한 가닥의 신비한 껍질이 벗겨져 내린다.
그와 함께 국화 향기 같은 여인의 체향(體香)이 뭉클 원초적인 본능에 화려한 불길을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 옥령. 그의 얼굴이 활활 달아오르며 숨결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사르르르… 또 하나의 껌질이 아릿한 시려움을 담은 채 미끄러지더니 그녀의 발목 아래로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러워 감추고 있던 여체는 수줍은 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 현란하고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표현할꼬.
사르르 홍조를 담은 가늘고 긴 목은 사슴을 닮아 슬프다.
옹기같이 호선으로 이어진 둥그런 어깨는 황홀한 미각(美覺)으로 눈을 찔러 오고, 하나의 천으로 감싸고있기에는 너무도 풍염한 가슴.
그 아래로 휘어지듯이 환상적인 선으로 잘 파여진 허리의 애환이 서린 모습.
그리고 살짝 꼬인 포개진 다리 사이로 자리한 희락의 샘은 차차리 가리지 않은 것보다 더한 유혹을 안고 있었다.
또한 우아하게 뻗어내린 여인의 다리는 희디흰 허벅지의 속살과 더불어 눈부시게 현란함을 뇌쇄적으로 표출시키고 있었다.
십전십미(十全十美)!
감히 장담하건데 천하에 이 여인같이 유혹적이고 선천적인 육체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은 존재치 않으리라.
파르르르… 마지막 남은 젖가리개를 잡고 있는 여인의 손은 왜 저리도 떨릴꼬?
'이, 이럴 수가? 능라섭혼미염술(凌裸攝魂美焰術)을 십성으로 끌어 올렸는데도……!'
그녀의 눈은 마음 만큼이나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자는 이미 나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손, 그것이 지금 그녀의 젖가리개에서 몹시도 주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 옥령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에 예리한 기광이 스쳐가는 것은?
'가연연… 너는 애초에 이런 내기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
마치 빨리 벗으라는 듯이 옥령의 눈은 시종 가연연의 손 끝에서 머물고 있었다.
'너의 능라섭혼미염술은 확실히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 천군대작 옥령이 한낱 기녀에게 당한데서야… 그리고 또한 너는 알았어야 했다. 내가 마령심안공을 익혔다는 것을. 허나 나는 그것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가연연의 풍염한 가슴을 빤히 응시했다.
'너는 나에게 목적이 있어서 내기를 했던 것이고 너는 결국 이기는 것이 아니면 스스로 내 품으로 뛰어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계산, 그는 이미 가연연의 마음까지도 완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가연연의 두 눈에 고뇌의 빛이 역력했다.
'능라섭혼미염술을 십이성 끌어 올리면 그를 굴복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욕념을 일으켜 죽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젖가리개의 끈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종내에는 그녀의 눈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지상 최강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과가 어찌되든 이 방법이 가장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연연의 가슴 저 밑바닥에서 흐르는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인가?
그녀의 목적이 무엇이기에 지상최강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단 말인가?
중원제일의 미녀라는 그녀의 또다른 정체는 무엇인가?
스르르르… 그녀의 희고 매끄러운 손이 마지막으로 그녀의 풍염한 가슴을 가리고 있던 천조각을 벗겨내고.
태앵! 가슴이 생경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으윽!'
옥령의 전신의 기혈이 일순간에 역류하며 단전으로부터 화끈한 열기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 아직도 보송보송한 솜털로 감싸여진 여인의 가슴에 박혀 있는 옥령의 눈은 지글지글 타오르는 욕념으로 파동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활화산 같은 희열의 열정이 숨쉬고 있는 여인의 신비지소가 옥령의 눈을 확 찔러왔다.
그 눈부신 유혹의 샘이여!
꼬인 듯이 살짝 숨겨진 쾌락의 보금자리가 숨가쁜 열기를 갈무리하고 있었으니.
옥령은 온 몸의 사고가 한순간에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두 눈은 찢어질 듯이 부릅떠져 있었고 그의 그런 눈에서 음침한 색욕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두 입술을 으깨져라 깨물며 본능의 욕구를 감내해 나가고 있었으니.
가연연, 그녀의 눈이 아득한 절망으로 화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 이 수가… 능라섭혼미염술을 십이성으로 끌어 올렸는 데도… 그리고 분명 그는 색욕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 이거늘 그것을 정신력으로이기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 알았으리오.
