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쫓은건 백구가 아니라 별이었다 (최동원-김성한 인터뷰)

[류길용(34)]

당신은 언제부터 야구를 봤는가? 당신에게 야구는 언제부터 인생 이상의 의미였나? 1970년대를 지나 1980년과 1990년대를 살았던 야구팬이라면 “누구 때문에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할 것이다.

그 ‘누구’로 많은 이가 두 이의 이름을 지목할지 모른다. 바로 전 롯데 자이언츠 투수 최동원(51)과 전 해태 타이거즈 야수 김성한(51)이다. 두 이는 프로야구의 전설로 꼽힌다. 롯데와 해태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실력도 출중했다.

최동원은 1984년 51경기에 등판해 27승13패6세이브 평균자책 2.89의 호투를 펼쳤다. 그가 마운드를 책임진 이닝은 무려 284 2/3이닝이었다.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그는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40이닝을 던지며 혼자서 4승을 따냈다. 정규 시즌 MVP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손에 거머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프로 때보다 아마추어 시절이 진정한 전성기였던 최동원은 이후로도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씩을 던지며 2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과 19승 이상씩을 기록했다.

마운드에 최동원이 있었다면 타석엔 김성한이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투수 10승과 타점왕에 올랐던 김성한은 1985, 1988년 두 차례나 정규 시즌 MVP에 오르면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다. 그는 현역 시절 소속팀 해태(KIA의 전신)을 7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지도자가 돼서도 2번이나 더 우승컵을 끌어안았다. ‘지금은 사라진 왕국’ 해태의 진정한 리더이자, 한국 프로야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던 김성한은 특유의 ‘오리 궁둥이’ 타격폼과 친화력 강한 팬 서비스로 지금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페이드 아웃되는 법이 없이 언제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최동원과 김성한은 이제 세월이 지나 51살의 중년이 됐다. 그러나 그들의 젊은 날이 곧 프로야구의 역사였기에, 지금도 많은 이는 야구를 볼 때마다 두 이를 떠올린다.

<스포츠춘추>에서 두 레전드의 특별대담을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이가 처음으로 밝히는 야구사의 뒷이야기들이 곧 우리들의 지난 추억을 되살리는 반추의 기회라 믿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추억의 그라운드로 떠나보자.

프로야구 30년사를 반추하는 최동원(사진 왼쪽부터)과 김성한(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박) :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최 감독님은 지난해 리틀야구 프로그램 때문에 뵙고, 김 감독님은 올 초 야구장에서 뵌 적이 있는데요. 그 후론 ‘통’ 뵙지를 못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최동원(최) : (활짝 웃으며)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한창 바쁘게 살다가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지금이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쉬면서 등산도 하고, 좋은 공기도 마시고, 좋은 먹거리가 있나 없나 살피고. 집사람과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어요. 이럴 때 집사람한테 열심히 봉사해야 더 나이 들어서도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웃음).

김성한(김) :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잘 안 되면 마음이 어때요? 공허하잖아요. 그걸 다른 걸로 보상받으려고 열심히 뛰고 있어요. 리틀야구팀 창단도 지원하고, 사회인야구 선수들이 뛸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하려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말씀드리면 이미 사회인 야구장 부지 4면을 확보했어요. 곧 착공에 들어갈 겁니다. 전북의 10구단 창단을 위해서도 발바닥에 부리나케 뛰고 있는데, 생각만큼 잘 안되네요(웃음).

박 : 많은 팬과 야구인은 두 분의 현장 복귀를 바라고 있습니다. 언제쯤 그라운드에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김 : 여기 계신 최 감독이나 저나 천생 야구인이에요. 솔직히 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마음이 있지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여건이 그렇지가 않네요. 그렇다고 공허한 마음을 계속 갖고 살 순 없잖아요. 어차피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다면, 야구인으로서 뭐가 야구발전에 필요한 일인가를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박 : 창원을 연고지로 9구단이 창단하면서 올드 경남팬들의 최동원에 대한 향수는 더 짙어지는 듯합니다.

최 : (9구단 창단은) 진짜 반가운 일이에요. 물론 신생구단은 어려움이 많을 거예요. 한창 9구단 창단 논의가 진행될 때 일부에서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하던데, 그때 제가 한 생각은 하나였어요. ‘5, 10년이 지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거였어요. 기존 구단이 ‘그래 대의를 위해 조금 손해를 보자’하는 마음으로 9구단 문제에 접근한다면 무리가 없을 겁니다. 옆에 계신 김 감독이나 저나 영원한 야구인입니다. 평생 야구장에서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을 후배 선수들에게 직접 전수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당연히 마다할 이유가 없죠.

김 :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옳소!

최 : 그래도 인연이란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일전에 어느 야구팬분께서 “모 팀에서 감독 제의를 했는데, 최 감독님이 거절했다”는 소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 “난 전혀 모르는 이야기다”라고 했는데 “소문이 그렇게 나 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어허, 참 아직도 날 음해하는 분이 있나 싶더라고. (혼잣말을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그런 욕심은 있어요. 마지막으로 감독을 한번 맡고 싶은 꿈은 있어요. 하지만, 어디 그게 자력이라고 됩니까.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오겠죠. 기회가….

초고교급 투수와 투타 만능 재주꾼의 탄생

동국대 시절의 김성한(사진 왼쪽부터)과 김봉근(전 KIA 투수코치)(사진=스포츠춘추)

박 : 두 분은 한국 프로야구 30년을 대표하는 투·타의 레전드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레전드였던 이는 없을 것입니다. 두 분이 처음 야구공을 잡은 게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김 :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그전엔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 비슷한 걸 했어요. 그땐 경제적으로 야구 장비 살 돈이 없어서, 공사판에서 각목을 주워와 그걸 깎아서 배트로 썼어요. 하루는 친구들이랑 야구를 하는데, 진짜 초교 야구부 감독님이 보시다가 “너, 야구해보지 않을래?”하고 묻더라고.

박 : “하겠다”고 대답했습니까.

김 : 속으로야 하고 싶었지. 야구 유니폼이 그렇게 멋일 수가 없었거든. 그래도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말씀드렸지. 예상 외로 그다지 반대하지 않으시더라고. 헌데 말이에요. 박 기자. 솔직히 내가 야구부에 들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알아요?

박 : 글쎄요.

김 : 내가 그때까지 고무신을 신고 다녔어요. 그땐 진짜 다 고무신을 신고 다녔거든. 그런데 야구를 하려면 운동화가 필요하거든. 운동화는 신고 싶은데 부모님이 그냥 사주실 리는 없잖아. 계기가 있어야지(웃음). 야구부 들어가고서 운동화를 샀는데,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 지금도 좋아서 폴짝 뛰던 게 눈에 선해(웃음).

박 : 최 감독님도 고무신 때문에 야구를 시작하셨나요.

최 : 난 그건 아니고(웃음). 사실 난 초등학교 5학년 1학기까지 축구 선수였어요. 초교 들어갔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는데 학교에 야구부가 없고, 축구부만 있었어요. 그런데 라이트 풀백이 내 위치인데 이건 뭐 공이 오면 “펑펑” 차기만 하면 되는 기라. 재미가 없더라고. 오히려 아버지가 라디오로 일본 프로야구를 듣곤 하셨는데, 라디오 내용을 우리말로 통역해주시면 그렇게 야구가 재밌게 느껴지더라고. 그러다 5학년 2학기 때 교사셨던 어머니가 전근을 가셨어요. 공교롭게 어머니가 가신 초교에 야구부가 있었어요. 저도 덩달아 “이제 축구는 못하겠다”고 하고 어머니가 계신 학교로 전학을 갔지요. 그 뒤 바로 야구부에 가입했어요. 그게 야구의 시작이었어요.

