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 만보(晩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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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0. 23:30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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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晩步)
요약 「만보」는 ‘저물녘에 걸으며’라는 뜻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집 『퇴계집(退溪集)』제1권에 실린 전문 16행 5언 고시의 한시다.
전반부에서는 하루 종일 서책을 보다가 거니는 저물녘의 가을 정경이 묘사되고, 후반부에서는 학자로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심정이 표현되고 있다. 주 내용은 학문적 성취에 대한 염원과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남산에 있는 퇴계 이황의 동상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퇴계 이황의 문집 『퇴계집』제1권에 실린 5언 고시의 한시다. 제목 ‘만보’는 ‘저물녘에 걷다’ 또는 ‘저물녘에 걸으며’라는 뜻이다.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인 퇴계 선생의 일대기는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26세(1526년)까지로 수학기(修學期)로 어머님의 훈도 아래 자질을 키우고, 사서삼경 등 독서에 열중한 시기다. 중국 시인 도연명(陶淵明)을 흠모하였으며 침식을 잊고 공부에 몰두한 탓에 건강을 해쳐서 평생 병마에 시달릴 정도로 학문 수양에 몰입하였다.
제2기는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시기인데,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후 어지러운 조정을 피해 산림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할 것을 결의를 굳히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 1545년)를 계기로 병약(病弱)을 구실 삼아 46세에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향리로 돌아가 독서에 전념하면서 구도생활에 들어가기 전까지이다.
제3기는 자신의 호를 토계(兎溪)에서 퇴계(退溪)로 개칭하고 관계를 떠난 후 학문적 성취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다. 그러나 관직에서 완전히 물러날 수 없는 형편 때문에 단양군수, 풍기군수 등을 역임하기도 한다.
43세 이후 명종(明宗), 선조(宣祖)에 이르기 까지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거나 임관에 응하지 않는 일이 20여 회에 달할 만큼 심적으로는 학문에 전념한 시기이다.
수많은 학문적 저작 중에서도 필생의 심혈을 기울인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하여 어린 선조대왕께 올린 것은 죽기 일 년 전인 69세의 일이다. 70세 되던 11월에 사랑하던 매화에 물을 주게 하고 조용히 침상에 앉아 역책(易簀: 학덕이 높은 사람의 죽음)하였다.
「만보」는 대학자(大學者) 퇴계 선생이 자신의 학문에 대한 열정 속에서 마음만큼 따라 주지 않는 학문적 성취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만보’라는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작품 5언 절구가 『퇴계집』 5권에 실려 있다.
작품전문
苦忘亂抽書(고망란추서)
散漫還復整(산만환부정)
曜靈忽西頹(요령홀서퇴)
江光搖林影(강광요림영)
扶筇下中庭(부공하중정)
矯首望雲嶺(교수망운령)
漠漠炊烟生(막막취연생)
蕭蕭原野冷(소소원야랭)
田家近秋穫(전가근추확)
喜色動臼井(희색동구정)
鴉還天機熟(아환천기숙)
鷺立風標逈(노립풍표형)
我生獨何爲(아생독하위)
宿願久相梗(숙원구상경)
無人語此懷(무인어차회)
瑤琴彈夜靜(요금탄야정)
현대어 풀이
잊음 많아 이 책 저 책 어지럽게 뽑아놓고
흩어진 것 다시 정리하자니
해는 문득 서쪽으로 기울고
강에는 숲 그림자 드리워 흔들리누나.
지팡이 짚고 뜰에 내려 가
고개 들고 구름재를 바라보니
아득하게 밥 짓는 연기 일고
으스스 산과 들은 싸늘하구나.
농삿집 가을걷이 가까워오니
방앗간 우물터의 아낙네 얼굴엔 기쁜 빛이 돌고
갈까마귀 날아드니 절기가 익었고
해오라기 우뚝 서니 모습이 훤칠하도다.
내 인생은 홀로 무얼 하는지
숙원은 오래도록 풀리지 않으니
이 회포 누구에게 애기할거나
거문고만 둥둥 타네, 고요한 밤에.
작품해설
전문은 16행으로 이루어진 5언 고시다. 전문 16행은 4구씩 네 단락으로 나뉘는데, 이를 기-승-전-결로 요약할 수 있다.
기(起: 1~4행)의 첫째 단락에서는 하루 종일 학문에 몰두하며 ‘이 책 저 책 뽑아보다가 흩어진 책들을 정리하다’가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쓰고 있다.
승(承: 5~8행)의 둘째 단락에서는 해거름 녘에 뜰에 내려가 지팡이를 짚고 서서 저녁을 맞이하는 모습인데, 마을의 집집마다 저녁밥 짓느라 피어오르는 연기와 문득 옷깃에 스며드는 싸늘한 가을 기운에 대해서 쓰고 있다. 하루 중의 저녁, 네 계절 중의 가을로 이어지는 서경 묘사와 시간적 배경은 곧 작가의 인생에서 노년기와 호응하는 시간 설정임을 알 수 있다.
전(轉: 9~12행)의 셋째 단락에서는 가을 수확기를 맞이하는 풍요로운 농촌의 모습을 ‘방앗간과 우물터의 아낙네들의 기쁜 얼굴’로 함축시키고, 시선을 들로 향해 황금빛 들녘 해거름에 서 있는 갈까마귀와 해오라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結: 13~16행)의 넷째 단락에서는 작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숙원(宿願: 오랜 소원)’이라는 한 단어로 함축시키고 있는 바, 이것은 다름 아닌 학문적 성취를 말한다. 그러나 학문의 지고(至高: 지극히 높음)한 경지는 도달하기가 쉽지 않고, 그런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하릴 없이 예로부터 선비들의 벗인 북창삼우(北窓三友: 선비의 세 가지 벗인 거문고·시·술)의 하나인 거문고나 타면서 회포를 푼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몇 개의 시어가 대비 호응되고 있다. 전반부의 서경묘사에 이어지는 후반부의 서정묘사로, 전형적인 선경후정(先景後情: 앞에서는 경치를 제시하고, 뒤에서는 人情을 제시하는 한시 전개의 전형적인 구조)의 구조와, ‘저녁, 가을 ↔ 인생의 노년기’, ‘방앗간, 우물 ↔ 학자의 서재’, ‘아낙네의 기쁜 얼굴 ↔ 착잡한 학자의 심정’, ‘농촌의 가을걷이 ↔ 학문적 성취’ 등이 대비되고 호응되면서 은연중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주제는 학문적 성취에 대한 염원과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작품 속의 명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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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晩步)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양현승, 강명관, 위키미디어 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