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인수봉 설교벽, 숨은벽, 백운대 파랑새능선, 망운대에서
넝쿨 움켜쥐며 푸른 봉우리 오르니 引手攀蘿上碧峰
흰 구름 속에 암자 하나 걸려 있네 一菴高臥白雲中
눈에 보이는 곳 우리 땅으로 한다면 若將眼界爲吾土
초나라 월나라 강남 땅도 그 속에 있으련만 楚越江南豈不容
―― 태조 이성계, 「登白雲峰」
▶ 산행일시 : 2018년 8월 12일(일), 맑음, 폭염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7.5km
▶ 산행시간 : 5시간 48분
▶ 교 통 편 : 전철과 버스, 택시 이용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56 - 효자리 입구, 산행시작
07 : 15 - 효자2동, 국사당 입구, 밤골탐방지원센터 입구
07 : 58 - △342.8m봉
08 : 29 - 마당바위
08 : 44 - 사기막봉(555m)
09 : 00 - 망운대(望雲臺, 영장봉, 545m)
09 : 28 - 숨은벽 산불감시초소
09 : 37 - 대동샘(大同-)
10 : 07 - 안부
10 : 28 - 백운대(白雲臺, 835.6m)
10 : 57 - 백운대 암문(闇門)
11 : 36 ~ 12 : 00 - 용암문(龍岩門), 일출봉(630m), 점심
12 : 34 - 도선사(道詵寺)
12 : 44 - 도선사 입구 주차장, 산행종료
1. 인수봉(仁壽峰, 810.5m)
▶ 사기막봉(555m), 망운대(望雲臺, 영장봉, 545m), 숨은벽능선
효자동에만 오면 숨은벽능선 들머리가 헷갈린다. 오늘도 구파발에서 탄 34번 버스를 미리
내렸다. 관세농원이다. 들머리를 찾으려고 뒤돌아서 산기슭을 오르는 길이려니 갔더니 막다
른 길이다. 발로 주위를 두리번거려 북한산둘레길 이정표가 보인다. 밤골탐방지원센터
2.2km. 세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한 정거장은 걸어가고 버스 기다렸다가 밤골로 간다. 버스
기사님이 ‘효자2동’에서 내리라고 한다.
효자2동에서도 엉뚱한 산기슭을 한 번 더 쑤셔보고 뒤돌아 나와 국사당 가는 길을 찾는다.
밤골탐방지원센터가 있는 국사당 앞은 오색 천과 오색 깃발로 어수선하다. ┫자 갈림길. 백
운대까지 직진하는 밤골(폭포골)은 4.1km이고, 왼쪽 계곡 건너 능선길은 4.3km다. 밤골은
숨은폭을 비롯하여 여러 폭포가 있다 하여 그리로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계곡
이 바싹 말라 건폭일 것이라 왼쪽 능선 길을 잡는다.
무지개다리로 너덜로 변한 마른 계곡을 건너고 0.2km 정도 완만한 사면을 오르면 맞은편 사
기막골에서 오는 등로와 만나는 야트막한 안부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자연석을
깔아놓은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오른다. 폭염은 지난주보다 훨씬 누그러졌다. 지난주에 불암산
을 오를 때에는 걸음걸음 숨이 턱턱 막히게 후덥지근하더니만 오늘은 대기가 사뭇 삽상하다.
비 오듯 흘리는 땀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342.8m봉 오르기 전 소나무 숲 쉼터에서 쉬어간다. 너른 쉼터에 나 혼자다. 모처럼 냉탁주
로 입산주를 마신다. 잔 권할 이 없고 자작이라서 술맛이 당최 덜 하다. 등로 한 가운데에 있
는 △342.8m봉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까지 발길에 닳아 희미하다. 대슬랩이 나온다. 등산
로 안내에 따라 오른쪽 돌계단을 오르다가 슬랩을 오른다. 도중에 부드러운 뒷모습의 원효봉
과 염초봉이며, 천혜의 날카로운 장성인 파랑새능선, 숨은벽능선, 인수봉, 설교벽(雪郊壁)을
보자 저절로 발걸음이 급해진다.
해골바위 아래 슬랩을 왼쪽의 난간 잡고 돌고, 돌계단을 잠깐 오르면 전망 좋은 마당바위가
나온다. 솔바람이 솔솔 불어대고 펼쳐지는 전후좌우 눈부신 가경이라 이때는 탁주 맛이 각별
하다. 한 차례 더 슬랩을 밧줄 잡고 오르고 돌계단을 오르면 사기막봉이다. 사기막봉 정상은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있어 아무런 전망이나 조망을 할 수 없다.