박 : 두 분 연세가 51살로 같으시지요? 하지만, 학번은 다른 걸로 압니다.

김 : 중학교 때까진 같은 학년이었어요. 고교 진학 때 내가 한해를 쉬고, 최 감독은 바로 고교에 가면서 학번 차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박 : 사석에서 호칭은 어떻게 하십니까.

김 : 최 감독님이 내 선배지요.

박 : 나이가 같아도요.

김 : 그렇죠. 나이는 같아도 제가 선배 대접을 해 드리죠. (혼잣말로) 언제 인터넷 들어가서 생일이 누가 빠른지 봐야 쓰겄네.

박 : 초교 때는 영·호남이라 두 분이 만날 기회가 적었을 듯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결을 시작했을 듯한데요. 당시 김 감독님이 보기에 최 감독님은 어떤 투수였습니까.

김 : (최 감독을 힐끗 쳐다보고서) 아마 문교부(현 교육기술과학부) 장관기대회였을 거예요. 그때 최 감독이 부산 토성중에 다녔을 때일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투구하는 걸 봤어요. 최 감독은 그때도 정말 잘 던졌어요. ‘확’ 티가 날 정도였으니까.

박 : 당시 김 감독님의 실력은 어땠나요.

김 : 뭐, 나는 당시 경기에 나가지도 못했어요(웃음). 물 당번이었지 뭐.

박 : ‘최동원’이란 이름이 전국에 알려진 계기가 있습니다. 바로 1974년 경남고에 입학하자마자 당시나 지금이나 매우 생소한 ‘팔 보험’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사에 보면 어깨나 팔꿈치 혹은 손목 장애 시 50만 원을 보험금으로 받기로 하고, 달마다 3천410 원을 보험료로 내기로 했는데요. 특별히 보험에 든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최 : 아직 어리지만, 몸이 중요하단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도 “보험 혜택보다는 스스로 몸 관리에 신경 쓰게 하려는 교육적 차원에서 (보험에)들었다”고 하셨고요. 당시로선 꽤 파격적인 일이라, 언론에서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박 : 하지만, 정작 야구팬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1975년 경남고 2학년 때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당시 고교 최강이던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 시절의 최동원 동영상(동영상=네이버 스포츠)

최 : 경남고 2학년 때였어요. 말이 노히트 노런이지 참, 고비가 많았어요. (기억을 떠올리며) 보자, 한창 노히트 노런 행진을 하고 있을 때 3학년이던 우경하 선배가 타구를 갑자기 놓친 적이 있어요. 관중석이 조용해지고, 선수들도 가만히 있는 거예요. 다들 안타와 실책 가운데 무엇으로 기록될까 궁금했던 거지. 나도 간이 콩알만 해지더라고(웃음). 그런데 전광판에 ‘H(안타)’가 아니라 ‘E(실책)’가 들어오는 거예요. ‘후유-’하고 절로 한숨이 나오더라고(웃음). 내가 잘 던졌다기보다 그 경기에서 우리 야수들이 잘해줘서 노히트 노런이란 대기록을 세울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박 : 그 경기 이후 최 감독님을 가리켜 ‘야구 천재’, ‘야구 신동’이란 찬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고 김희련 선생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극찬하셨다고 하던데요.

최 : (손을 저으며) 100년에 한 번은 무슨. 그건 당치도 않은 말씀이고.

김 : 본인이 직접 말하기 좀 그럴 거예요. 내가 대신 들려 줄게요(웃음). 제가 고교 2학년 때일 거예요. 청룡기대회였는데, 그때 경남고가 김정수가 버틴 신일고한테 져서 패자부활전으로 내려갔어요. 반면에 제가 다니던 군산상고는 승자승으로 결승에 이미 올라간 상태였어요. 그때 김용남이 군산상고 에이스였는데, (김)용남이가 대통령배 대회 우승할 때 하도 많이 던져서, 청룡기 때는 내가 다 던졌어요. 아, 그런데 패자부활전부터 경남고가 승승장구하더니 결승까지 올라온 거예요.

박 : 역시 선봉엔 최 감독님이 계셨나요.

김 : 계속 들어봐요. 군산상고는 승자승으로 결승에 오른 거니까 당시 대회 규정으로는 우리는 한 번만 이기면 우승이에요. 하지만, 경남고는 패자부활전에 오른 탓에 우리한테 두 번을 이겨야 우승이었어요. (뭔가 생각난 듯) 참, 그때 우스운 일이 뭐였느냐 하면 지금이야 피칭머신이 많지만, 예전에는 없는 학교가 수두룩했어요. 서울에 피칭머신이 있는 곳이라곤 한양대밖에 없었을 거예요. 결승전이 열리는 날, 아침부터 한양대에 가서 피칭머신으로 강속구 때리는 연습을 했어요. 완전히 최동원을 대비한 훈련이었지.

박 : 강속구 투수 최동원을 상대하려고 피칭머신을 통해 강속구 치기 훈련을 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지 정말 궁금한데요. 최 감독님을 난타했습니까.

김 : 우리가 그런다고 이길 수 있나. 1대 9로 깨졌어요. 진짜 나도 투수였지만, 최 감독이 정말 잘 던지더라고. 우리가 삼진을 20개나 당했으니까. 아마 전국대회 최다 삼진 기록이었을 거예요. 두 번째 경기에서도 우리가 0대 5로 지면서 아깝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어요. 그때 최 감독이 최우수선수상, 내가 감투상을 받았어요.

박 : 당시 대회 기록지를 보니까 2경기 18이닝에서 군산상고가 최 감독님을 상대로 5안타만을 기록했던데요. 김 감독님은 5안타 가운데 몇 안타를 책임지셨습니까.

김 : 아마 못 쳤을 거예요.

박 : 그 정도로 공이 좋았나요.

김 :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지. (스윙동작을 취하며) 예를 들어 공이 ‘딱’ 치기 공은 곳까지 왔다고 칩시다. 그런데 스윙을 하면 맞질 않아. 공이 타석 앞에서 ‘획’하고 떠올랐다니까. 반대로 낮은 코스로 오는 공은 완전 볼 같아 보이는데, 막상 포수 미트를 보면 죄다 스트라이크 존에 꽂혀 있어. 공 끝이 좋으니까 공이 살아 오르는 거지. 게다가 커브도 저 위에서 폭포수같이 떨어지지. 그러니 어디 칠 수가 있나.

박 : 자타가 공인하는 초특급 투수였습니다. 좀 봐주면서 하시지 왜 그렇게 군산상고 타선을 압박하신 겁니까(웃음).

최 : 그때 ‘군산상고’하면 강팀이었어요. ‘역전의 명수’였고. 경남고도 그랬지만, 군산상고와 상대하는 팀은 늘 ‘역전의 명수’란 말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동료 선수들에게도 마지막 이닝이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란 걸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었어요. 한순간 방심하면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투구한 것 같아요.

동기생의 진학을 위해, 정치적 압력에 의해 원하지 않던 대학을 가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멤버들. 사진 왼쪽 위부터 박노준, 김봉근, 최동원. 사진 아래는 고 김정수(사진=스포츠춘추)

박 : 군산상고 졸업반 때 많은 서울지역 대학팀에서 입학 제의가 온 걸로 압니다.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등 사립 명문대들이 하나같이 ‘러브콜’을 했는데요. 당시로선 다소 약체였던 동국대로 진학하셨습니다.

김 : 연·고대에서 제의가 오긴 왔지. 음, 사실은 내가 영남대를 갈 뻔했어요.

박 : 영남대요?