천형의 저주가 잉태한 아이의 반항적인 기질을.
상대가 강하면 거기에 반항하는 옥령의 눈 또한 무서울 정도로 기오한 반항의 물결로 득실거린다는 것을.
그러던 한 순간 가연연은 희미한 미소를 자조적으로 머금었다.
그것은 어떠한 마력이나 목적의 도구로 사용하는 생명없는 미소가 아닌, 마음 속에서부터 생성한 인간 격정의 싱그러운 미소였다.
'그가 나에게 안기지 않는다면 내가 그에게 모든 것을 주면 된다. 어차피 결과는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이로써 철환사비(鐵幻四秘)는 서서히 중원에 참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원은 대혼란의 화중에 휩싸인다. 그것은 천 년을 내려온 중원천하의 피할 수 없는 운명… 나는 그 운명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가연연, 그녀는 취한 듯이 몽롱한 시선으로 옥령을 응시하며 무너지듯이 그의 품으로 안겨가고 있었다.
"아아! 졌어요. 역시 당신은 대단해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옥령, 미인을 끌어안은 그는 웃을 수밖에 없는 밤이다.
"괴로웠소. 천하를 얻는 그 무엇보다도… 그대의 나신을 보고 앉아있어야만 했던 일이. 다시는 그런 내기는 하지 맙시다."
"그런가요?"
그녀는 화사인 양 옥령의 목을 휘감아 갔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텐데."
옥령이 나긋하게 휘감긴 가연연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순간,
"아아!"
가연연의 몸이 한층 더 달아오르며 열기를 뿜어 댔다.
그리고 한 손으로 옥령의 입을 막았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요. 중요한 것은 여기가 나의 침실이고 당신이 나의 침실에 들어와 있으며… 내가 이렇게… 당신의 품에 안겨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지금이 밤이라는 거에요."
그리고는 옥령이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스르르… 가연연은 옥령을 끌어안고 침상으로 묻히고 말았다.
헌데 바로 그 순간, 하나의 눈[眼]이 침상 위로 몸을 내던진 두 사람을 예리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은 이내 싸늘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 * *
두 사람.
옥령과 가연연이 숨가쁜 열기를 토해내고 있는 그 시각,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한쌍의 눈은 무엇인가를 잃은 듯한 허망함과 아쉬움으로 기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돌아왔다.'
내심으로 이렇게 부르고 있는 눈동자의 심부는 반가움인지 허탈함인지 모를 모호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헌데 그라니… 항주에서 옥령을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
'그리고 돌아오는 그 순간 화월루를 찾았다. 이는 화월루의 가연연이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헌데…….'
가연연이 옥령을 부르다니?
'드디어 철환사비(鐵幻四秘)의 한 곳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중원 삼천 육백 개의 기루를 관장하고 있는 화미화 가연연이…….'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철환사비(鐵幻四秘).
중원을 암중으로 관장하고 있는 네 개의 신비방파.
그들의 힘이 얼마만한 것인가는 하늘도 모르는 신비이다.
다만 한 가지, 철환사비의 힘은 그 어디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중원 삼천 육백 개의 기루(妓樓)를 관장하고 있는 화미화 가연연이라니.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거친 방사(房事)를 지켜보는 눈은 더욱 허전한 그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로써 천여 년을 암중으로 보내오던 철환사비 중의 가장 위대한 조직 유림(儒林)은 일어선다!'
유림(儒林).
철환사비가 천하인들의 신비라면 유림은 철환사비의 영원히 풀 수 없는 신화인 것이다.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천하의 유생들이 이곳 유림에 모여 유도(儒道)를 닦는 곳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들이 천하를 암중으로 장악하고 있는 철환사비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 신비한 힘의 집체(集體), 유림(儒林).
그것이 화월루의 깊숙한 후원에서 새로운 운명의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스윽! 어둠 속의 눈동자가 흡사 유령처럼 미끄러져 나왔다.
달빛에 빛나는 머리에는 고아한 음묘학관을 쓰고 있었으며 유난히도 여인의 그것처럼 섬세한 용모를 가진 미서생(美書生).
백문(白文).
바로 그가 아니던가?
과거 옥령과 더불어 항주의 야패사룡으로 악명(惡名)을 날렸던 문제아.
