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30 경남신문 칼럼
얼마 전 시장에서 저녁 찬거리로 갈치 한 마리를 사려다 그만두었다. 그리 크지 않은 갈치 한 마리의 가격이 1만5000원이었고 두 마리를 샀다면 3만원을 써야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이 3만원이 한 달 쌀값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스타벅스에서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마신 몇 잔의 커피와 케이크 몇 조각이 될 수도 있다.
가치는 늘 똑같은 수준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또한 지극히 편파적이기 때문에, 한 달 먹을 쌀과 케이크 몇 조각의 가치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3만원이라는 가치는 비타500 상자로 뇌물을 받는 자에겐 길바닥에 뒹구는 3000원쯤으로 여겨질 것이고, 유니세프에 후원하는 분이라면 어린이 29명에게 영양실조 치료식을 전달해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내가 유니세프에 후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린 시절 외국에서 들어온 구호식품으로 배고픔을 견뎌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 나눠주던 빵은 얼마나 맛있던가. 그 빵 하나로 배고픔을 잊고 우리들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지분유를 쪄서 말린 딱딱한 돌멩이 같던 그 분유 덩어리는 또 얼마나 이상하고도 신선한 충격이었던가. 먹는 방법을 몰라 푹푹 끓여 몇 사발을 먹고 설사병으로 며칠을 고생해 본 추억이 있는 우리들은, 그 구호식품으로 굶어죽지 않고 다 함께 견디며 살아남아 오늘날의 이 풍요로움을 맞이하고 있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라고들 말한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지 않는 세상은 이미 종말이다. 내일이면 5월이고 며칠 뒤면 어린이날이다. 한 달 3만원이면, 갈치 두 마리를 포기하면, 커피 몇 잔을 아낀다면 스물아홉 명의 아이들 목숨을 내 손으로 구할 수 있다. 누군가 내민 손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배고픔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
잔인한 달 4월의 마지막 날에 이제 우리가 배고프고 아픈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을 내밀어 보자.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다.
이기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