김 : 왜 영남대였느냐? 당시 학교에서 나보고 “야구부 동기 6명을 데리고 영남대로 가라”고 했어요. 학교 입장에선 아이들을 다 진학시켜야 하니까, 날 영남대로 보내는 대신 동기들을 끼워 보내려고 했던 거예요. 이야, 되게 고민되더라고. 나도 꿈이 있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은데.

박 : 그래 동기들을 데리고 영남대로 갔습니까.

김 : 난데없이 영남대 배성서 감독님이 동국대로 자리를 옮기지 뭐에요. 영남대로 갈 우리가 그때 전부 동국대로 진로가 바꿨어요. 물론 동국대 입학할 때 동기생 6명을 데리고 가긴 했는데, 참 난 그땐 세상이 원망스럽더라고. 난 정말 가고 싶은 대학이 있었는데 말이지.

박 : 김 감독과 비교하면 최 감독님은 무리 없이 연세대로 입학하셨지요?

최 : (고개를 흔들며) 아니요. 절대 무리 없이 간 거 아닙니다.

박 : 연·고대의 치열한 스카우트전이 펼쳐졌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최 : 그때만 해도 부산에선 연세대가 유명하지 않았어요. 고려대를 알았지. 왜냐? 경남고 선배들이 거의 고려대 쪽으로 갔으니까요. 처음에 고려대에서 “우리 학교로 입학하라”고 했을 때 “알겠습니다”하고 사인까지 했어요. (잠시 망설이다가) 그 뒷이야기도 해야 합니까. 정치적인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박 : 지금 들려주시는 말씀이 야구의 야사(野史가 아니라 정사(正史)가 됩니다.

김 :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몰라요? 이야기하세요(웃음).

최 : 자세히는 말할 수 없고, 내가 고려대를 가지 못하도록 모 기관에서 방해공작을 펼쳤어요. 동아대에 입학하려고 갔을 때도 방해공작을 폈고.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경리단에 입대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거기도 받아줄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연세대 출신 유력 인사들이 절 연세대로 데려오려고 정치적 공작을 펼친 거였어요. 나중에 입학하고, 연세대 백양로를 걷는데. (환하게 웃으며) 괜찮더라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마음으로 그때부터 학교생활에 적응했어요.

              해태 타이거즈 중심 타자 시절의 김성한 동영상(동영상=네이버 스포츠)

박 : 대학 때 두 분이 자주 맞대결을 펼쳤을 것 같습니다. 성적은 어땠습니까.

김 : 하루는 배성서 감독이 그러시더라고. “야, 우리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려면 최동원과 김시진을 반드시 꺾어야 한다. 그럼 게네들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맞춤형 공략법을 연습해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박 : 맞춤형 공략법의 실체는 뭐였습니까.

김 : 배트를 손에 꽉 쥐고 타석 안쪽으로 바싹 붙는 거였어요.

박 : 그건….

김 : 몸쪽 공이 오면 무조건 맞고 나가란 소리였지 뭐. 최동원 강속구에 맞으면 죽을 수 있는디 말이여. 배 감독님은 “투수도 부담을 느껴서 바깥쪽으로 승부를 걸 것이고, 그렇게 되면 타석에 바싹 붙은 만큼 바깥쪽 공 대처가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실제로 해보니까 강속구를 칠 수 있겠더라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박 : 어떤?

김 : 연세대, 한양대는 이겼는데 동아대, 영남대 같은 팀한테 계속 지는 거야. 그 팀 투수들 공이 엄청 느렸거든. 기다리다 지치는 거지(웃음).

박 : 최 감독님 당시 연세대 멤버가 최강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최 : 이광은, 신언호 선배가 계셨고.

김 : (짓궂은 표정으로 최 감독을 보며) 박철순 선배 빼면 안 되지 않아요(웃음)

최 : (멋쩍은 표정으로) 박 선배는 내가 3학년 때. 군대 갔다가 1학년으로 복학했지.

박 : 30년이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야구사에 보면 최 감독님이 연대 시절 선배들의 구타 때문에 급기야 무단이탈을 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당시 최 감독님은 무단이탈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야구인들도 상당수입니다. 무엇이 진실입니까.

최 : (잠시 침묵하다가) 야구라는 게 개인 운동이 아니거든. 단체운동이다 보니까 모든 게 단체생활로 간다고. 경기 지고 왔다, 연습 중 목소리가 작다. 선배님들 기분이 나쁘다 싶으면 그때는 속으로 ‘오늘도 죽었구나’했다고. 아니나다를까 선배들이 그런다고. “다 지하실로 집합하라”고. 그러면 기합도 받고, 엉덩이도 얻어맞고 그랬어요.

박 : 1979년 3월 21일 대통령기쟁탈 대학야구대회 준결승에서 동국대에 2대 4로 진 뒤 사건이 터졌습니다.

최 : 그랬지. 내가 대학 3학년 때였어요. 3학년이 중고참인데. 그날은 박철순 선배가 먼저 등판해 2실점하고, 내가 4회인가 등판해서 2점을 줘서 졌어요. 그날 경기에 지고 4학년 선배들이 집합을 지시했는데, 그때 누구보고 배트를 잡으라고 했느냐. 박 선배였어요. 물론 박 선배가 내보다 나이는 2살이 많았어요. 하지만, 난 3학년이고, 박 선배를 군대를 먼저 갔다 온 통에 2학년이었다고. 속으로 ‘이건 아닌데’싶었지.

김 : 그건 내가 봐도 좀 아닌 것 같다.

최 : 그날 박 선배도 악역을 맡은 거지. 엉덩이를 10대 맞았는데, 뭘 잘못 맞은 건지 허리 쪽에서 피가 나오더라고. 집에 가서도 잠을 못 자고, ‘낑낑’하는데, 작은아버지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방문을 열고 들어오신 거야. ‘혹시나’해서 이불을 드니까 팬티가 다 피범벅인 거야. 당시 아버지가 부산에 계셨는데, 바로 올라오셨지.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 갔는데, 2주 상해진단서를 끊어주더라고. 그걸 들고 그때 총장실로 찾아갔지.

박, 김 : 음.

최 : 총장님한테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어요.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묻더라고. 아버지가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총장님이 “그렇게 하시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총장실을 나와서 감독님한테도 사정을 말씀드렸지. 그래놓고 난 부산으로 간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 그런데 나중에 학교 측이 돌변한 거야. “최동원이 무단이탈을 했느니, 그렇게 아프지도 않은데 아직 돌아오고 있지 않다‘는 둥 말이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나로서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

김 : 기억나네. 나도 당시엔 무단이탈로 들었는데.

박 : 학교 측에 강하게 항의를 하지 그랬습니까.

최 : “이건 분명히 무단이탈이 아닌데, 왜 그렇게 몰고 가느냐”고 학교 측에 따졌지. 내가 막 따지니까 “기자들이 그렇게 쓴 것”이라고 하더라고. “아니, 기자들이 없는 말 지어냈겠느냐”고 다시 따지니까 별말 하지 못하더라고.

박 : 그해 7월, 3개월 만에 다시 연세대로 돌아와 연·고전에 출전했습니다.

최 : 그때 스피드 건에 시속 140km가 찍혔어요. 사람들이 “최동원이 돌아왔다”고 좋아하고 그랬던 게 기억나요.

박 : 공교롭게 가해자가 돼야 했던 박철순도 그해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하며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최 : 그것도 사실 못 갈 뻔했어요. 왜? 대학 재학생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서류를 떼 줘야 했거든요. 총장실에서 또 내랑 아버지와 총장님이랑 얼굴을 맞댔어요. 총장님이 “(박)철순이를 어떻게 할까요. 보내지 말까요?”하시더라고요. 그때 아버지가 “보내줍시다. 나도 자식 키우게 애비 입장인데, 그게 기회라면 기회인데 보내서 잘할 수 있게끔 기회를 줍시다”하셨어요. 그래 박 선배가 서류를 다 준비해서 미국으로 갈 수 있던 거예요.

