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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별보고서)종합병원과 병원의 진료과정의 차이를 밝히고, 현재 환자의 병원진료과정 및 시설을 1960년대, 1980년대, 2000년대별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조사해보자.
[종합병원의 진료과정]
*종합병원: 각종 의료인력과 시설 및 최신의료 장비를 갖춘 대형의료기관.
한국 의료법 제3조는 종합병원은 의사 및 치과의사가 의료행위를 행하는 곳으로서 입원환자 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진료과목으로 최소 내과 ·일반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진단방사선과 ·마취과 ·임상병리과 또는 해부병리과 ·정신과 및 치과가 설치되어 있고, 각 과마다 필요한 전문의를 갖춘 의료기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아무리 대형 의료기관이라고 하더라도 단일진료과목으로는 종합병원이 될 수 없다.
한편 종합병원의 시설기준은 수술실 ·산실 ·처치실 ·응급실 ·임상검사실 ·약제실 ·방사선장치 ·마취준비실 ·회복실 ·중앙공급실 ·의무기록실 ·소독시설 ·급식시설 ·난방시설 ·공공 및 자가급수시설 ·세탁시설 ·오물처리시설 ·연구실 ·회의실 ·도서실 ·시체실 ·적출물관리시설 ·적출물소각시설 ·구급자동차 ·자가발전시설 ·구급낭과 각 과별의 진료실을 갖추어야만 한다.
-기본적인 외래진료 절차 -선택진료.일반진료
[병원의 진료과정]
*병원: 사전적 의미로는 병자(病者)를 진찰, 치료하는 데에 필요한 설비를 갖추어 놓은 곳.
법률상으로는 30명 이상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의료 기관 이라고 되어있다.
-진료절차
<종합병원과 병원의 차이점>
병원과 종학병원은 2차 의료급여기관(의료법에 따라 시.도지사가 개설허가한 의료기관이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 둘의 차이점은 위에서 볼 수잇듯이, 종합병원은 진료신청서과 의뢰서를 작성해야 하고, 그 비용도 따로 포함된다.
<진료과정 시설의 시대별 차이 >
한국병원의 역사에 대해 김일순 교수는 다음의 네 가지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째는 대한제국 말기(1885-1910년) 서양의학이 한국에 도입되는 시기
둘째는 일본통치시대(1910-1945년) 일본의학이 한국 의료를 주도하게 된 시기
셋째는 대한민국 수립초기(1945-1969년) 대한민국 수립 전후와 6·25동란, 그리고 전화(戰火)로 인한 피해로부터 회복될 때까지의 시기
넷째는 1970년대 이후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가 자주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룩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의료는 근세에 들어 자연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의학이 학문적으로 발달하였다.
과거 단순히 환자를 수용했던 시설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시기에는 전문적 의료과 각과의 전문의, 간호, 영양,가정 등의 전문화가 이루어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병원이 중심이 된 간호사업(시설의료)가 확대 되었다.
현대에는 인간 중심의 보건의료가 등장, 발전했다.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예벙,가정의료 등
의료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고 물질문명의 발달에 병행하여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중시되고 있다, 또한 예방치료 재활의 발전 전개과겅에서 병원의 기능과 역황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가 종속적인 데서 자유로운 관계로 발전했으며 포괄적인 의료로 종합화 되었다.
-1960년대
1960년대초부터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개발이 성공됨으로써 그 효과가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의학이 각 분야에서 급속하게 발전하는 시기로서 병원도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그간 잠재해 있던 의료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병원수요가 급상승하였으며, 의료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급격히 증가되었다.
그간 일본의학의 발전에 크게 의존해 왔던 한국의학은 미군정(美軍政)의 실시와 미군 등의 6·25 참전으로 미국의 발달된 의학과 의료제도 및 의학교육제도 등을 직접 도입하게 되어 각종 의료와 관련된 제도가 미국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극도의 빈곤으로 국민의 건강상태가 지극히 불량하였으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별로 많지 않은 의료시설마저도 크게 활용되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병원도 오히려 쇠퇴 또는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공공병원(公共病院)
1960년대를 지나면서 대부분의 시도립병원(市道立病院)들의 모습은 의사의 부족, 시설의 노후 등으로 수용소와 다름없는 상태로 되었다. 국립 대학병원들은 시도립병원과 같은 수준으로까지 되지는 않았으나 거의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료문제를 지불능력 범위 내에서 해결해 주어야 할 책임을 가진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1950년에서 1969년에 이르는 20년 동안 서울과 지방에 13개의 소규모 시도립병원을 설립하여 저소득층 환자의 진료에 힘쓴 바 있다.