더욱이 여인들에 관한 일이라면 더없이 잔인한 보복의 수단과 치욕을 안겨주어 여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그.
헌데 그가 철환사비(鐵幻四秘)의 신비 집체인 유림의 문인이라니.
그것도 유림의 운명을 논할 수 있는 지고한 신분을 가진.
옥령.
사르르 가연연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는 그의 눈이 기이한 빛으로 일렁였다.
'누구인가? 결코 낯설지 않은 느낌을 주는 그 사람은… 분명 내 가까이에 있었던 시람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백문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옥령의 눈은 점점 더 깊어지고 그럴수록 가연연의 몸을 쓰다듬는 그의 손은 천천히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름진 아랫배가 물결처럼 스쳐가고, 무성한 수림에 휩싸인 비지는 아직도 식지 않은 열기가 서려 있었다.
허나 문득 가연연의 봉목(鳳目)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담백한 광채가 은하수처럼 흐르는 것을 옥령은 보지 못했다.
'백문(白文)이라고… 앙큼한 계집애. 그러나 기억해라. 철환사비의 진정한 강자(强者)는 이제부터 이 화미화 가연연이라는 것을…….'
이 무슨 말인가?
백문을 엉큼한 계집애라고 부르는 가연연의 말은.
그리고 또한 철환사비의 진정한 강자로 불리우게 된다는 의미있는 그녀의 마음은?
'너는 의식적으로 남장(男裝)을 해 이 사람에게 접근을 했으나 이 사람을 얻은 것은 너 백문이 아니라 나 가연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득의한 미소가 화편을 쪼개놓은 듯 그녀의 입술가로 번지더니 화사한 꽃망울을 피어 올렸다.
그것은 승자의 혁혁한 미소, 바로 그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옥령은 가연연의 나신을 꽃밭의 나비처럼 쓰다듬고 있었다.
"가연연… 이제는 무엇인 말할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는 시선을 들어 아직도 득의한 미소가 서려있는 가연연의 얼굴을 직시했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의 입술이 조용히 나풀거렸다.
"우선 행복하다는 말을 해야겠어요. 당신 같은 남자를 얻게 된 것을……!"
가연연은 섬섬옥수의 손으로 옥령의 턱을 살그머니 감싸안았다.
누가 보아도 그 모습은 행복한 여인의 표상이라 여기리 만큼 아름다웠다.
"분명히 어려운 말을 하려는 모양이군… 사람을 이렇게 옭아 매는 것을 보니…안 그런가?"
"호호호……! 역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군요."
"……!"
"그래요. 나는…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아니, 어쩌면 내 운명이 당신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죠."
"운명이라……!"
"그래요… 그리고 그 운명은 끝내 당신과 나를 향해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제시하고 있어요."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군… 여자의 입에서 운명이다, 목적이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거든…여자는 어디까지나 여자다워야 하니까!"
옥령의 손이…
새초롬하게 솟아 있는 그녀의 유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나 듣고 싶군…그대의 일이라니까!"
가연연이 조용히 다가와 옥령의 손을 감싸 안았다.
"고마워요."
"아니야…우리는 이런 사이니까!"
"사실은…처음에는 당신을 이용하려 했어요…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내가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되겠군."
"반대일 수도 있어요. 당신을 이용할 가치까지 없는 인간이라는 방향으로……!"
"그것이 가장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이지…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군. 왜냐하면 당신이 승리의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그냥 흘리듯이 해본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가연연마저 흘려 버릴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그것까지…알고 있었다니…믿을 수가 없군요."
"후후후…내가 옥령이라는 사실을 잊었던가?"
"……!"
"그렇다고 그렇게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오. 어차피 나 또한 나를 필요로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더욱이……!"
옥령은 사르르 붉어져 있는 가연연의 볼을 바람처럼 음유롭게 쓰다듬었다.
"그대 같은 미인이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니까?"
"……!"
"말해 보시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죠……!"
그녀는 문득 흘러내린 칠흑의 머리를 곱게 쓸어 올렸다.
그 하나의 자세가 더없이 유혹의 샘처럼 느껴지는 것은…지금이 밤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이런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
"철환사비(鐵幻四秘)라고……!"
순간,
"철환사비……!"
옥령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며 가연연의 가슴을 움켜쥔 손에 힘을 가했다.