김 : 나도 당시 기억이 나는데, 그때 스포츠 주간지에서 읽고 ‘이렇게 됐구나’ 했지. 오늘 이 이야긴 나도 오늘 처음 듣는 거야.

10승-타점왕의 탄생, 27승- 한국시리즈 4승 투수 출현

30년 전 슈퍼스타였던 김성한(사진 왼쪽부터)과 현재 사회인, 리틀야구 발전에 애쓰고 있는 중년의 김성한(사진=스포츠춘추)

박 :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김 감독님은 1982년 동국대 졸업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 창단 멤버로 입단했습니다. 실업 출신 선수들을 제외하고, 웬만한 아마추어 선수들은 그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자 프로 진출을 1년씩 연기했는데요. 바로 프로에 입문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김 : 대표팀과는 별 인연이 없었어요. 매번 국가대표 발탁 직전에 떨어졌어요. 1981년 말에 어우홍 대표팀 감독님이 프로에 가지 않으면 뽑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긴 했어요. 하지만, 프로에 가서 빨리 돈을 버는 게 낫겠더라고. 그래 프로에 그냥 갔어요. 그때 최 감독처럼 몇몇 분들은 바로 프로에 못 오고, 이듬해 합류했지.

박 : 연세대 입학과 관련한 이면의 이야기를 들으면, 최 감독님이 아무리 프로행을 선언했어도 야구계가 이를 용인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 : 아마 정부가 나서서 말렸을 거야(웃음).

최 : 아마 그랬을지 싶어요. 가뜩이나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대회엿고 하니까, 프로행을 선언했어도 바로 가긴 쉽지 않았을 거예요.

박 :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당당히 롯데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를 밟았는데요. 정작 최 감독님이 밟고자 했던 무대는 한국이 아니었지요?

최 : 1981년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61만 달러에 계약하기로 다 협상을 끝냈어요. 그랬는데 당시 공군 소속이던 축구선수 차범근 씨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려다가 정부에서 “군 복무를 모두 마치고 진출하라”는 압력 때문에 바로 독일로 가지 못했어요. 나도 병역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진출이 어려웠어요.

이건 처음 이야기하는 건데, 그즈음 캐나다 수상이 방한한 적이 있어요. 그때 캐나다 수상이 뭘 들고 왔느냐면 교민들의 진정서를 갖고 왔어요. ‘교민 사기진작 차원에서 최동원을 캐나다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정부에서 “알겠다.”라고 진정서를 접수한 모양이에요. 제가 듣기론 그때 전두환 대통령이 보좌진한테 “메이저리그? 우리나라는 그런 프로야구 못해?”라고 한 게 프로야구 출범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박 : 차범근 씨와 달리 최 감독님은 이미 1977년 니카라과에서 열린 슈퍼월드컵 우승으로 병역혜택을 받은 상태가 아니었습니까.

최 : 그때는 병역혜택이 참 까다로웠어요. 병역혜택을 받아도 5년 동안 자기 분야에서 일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병역혜택이 취소됐어요. 국외로 나가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마침 우리도 프로가 생기면서 국외 진출 꿈을 접었죠.

홈런을 맞아도 최동원은 가볍게 웃어넘겼다(사진 왼쪽). 현재도 마찬가지다. 현재 그에겐 가혹한 고난이 몰아치지만, 그는 여전히 의연하다(사진=스포츠춘추)

박 : 김 감독님이 ‘전설의 팀’ 해태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상황이 무척 열악했던 것으로 압니다.

김 : 누군 14명으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제 기억으론 해태 창단 멤버가 15명이었어요. 광주에 가니까 체육관에서 성대하게 창단식을 가졌는데. 참,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아마추어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어요. (허탈한 표정으로) 15명으로 어떻게 프로야구를 하느냔 말이지.

박 : 감독도 15명의 미니 팀을 맡자니 참 갑갑했겠다 싶은데요.

김 : 해태 초대 감독님이 고 김동엽 감독님이었는데, 그분이 매일 하던 말이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박 : 글쎄요.

김 : (고 김 감독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야, 잘 들으라우. 이제부터 우리는 일당백이야. 알갔어? 일당백이야. 일당백!”

박 : 고 김 감독을 보면 선수들 가슴이 참 답답했겠습니다.

김 : 그런데 희한하지. 자꾸 들으니까 세뇌가 되더라고(웃음). 진짜 프로야구 원년은 일당백의 심정으로 싸웠어요. 허허, 참.

박 : 최 감독님은 1983년 드디어 프로 무대를 밟았습니다. 그러나 데뷔 첫해는 승보다 패가 많았습니다.

최 : 데뷔해 9승16패를 기록했죠.

박 : 부진의 이유가 있었나요.

최 : 이유? 없었어.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됐으니까.

박 : 데뷔해만 따진다면 김 감독이 최 감독보다 1승이 더 많았습니다.

최 : 1승?

박 : 네. 김 감독이 프로야구 원년 때 투·타를 겸하지 않았습니까. 1982년 투수로 나와 10승5패 평균자책 2.88을 기록했습니다.

김 : 그래 내가 10승 투수였다니까(웃음). 타자로는 타율 3할5리, 13홈런, 69타점으로 타점왕도 했고 말이지. 3할에 타점왕에 10승에 평균자책 2점대까지 기록했으니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이름이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웃음).

박 : 어쩌다 투수까지 하게 된 겁니까.

김 : 사정이 있었지. 동국대 1학년 때 예선, 결선리그를 나 혼자 던진 적이 많아요. 그렇게 던지다 보니까 팔꿈치가 좋지 않아져서 아예 투수를 포기했어요. 그런데 프로에 ‘딱’ 가니까 김동엽 감독님이 “투수를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못하겠다”고 버텼는데, 어디 그게 되나. 팀에 원체 투수가 없어서 등판하긴 했는데, 대학교 때 좀 쉰 게 도움이 됐는지 공이 잘 가더라고(웃음).

최 : 그렇지. 오래 쉬어 놓으니까.

김 : 예, 그런데 난 솔직히 알고 있었거든. 이거 오래 못 간다는 걸. 그래 주전 3루수를 노리고 있었는데, 내가 수비는 못해도 방망이는 되니까 이듬해부터 주전 3루수 자리를 차지했어요. 진짜 그땐 투수하면서 타자로도 나오고, 뭐 완전히 혼자 고교 야구를 했다니까(웃음).

한국 최고의 투수였던 최동원의 역투 장면(사진=롯데)

박 : 최 감독님은 1984년 드디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괴물 최동원’다운 투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51경기에 등판해 284 1/3이닝을 던져 27승13패6세이브 평균자책 2.40을 기록했습니다. 1년 만에 이렇게 달라진 투구를 하게 된 이유라도 있습니까.

최 : 음, 사실 국가대표로 뛸 때도 몸이 좋지 않았고, 1983년 롯데에 입단할 때도 많이 피곤한 상태였어요. 1983시즌 ‘딱’ 끝나고 훈련 강도를 높였어요.

박 : 몸이 좋지 않고, 피곤한데 훈련 강도를 높여요?

최 : 나는 슬럼프가 오면 훈련을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늘리는 스타일이었어요. ‘내가 안 돼? 어디 한번 해보자’하는 심정으로 훈련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슬럼프를 넘겼지. 나중엔 공이 손에 ‘쫙쫙’ 붙어서 내가 생각한 데로 투구가 되더라고.

