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十九 章 中原三大世家
냉무혼.
그는 지금 한 자루의 검을 매만지고 있었다.
"……!"
유난히도 검은 빛깔을 가진 검은 냉무혼의 손이 스쳐갈 때마다 무서운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무한한 결의가 태산처럼 서려 있었다.
그때,
스스스― 슥―!
방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그런 냉무혼을 빤히 응시하며 눈빛을 빛냈다.
"……!"
풀잎 같은 싱그런 눈매를 가진 여인.
그녀는 살며시 다가가 냉무혼의 옆에 앉았다.
"끝내 가시렵니까?"
냉무혼은 그런 백소아를 뚫어지게 직시했다.
"소아……! 이 세상에서 가장 천한 인간으로 태어나… 극도로 천하를 저주해 오던 나 냉무혼이오… 그래서… 그 멸시로 점철된 내 어린 가슴은… 언젠가는 천하를 한 손으로 쥐고 싶은 야망으로 채워져 있었소."
"……!"
"그리고 그 열망을 마침내 이룩했소."
냉무혼의 음성이 점차 흐르는 물처럼 고요해지고…
검을 매만지는 그의 자세 또한 더 없이 잔잔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지금 무너져 가고 있소. 그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확한 것이 아니오."
"허나……!"
"아니오. 지금껏 쌓아올린 내 젊음과 야망… 그리고 피의 고련을 위해서도… 나 냉무혼이 갈 길은 오직 하나인 것이오."
"……!"
백소아는 보고 있었다.
냉무혼의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마음을…
'갈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가고야 말 사람이다!'
그녀는 더 이상 냉무혼을 말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겠어요."
"소아……!"
"우린 이미 부부에요… 당신이 당신 스스로 구축해 온 천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저 또한 이미 평범하게 살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을 알아버린 다음이예요."
"……!"
"당신은 제 힘이 필요치 않다고 하시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
그리고,
백소아는 조용히 냉무혼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으음……!"
뜨겁고 격렬한 입맞춤이 이어지고…
무엇인가를 태워 버리려는 듯… 그들은 그날 격렬한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 * *
남궁세가(南宮世家).
아는가?
이 위대한 세가를……?
중원의 하늘일 수밖에 없는 중원삼대세가의 하나인 세가(世家).
이미,
멸문지화를 당한 제갈세가와 더불어 중원사대세가를 이어온 명문의 세가.
그 중에서도 검가(劍家)라 불리우는 이곳.
한 자루의 검이 남궁세가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한데, 비극은 바로 이곳으로부터 싹트고 있었으니…….
밀실.
음습하고 물씬 피비린내가 풍기는 하나의 밀실이다.
얼굴.
분을 바른 듯이 새하얀 얼굴.
그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여길 수 없으리 만큼 창백하다 못해 파르스름한 빛깔을 띄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으스스한 전율과 공포를 뼛속까지 스미게 하는 얼굴.
더구나… 실낱 같이 가늘게 찢어진 눈매에서는 잔혹한 살광(殺光)이 비수처럼 번득거리고 있었으니……!
"……!"
지금 그는……?
"……!"
째진 독사눈으로 사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좌우의 벽에는 죄인을 고문할 때나 사용을 하는 수많은 형구들이 즐비해 있었고, 살가죽을 벗기는 얇디 얇은 면도를 비롯해, 쇠꼬챙이… 죽침… 그리고 살점을 뜯어내는 갈고리가 무수히 달린 채찍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 사람.
얼굴은 거의 엉망으로 망가져 형체를 알아 볼 수가 없었으며, 전신은 뜯기고 패여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일으키는 참혹한 형상이었다.
누구인가?
이토록 참혹한 형상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참혹한 노인의 바로 앞에 한 명의 소녀가 알몸인 채로 죽은 듯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윤기 흐르는 고운 피부와… 채 여물지 않은 풋풋한 몸매가 싱그러워 보이는 소녀.
그러나… 타고난 아름다움은 가히 뛰어난 것이었으니…….
문득, 새하얀 얼굴의 중년인이 노인의 머리에 한 통의 물을 부었다.
"으오… 음……!"
노인은 정신이 든 듯 미약한 신음성을 발했다.
그리고는 이미 살아있는 눈이라고 여길 수 없는 그 눈을 떠 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 바로 알몸으로 누워있는 소녀가 노인의 눈에 희미하게 들어왔다.
"가… 가영아……!"
노인은 피를 토하듯이 절규했다.
아마도 혈육지간인 듯.
