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협서 올들어 10차례 횡령 사건발생해도 책임지는 조합장은 없어
조합장의 권한으로 농협직원 인사권, 농협의 각종 농자재 구입권 등 막강
비상임조합장 462개 지역농협 조합장의 16%가 4선 이상, 37년간 10선도
"농협법 개정의 핵심 이슈로 지역소멸 해소와 도농상생의 길 우선 모색을"
농협중앙회 사옥 전경. 사진=연합뉴스
[포인트데일리 조혜승 기자] '농업협동조합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에 올라와 연내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농민단체들 사이에서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은 약 221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자리로 농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농촌소멸, 지방 소멸'이라는 절체절명 위기 농협의 역할과 위상, 임기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농협은 농민들이 출자해 만든 조직이다. 포인트데일리는 농협법 개정안이 무엇이고 농협중앙회가 추진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타당한지 상·하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221만명 조합원을 대표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본격 점화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윤재갑(전남 해남·완도·진도·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협의 비상임조합장, 이사, 감사의 연임 횟수를 2회로 제한하는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가운데 일부 농민단체들이 이성희 농협중앙회장부터 연임을 적용하느냐며 반대했으나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이 농협법 개정안 통과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커져 농협법 개정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농협법은 자산 규모 2500억원 이상 농협의 조합장은 상임으로, 그 이하는 비상임으로 근무토록 규정하고 있다.
농협법 개정안에서 주목할 점은 중앙회장 연임과 더불어 비상임조합장 연임을제한하는 것이다. 현재 무기한 연임할 수 있는 지역농협 비상임조합장의 연임 횟수를 상임과 같이 2회(3선)로 제한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개정안은 윤준병·윤재갑·김승남·김선규·이만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국회에서는 1회에 한해 연임을 허용하는 농협법 개정안 4건이 제출돼 8일 국회 농해수위 법안수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 관련 시도별 설명회는 지난달 끝났고 농림식품부가 여론 수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계류돼 있다.
연내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 3월 13일 전국 약 1050여개 이상 지역·품목농협이 실시한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선출된 조합장은 재선까지 연임하는 것으로 바뀐다.
현행법은 상임 조합장만 2선 연임으로 제한하고 비상임조합장과 이사, 감사에 대한 임기 제한은 없다. 선거가 세달 이상 남았는데도 벌써 과열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다수 농협 조합장은 조합자산이 2500억원 이상으로 농협법에 따라 경영 대부분을 상임이사에 일임하는 비상임조합장이다. 자기자본이 1500억원 이상이면 선택적으로 전문경영인을 도입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농협 조합장에서 장기집권한 조합장은 실질적이고 막강한 권한을 가져 조합장이 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지역농협에서 올해만 총 10차례 횡령 사건이 반복돼도 견제 장치가 없는 것은 지역에서 경제력을 가진 조합장 권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농협법이 지난해 개정돼 오는 2024년부터 각 조합장이 중앙회장을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가 도입됐다. 조합장 권한이 더 커졌다. 초선인 A조합장은 재선을 검토하고 있다. 9선인 대전원예농협 김의영 조합장은 선거 출마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출마해 당선되면 10선 조합장에 이름을 올린다.
농협 조합장은 상임조합장이거나 비상임조합장이든 상관없이 농협 법인을 대표하고 있다. 일상에서는 조합장이고 그 농협의 이사회, 총회 의장이며 조직 규정에 의해 여러 분야의 위원장을 겸임한다. 조합장의 이권은 농협직원 인사권, 농협의 각종 농자재 구입 등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3선 상임조합장들이 4선 이상 연임하기 위해 조합장직을 비상임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상임조합장을 두고 있는 462개 지역농협(전체 지역농협의 41.3%) 조합장의 16.2%가 4선 이상이다. 37년간 10선을 한 경우가 있다.
조합장이 되기 위해 선거에서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등 부정 선거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 조합장 선거에 조합원 1인당 평균 10만원이 쓰였다면 내년 3월 조합장 선거에 예상되는 금액은 조합원 1인당 20~30만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윤재갑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전남 장성에서 한 농협 비상임이사가 낮술을 마시고 점심 식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무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영천의 축산농협 비상임이사 선출 선거 경쟁이 과열돼 금품, 향응 선거 논란이 있었다.
이 때문에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은 지역농협 개혁 과제 1순위로 꼽혔다. 상임조합장 연임은 지난 2004년 2회로 제한됐으나 비상임조합장 연임은 여전히 무제한이다.
비상임조합장은 업무 집행 권한이 없지만, 상임조합장이 업무 집행 권한을 가지고 있다. 비상임조합장이 임명한 상임이사가 사실상 업무집행 권한을 갖기 때문에 비상임조합장이 현실적인 권한을 가지는 실정이다.
윤 의원에 따르면 비상임조합장의 재선 분포를 보면 3선 이상이 19%, 4선 이상 10%, 5선 이상 7%로 약 40% 이상이 3선 이상으로 나타났다. 서울 한 조합은 14선을 통해 40년 이상 장기집권하고 있다.
윤 의원은 "조합장직은 세습적으로 변질해 실제 30년 이상 직을 수행하는 조합이 있고 전직 조합장이 선택한 사람이 조합장이 되는 세습적 행태를 띄고 있다"며 "반드시 연내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이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재열 김포파주인삼농협 조합장(왼쪽부터), 서정태 진동농협 조합장, 서영교 운봉농협 조합장, 남정순 영주농협 조합장, 염규종 수원농협 조합장. 사진=연합뉴스
◇농축협 조합장들 "전체 조합장 88.7%가 중앙회장 연임 허용 찬성"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은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협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중앙회장 연임 허용 여부는 농협 구성원의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전체 조합장의 88.7%가 연임 허용에 찬성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농협법 개정안에 있는 중앙회장의 연임에 대해 단임제의 부작용을 방지하고 중앙회장의 중간평가 기회로 삼아 농협의 중장기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으로서 연임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른 협동조합은 연임제를 하고 있어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도 했다.
축산발전협의도 중앙회장 연임제 도입을 위해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조합원의 40% 이상이 70세 이상...지역농협 적정 규모 논의 전면 재검토"
농협법 개정안에 대해 단임제 의무조항과 연임제를 위한 개정을 둘러싼 농협법 전체를 조망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기태 전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에 관한 긴급 국회토론회'에서 "농협법 개정의 핵심 이슈가 농협중앙회장의 단임제냐 연임제냐하는 국소적인 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범농협 뿐 아니라 농업계 전체 및 국가 사회경제 차원에서 볼 때 소모적인 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소장은 "중앙회의 연임을 둘러싼 불평등한 선거 이슈는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매표행위와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중앙회장 임기 4년 전체를 통해 금융사업을 통해 형성된 수익을 배분하는 회원조합지원 사업 시스템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중앙회 전체의 조합지원사업의 체계 정비 및 비금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9년 기준 농민조합원의 40% 이상이 70세를 넘어섰으며 지역소멸이란 논의가 강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지역균형발전에 농협이 어떻게 역할할 것인지, 농협협동조합이 식품 유통체계에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지, 도시농협 문제 등 불리한 이슈를 유리한 이슈로 전환할 수 있는지 등 지역농협의 적정 규모 논의를 전면 재검토하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것 등이 현재 농협이 직면한 핵심적인 이슈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