박 : 공이 손에 ‘쫙쫙’ 붙는다란 의미는 정확히 무엇입니까.

최 : 그때 포수가 한문연이었어요. 내가 마운드 위에서 “공 한 개 뺀다.”, “몸쪽으로 공 반개를 뺀다”식으로 말하면 실제로 90%는 그렇게 제구가 됐어요. 변화구도 그렇고. 속으로 그랬지. ‘이전까지는 내 이름 석 자로 던졌다. 아주 건방진 생각 때문에 2, 3년을 놓쳤다. 정작 이름을 지키려면 뭔가 팬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지금부터 시작이다’고 말이지. 1984시즌을 시작하면서 ‘요이 땅!’한 거지. 그해 27승하고, 한국시리즈에서 4승하고, 어쨌거나 혹독한 훈련으로 결과를 내긴 냈어요.

박 : 한번 투구훈련하면 엄청나게 많은 공을 던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최 : 글쎄. 굳이 투구수 몇 개에 집착한 적은 없었어요. 내가 마지막 공을 손에서 놓을 때 ‘오케이. 그래 이거야’하는 느낌이 들 때까지 투구했던 것 같아요.

박 : 하루 400개씩 불펜 투구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 : 아마 그 정도 던진 적도 있을 거야. 사실 난 고교 때부터 훈련을 두 번씩 했던 사람이에요. 학교에서 던지고 나서 집에 오면 아버지와 함께 ‘로드워크’를 하고 난 다음, 집안 훈련장에서 낮에 한만큼 또 공을 던졌어요. 주로 스파이크를 신지 않고 맨발로 던졌어요.

박 : 이유라도 있으셨나요.

최 : 마운드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목 힘을 기르려고 그랬어요. 투수는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걸 대비한 거지.

박 : 요즘 프로 투수들은 스프링캠프에서 대개 3천구 정도를 던지면서 시즌을 대비합니다. 낮과 밤에 똑같은 투구로 훈련했다면 다른 투수들이 50일 동안 던질 공을 일주일 만에 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최 : 내가 현직 지도자면 내 후배 선수들만은 양적으로 많은 투구를 하지 못하도록 조언할 겁니다. 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몸은 닳아요. 선수생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어요. 정말 선수들한테 그럴 거예요. “가늘더라도 길게 가야 한다”고 말이지.

박 : 다시 선수로 뛴다면 역시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하실 겁니까.

최 :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태어나 투수가 된다면 예전과 똑같이 할 겁니다. ‘굵고 짧게’말이죠. 말의 앞뒤가 안 맞죠?(웃음). 예전에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다시 한번 투수로서 기회가 온다면 넌 어떻게 할 거냐’고. 역시 변화를 주지 않을 것 같아요.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게 최동원의 인생이니까.

'짠돌이 구단' 때문에 울고 웃었던 레전드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고서 김성한이 관중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사진=KBO)

박 : 이제는 전설이 된 해태입니다. 2001년 KIA로 넘어갈 때까지 한국시리즈 9회 우승에 빛난 해태였는데요. 하지만, 프로야구 사상 그토록 ‘짠돌이’ 구단도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그 구단에서 젊은 날을 바쳤던 이가 바로 김 감독님인데요.

김 :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나 추석이 되면 해태제과에서 나오는 종합과자선물세트를 받곤 했어요(웃음). 솔직히 ‘해태’라는 회사는 연봉에 대한 개념이 ‘처음부터 안 주겠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곳이었어요. 제가 현역 시절 해마다 25%씩 연봉을 올렸던 사람이에요. 그땐 ‘연봉 상한선 25% 제도’가 있어서 타율 6할, 40승을 기록해도 구조적으로 전해 연봉에 비해 25%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박 : ‘연봉상한 25%’는 프로야구 사상 가장 대표적인 악법이었습니다.

김 : 25% 이상 받으려고 싸우면 싸울수록 내 이미지만 나빠지는 거예요. 어떤 선수는 연봉협상 때 구단 사장실 문을 발로 차기도 했어요. 그래도 꿈쩍도 안 해. 결국엔 선수가 져요. 안 주겠다는데 어떻게 해. 거기다 욕을 할 거야, 싸울 거야(웃음). 정말 힘들었어요.

박 : 김응룡 전 감독은 “해태 연봉이 원체 짜다 보니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보너스를 받으려는 열망이 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해태가 한국시리즈 9회 우승도 할 수 있었다고 하던데요.

김 : 그런 면이 있었죠. 한국시리즈 앞두고 꼭 구단에서 그래요. “우승하면 1억 원을 주겠다”고. 그런데 그게 요즘처럼 선수당 1억 원이 아니라 전체 우승 파이가 1억 원인 거예요. 감독님을 비롯해 코칭스태프가 좀 떼가고, A급 선수들이 500만 원씩 떼가고, 그 밑에 선수들인 2백, 3백만 원씩 가져가고, 프런트가 좀 가져가면 1억 원이 금세 사라져요. 참 대단했어요.

박 : 당시는 해태만큼이나 롯데도 무척 ‘짠’구단이었습니다.

김 : 롯데는 지금도 짜지 않나(웃음).

박 : 최 감독님은 항상 가장 마지막에 연봉협상을 끝마쳤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최 : 늦게 끝낸 게 아니라 (구단에서) 매일 늦게 불러요.

김 : 그게 연봉협상 노하우에요. 잘하는 선수는 절대 먼저 안 불러요. 저연봉자 먼저 불러서 ‘사바사바’하고, 한두 명만 남기는 거예요. 고액 연봉자들 부담 느끼라고 말이지.

최 : 제일 늦게 불러놓고 구단 사무실에 들어가면 이해 못 할 이야기만 늘어놓곤 했어요.

박 : 주로 어떤 식이었습니까.

최 : 주먹구구식도 그런 주먹구구식이 없어요. 구단 고위층의 첫마디가 뭐냐면 이거에요. “그래도 최동원이 팀의 에이스인데 20승은 기본 아닙니까.”

김 : 롯데도 해태랑 똑같았네. 올 시즌 27승 했으니까 내년엔 28승, 내후년엔 29승 해야 한다는 소리잖아. 해태가 나한테도 그랬다니까. ‘1982년에 10승, 3할 쳤으니 1983년엔 12승, 3할5푼 쳐야 한다’ 이런 식이었다니까. 허허, 참.

최 : 나도 그랬다고. “20승이 에이스의 기본이라고 하시는데, 그게 어디서 나온 말씀입니까.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는 보십니까. 팀의 에이스면 20승이 기본이라니요? 그게 어디 시대의 야구입니까”라고 말이지.

김 : 최동원 시대의 야구지. 허허.

최 : 나는 연봉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 내가 조사한 걸 다 제출한다고. 내가 선발로 등판했을 때 관중동원력부터 해서 아주 꼼꼼하게 자료를 준비해 내민다고. 그러면 뭐라는 줄 알아요? “에이, 이게 무슨 필요 있어. 우리가 무슨 프로야. 말만 프로지 아직 세미프로잖아” 이래 대꾸하는 거야. 그러다 자기 말이 안 먹히면 또 그런다고. “야, 선·후배끼리 앉았는데 좋은 게 좋은 거지. 빨리 끝내자”고 말이지.

박 : 공·사구분이 전혀 되지 않던 시절이었네요.

최 : 나도 그리 이야기했지 “나는 그렇게 말씀하는 그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오신 분은 구단 대표로 나오신 게 아니냐. 나도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대표로 이 자리에 나왔다. 서로 대표끼리 만났는데, 그런 식의 언행은 잘못된 거다.” 이래 막 따졌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런데 그러고 나면 꼭 밤에 이상한 일이 만들어지는 거야.

