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인들, “죽기 전에 야오(姚)씨 집안에서 문진 한번 받아 봤으면 여한이 없을 텐데…”
⊙ 장중경의 《傷寒論》, 환자와 병증의 개별화로 난치병 다스리는 데 유리
⊙ 神醫들의 도제식 교육 받으려는 일본인 줄이어… 한국인은 거의 없어
金正賢
⊙ 55세. 서울경찰청 경위 퇴직.
⊙ 주요 작품으로 《아버지》 《어머니》 《맏이》 《누이》 등 가족 연작.
⊙ 2002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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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응급의학 경력을 접고, 16대째인 중의학 가문의 뒤를 잇고 있는 야오메이링. |
<닥터 진> <마의> <골든타임> <제3병원> <더 바이러스> …. 병원과 의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줄을 잇는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결국은 차별 없는 인간존중이 본연의 자세이고, 그것을 실천한 이들이 감동적인 결과를 얻는다는 이야기인 듯싶다. 하지만 과연 현실도 그러할까.
지난해, 우리나라 최고 의과대학 1~2학년생들의 베이징 탐방연구 발표에 강평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역시 수재라 할 만한 젊은이들이었다. 아무리 인터넷에 자료가 널려 있다지만 불과 1주일 사이에 그처럼 정연(整然)한 발표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들의 발표는 약속한 듯이 똑같은 주장으로 끝을 맺었다. ‘한국 의료계의 중국인 유치를 위해서는 성형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실망했다. 눈치도 없이 쓴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이제 의사로서의 첫발을 뗀 수재들이지만 실망이 크다. 의사의 길로 들어섰으면 우선 본연의 자세가 인간존중임을 자각하고 가슴속에 심어야지 기껏 의술로 돈이나 왕창 벌겠다는 결론이냐’는 요지였다. 분위기는 싸늘해졌고 의례적인 박수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쓱해져 나오는데 지도교수가 “큰일 났습니다. 저 친구들 김 선생님 책은 절대 안 사 볼 테니”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진심으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언제나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만약 소리로 내뱉었다가는 퇴출을 우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찌 어린 학생들만 탓할 수 있으랴. 의술이 상술이 된 것은 이미 한참 전이고, 앞으로도 제자리로 돌아갈 기미는 도무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의사, 한의사, 약사 등으로 갈라져 저마다의 이권을 위해 수시로 삭발하는가 하면 환자를 볼모로 한 진료파업까지 서슴지 않는다.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 다른 나라,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 의학계가 은근한 우월의식까지 갖고 있는 듯싶은데, 그들의 실제는 어떨까.
현대판 華陀 가문, 江西省의 ‘야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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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은 동양 전통의학의 시작이다. |
누구나 몸이 아프면 한 번쯤 최고의 명의(名醫)를 만나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것이다. 중국에도 그런 이가 몇 있는데 ‘문진(問珍) 한 번 받아 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가문이 있다. 바로 장시(江西)성 출신의 야오(姚)씨 가문이다. 현재 야오춘링(姚春齡), 야오메이링(姚梅齡), 야오지링(姚芷齡·여) 3남매가 가문의 의술을 잇고 있는데 춘링과 메이링은 난치병 전문의로, 지링은 부인과 전문의로 명성이 높다. 그들 중 둘째 야오메이링을 만나기로 했다.
1944년 생으로 현재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에서 진료하고 있는 야오메이링은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의사이다. 그는 장시중의학원(江西中醫學院)에서 수학하며 속칭 중의(中醫)로 불리는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약칭 서의·西醫)을 같이 배웠다. 물론 그것은 그의 경우만이 아니다. 중국 의대는 5년제로 우리의 예과(豫科) 과정은 없고 1학년 때 중의를 배운 뒤, 2학년부터는 중의와 서의를 같이 배운다. 또 3학년부터는 동·서의 전 과(科)에 대한 임상실습도 병행한다. 그러니 사실상 중국에서 중의와 서의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특히 메이링은 응급의학에 심취해 모교의 응급학과 주임을 지내는 등 서의로서 20여 년간 활동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중의로 난치병을 치료하며 가문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으니 그의 입을 통하면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찾아간 지난 3월 13일, 선전 밍더(明德) 중의원 진료실에서는 메이링이 홍콩 국적의 30대 초반 여성을 진료하고 있었다. 그녀의 병명은 강직성척추염으로 척추의 관절과 인대가 점차 뼈로 변화하여 굳어지는 만성질병으로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그런데도 환자와 보호자, 의사 모두가 연방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보호자의 말을 들으니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찾아와 오늘로 다섯 번째인데, 통증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그새 거동에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호전돼 휴직했던 직장을 다시 다니기까지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가 황당해 진료기록까지 슬며시 봤지만 온전한 사실이었다.