그때, 새하얀 얼굴을 한 인물이 조용히 다가와 노인의 턱을 치켜 올렸다.
"늙은이… 이제 검주령(劍主令)을 내놓아라!"
오오……!
어찌, 사람의 음성이 이토록 메마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의 음성은 그의 얼굴을 연상케 하듯이 극도로 무심하고, 단 한 올의 인성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한데… 검주령이라니?
오오……!
그것은 바로 남궁세가를 움직일 수 있는 절대 권위의 신물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 인물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었으니……!
순간, 노인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안된다… 나, 남궁휘가 비록 네놈들의 간계에 속아 이 지경이 되었으나 그것만은 내줄 수 없다."
"지독한 늙은이……!"
새하얀 얼굴에 한 가닥 시퍼런 독기가 서렸다.
그런데 말이다.
검천제(劍天帝) 남궁휘(南宮輝).
오오……!
그는 바로 남궁세가의 현 가주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남궁가에 있는 하나의 밀실에서 이토록 잔인한 몰골을 하고 있다니……!
"네놈만 움직이면… 중원삼대세가는 모두 잠마의 수중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 그럴 리가……!"
남궁휘의 잘 떠지지도 않는 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
"흐흐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본 잠마구령교다."
잠마구령교―!
그렇다면 중원삼대세가마저 그들의 손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아아……!
이는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득, 남궁휘는 하얀 얼굴을 향해 한 가지 물었다.
"대체… 네놈들은 무엇 때문에 중원삼대세가를 요구하는가?"
"흐흐흐… 말해 주지……!"
"……!"
"단 한 놈을 죽이려 하고 있다!"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중원삼대세가를……!"
"왜……! 믿지 못하겠다는 모양이군… 그러나 어쩌면 중원삼대세가를 전부 합해도 그들을 대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누… 누구요……! 그 사람은……!"
"천군대작… 그리고 천군십예사황이다!"
순간, 보이지도 않는 남궁휘의 눈과 얼굴 등 전신의 근육이 부르르 떨렸다.
"처… 천군대작… 그리고 천군십예사황……!"
"그렇다!"
"그렇다면 더욱 될 수 없는 문제다. 노부는 팔십 평생을 살아 오면서 단 한 번도 천하에 누를 끼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
"……!"
"한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을 몸이… 무엇이 두렵고 아쉬워 그런 엄청난 일을……!"
"흐흐흐… 과연 그럴까?"
하얀 얼굴은 사이한 괴소를 한 차례 날렸다.
그리고 그 다음.
슈― 욱―!
몇 줄기의 지풍이 알몸으로 누워있는 소녀의 몸에 격중되고,
파르르르르……!
소녀는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의식을 되찾았다.
그런 그녀의 입술을 뚫고 흘러나온 말.
"악마 같은 놈들… 네놈들을 언젠가는 수천 갈래로 찢어 죽일 것이다!"
"흐흐흐… 좋아!"
하얀 얼굴은 사이한 냉소를 머금으며 남궁휘를 직시했다.
"흐흐흐… 늙은이… 늙은이는 많이 살았으니까 죽어도 한이 없겠지… 그러나 이 딸년도 과연 그럴까?"
"으으으… 이놈들이……!"
"잘 봐라… 네 딸년이 어찌 되는지를… 그리고 마음이 변하거든 검주령을 내놔라."
말을 끝냄과 동시에… 그의 손 안에 들려있는 하나의 자루가 풀어지며,
스르르르……!
오오……!
십여 마리의 뱀들이 자루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하얀 얼굴은 소녀의 몸에 무엇인가를 뿌렸다.
순간,
쉬― 쉬― 쉬―!
뱀들은 팔뚝만한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소녀의 몸으로 기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아… 아아아악……!"
말도 할 수 없는 공포에 소녀는 질겁을 하고 있었다.
쉬쉬쉿―!
뱀은 새빨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그녀의 나신 위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아아… 생각해 보라!
그 공포스런 광경을……!
"아아아… 아악……!"
소녀는 전신이 새파랗게 질린 채 혀가 굳어져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하얀 얼굴은 음흉한 괴소를 날리고 있었다.
"검주령을 내놔라……!"
"으으… 이놈들… 그렇게는 못한다."
"그래… 그럼 더 좋은 광경을 보여 주지……!"
하얀 얼굴의 눈에는 한 가닥 독기가 죽음처럼 피어 올랐다.
"……!"
그리고는 소녀의 은밀한 부분에 무엇인가를 살짝 뿌렸다.
그것은 괴이한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었으니…
순간,
"아― 악―!"