붉은 홍시가 뭉그러지듯이…가연연의 가슴이 응축되었다.
"그래요…중원에 신비로 전해지는 철환사비요."
"신비인지 아닌지는 모르나…듣기는 확실히 들어본 이름이오."
"제가 바로 그 철환사비 중 하나인 신주야화(神州夜花) 가연연이예요."
"신주야화가…당신이라고……!"
더 이상 그는 가연연의 가슴을 매만지고 있지 않았다.
너무도 놀라운 말에 그는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킨 것이다.
헌데…가연연이 스스로 밝힌 이름.
신주야화(神州夜花).
오오……!
그는 바로 철환사비 중의 일 인인 신비 속의 인물이 아닌가?
중원에 산재해 있는 삼천 육백 개의 기루(妓樓)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여인(女人),
그들이 무엇을 하며, 어떠한 능력을 지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모든 것엔 오직 신비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철환사비의 신주야화가 바로 이 화미화 가연연이라니……!
"그랬던가…그대가 바로 신주야화였으니…중원은 너무도 그대를 모르고 있었군……!"
옥령의 얼굴이 경악으로 인해 굳어졌다.
실로 너무나 놀라운 말이 아닌가!
'철환사비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들어왔다. 그러나 가연연이 설마 철환사비의 일 인인 신주야화일 줄이야……!'
생각지도…아니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않은 일이 아니던가?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더없이 좋은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철환사비의 힘이라면…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하나의 계획이……
그의 영오(潁悟)함이 머리 속에서 순간적으로 희번득이고 있는 것이었다.
'얻으리라! 여기에는 수단과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이용해 앞으로의 난세무림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결정은……?
이렇게 옥령 스스로가 내려 버린 것이다.
문득,
영산홍(映山紅)처럼 요염한 가연연의 입술이 바람처럼 열렸다.
"저의 신분이 그러하니… 제가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일인가도 짐작이 가시겠죠……?"
"들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소."
"실은…철환사비는 십 년에 한번씩 서열을 정하곤 해요."
"서열을…아니 그것은…무엇 때문에……!"
"그것은 바로 철환사비의 위명을 영원히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죠. 생각해 보세요…하나의 정상을 추구하는 인간의 일념을……!"
"아……! 그러니끼 예를 들어 서열을 정하는 규칙이 있으므로 해서 더욱 더 힘을 기르게 되고…그럼으로 인해서 힘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오."
"그렇게 말씀을 해버리면…저는 무슨 말을 하죠?"
가연연은 놀라움에 앞서 아연함을 금치 못했다.
"미안하오…계속하시오."
서서히…
가연연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은은한 하나의 나삼을 휘두르듯이 걸치고 월파(月波)가 여울져 흐르는 창가로 다가갔다.
파르라한 월광이 수줍은 듯이 그녀의 나삼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가연연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철환사비가 이 지상에서 뿌리를 내린 지도 어언 천여 년… 그러나 그 세월 속에 신주야화의 명예를 가지고 있던 선대들은 그 누구도 철환사비의 서열 일위(一位)에 오르지 못했어요……!"
"……!"
"결국 신주야화는 철환사비의 변할 수 없는 서열 사위라는 오명(汚名)을 안고 말았어요."
"……!"
옥령은 보고 있었다.
한 여인이…
오랜 세월을 하나의 일념으로 부서지고 또 쌓고 허물어지는 허망한 잔재의 그림자를…
"그래서 저는 마음 먹었고…내 일생을 걸고 맹세를 했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손으로 신주야화를 철환사비의 서열 일위에 올려 놓으리라고……!"
그랬던가?
"그래서 그 방법의 하나로 저는 사람을 고르기로 했어요. 지상최강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결국 그 사람이 나라는 말이군……!"
"그래요. 당신이 만약 항주를 떠나지 않았다면 이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정해졌을지도 모르죠."
"나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당신에 대해서 잘 몰라요…그러나 당신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아요. 왜냐하면 철환사비의 다른 한 곳에서 당신을 노렸기 때문이죠."
"나를……?"
옥령은 의아로운 눈빛으로 가연연을 직시했다.
"모르셨을 거예요…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예요…그리고 지금도 당신을 노리고 있으니까요."
"……!"
번― 쩍― !