—환자 치료에는 주로 어떤 방법을 씁니까.
“나는 전적으로 중약(中藥·한약)을 씁니다. 그것도 많은 양이 아니라 한 차례에 네댓 첩이죠.”
—오직 중약만으로 난치병이 그처럼 빨리 호전되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상한론(傷寒論)》에 근거해 질병의 원인과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가능한 일이지요.”
《상한론》은 후한(後漢) 시대의 장기(張機, 자는 仲景 150~219년)가 저술한 의학서로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으로도 불린다. 그는 일찍이 전염병과 내과에 해당하는 여러 질병에 정통했는데, 서로 다른 여러 전염병에서 공통점을 찾아 제약(製藥) 요법을 만들기도 했다.
—《상한론》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어떤가요.
“장중경(張仲景) 선생이 《상한론》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모든 질병을 본질에 따라 분류하고, 그 병의 발생과 발전을 변증(辨證)의 방법으로 조사하여 각각의 특성에 따라 치료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변증은 경찰이 범인을 잡을 때 그러하듯 원인부터 진행과정까지 철저히 추적하여 증거로서 확인하라는 의미인데, 그것은 매 병이 동일한 이름으로 진단된다 할지라도 각각 개별적 특성을 가지니 그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가장 흔한 당뇨병을 예로 들어 봅시다. 지금 우리는 일반적으로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내리면 대부분 비슷한 처방으로 치료하려 합니다. 그렇지만 카테고리는 당뇨병에 든다 할지라도 그것의 발병 원인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그러한 만큼 병의 진행도 각각 다른 특성을 띠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개별적 특성은 배제하고 객관적 틀로만 치료하려니, 그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악화되는 경우도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당초에 인류는 병을 귀신이 들린 것이라 생각해 주술사에게 의지했지요. 그러던 것이 3500년 전쯤 아유르베다로 불리는 인도 의학에서 3500여 가지 질병으로 분류됐고, 그것이 이집트-아랍-희랍으로 넘어가며 현대 서양의학의 밑바탕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대의학은 아직도 질병분류학에서는 고대 인도에서 분류한 카테고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조금 더 세분화한 정도입니다. 하지만 장중경 선생은 이미 1800년 전에 각각의 증상과 질병의 본질에 따라 병증을 분류하는 이론을 설파했고, 《금궤요략(金匱要略)》이라는 저서를 통해서는 황달, 설사, 기침 등 증상의 특징에 따라 질병을 분류했는데, 이는 현대 서양의학과 그 궤를 같이합니다.”
“중의는 5000년간 검증 거친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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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침으로 신의의 반열에 오른 장스제. |
—서양의학자가 들으면 좀 섭섭할 것도 같습니다.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정확히 알자는 것입니다. 지금 중의는 질병이 발전 단계마다 변화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또 그 변화마다 각기 다른 병으로 봐야 하는 것이기에 단일한 처방이 아니라 복합적인 처방으로 바뀌었고, 실제 여러 난치병 임상에서도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관찰하는 과정은 철저히 변증의 원칙에 따르고요.