"아― 아― 악―!"
가영의 입에서 죽음보다 몇배는 더 공포스런 비명이 이어지고,
"멈춰라―!"
남궁휘는 무엇인가를 체념하듯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흐흐흐… 진작 그럴 것이지……!"
하얀 얼굴은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중원삼대세가―!
그곳으로부터 불어올 바람.
그것은,
또 어떤 변수로써 옥령에게 다가올 것인가?
* * *
귀사한 어둠이 묻혀 있는 하나의 대전,
이상하게도 대전은 드넓게 여겨졌으나 빛이라고는 한 점도 스며들지 않아 어딘지 모르게 악마의 소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먹물 같은 하나의 주렴이 길게 늘어져 있었으니…
헌데,
언제부터인가?
주렴의 앞으로 정확히 일곱 명의 인물들이 깊이 부복을 해 있었다.
"……!"
"……!"
은연중에 뼛골까지 파고 드는 냉기와 뭉클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인물들.
대체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또한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그때 문득,
주렴 속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오늘로써… 천하의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길을 연다."
천하(天下)―!
그 광대무량한 말이 이곳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렴 속의 음성.
어딘가 모르게 사악하고 은밀한 음성.
그것은 결코 낯선 음성은 죽어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하나의 지령이 부복해 있는 칠 인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혈인장 모용백……!"
순간,
한 흑의인이 깊이 고개를 파묻었다.
"예―! 하명만 내리십시오."
"그대는 여기에 있는 칠대령좌(七大令座)와 함께 현 중원에 있는 지옥마성의 모든 것을 본 잠마의 것으로 만들어라! 기간은 삼 일……!"
"알겠습니다."
오오……!
그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단 삼일의 시간 안에 중원 전체를 수중에 넣으라는 것도 그러했으나,
이 음사한 곳이 바로 문제의 잠마구령교라니……!
"책사(策士)……!"
또 한 번의 부름이 짤막하게 이어지고,
한 명의 흑의인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하명을 하십시오."
"그대는 지금 즉시 중원삼대세가의 모든 힘을 이용해 천군대작을 척살하라!"
"알겠습니다."
"그는 무서운 놈이다. 이번 기회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를 없애도록……!"
"예―!"
척살명령―!
그것은 바로 천군대작 옥령에게 떨어진 것이었으니……!
"그리고 본좌는 예아와 함께 지옥마성으로 간다. 그리고 일시에 천하를 장악하는 것이다. 흐흐흐……!"
주렴 속에서 득의한 괴소가 흘러 나왔다.
"이로써 천하는 나 마군자의 천하가 될 것이다."
마군자―!
드디어 역천이대 마(魔)의 장은 열리고야 만다.
* * *
하나의 지령이 천군십예사황에게 떨어진 것은 잠마구령교와 같은 시간이었다.
― 귀부신영 예인의 말에 의하면…
― 잠마는 정확히 십일월 그믐밤 움직인다.
― 그들은 잠마구령 중 남은 칠 인으로 하여 천하를 일시에 장악케 하고… 마군자는 직접 지옥마성으로 찾을 것이다.
― 이로 보아 이미 승패는 지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소.
― 그리하여 명을 내리노니… 천군십예사황은 잠마구령을 완전히 제거해 잠마의 뿌리를 뽑을 것이며…
― 본인과 두 호법은 지옥마성으로 갈 것이니… 그리 아시오.
천군대작 옥령의 지령은 대략 이러했다.
그러나…
그도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중원삼대세가의 힘.
그것이 지금 한 곳으로 집결된 채 자신의 숨통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으리오.
아아……!
그것은 실로 엄청난 판단의 착오가 아닐 수 없었다.
* * *
휘익―!
휘리리리― 릭―!
허공을 가르는 삼 인.
그들은 마치 세 줄기의 빛살처럼 앞으로 질주해 가고 있었다.
옥령과 소랑, 소애.
그들은 지금 지옥마성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옥천하의 종말과 잠마의 저주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실로,
천하의 운명이 걸려 있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가 이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헌데,
막 평원을 돌아 어느 후미진 계곡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
옥령의 눈빛이 한 차례 기광을 폭사시켰다.
오오… 보라!
계곡을 온통 꽉 메우고 있는 사람의 무리들……!
족히 잡아도 천여 명은 됨직한 숫자.
헌데,
그들은 모두가 결연한 표정으로 옥령 등 삼 인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그대들은……?"
옥령은 맨 앞에 서 있는 삼 인을 바라보며 의아롭게 물었다.