*선교병원
기독교 선교병원들도 이 기간에 어려움을 겪는 점에서는 공공병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미 기독교 선교병원의 대부분은 한국인 의사들에 의하여 관리 운영 및 진료되고 있었다. 비록 국민의 잠재의료수요는 많았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유효의료수요(effective medical demand)는 적어 재정적으로 병원운영이 지극히 어려웠으나 미국, 캐나다 등의 선교부에서 보내오는 소액의 지원금으로 겨우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병원의 쇠퇴로 선교병원들은 오히려 우리나라 병원의료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긴급한 의료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이유와 병원의 부족 등으로 진료를 받지 못함에 따라 선교부의 지원을 받거나 또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작은 규모이기는 하나 부산의 복음병원, 서울위생병원, 침례병원, 인천기독병원, 원주기독병원 등 여러 병원들이 1950년대에 설립되었다. 당시에는 소규모였으나 그 이후 계속 발전되어 지방에서는 진료수준이 가장 높은 공익병원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고 그 중 일부는 후에 대학부속병원으로까지 발전되었다.
*민간병원
공공병원(公共病院)과 선교병원들이 쇠퇴 또는 성장이 정지된 상태에서 1960년대말까지 의원급이 질적·양적으로 크게 발전하여 부진한 병원의료를 보완하게 되었다. 1958년대에 시작된 전문의제도에 의하여 많은 전문의사들이 배출되었으나 근무할 수 있는 마땅한 병원들이 적어 이들이 직접 의원을 개설하고 전문진료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원의 상당수는 입원실과 수술실 및 검사실 등을 갖추고 소규모병원의 기능까지도 담당하게 되었으며, 몇몇 의원들은 차츰 규모를 확대하여 30∼50병상의 병원으로까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대적 병원이 한국에 도입된 이래 병원의 설립과 관리운영을 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병원의료수요도 많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자본의 축적도 별로 없어 대규모병원을 설립할 능력이 있는 개인은 별로 없었다. 따라서 민간병원 건립의 움직임도 별로 없었다. 1960년대 중반에서부터 비로소 몇몇 의사가 중심이 되어 소규모의 개인병원들을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1963년에 설립된 서울의 제일병원, 1968년에 설립된 고려병원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들 병원도 초기에는 30∼50병상의 소규모병원으로 시작했으며 후에 대규모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하였다.
*대학부속병원
비록 경제수준이 낮고 사회안정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국민의료수요에 비해 의료시설과 의료인력이 절대 부족하였으므로 의과대학을 설립, 의사의 수를 증가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1945년 한국에는 모두 5개 의과대학이 있었다. 1945년에 이화여자대학교, 1953년에 부산대학교, 1954년에 가톨릭성신대학, 1960년대말에는 경희대학교, 한양대학교 그리고 충남대학교에 의과대학이 신설됨으로써 6개 의과대학이 추가되었다. 이에 대한 부속병원들이 설립되었는데 특히 1960년대말에 설립된 사립의과대학부속병원들은 당시의 수준으로 보아 큰 규모(300병상 정도)의 최신 시설과 장비를 갖춘 현대식 병원이었으며 병원시설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아울러 대학부속병원이 차츰 한국 병원의료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관련사진-
-1980년대
1977년부터 시작된 의료보험과 의료보호 등으로 의료수요의 증가는 가속되었다.
수요의 급격한 증대에 비추어 병원시설의 절대량은 부족하였다. 공립병원의 발전은 대단히 늦었으며 선교병원들의 발전은 급속하기는 하였으나 양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부족한 병원수요를 감당하기 위하여 민간에게 서둘러 병원을 신설하도록 유도하였다. 정부에서도 부족한 병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1978년에 취약지역 및 공단지역 병원설립에 재정지원을 하였으며, 1980년에는 지역민간병원계획을 수립하여 민간병원의 건립을 지원하였다. 정부지원 자금(외국차관 및 장기저리 융자 알선)으로 신설된 병원은 전국적으로 약 65개에 이르렀다.
급속한 병원의 발전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병원신설 및 경영의 경험부족, 전문의사의 절대수 부족, 지역적으로 불균형적인 분포, 의료기기 가격의 급격한 상승현상 등이다. 거기에다 저렴한 의료보험 수가로 병원들은 차츰 재정적인 어려움까지 겪게 되었다. 정부는 한때 재정적인 지원까지 해주면서 병원의 설립을 적극 권장해 왔으나 이러한 문제점들, 특히 병상의 지역적인 불균형 분포로 1984년 4월부터 병원설립을 지역적으로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1989년 전국민을 의료보험에 가입하도록 계획이 확장됨에 따라 병원시설이 부족한 농어촌지역 특히 낙도·오지 등에 병원설립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정부는 1987년부터 다시 39개 취약지역에 재정지원인 농어촌개발기금(農漁村開發基金)을 통한 민간병원유치계획을 서두르게 되었다.