서양의학에도 훌륭한 점은 많습니다. 외과적 수술도 그렇고, 단순한 방법으로 다수의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탁월한 점이죠. 그러나 일괄적인 치료는 개개인 병증의 뿌리를 뽑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외과수술도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인간의 신체는 소우주인데 그것에 칼을 댄다는 것은 파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수술해야겠지만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데 현실은 수술이 남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응급의학에서는 서의가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저도 서의로서 20여 년간 일했고, 특히 응급의학을 전문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응급이라고 반드시 서의여야 한다는 생각은 틀린 것 같습니다. 찢어지고 부러진 것 같은 외상의 경우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장계 질환, 복통, 급성장염 등 다양한 내과적 질환에도 응급의학이 소요됩니다. 그런 내과적 질환의 경우에는 중의로도 충분히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그것이 후속치료와 관련하여 훨씬 효과적이고 순리적이기도 하지요.”
—서의에서 중의로 전환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까.
“반드시 그렇게 말할 것은 아니지만 점점 흔해지고 있는 난치병 치료에는 중의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또 모든 병은 근치(根治)가 필요한데 서의로는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요.”
—중국의대에서는 중의와 서의를 함께 가르치더군요.
“서로를 기피할 이유가 없지요. 의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옳은 자세이지요. 더구나 이제는 통섭의 시대 아닌가요(웃음).”
—오직 약으로만 치료를 하나요.
“필요하다면 침을 쓰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약으로도 충분하지요. 병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서의의 여러 과학적 검사 결과도 충분히 참고하고요. 제가 중약을 선호하는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운운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릅니다. 수치화, 계량화한 소위 과학적인 것만이 증명된 바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수치화는 매사를 단순화시켜 개별적이고 복합적인 것에는 바르게 대처할 수 없지요. 우리 중약은 신농(神農:중국 약의 신)씨 이래로 이미 5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실제적 검증을 거친 것입니다.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과학이 아직 그만큼 따라오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집안이 대대로 의사 가문이더군요.
“16대를 이어져 오는데 애초에는 산둥(山東)성에 살다가 장시성으로 옮겨왔습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 야오허성(姚荷生)은 장시중의학원 총장을 지내기도 하셨는데, 선대로부터 연구해 온 《상한론》과 진맥학 관련 중의학을 집대성하셔서 형님을 필두로 우리 형제들이 그에 대한 정리와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 의사 초봉은 한국돈 50만원
지금 중국에서 의사의 위상은 그리 높지 못한 편이다. 보수 면에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의사 초임이 3000위안(약50만원) 정도에 불과한 곳이 허다한 실정이다. 물론 야오 가문의 의사들처럼 명성이 높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메이링에게 진료 받는 홍콩 환자의 경우 1회 진료비가 300위안(약5만원)이었다. 그렇지만 먼저 30분가량 조수급 의사가 문진한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기본적으로 30분은 직접 문진하니 그리 비싼 진료비는 아닌 셈이다. 그처럼 긴 시간 진료하는 까닭은 ‘망(望·보고), 문(聞·냄새 맡고), 문(問·묻고), 절(切·접촉하는 진맥)’의 방법으로 환자와 증세를 깊이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채 5분도 안 되는 짧은 의사와의 면담 끝에 처방전이라고 받아들면 허탈하기 일쑤고 불안한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오진과 그에 따른 의료사고 또한 적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현실에서 의사나 병원의 책임을 묻기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마치 뚫을 수 없는 벽과 같은 그들만의 세상이다.
의사, 한의사, 약사 간의 갈등도 꼴불견이다. 말로는 국민건강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저마다의 독점의식, 밥그릇싸움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심지어는 기껏 기계일 뿐인 의료기기도 나만 사용 가능하고 너는 안 된다며 벽을 쌓는 졸렬함이니 무슨 통섭을 기대하랴. 아무리 세계적인 명의라도 대한민국 의사면허증 없이는 환자에 대한 직접 진료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명한 의사를 초빙해 놓고도 그저 국내 의사의 자문에나 응하게 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외국의 그 대학에서 공부했음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으스댄다. 중국은 물론이고 외국 어디에서 의학을 공부했건 그들의 세상에서 자격을 취득하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니 무슨 오만인가. 중간에서 골병드는 건 국민들뿐인데 법을 개정해야 할 국회는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병원 문틀 주련의 글씨를 설명해 준다. ‘치학포도원천하귀진(治學布道願天下歸眞·학문을 하고 도를 널리 퍼트리며 천하가 본질로 돌아가기 바란다)’, 의술마저 돈을 벌고 권세를 자랑하기 위한 것으로 변질된 세상에 대한 경구인 것이다. 또 그 실천을 위해서 ‘법자연(法自然·자연을 본받고) 도양지(道良知·참된 지혜를 존중하고) 홍인도(弘人道·사람의 도를 널리 알리자)’를 덕목으로 삼는다고 한다. 의사의 본분을 지키려는 그의 올곧은 심성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중국의 전설적 신의(神醫)를 손꼽으라면 우선 《삼국지(三國志)》에서 관우(關羽)의 독화살 맞은 어깨를 외과적 수술로 치료했다는 화타(華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중국에서도 믿기 어려운 성과로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하는 명의들이 있다.