박 : 말씀하지 않으셔도 알 듯합니다.

최 : 난데없이 이상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 ‘최동원이 계약하러 왔는데 되도 않는 억지를 부렸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혼자서만 뭘 바란다’ 등등 말이지. 내가 입도 뻥긋하지 않는 이야기부터 별의별 이상한 소리가 다 나온다고. 팀 간판선수의 이미지는 생각지도 않는 거지. 지금도 그런 점이 억울하긴 해요. 나도 모르는 이유로 팬들이 날 보는 시각이 바뀌었으니까.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정규 시즌 MVP 자격으로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 위에 오른 최동원(사진 오른쪽)(사진=롯데)

김 : 그땐 참 롯데하고 해태가 연봉이 제일 짰지. 사실 해태 때문에 제일 손해를 자주 본 팀은 삼성이야. 삼성은 구단에서 연봉을 더 주고 싶어도 더 줄 수가 없는 거야. 우승을 거의 못해봤으니까. 그래 놓고서 한다는 소리가 “너희 김봉연, 김성한 연봉이 얼만지 알아?”였다고. 한마디로 해태 주력선수들이 연봉 기준이 되는 거지. 구단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삼성 선수들이 우리보고 엄청나게 항의하고 그랬어요. 만날 보면 “연봉 좀 많이 받아라, 많이 받아!”했지.

박 : 그럴 땐 뭐라고 대꾸하셨나요.

김 : 뭘 뭐라고 그래. 뭐, 많이 줘야 받지. 누가 안 받고 싶어서 그러나. 통사정을 해도 안 주는데(웃음).

최 : 좋은 예로 지난해 롯데 이대호가 7관왕에 올랐잖아요. 이대호가 이제 할 게 뭐 있어. 이제 연봉 못 올라가나.

김 : 도루왕 해야지.

최 : 지난해 7관왕인데, 올해 4관왕 하면 구단은 뭐라고 할까.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 우리 때보다 20년 넘게 시간이 흘렀으니까.

김 : 참, 이건 야사인데 말이지. 한번은 박건배 회장님과 선수들이 골프를 친 적이 있어요. 그래도 회장 체면이 있으니까 캐디분들한테 캐디피를 좀 많이 준 거예요. 골프가 끝나자마자 구단 모 고위층 인사께서 나중에 그놈(캐디피)을 다시 다 회수해갔어요. (혀를 차며) 아주 지독했어요. 지독했어. 짠돌이도 그런 짠돌이도 없었다니까(웃음).

그때 그 시절 야구는….

김성한은 대담 내내 솔직하고 털털하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 : 해태와 롯데는 제과 라이벌로 유명했습니다. 여기다 두 팀은 영호남을 대표하는 구단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두 팀이 맞대결을 벌인다 치면 거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선수들도 그처럼 강렬한 라이벌 의식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최 : 솔직히 이야기하면 선수들끼리는 아니야. 물론 열심히는 하지. 그런데 관중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져.

박 : 과거 두 팀 선수들 말을 들으면 서로 광주나 부산엔 가기가 싫었다고 하더군요.

최 : 진짜 겁났다니까. 1983년인가 우리가 해태한테 내둥 지다가 그날 내가 선발로 나가 완투승을 거뒀어요. 9회쯤 되면 외야수들이 내야로 와 있는 거야. 왜냐? 관중석에서 새총으로 선수들을 쏘거든. 심판들도 그걸 다 아니까 “알아서 봐줄 테니까 내야로 들어와라”고 그래(웃음). 그해 시즌 처음으로 해태를 이기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데 ‘막’ 욕설이 날아오는 거야. 선수단 전부가 관중이 나갈 때까지 더그아웃에 숨어 있었다고. 경기 끝나고 한참 있다가 경찰 에스코트 받아서 숙소로 가서도 새벽 4시까지 파출소 경찰들이 나와서 호텔 1층에서 밤새 경비를 섰어요. 그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어요.

김 : 지금은 참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당시 해태랑 롯데의 종합 성적만 보면 해태가 조금 좋았어. 부산 팬들은 성이 나지. 사직구장에 3만 명씩이나 왔는데, 지는 날이 많으니까. (물 한 모금을 마시고서) 나는 사직구장에서 경기가 끝나면 정상적으로 구단버스를 타고 구장 밖으로 나온 적이 없어요. 흔히 ‘닭장차’라고 하죠. 버스에 철망 달린 경찰차. 선수단이 전부 그 버스를 타고 나오는 거야. 그걸 타고 어디까지 가냐면 부산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거야. 거기 가면 구단 버스가 숨겨져 있어요. 그걸 타고 다시 이동하고 그랬다니까(웃음).

최 : 프로야구 초창기 때는 다 그런 게 있었어. 그렇게 하면 응원하는 팀이 이길까 봐 그랬던 거지(웃음).

박 : 프로야구 30년 동안 최고의 명승부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최 감독님과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현역시절 맞붙었던 연장 15회 혈투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도 많은 야구팬이 그 경기를 전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 :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1987년 5월 16일이었지. (선)동열이하고 내하고 1승1패를 기록하고 세 번째로 맞대결을 펼쳤는데 15회까지 가서 무승부를 기록했다고.

박 : 맞상대가 선동열이라서 15회까지 던지신 거 아닙니까. 왜 대가들을 보면 승패보단 자존심이 걸린 싸움에서 더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최 : 그런 것도 없지 않았을 거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그런 식의 마음도 있었겠지. 없었다면 거짓말이었겠지.

최동원 VS 김성한의 역대 맞대결 성적(사진=스포츠춘추)

박 : 최 감독이 보기에 선동열은 어떤 투수였습니까.

최 : 속구도 그렇고, 슬라이더도 그렇고 타자들이 쉽게 공략 못 할 투수였어요. 투수인 내가 봐도 그래. 늘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지. 동열이와 맞대결할 때 마운드에 오르면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고. ‘3실점 이상하면 안 된다. 실점을 최소화해야 승리할 기회가 생긴다’고. 아무래도 그땐 해태 타선이 롯데보단 강했으니까.

김 : 많은 야구팬이 ‘선동열, 최동원 가운데 누가 최고의 투수냐’고 물어보곤 해요. 그럴 때면 난 서슴없이 ‘최동원’이라고 대답합니다.

박 : 최 감독님이 옆에 있다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김 : 그런 것도 없지 않고(웃음). 농담이고, 난 최 감독 공을 직접 쳐봤잖아요. 동열이 공은 연습 때만 쳐봤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최 감독 공은 타자 앞에서 솟구쳐 올랐어요 커브는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타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공들이었어요. 한번은 최 감독 공을 치려고 내 나름대로 계획을 짜본 적이 있어요.

과거 야구 이야기에 푹 빠진 최동원(사진=스포츠춘추)

박 : 동국대 시절처럼 타석에 바싹 붙는 거였나요.

김 : 비슷하지. 몸이라도 희생해야지(웃음). 부산 경기였는데 최 감독 공을 치려면 일단 겁을 먹지 말아야겠더라고. 왜 타자가 겁을 집어먹으면 왼 다리를 스트라이드 할 때 오픈이 되잖아요. 그러면 도저히 공을 칠 수가 없거든. 최대한 스트라이드 할 때 왼 다리가 열리는 걸 막자고 다짐했어요. 그래 놓고 몸쪽 공이 오기에 치려고 했는데, “딱”하는 소리가 나는 거야.

박 : 정확히 배트에 공을 맞힌 건가요.

