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조성례
아침 첫 뉴스는 천지가 하얗다
길이 사방에서 무겁게 내리눌리고
산은 발자국들을 순간순간 껴안고 있다
햇살을 딛고 사는 참새 한 마리
창문 밑에 나둥그러져 있다
한순간 새의 모든 기관들이 눈으로 결속되었고
마지막 바라본 순간이 거기 멈추어 있다
언젠가 순간을 보고 돌진한 적이 있었지
그 시절이 되면 추위와 허기가 아직도 찾아든다
금방 퍼덕거릴 것 같은 날개, 눈을 감던 찰나의 떨림이
가녀린 발가락에 까맣게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
내 등에 있는 봇짐처럼 불룩한 상처가
오래 나를 껴안고 있다
까치발을 세우는 것들에 말한다
옥수수 곁순을 딴다
대롱대롱 매달리는 손을
힘주어 떼여 놓으면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진다
출처가 불분명한 눈물이 손등을 적실 때면 또다시
곁순을 찾아가는 손길들 사이로
그들의 통증이 내뱉는 소리들이 머리 위를 와스스 지나간다
어린 날 엄마의 손길처럼
살아남은 순들을 어루만져준다
너희들을 떼어놓지 못하면
누대를 이을 실한 후손을 만들지 못한다고
다산을 꿈꾸는 어미에게도
조근 조근 일러 준다
네 것보다는 내 것이 더 실해야 하는
세상의 원리를 가르치는 일이
이렇게 잔인하다니
땅따먹기 그 이후
1
그 애가 한 뼘씩 내 중심으로 다가올수록
조심스럽게 밀어내곤 했다
그러나 튕겨낼수록 가빠지는 숨소리,
아주 조금씩 손톱 끝에서 파문이 일었다
어쩌면 그 애가 내 영역을 모두 차지하길 바랐는지
물수제비처럼 뜀뛰기를 하면서 달려들 때
나도 모르게 그 작은 조약돌을 두 손으로 넙죽 받아들었다
조약돌은 뜨거웠다
열일곱 비린내 아직 덜 자란 내 땅에는
그 아이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2
늘 마음속에 곰팡이처럼 자리하고 있던 흉터
심장은 그 흉터의 두근거림으로 은밀한 만남을 기대했다
반백을 검은 청춘으로 바꾸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커피숍 입구부터 알전구는 환하게 빛났다
번쩍이는 뒤통수를 달고 나타난 그
조약돌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그 애는 내 남편보다 더 번쩍거렸고
추억이 그믐밤처럼 어두워졌다
2015년 가을호 계간애지 신인상
시집<가을을 수선하다>
2022, 17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회원
애지문학회윈
괴산문학회원
시산맥 특별회윈
우리시 집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