물 한 모금만 삼켜도 즉시 토해 버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지인이 중요한 일로 중국에 온 적이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 의사를 소개했더니 그 자리에서 침 몇 대를 맞고 금방 식욕을 느껴 만두를 먹더니 저녁에는 술까지 마셨다. 그러고도 아무 일 없었으니 놀라울밖에. 서울에 돌아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듣는 이가 이상한 눈빛으로 보다가 “그런 소리 하고 다니지 마. 사기꾼 소리 들어” 하더란다. 그게 만약 미국이나 영국에서의 일이었다면 일단 귀를 쫑긋했을 것이다. 중의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편견은 지나친 면이 있다.
선천적 뇌손상도 침술로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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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스제의 침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날카롭다. |
장스제(張士杰), 올해 83살로 중의약대학(中醫藥大學) 부총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중국에서도 흔치 않은, 정부가 공인하는 국가급 의사이다. 베이징 외곽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집안에서 하던 중약방 일을 돕다가 침을 배웠다. 그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시침(施鍼)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 침을 빼는 유침(留鍼)법을 쓰지 않는다. 그가 쓰는 침법은 쾌침(快鍼)으로, 시침 시에 몇 차례 침을 움직여 강한 자극을 준 후 즉시 빼내는 방법이다. 자극에 따른 얼마간의 통증을 수반하기는 하지만 진료 시간이 짧고 효과가 빠른 장점이 있다. 하지만 쾌침은 확실한 자신감이 없으면 실행하지 못하는 쉽지 않은 침법이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아무래도 팔순의 나이가 있는지라 따로 시간을 내기는 어렵고 진료 시간에 찾아오면 틈틈이 답변하겠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그의 진료실 앞은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진료실에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시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심한 생리통과 복통으로 동·서의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효과가 없어 장스제를 찾았다가 빠른 호전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뒤이은 환자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 후유증으로 녹내장을 앓아 시력을 거의 잃어버린 30대 중반 여성이었다. 그녀 역시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역시 쾌침법을 사용하니 진료 속도는 빨랐고 그만큼 숨 돌릴 여유도 있었다. 장스제는 진료실에 성인 남자가 들어오면 진맥 전에 담배를 권하기도 한다. 황당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환자의 긴장을 풀어 주고, 나이 고하와 상관없이 벽 없는 소통을 위한 나름의 방편이다. 그에게는 도제 방식으로 침술을 배우는 제자가 많다. 제자들에 대한 스승으로서의 그의 자세는 엄격하기 그지없다. 아주 작은 실수가 있어도 그 자리에서 불호령을 내린다. 의술에서의 실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날 따라 어린 환자가 많았다. 태어나면서 소아마비를 얻어 걸음을 걷지 못하고 두 눈은 사시(斜視)가 된 다섯 살 아이도 있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간 20번쯤 시술받았는데 두 눈은 바르게 초점이 잡히고 걸음도 정상에 가깝게 되었다는 것이다. 뇌기능 이상증세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어린아이도 장스제의 침술로 증세가 호전되어 있었다.