그러자 세 사람은 차례로 입을 여는 것이 아닌가!
"본인은… 사공진강(司空震强)! 사공세가의 다음 가주를 계승할 사람이네……!"
사공진강―!
"본인은 남궁세가의 남궁무현… 당신을 이곳에서 죽여야 하는 임무를 맡고 온 사람이오."
남궁무현.
그의 품 안에는 한 자루의 고검이 주검처럼 안겨 있었다.
"서문학(西門鶴)이라 불러 주시면 되오……!"
서문학―!
오오……!
막아선 그들은 다름아닌 중원삼대세가의 차기 가주로 내정된 인물들이 아닌가!
"……!"
옥령의 눈빛이 미미하게 찌푸러졌다.
'중원삼대세가라면… 그들은 오랜 세월을 정(正)을 추구해 온 정통 가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의 눈엔 마(魔)가 서려 있다!'
그러했다.
그들의 눈은 분명 정공(正功)을 익힌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더욱이 옥령은 지금 마령심안공으로 이들을 한눈에 살펴 본 것이었으니……!
'그렇다면 이들은 이미… 잠마의 수중에 있었거나… 아니면 그들이 밀파한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옥령은 마음이 무겁게 짓눌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지옥마성으로 촌각을 다투어 가야 하거늘……! 이들이 막아선다면… 천하의 운명은 완전히 상상 밖으로 흘러간다!'
문득,
사공진강이 등 뒤에서 한 자루의 시퍼런 도(刀)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말.
"천군대작이라 들었소… 당신의 위대한 무명은 들었으나… 오늘 여기서 뵙게 되어 반갑소."
"그대들의 의도는……?"
"당신들 삼 인을 이곳에서 척살할 임무를 띄고 있소."
옥령의 동공이 냉오한 빛을 발했다.
"본인을 척살하도록 명을 내린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소?"
"알고 있소……."
"그럼에도 본인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 하시오?"
"그럴 이유가 아니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들의 표정은 결연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아 볼 시간이 없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시간―!
몇각 사이에 중원천하의 운명이 오락가락 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할 수 없다. 순순히 물러설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대의를 위해서 따르는 피는 숙명…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심은 그렇게 서버린 것이다.
"그대들은 본인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때,
남궁무현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당신이 우리 천 명을 벨 때… 우리 천 명은 당신 세 사람만 베면 되오… 어느쪽이 확률로 보아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오?"
"으음……!"
옥령의 입에서는 무거운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죽기를 각오하고 몰려든 천 명의 무인.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죽어도 아니었다.
서서히…
옥령은 눈빛을 굳혔다.
"그대들이 스스로 자처한 일… 후회가 없기를……!"
말을 하면서…
스르르― 릉―!
그의 허리에서 애병 율번이 죽음처럼 빠져 나오며 찬란한 칠채광휘를 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소랑과 소애에게 짧은 지시를 내렸다.
"소랑, 소애……!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저들은 이미 잠마의 무리들이다."
"……!"
"……!"
두 사람은 싸늘하게 눈빛을 발하며 몰려드는 삼대세가의 인물들을 쓸어 보았다.
그리고,
휘― 익―!
번― 쩍―!
"아아아― 악―!"
누가 손을 쓴 것인가?
삼대세가의 인물 서너 명이 목을 감싸쥐고 나뒹굴었다.
그리고,
"와― 아―!"
태산이라도 허물어 뜨릴 듯한 함성과 함께 일천 명에 달하는 인영들이 일시에 세 사람에게 덮쳐왔다.
옥령.
그는 율번을 꼿꼿하게 가슴 앞에 세웠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그의 입술을 헤치고 창공을 뒤흔드는 사자후가 토해졌다.
"일도에 바다를 죽인다. 율― 해―!"
오오… 율해!
일도에 바다를 죽인다는 악마의 도병.
그것이 급기야 중원삼대세가의 인물들에게 펼쳐진 것이다.
"번― 쩍―!"
그것을 빛이라고 여길텐가?
아니면 수만 개의 뇌전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라고 말을 할까?
그것도 아니면… 저주를 머금은 악마의 이빨이라고 할텐가?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일섬 광채가 환상과 같이 피어올라 사위를 훑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
"크― 윽―!"
"윽―!"
맨 앞에 서 있는 오십여 명의 인물들이 자로 잰 듯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오오……!
그 끔찍스러운 모습.
삼 인의 얼굴에 희미한 경악이 이어졌다.
'과연 무서운 도법……!'
'전설은 오히려… 이 도법의 십분의 일도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오……! 천하에 저런 도법이 존재해 있었다니……!'