옥령의 뇌리로 무엇인가 시퍼런 불꽃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조금 전에 누군가 이곳을 다녀간 그 사람일 수 있다. 그는 분명 내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예감이 든다. 누구일까…?'
"그렇다면…당신은 나를 노리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도 안다는 뜻이 아니오."
"알고 있어요…그들이 바로 철환사비의 서열 일위에 있는 곳이니까요."
"……!"
"백문(白文)이라고 하면 아실테죠."
"백문……!"
알다 뿐이겠는가?
바로 야패사룡으로 이름난 미서생이 아닌가?
"그 사람이 여인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나요?"
"느끼고는 있었소…그러나 직접 확인한 적은 없소."
옥령은 치기서린 모습으로 가연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아도 되요…그것은 저도 다 알고 있는 일이예요."
"……!"
가연연은 다시금 옥령의 곁으로 사뿐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백문이 바로 철환사비의 서열 일위를 고수하고 있는 유림(儒林)의 유림신야(儒林神爺)예요."
"백문이…유림신야(儒林神爺)……!"
옥령은 너무도 의외의 말에 얼굴 가득히 경악을 떠올렸다.
유림신야(儒林神爺)― !
철환사비의 서열 일위를 고수하고 있는 유림의 제일인자(第一人者).
그가 바로 백문이라니……!
"백문의 부친인 백운학당주(白雲學堂主) 백경문(白京文)은 일 년 전에 의문에 휩싸인 채 세상을 떠났어요."
"으음……!"
옥령은 무거운 신음성을 칙칙하게 흘려냈다.
'어린 소녀의 몸으로…그 고통이 심했겠구나!'
연민의 정이랄까?
옥령은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하게 비어오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런 사고로…백문은 유림의 막대한 권한을 한 손에 거머쥐게 되었고…서열 일위를 고수해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또다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뒤엉키고 있었다.
"그 다음의 세력은 또 어디요."
"먼저 서열 이위(二位)는 십보대부(十寶大夫) 금돈(金豚)으로…그는 중원상권의 십분의 일을 소유하고 있고…중원에 있는 전 객점이 십보대부의 산하 것으로써 그 힘만도 섣불리 상상할 수 없어요."
"……!"
십보대부(十寶大夫) 금돈(金豚).
철환사비의 서열 제 이위의 인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도유풍(幻盜流風) 담비가 있어요. 그의 조직은 전 중원에 하류배에 속하는 천인들이 모두예요…그들은 또한 천하에서 가장 빠른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요."
"환도유풍…담비라……!"
옥령은 나직이 이름을 되새기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어 올렸다.
"이들이 바로 철환사비의 전부예요……!"
가연연은 할 말을 다 마친 듯이 옥령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래서…당신은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오……!"
"나의 힘이 되어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신주야화가 겪었던 천여 년의 숙원을 풀어 달라는 것이예요."
"당신의 힘으로도 가능하리라고 보는데…"
"물론 자신이 있어요. 허나, 그들 또한 천여 년의 안배를 해온터…만일의 사태를 위해서 당신이 필요해요."
"그랬었군…?"
이제야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옥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서서히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좋소. 그러나 한 가지 약속을 해야하오…"
"가능한 것이라면…?"
"가능한 것이오…그리고 이것은 중원인이라면…누구나 해야하는 의무요, 책무인 것이오."
한순간,
옥령의 등 뒤로 드넓은 만경창파가 폭풍의 광란에 떨며 포효를 하는 웅휘가 후광처럼 득실거렸다.
'저…사람에게서…초자연의 기운이…'
가연연의 두 서늘한 봉목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것도 그 순간이었다.
"당신들이 하나의 서열을 놓고 암투를 벌일 때…중원의 한 곳에서는 피[血]을 흘리고 있는 것이오."
"……!"
"전설의 천년마제가 탄생을 했고…또 변방의 오랑캐가 이 땅을 넘보고 있소…그것만이 아니오. 천기조차 흐트러뜨리는 가공할 마(魔)의 집단이 어둠 속에서 천하를 직시하고 있소. 이것이 당금의 중원이오……!"
"……!"
가연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버렸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영리보다 천하를 위하는…그런데 나는…?'
한 여인이…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갖춘 신인(神人) 앞에서 초라함을 느껴서인가?