직접 듣고 목격한 사실을 쓰면서도 너무 ‘전설’ 같은 이야기라 독자들이 믿어 줄까 걱정된다. 그래도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와 시침의 아픔에 내맡기고 함께 눈물지으며 희망을 품는 엄마들을 보면 믿어지지 않아도 믿고 싶다. 아니, 꼭 믿어 줘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어떤 환자든 다 받는 것도 아니었다. 출산 시 뇌출혈로 뇌경색이 일어나 하반신이 마비된 두 살배기 아이는 간단한 신경반응검사 뒤 부모의 간청에도 단호하게 내쳤다. 수술 후유증으로 회복이 더딜 뿐이니 굳이 돈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부모는 온몸에 보석을 두른, 한눈에도 돈 걱정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장스제 1회 진료비는 중국인은 330위안(약5만7000원), 외국인은 500위안(약8만7000원)에 달한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진료실에서의 일을 서양의사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요.
“누가 뭐라 하건 그게 무슨 상관이오. 약이든 침이든 서의든, 그 어느 것에 우열을 둔다는 건 더구나 의사가 할 일은 아니지요. 내 것이 아니더라도 효용이 있으면 각각의 쓰임새에 맞게 사용하면 되는 일입니다. 의사에게는 환자의 치유가 최고의 선(善)이니까요.”
—선생님의 침술은 어떤 의전(醫典)에 근거한 건가요.
“중국의 침술은 기본적으로 《황제내경(黄帝內經)》을 근간으로 하죠. 특히 내가 사용하는 쾌침은 고대에 주로 사용되던 침법인데 지금은 시술할 수 있는 의사가 그리 많지 않아요. 난 쾌침법을 《내경》을 읽으며 혼자서 익혔어요.”
침술 배우러 일본인 제자 줄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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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스제 문하에서 임상 수학 중인 일본인 침술사들. |
《황제내경》은 고대 황제(黃帝)와 그 신하 기백(岐伯)이 의학에 관해 나눈 토론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저술된 의학서로 《내경》이라고도 한다. 크게는 <소문(素問)>과 <영추(靈樞)>로 나뉘는데, <영추>에 침구와 물리요법 등이 상술되어 있으며, ‘침경(鍼經)’ ‘구침(九鍼)’ 등으로도 불린다.
—유침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유침이나 쾌침이나 기본적인 원리는 같습니다. 중의에서는 사람의 질병은 기가 막히거나 순환에 장애가 발생해 생기는 것으로 보는데, 침으로 그 기를 뚫어 줘 소통시킴으로써 치유하는 것이지요. 중의학에서는 사람 몸의 기(氣)는 하루 50번 순환하는 것으로 보는데 그것을 시간으로 계산하면 한 번 순환하는 데 대략 28분 정도가 소용됩니다. 유침은 그 원리 아래 환자의 증상을 살펴 기가 막히거나 약한 곳에 시침하여 기를 돌게 한 후 한차례 순환할 때까지 자극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반면 쾌침은 시침할 때 자극을 강하게 해 저절로 기가 순환되도록 하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 혈자리를 정확하게 짚어 내고 어느 만큼의 자극을 줘야 하는지에 확실한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형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왜 이 혈자리냐 하는 문제인데, 유침은 그나마 규범화가 가능하고 실제 많은 진전도 있어요. 그게 중의 발전의 원동력이죠. 그러나 쾌침은 아주 예민한 강도까지 규범화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 아무래도 오랜 임상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요.”
—도제식 수업이 최선의 방법일 것 같은데 제자들은 많나요.
“아쉽게도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에서 배우러 오는 제자들이 많은 편입니다.”
—한국인도 있습니까.
“없어요. 특히 한국은 침법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나라인데 아쉽습니다.”
—중요한 나라라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요.
“《황제내경》은 춘추전국 시대부터 저술되었는데,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지속적인 수정 보완이 이루어져 오던 것이 언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게 북송(北宋) 철종(哲宗) 때 고려로부터 다시 전해져와, 수정 보완을 계속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듣건대는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침법 또한 중국에서 한국, 다시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그 무렵 고려의 사신이 일본에서 발견해 한국으로, 다시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은 침법에 있어 탁월한 수준에 있었지요. 실제로 고려 때 의관을 선발하는 ‘의업(醫業)’ 과거에는 《침경》이 포함되어 있었고요.”