김 : 제대로 맞았으면 공이 외야로 날아가야 하는데, 바로 내 앞으로 공이 ‘똑’ 떨어지는 거예요. 맞으라는 배트엔 안 맞고, 손목에 맞은 거지. 1루로 출루해서 손목을 돌리는데 영 불편하더라고. 경기 중 병원에 갔지. 손목에 금이 갔다고 하더라고. 그때 웬만한 공엔 맞아도 뼈가 부러질 거란 생각도 못했지. 그런데 부러진 거야. 나도 지고 싶지 않으니까 어떻게 치려고 달려든 건데, 잘못 했으면 완전 하늘나라로 갈 뻔 했다니까(웃음).

박 : 최 감독님 스스로 느끼는 최동원은 어떤 투수였다고 봅니까.

최 : 글쎄. 난 그냥 한 거 같아(웃음). 부족함이 많으니까 그냥 열심히 한 것 같아.

박 : 알겠습니다. 투수 쪽에서 라이벌이 최동원과 선동열이었다면, 야수 쪽에선 단연 김성한과 이만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 감독님께 두 타자를 비교한다면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요.

최 : 투수 입장에서 김 감독은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였어요. 왜냐하면, 한방만 노리는 타격자세가 아니었거든. 공을 갖다 맞히는 센스랄까. 그런 것들이 엄청나게 뛰어났다고. 그런데 이만수는 큰 거 하나 노리고 “휘익-”하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투수로선 상대하기가 쉬웠어요.

1985년 골든글러브식에서 1루 부문 수상자로 뽑힌 김성한(사진=KIA)

박 : 김 감독님은 라이벌 이만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 : 솔직히 (이)만수하곤 묘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어요. 나이도 같고 말이지. 만수는 화이팅이 넘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실한 선수였어요. 다만, 개인 타이틀 욕심이 좀 강했던 것 같아.

박 : 개인 타이틀 욕심이요?

김 : 제가 1985년에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뽑혔어요. 당시 삼성에서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이 뛰어난 활약을 하며 후부로 올랐는데, 솔직히 성적만 보면 내가 제일 딸렸어요. 그래 아예 MVP는 꿈도 안 꿨다고. 다행히 그때 기자단 투표 방식이 1, 2, 3위 이름을 동시에 적어내는 거였어요. 1위는 다 삼성 선수들이 가져갈 테니까 나는 2위에 이름만 써줘도 고맙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1위 표는 삼성 선수들이 나눠 먹고, 2위 표에 내 이름이 많이 적혀 있었다고 해요. 그 바람에 MVP가 될 수 있었어요. 돌아보면 삼성 선수들이 늘 뛰어난 기량에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한테 계속 진 게 그런 이유 같아요. 팀보다 나만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인 플레이가 강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최 : 그랬지. 그해 정규시즌 MVP는 삼성 선수들끼리 표를 나눠 먹는 바람에 더 큰 걸 놓치고 말았어.

김 : 정말이에요. 그때 누구 한 사람이 포기했으면 난 안됐을 거야. 그래서 야구를 인생에다 비유하는 건지 몰라요. 스스로 몸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게 오히려 자신한테 좋은 결과를 올 수 있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배웠어요.

레전드는 무엇인가

최동원의 야구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 한다(사진=스포츠춘추)

박 : 최 감독님은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투구했습니다. 그러면서 1983년 데뷔 해를 제외하고 꼬박 14승 이상씩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1988년 11월 삼성 투수 김시진과 맞트레이드되면서 롯데 유니폼을 벗어야 했습니다. 당시 스포츠 신문을 보며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최 : 트레이드가 발표되던 날 새벽이었어요. 어느 기자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이 새벽에 웬일입니까”했더니 “삼성, 롯데 구단 대표가 만나서 최동원 선수 트레이드에 합의했다고 하는데 모르십니까”하는 거에요. “난 잘 모르고 오늘 훈련이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하니까 일단 구장에 나가서 알아보겠습니다”했어요. 구장에 나가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구단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올라오라”고. 갔더니 프런트 관계자분들이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사정이 이래이래해 결국, 트레이드가 됐습니다”하는 거예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하고 악수하고 바로 나왔어요.

박 : 심경이 복잡하셨겠습니다.

최 : 그분들은 내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잖아. 중간관리자분들이 무슨 죄가 있어. 그렇게 구단 사무실에 나와서는 “이런 식의 풍토에선 야구를 못하겠다”고 하고, 삼성에 연락해서 “감사하지만 못 갈 것 같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 길로 미국에 가버렸지. 그것 때문에 삼성 단장님이 참 인간적으로 고마운 분인데, 고생을 좀 하셨어요.

박 :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1989년 삼성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최 : 그러긴 했죠. 미국에 있으면서도 선배님들하고 통화했어요. 선배님들은 “프로야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너무나 큰 흠집이 될 수도 있다. 되도록 흠집 남기지 말고, 무난하게 넘어갔으면 좋겠다.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하라”고 조언해주셨어요. 생각해보니까 조용히 있다가 야구를 그만두는 게 전체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좋겠더라고. 그래 1989년 후반기에 삼성 유니폼을 입었어요. 하지만, 그땐 난 이미 야구를 포기한 상태고, 반년 간 쉬었기 때문에 몸이 정상이 아니었어요.

삼성에서 “1년만 더하자”해서 했는데, 이듬해 6승5패인가 했어요. 이젠 안 되겠더라고. 당시 김성근 감독님이 삼성 사령탑이었는데, 1년만 내가 더 뛰길 원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은퇴할 수 있게끔 도와주십시오. 저 유니폼 벗겠습니다”하고 간청을 드렸어요. 나중에 김 감독님께서도 “알겠다. 그렇게 하자”해서 1990시즌 끝나고 조용히 은퇴를 하게 된 거예요.

김 : (목소리를 높이며) 난 그렇게 봐요. 그때만 해도 구단 사람들이나 야구인들은 자기보다 뛰어난 야구인에 대해 예우를 갖추질 못했어요. 이 정도 기량을 갖춘 투수가 나오려면 1세기가 걸릴까 말까 한데, 그러면 존경심이 있어야 하거든. 기본적으로 인사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구단을 휘젓고 다니는데. 내가 판단할 때는 그래서 롯데, 삼성이 과거에 우승을 많이 못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해태는 돈은 없었어도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예우는 해줬거든요. 참, 일본 프로야구만 봐도 마흔 넘은 타자가 타석에 서면 팬들이나 구단이 그 사람의 나이보다 기량에 더 초점을 맞춰서 평가를 해주거든.

최 : 그렇지. 어쩌다 한번 나오는 대타인데도 인정을 해주지.

김 :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노하우를 쌓아오고, 큰 업적을 세운 사람이라면 그것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문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안타까운 게 그거에요. 장효조, 이만수, 김시진 이런 선수들은 삼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롯데는 최 감독이고. 그런데 다 친정팀을 떠나야 했다고.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그 팀의 감독을 하고, 팀에 있어야 연고지 팬들이 계속 관심을 기울인다 말이에요. 그런데 쉽게 트레이드 해버리고 나니까 돌아보면 레전드들이 없는 거예요.

김성한은 아직도 타이거즈를 그리워한다. 이제 그 그리움을 지역 야구 발전에 애쓰느 것으로 대체하려 한다(사진=스포츠춘추)

박 : 김 감독님 말씀처럼 해태와 후신인 KIA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쉽게 트레이드하는 그런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김 : 난 그래요. 우리 뛸 때 FA(자유계약선수)가 있었어도 난 타이거즈 유니폼을 계속 입었을 거예요. 이 팀에 대한 애정이 강했거든요. 제가 지금도 자부심을 느끼는 건 타이거즈에서 선수, 코치, 감독을 다 해봤다는 겁니다. 물론 다른 팀 감독으로 간다 치면 한 팀에 오래 있었다는 게 장애가 될 수도 있어요.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다시 감독 기회가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너무 상처를 받더라고. 그때부터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 무언가를 얻기보다 내가 직접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뭔가 보람되는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바꿨어요.