그러나 그들에게 이어지는 경악도 한 순간,
그들은 또 벌떼처럼 휘몰려 오고 있는 것이었다.
* * *
지옥마성(地獄魔城).
당금을 지옥천하라 부르게 한 위대한 마인이 숨쉬고 있는 곳,
지금,
그곳에서는 천하를 놓고 공존할 수 없는 이대마가 마주 서 있었다.
냉무혼(冷武魂).
그는 역시 지극히 고요한 자세로 서 있었다.
"……!"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냉막한 시선으로 전면을 응시했다.
그의 눈 앞에 있는 한 명의 청수한 노인과 무섭도록 요염한 여인.
검은 망토 자락을 휘날리고 있었고…
품 안에는 한 마리의 흑묘를 안고 있는 여인.
오오……!
그녀는 바로 천예가 아닌가!
기억할 것이다.
언제였던가?
옥령과 취래객잔에서 뜨거운 밤을 지새우던 여인.
헌데,
그녀가 왜 이곳에……?
그리고 그녀의 옆,
아아… 은빛 수염을 기품있게 기르고 있었고… 그의 노안에 서려 있는 것은 온통 현자의 온화한 기품.
그는 천야가 아닌가?
천하를 위해 스스로 두 눈을 파 버렸다는 현자.
허나, 이 순간 그의 눈을 보라!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검은 동공과 초점이 멀쩡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문득 냉무혼은 천야를 응시하며 냉오한 음성을 흘려냈다.
"당신은 마군자……!"
"그렇게 불러주는 것도 좋지만… 천야라 불러 주는 것도 가히 기분이 언짢치는 않는 이름이지……!"
천야―!
아아… 이럴 수가?
― 나를 마군자라 불러도 좋지만 천야라 불러도 좋네.
실로 엄청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천야가 잠마구령교의 교주인 마군자라는 뜻이 아닌가?
"……!"
냉무혼은 극랭한 시선으로 천야의 청수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알 것 같군. 내 친구인 옥령이 그대의 음모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갔으며… 정파라는 잔당들을 이용해 본인의 아성을 부수었던 것도 바로 당신이었다는 것을……!"
"흐흐흐……! 그래도 머리가 좀 돌아가는 놈이군."
"……!"
"본좌가 바로 행한 일이다."
냉무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느끼고는 있었으나… 앞에 두고 그런 소리를 들으니 문득…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서리는 것은 어쩔 수 없군."
냉무혼의 전신에서는 서서히 비정한 살기가 광기마저 담고 이글거렸다.
자신의 아성을 철저히 짓밟아온 인물.
그리고 이 순간에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문득,
"후후후……!"
냉무혼은 내심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군자……!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 믿소만."
"흐흐흐……! 본좌는 너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여기까지 오면서도 본좌는 앞으로 천하를 어떻게 할 것인가만을 생각해 왔다."
"후후후……! 나를 안다. 과연 그럴까?"
"흐흐흐……! 물론이다. 너의 자뢰마검(紫雷魔劍)은 물론이요, 네 옆에 있는 도후의 도예천비에 대해서도 훤히 알고 있다."
"……!"
순간,
냉무혼의 입가에 서려 있던 웃음기가 싹 걷혔다.
'그럴 수가……? 나의 자뢰마검과 도예천비를……!'
오오……!
그것은 냉무혼으로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군자는 그의 앞에 서 있었으니…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랬었군… 역시 무서운 계략으로 천하를 지배할 만하오."
진심이었다.
이 순간만은 냉무혼의 음성은 진심으로 상대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흐흐흐……! 천하에 이 마군자가 모르는 것이 없고… 또 할 수 없는 것 또한 없다… 천하는 앞으로 이 마군자의 손에 다스려진다."
"좋은 말이오."
그리고는 서서히 냉무혼은 한 자루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유난히도 검신이 검은 빛으로 감싸여져 있었으며 싸늘한 검기는 뼈골을 저리게 하는 검.
"……!"
이번에는 마군자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 검은 혹시… 천인흑린(天刃黑麟)……!"
"훌륭한 안목이오."
"으음……!"
마군자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대체 냉무혼이 들고 있는 천인흑린이란 검은 어떤 내력을 가진 것인가?
냉무혼은 서서히 검을 자신의 가슴 앞으로 세웠다.
"본인은 본인의 힘을 믿소… 깨어질지언정……!"
"좋은 말……!"
드디어…
천하의 모든 것을 건곤일척의 격투는 시작된 것이다.
첫댓글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