《황제내경》의 저술 시기는 일반적으로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秦) 대부터 한(漢) 대까지라고 하지만 그렇게 단정할 바는 아닌 듯싶다.
—한국과도 교류가 있나요.
“근래까지도 한국의 침법은 아주 뛰어났습니다. 특히 침구학회를 이끌던 신태호 선생은 아주 훌륭한 분이죠. 저도 그분과 교류하며 여러 차례 한국을 드나들었는데 학회에서의 강의는 물론 저명한 분들의 진료도 많이 했지요. 또 그분들이 다시 중국으로 찾아와 진료를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산업화의 가속에 따라 서구과학에 깊이 빠져들며 점점 침구학을 홀대하더니 지금은 …. 오히려 한국에 뒤처지던 일본은 지속적으로 침법을 연구하고 있어 며칠 후에도 중국에서 학회가 열리고, 백 명 이상의 관계자들이 참석합니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죠.”
—중국 의술의 기본이 되는 바탕은 무엇인가요.
“크게는 말씀드린 《황제내경》과 장중경 선생의 《상한론》입니다. 특히 《상한론》은 환자 병증의 개별화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일체화에 집중해 생기는 오류를 막을 수 있게 했죠. 또 약학에서는 《본초강목》이라는 탁월한 의서가 있어 기본을 더욱 탄탄하게 했고요.”
《본초강목(本草綱目)》은 명(明)나라 이시진(李時珍)이 약으로 쓰이는 1892종의 자연물을 그 특성과 맛, 기능들을 분석하여 저술한 책으로 1578년에 완성되었다. 지금은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약학자 및 식물학자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다.
의료의 목적은 돈이 아닌 인명 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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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더 중의원에 걸려있는 액자. “의료의 기본 정신은 사람과 자연이다”라는 뜻이다. |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도제식으로 수학하고 있는 일곱 명의 일본인 침술사들은 두 귀를 곤두세웠다. 그들은 길게는 4년에서 짧아도 2년은 매달 일정액의 수강료를 내며 임상에 참여한다.
문화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졌다. 우리가 문화적 종주국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부분이 그 반대이다.
지난호의 디자이너와 모델도 ‘단순함’을 성공의 기본적인 요소로 내세웠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또 같은 의미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무튼 현대 의료, 특히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이미 기득권을 형성한 이들에게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주역이 되어 갈 이들의 자세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너무 급하다. 어디서건 배우고 자격만 취득하면 단박에 눈빛이 달라진다. 애초부터 목적은 인명이라는 본질이 아니라 돈과 명성이었던 까닭일 것이다.
게다가 도제 방식으로라도 더욱 깊이 배우겠다는 겸허한 자세는커녕 시건방진 데다 사대주의적이기까지 하다. 과학사대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배운 계량화·수치화한 것만이 과학이고 나머지는 근거 없고, 그러니 미신이란다. 그럼 수천 년 인간의 경험으로 축적된 또 다른 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의 진실을 백안시하는 건 과학의 교만이고 모자람이다. 서방의 그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상의 경험을 물려받은 이들까지 무작정 신봉하는 자세는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중국의 의료 현실 또한 여전히 불안하다. 병원이라고 찾아가 보면 오히려 다른 병이 옮지나 않을까 불안한 지경이다. 열악한 처우로 빚어지는 부패 또한 심각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건방 떨 여유는 결코 없다. 그들의 넓은 땅, 엄청난 인구 속에는 정도(正道)를 지키며 연구를 지속하는 이도 무수히 많다. 어디서나 겸허하게 머리 숙여 나쁠 일은 없다. 하물며 의술에서야!
더욱 중요한 것은 웰빙과 힐링을 찾는 세상이다. 화학물의 조합보다는 자연이 웰빙과 힐링의 동반자가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아직 그리 늦지도 않은 듯싶다. 우리에게는 물려받은 오랜 전통이 있기에 말이다. 게다가 빼어나게 총명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들이니 밥그릇싸움에서 눈을 돌려 서로 화합하고 힘을 모은다면 반드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세상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다. 드라마 <마의>의 백광현처럼, 허준 선생과 허심탄회하게 손잡는 의료계의 성찰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