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은 황선홍...
바난과 찬사를 동시에 들은 비운의 시트라이커였다는 말이
더 그에게 어울리듯 하다...
물론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의 주역이 돼며 화려한 은퇴를
했지만 그의 대표팀 시절은 항상 순탄치 않았다...
87년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그는 일찍 한국 스트라이커의
계보...이회택---차범근---최순호를 잊는 기대주로 각광을 받았고
91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독일 2부리그로 진출 한다...하지만
거기서 선수생명에 치명적인 무릎 십자인대 파열을 당하고 수술대에
오르며 재활을 시작 한다 93년 한국 포항제철로 돌아온 그는
94년 월드컵 주전 공격수로써 스폐인전 볼리비아전에서
숫한 찬스에도 골을 기록하지 못하며 팀의 예선탈락의 주범이
돼어 축구팬들의 수없는 비난을 받았다...
94년 아시안게임 총 11골을 뽑으며 득점왕에 올랐지만 팀의 4위에
만족해야 했다...
95년 황선홍은 프로축구 8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골행진을 거듭
그해 mvp와 브론즈슈를 수상 했었다...
96년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한해일 것이다...올림픽 출전에서 가나전
결정적인 패널티킥을 얻어낸 그... 하지만 이경기에서 그는 무릎 부상을
당한다...그리곤 다시 프로리그...아시안컵을 쉼없이 출전하며 부상악화로
다시 십자인대가 파열된다...많은 전문가들은 그의 선수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1년 7개월여의 재활을 거치며 그는 다시 비상을 꿈꿨다...
98년 4월 1일 한일전에 주전 공격수로 선발출장 최용수와 투톱을 이루며
팀의 결승골(가위차기 발리슛)을 기록하며 화려한 부활을 한다...이후
많은 평가전에서 옛기량을 회복하며 팀의 최초 16강 진출의 가능성을
어느때보다 높인다...아시아 최강 최용수와 황선홍이라면 ...멕시코
벨기에를 누르고 16강에 오를수 있다는 자신감이 대표팀에 넘쳐났었다
강팀 체코와 2:2로 기긴 경기에서 한국의 저력은 유감 없이 드러났었다...
또한번의 시련이 그를 가로 막고...98년 6월 1일 한중 정기전에서
골키퍼와 맞서는 찬스에서 중국 골키퍼의 거친 태클에 공중에서 한바퀴를 돌고
그라운드로 곤두박질친 그는 벤치에 더이상 못뛰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교체
그리고 병원으로 바로 후송되고 월드컵에서 뛸수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한경기라도 진통제를 맞고 꼭 뛰겠다던 황선홍은 끝내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팀의 네덜란드전 0:5패를 지켜 봐야만 했다...
황선홍은 쫓기듯 일본으로 간다...세레소오사카로 간 황선홍은 거기 마음 편한
천국 같았다고 한다...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고 욕도 하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축구를 하기로 작정한 그는...k리그에서도 기록하지 못한 득점왕에 오르며
99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한다...25경기 출장 24골...
2000년 수원 삼성으로 돌아왔던 그는 어깨부상과 다시 일본행을 택하고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한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프랑스전 0:5패를 당할 당시 그는 히딩크 감독방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은 황선홍이 만약 유럽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는 지금과는 또다른
세계수준의 선수가 돼었을 거라고 그때를 회상한다고 한다...
2002년 핀란드전에서 한국팀의 간판 킬러가 누군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미 35세의 나이...그의 마지막 월드컵...폴란드전...
지난 3번의 월드컵에서 보여주지 못한 모든 한을 풀듯 첫골과 첫승을
선사한다...
이탈리아전에서의 감각적인 크로스...설기현이 넣은 골은 황선홍이 반은
만들어 줬던 거다...
그리고 프리킥때 수비벽 밑으로 깔아 찬 그의 센스는 그가 어떤 공격수
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시련과 수많은 부상 축구팬들의 차가운 시선...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황선홍선수가 분명 최고는 아닐지도 몰른다...
하지만 황선홍선수가 뛰었을때의 한국 대표팀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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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토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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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황선홍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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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적이네요..진짜 축구에 대한 감각은 최고인것 같아요~아..그립네요..
분데스리가 첫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다음경기에 부상을 당했는데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계속 남아있엇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봅니다. 핀란드전에서의 두골은 당시 골부족으로 고심하고 있던 때라 히딩크감독을 아주 만족시킨 경기였조.
사실..황선홍선수가 부상만 아니었어도..세계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 반열에 올랐을꺼에요..진짜..
킥력만 보완했다면 세계적선수로 성장했을텐데..그래도 국민영웅..
영화로 만들어야 겠습니다.사실 94년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 때문에 2002 월드컵까지 약 8년동안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그후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축구를 구했어도 그에 대한 핀잔은 없어지질 않았죠. 한국 축구에 가장 큰 인물은 차범근도 좋고 홍명보도 좋지만 황선홍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군요.
아 부상...짜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