(표정이 환해지며)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까 지금은 아주 편안해요.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키며) 마음이 편하니까 살찐 거 봐. 사실 제가 지금 중국집을 하는 것도 이유가 그런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못하더라도 금전적으로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야구인으로서 부정한 짓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이에요.

박 : 화제를 다시 잠시 돌리겠습니다. 두 분이 기억하는 현역 시절 최고의 순간은 언제입니까.

최 : 그거야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지.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전 경기에 등판하고, 40이닝을 던질 거냐고 물으면 글쎄, 난 답을 유보할 거예요. 그렇게 죽자살자고 덤볐는데, 최후가 그런 것(트레이드)이었단 걸 진작에 알았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던지진 않았을 거예요. 솔직히 그래요.

김 : 난 한국시리즈 우승도 많이 해보고, 벅찬 일도 많았어요. 그래도 꼭 한순간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1992년 도쿄돔에서 열린 한·일 슈퍼게임 1차전이 아니겠는가 싶어요. 사실 그 경기를 보면서 한국 야구팬들이 무척 답답해했다고. 원체 실력 차가 나니까. 그럴 땐 홈런 한 방이면 국민이 통쾌해하신다고.

박 : 당시 이라부 히데키의 광속구를 받아쳐 홈런을 기록하셨지요? 그때가 이라부의 전성기라, 속구 구속이 무척 빨랐습니다.

김 : 암, 빨랐어. 진짜 빨랐어.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 시속 150km는 최동원, 선동열 아니면 기록할 투수가 없었어요. 시속 150km을 ‘꿈의 구속’이라고 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이라부는 최고 구속이 162km까지 나왔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쳤는지 몰라(웃음).

박 : 김 감독님은 KIA 감독으로, 최 감독님은 한화 2군 감독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 이후엔, 야인으로 살고 계신데요. 마지막 지도자 경험에 대한 회한이 남다를 듯합니다.

김 : 전 저 나름대로 KIA 감독을 하면서 온 힘을 다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좀 더 너그럽고,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어요. 그게 가장 후회스러워요. (긴 한숨을 내쉬며) 어쩌면 감독직에 연연했던 게 후회스럽기도 해요. 어차피 잘릴 거면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다시 기회가 온다면 여유를 갖고 팀을 이끌어보고 싶어요. 제가 노력하면 주변에서 절 보는 이미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 : (담담한 목소리로) 후회? 나는 없어요. 후회한다고 해봐야 돌이킬 수도 없고, 후회를 마음에 담아두고 살 이유도 없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뭐 굳이 후회라면 날 버릴 팀을 위해 내가 왜 몸을 바쳤을까 하는 정도예요. 하지만, 그것도 이젠 다 잊었습니다(웃음).

우리가 쫓은 건 백구가 아니라 별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타 레전드인 김성한(사진 왼쪽부터)과 최동원(사진=스포츠춘추)

박 : 두 분이 요즘 사회인 야구 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합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들이 양지보다 음지에 더 집중한다는 게 무척 고무적이었는데요. 사회인 야구에 관심을 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최 : 야구인으로서 ‘야구 붐’은 반가운 일이에요. 반가운데 ‘과연 이러한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할까’하는 걱정이 있어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목표 관중을 660만 명으로 잡았다는데 그 정도면 5천만 인구 가운데 10% 이상이 야구장을 찾는다는 뜻이에요. 대단하죠. 문제는 이 많은 관중이 언제까지 야구장을 찾겠느냐는 거예요. 계속 관중을 붙잡아두려면 팬을 생각하는 야구를 해야 합니다. 선수들도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은퇴는 했지만, 한번 야구인은 영원한 야구인이에요. 그래서 사회인 야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게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김 : 저는 강진 베이스볼파크에서 사회인야구 동호인들을 상대로 1박2일 야구캠프를 연 적이 있었어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그분들이 정말 좋아하신 게 뭐냐면 프로야구 선수들처럼 누구에게 코치를 받아본 일이 그때가 처음이라는 거예요. 프로 선수 방식대로 스트레칭, 캐치볼 같은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쳐줬더니 습득이 빨랐어요. 그분들은 야구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했던 것뿐이에요.

하지만, 누구보다 정열이 있거든요. 왜냐면 우리는 직업으로 하는 야구지만, 그분들은 취미로 하는 거니까 더 재미를 느낀단 말이죠. 저도 최 감독님처럼 사회인 야구에 정말 작은 보탬이라도 된다면 어디든 달려갈 생각입니다.

박 : 9월 25일 고양구장에서 열리는 전국사회인야구대회 ‘하이트볼’에서 두 분이 결승 진출팀들의 멘토를 맡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두 분이 감독으로 재등장하시게 될 텐데요. 특히나 두 분이 벤치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건 처음인데요. 감독으로서의 각오도 대단할 듯싶습니다.

김 : 절대 지지 않을 겁니다. 작전도 세웠어요.

박 : 어떤?

김 :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제일 잘 던지는 투수를 내보낼 겁니다. (반응이 뚱하자) 작전을 너무 빨리 공개했나(웃음).

최 : 전 그 팀의 감독이나 주장이나 선수들을 만나보고, 어떤 식의 팀 칼라를 유지할지 결정을 할 겁니다. 물론 이전 경기들을 차례로 분석할 거예요. 그런 기본자료를 토대로 선수들을 면담도 하면서 결승전을 차근차근 준비할 겁니다.

김 : (최 감독을 바라보며) 그 전력분석 나한테도 줄 거죠?(웃음). 전 지방에 있으니까 매일 경기를 볼 수 없어요. 그 자료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웃음).

최 : (냉정한 목소리로) 아니, 나도 바빠(웃음)

김성한(사진 왼쪽부터)과 최동원은 사회인 야구 발전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사진=스포츠춘추)

박 : 마지막으로 두 분께 묻겠습니다. 야구란 두 분께 무엇입니까.

최 :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박 기자.

박 : 네.

최 : 나나 김 감독이나 현역 때 그라운드에서 쫓아다닌 게 뭔지 알아요?

박 : 공 아닙니까?

최 : (고개를 흔들며) 아니에요. 아니야. 나도 그런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까 우리가 쫓은 건 하얀 야구공이 아니라 별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 젊었을 땐 김 감독이나 나나 하늘로 날고 싶었던 거지.

박 : 결국,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별이 되지 않으셨습니까.

최 : 별은 하늘에만 떠있는다고 별이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고, 꿈이 돼줘야 그게 진짜 별이에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이제 야구계를 위해 나도 뭔가를 하려고 해요. 이젠 그냥 ‘최동원’이란 이름 석 자가 빛나는 별이 아니라, 젊었을 때 나처럼 별을 쫓는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그런 별이 되고 싶어요. 야구가 뭐냐고요?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최.동.원’ 이름 석 자지. 야구가 전부였지….

김 :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야구가 지금껏 날 만들어주고, 지탱해줬다면 이제 제가 야구를 지탱하고, 도와줄 순서라고 봐요. 사회인 야구 발전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 훗날, 사람들이 김성한, 최동원을 어떻게 기억할지 몰라요. 다만, 기억해줬으면 하는 건 하나에요. ‘세상엔 은퇴 후가 더 멋진 야구인도 있었다’는 겁니다. 진심이에요.

박 : 오늘 장시간 특별대담에 응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분의 진심이 그라운드에 녹아내려 많은 야구 유망주와 동호인들이 그 꿈을 먹고 자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디 두 분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