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면이지요?
조숙진
늘어진 마당이 접힌 곳
올봄 민들레 앉았던 곳
그 자리엔 시간이 거꾸로 간다
햇살이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는 아침나절
깔깔깔 모여 나물 캐던
산골짜기 가재 잡던
아이들 그 속에 다 모였네
바람의 장난에 숨어 버릴까 봐
노란 대문 살며시 닫자
눈웃음 마주친
꽃과 나
우리, 구면이지요?
----조숙진 시집 {우리, 구면이지요?}(근간)에서
조숙진 시인의 [우리, 구면이지요?]는 회고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꽃, 인간과 인간이 하나가 된 동화의 세계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동화의 세계는 모두가 다같이 어질고 착하며, 어느 누구 하나 굶주리거나 아픈 사람도 없다. 도덕과 법률과 예의범절을 몰라도 이상낙원의 원주민들과 그 어떤 상처와 불화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동화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늘어진 마당이 접힌 곳은 커다란 마당이 동화책처럼 접힌 곳을 말하고, 올봄 민들레가 앉았던 곳은 늘어진 마당에 민들레가 피었다는 것을 뜻한다. 동화의 세계에서는 마당을 동화책처럼 접었다가 펼칠 수가 있고, 그 동화책을 펼치면 민들레가 피었던 곳에서 시간이 거꾸로 간다. “햇살이 쪼그리고 앉아” 아침나절을 들여다보면, “깔깔깔 모여 나물 캐던/ 산골짜기 가재 잡던” 아이들이 다 모여든다. “바람의 장난에 숨어 버릴까 봐/ 노란 대문 살며시 닫자” “눈웃음 마주친/ 꽃과 나”는 ‘술래잡기’의 장난꾸러기가 된다.
그렇다. 꽃과 나는, 아니, 나와 우리들 모두는 예전부터 잘 알고 지냈고, 그립고 정다운 동화 속의 세계는 영원히 계속된다. 만악의 근원인 탐욕도 없고, 더없이 착하고 선량한 이웃들을 아주 궁핍하게 하거나 파렴치범으로 몰고 갈 사유재산제도도 없다. 자유는 맑은 물과도 같고, 평등은 산소와도 같고, 사랑은 따스한 봄볕과도 같다.
이방인도 없고, 악마도 없다. 저승사자도 없고, 불량배도 없다. 모두가 다같이 부모형제이고, 친구이고, 따라서 언제, 어느 때나 그립고 정다운 사람들만이 살고 있을 뿐이다.
시인은 영원한 어린아이이며, 더없이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동심으로 이상낙원을 창출해낸다. 시는 이상낙원이고, 시인은 이상낙원의 창조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