*공립병원
의료수요가 급격히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기관은 민간의료기관에 비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첫째,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공공병원에 대한 정부의 투자능력이 위축되었으며, 둘째, 병원관리의 기업성에 대한 고려가 별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셋째, 30여년간 공공병원의 발전 정지로 병원으로서의 명망이나 신뢰가 낮아 전문의를 구하기도 힘들고 환자의 이용률도 낮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1978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을 특수법인(特殊法人)인 서울대학교병원으로 하고 공사형태로 관리운영하게 하였으며 1983년부터는 시도립병원을 지방공사화(地方公社化)하였다.
*민간병원(의료법인 및 개인병원)
급격히 증가된 병원의료수요를 기존 병원들이 모두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순수 민간재원에 의한 병원들이 급격하게 건립되었다. 그간 의원을 오랫동안 경영한 경험을 가진 의사 또는 약간의 부가 축적된 의사들을 중심으로 병원설립이 시작되었으며, 다음으로 어느 정도의 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의사와 의사집단 또는 사업가들이 병원을 설립하기 시작하여 병원건립 붐을 일으켰다.
그런데 1973년에 병원은 법인이어야 하도록 법령이 바뀌자, 많은 소규모의 병원들이 의원으로 격하하여 약 150여개의 소규모 개인병원이 병원수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개인이 의료법인(醫療法人)을 설립하여 병원을 건립함으로써 병원설립의 속도는 다시 증가되었다.
한편 민간병원의 급격한 증가는 농어촌이나 의료취약지역의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여, 정부는 1978년에 농어촌 및 공단지역 병원건립계획을 설립하여 13개의 병원설립에 재정적인 지원(차관 및 장기저리융자)을 하였으며 1980년도부터 민간지역병원계획을 수립, 50여개의 민간병원 건립에 재정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단기간에 많은 병원을 신설하게 됨에 따라 병원신설 경험의 부족, 관리능력의 미비, 그리고 재정상태의 취약 등으로 일부 병원이 도산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대학병원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의료수요에 비해 의사수의 절대 부족과 의과대학을 설립하기를 원하는 많은 대학교와 의과대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많은 학생들이 있고, 국민의 대학부속병원 선호도가 높아 정부는 많은 수의 의과대학 신설을 인가해 주었다. 신설 의과대학은 대규모의 부속병원들을 건립하였으며, 기존 대학부속병원들도 시설을 대량 확충하고 장비와 시설을 현대화하였다. 그리하여 전국의 대학부속병원들이 한국 병원의료의 중심이 되었다.
-관련사진-
-200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학,과학의 발전은 나날이 높아서 많은 종합병원과 병원들, 심지어 동네의원들까지
환자를 위한 최신식 의료기기를 도입하여 사용하고있다.
원거리 진료, 유비쿼터스 헬스 케어
전자의무기록 외에도 IT기술을 활용하는 새로운 의료서비스 제공방법과 환자 진료방법들이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다. 유비쿼터스 헬스 케어 시스템은 환자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서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환자들이
우선 서비스 대상이다. 분당 서울대 병원은 당뇨,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유비쿼터스 헬스 케어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환자가 집에서 직접 채혈해서 그 혈액을 측정기에 대면 휴대폰 단말기를 통해 환자의 건강정보가 병원으로 전송되는 방식이다.
병원에선 중앙컴퓨터에 모인 환자정보를 분석해 결과를 휴대폰으로 통보하거나 119를 보낸다.
-> 유비쿼터스 헬스 케어를 위한 장비들, 환자가 직접 자신의 몸상태를 체크해 병원에 전송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에선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민간병원에서 자발적으로 정보화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학 병원과 서울대 분당병원, 신촌 세브란스 병원, 경희대, 건국대 병원 등이 그러하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소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등 공공의료기관 정보화 투자에 4년간 3천억을 투자할 계획이다.
-관련사진
2000년 의약분업 발전된첨단장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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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저자 |
책이름 |
출판사 |
발행일 |
김종인 외2명 공저 |
보건학원론 |
계축문화사 |
2009.3.2 |
서울大學校病院 |
서울大學校病院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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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5.1 |
두산동아 |
두산백과사전 |
두산동아 |
1996~ |
세브란스병원 ((http://sev.iseverance.com/))
병원의 역사 ((http://hospitallaw.or.kr/hospital-korea%20history.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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