"그대의 부탁이라면… 해주겠소… 그러나, 나와도 약속을 하시오. 천하가 당신을 원할 때는 한번쯤 천하를 생각해 보시오."
"……!"
가연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추수로운 눈망울이 젖어들고 가냘픈 고개를 힘있게 끄덕였다.
"고맙소…이는 천하를 위해 커다란 힘이 될 것이오."
햇살 같은 미소가 있다면 지금 옥령의 미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는 싱그러운 웃음을 베어 물며 가연연의 옥수를 힘주어 잡았다.
"연연……!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오. 그러나 천하가 마(魔)의 소굴로 화하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 아니겠소. 그것을 이 시대의 젊은 우리가 막지 못한다면…우리 모두는 역사에 큰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오."
"……!"
"철환사비가 그대들에게는 중요하나…보다 더 큰 이 중원을 보시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승리인 것이오."
"고마와요…저는 차마 그런 생각을……!"
가연연은 부끄러운 듯이 옥령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헌데…바로 그때,
실낱같은 하나의 전음성이 옥령의 귀를 파고 들었으니…
'주인님…소랑이옵니다.'
소랑이라면…조화금선을 가지고 몽륭구영선법을 펼치는 옥령의 수하가 아닌가?
번― 쩍― !
옥령의 두 눈 깊숙한 곳으로부터 섬섬한 기광이 비쾌하게 스쳐갔다.
"말하라."
괴이한…아니 놀라운 일이었다.
옥령은 분명 자신의 음성을 뚜렷하게 전하고 있건만 그의 입술은 달싹조차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옥령은 지금 전설상의 심화복어술(心話腹語術)을 펼치고 있단 말인가?
심화복어술(心話腹語術).
마음(心)으로 상대에게 말(言)을 전하는 비기(秘機).
오오……! 이는 일신의 내공이 삼갑자에 달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못할 절대신기(絶對神技)가 아닌가!
그것이 지금 옥령의 입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소랑의 음성이 놀라움으로 들뜬 채 이어졌다.
'훌륭하십니다. 심화복어술까지 익히시다니…다름이 아니오라 괴이한 인물들이 항주를 향하고 있습니다.'
"괴이한 놈들이라니……!"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놈들입니다.'
"그들이 왜 항주로 향하고 있는 것이오?"
'한 여인을 쫓고 있다고 합니다.'
"여인이라고……!"
옥령의 눈이 기이한 마력을 머금었다.
그리고,
스르르르…
그의 손은 나삼을 걸치고 있는 가연연의 몸을 더욱 감미롭게 쓰다듬었다.
'예……! 소인이 밝혀본 바로는 항주의 유명한 거부(巨富) 십보대부 금돈의 무남독녀(無男獨女)인 금취운(金翠雲)이라고 합니다.'
"뭣이…십보대부 금돈의…무남독녀 금취운……!"
옥령의 심화복어술이 경악으로 인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오오…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던가?
철환사비의 일 인인 십보대부 금돈의 무남독녀 금취운이 괴한들에게 쫓기고 있다니……!
"……!"
"……!"
한동안 옥령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침묵이 있은 후에야 그는 하나의 지시를 소랑에게 내렸다.
"소랑……! 소애에게 그들을 암암리에 추적을 하도록 해라…그리고 너는 지금 즉시 관(棺)을 하나 구해라."
관(棺)― !
'관이라니요…? 설마 송장을 치르는 관은 아니겠지요.'
"틀렸다. 바로 송장을 치르는 관이다…그것도 천하에서 제일 단단한 것으로 구해와야 한다. 시간은 빠를수록 좋다."
'무…무엇에 쓰실려고 관을……!'
"나중에 보면 안다. 우리도 돈을 좀 모아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하늘이 나 옥령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도무지 무슨 말씀이신지…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은 나도 좀 얼떨떨하다."
'알겠습니다.'
"……!"
소랑의 전음성은 거기서 뚝 끊어졌다.
문득,
이러한 모든 것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옥령은 더욱 더 집요하게 가연연의 몸에 폭풍 같은 사랑을 퍼붓고 있었다.
화라라라라…락……!
바람[風].
열락에 찌든 끈끈한 바람이 화월루의 후원을 온통 휘감고 있었으니,
밤[夜]― !
이 밤의 절대적인 어둠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첫댓글 감사합니다.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