진작부터 벼렸던 나로서는 미답인 망운대를 간다. 거기까지 편도 130m 거리다. 출입금지 목
책을 살짝 넘는다. 가파른 바위틈을 저 아래로 스틱 던져놓고 조심스레 뭉개 내린다. 인적 뜸
한 소로의 숲길을 지나 암벽에 맞닥뜨리고 그 앞에 깨진 경고판이 있다. 이곳은 돌풍이 일어
바위 아래로 추락할 수 있으니 주의하시라는 것이다. 납작 엎드려 슬랩을 오르고 중턱에서
뒤돌아 인수봉을 감상한다.
슬랩 틈을 비집어 오버행으로 보이는 바위 턱만 넘으면 망운대 정상일 것 같은데 마구 두근
거리는 새가슴이라 그만 내린다. 오른쪽 완만한 슬랩을 돌아 오르는 길이 있다. 인수봉의 전
혀 새로운 모습을 본다. 이야말로 천주(天柱)다. 부수하여 장릉인 상장능선, 그 너머 도봉산
오봉과 자운봉 주변의 암봉군은 바라보아 삼복더위와 시간을 잊는다.
인수봉이라는 산 이름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의 ‘인자수(仁者壽, 어진 사람은
인생을 길게 산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즉, ‘옹야편(雍也篇)’의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인생을 길게 산다.)”에서 따왔다.
2. 상장능선 상장봉(上將峰, 513.3m)
3. 상장봉
4. 원효봉(510.8m) 뒷모습
5. 상장능선 너머 오봉과 도봉산 자운봉 주변
6. 앞은 망운대(영장봉, 545m)
7. 왼쪽부터 인수봉, 숨은벽능선, 백운대 파랑새능선이다. 마당바위, 사기막봉, 망운대에서
바라보았다.
8. 왼쪽부터 인수봉, 숨은벽능선, 백운대 파랑새능선
9. 왼쪽부터 인수봉 설교벽, 숨은벽능선, 백운대 파랑새능선
10. 왼쪽부터 인수봉 설교벽, 숨은벽능선, 백운대 파랑새능선
11. 왼쪽부터 인수봉 설교벽, 숨은벽능선, 백운대 파랑새능선
▶ 백운대(白雲臺, 835.6m), 일출봉(630m)
망운대에서 사기막봉으로 오는 길은 다른 길도 보이지만 괜한 발품을 팔지 몰라 갔던 길로
온다. 사기막봉을 약간 내리면 야트막한 안부는 ┣자 갈림길이 났다. 오른쪽은 밤골을 오가
는 등로다. 이제 숨은벽능선 암릉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우회로가 있지만 직등하는 것도 별
로 위험하지 않다. 걸음걸음이 빼어난 경점이라 주변의 절경에 취해 직사하는 햇볕이 따가운
줄 모르겠다. 이래서였을까. 산행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새까맣게 탔다고 한다.
숨은벽 산불감시초소는 늘 비어 있다. 자물쇠가 녹슨 걸로 보아 비운 지 꽤 오래되었다. 전면
의 숨은벽 대슬랩인 빨래판바위는 올라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오른쪽 밤골을 향하는데 구
멍바위로 잘못 들어갔다. 옴죽 달싹 못하다가 간신히 배낭 벗고 빠져나오니 구멍바위 오른쪽
으로 슬랩을 오르내리는 밧줄이 보이는 게 아닌가.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철난간 잡고 한 피치 내리면 깊은 협곡인 밤골이다. 암릉 같
은 너덜의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긴다. 이 가뭄에 대동샘도 말랐을까? 궁금하여 내쳐 오른
다. 암벽에 쓰인 대동샘이란 글씨가 바랬다. 그 아래 샘물은 얕게 고였다. 그래도 식수를 보
충하는 데는 충분하다. 옆에 놓인 자루 긴 스테인리스 물바가지로 떠 마시고 보충한다. 시원
하기가 얼음물이다.
‘대동(大同)’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흔히 대동세계 또는 대동세상과 같이 쓰며, 온 세
상이 번영하여 화평한 소위 유토피아를 뜻한다. ‘대동’이란 말은 춘추전국시대 『예기(禮
記)』의 ‘예운편(禮運篇)’에 처음 나온다. 길지만 지금도 간절하게 바라는 앞으로도 그럴 세
상이라서 인용한다.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에 공의가 구현될 것이다. 현자를 뽑아 위정자로 삼고 능력 있는 자에
게 관직을 부여하며, 서로 믿음을 가르치고 화목한 사회를 구현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
신의 어버이만 어버이로 알지 않고 자기 자식만 자식으로 알지 않게 된다. 노인으로 하여금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한다. 젊은이는 일할 조건이 보장되고, 어린이는 길러주는 사람이 있
으며, 의지할 곳이 없는 과부나 홀아비를 돌보며, 폐질자도 모두 부양받게 된다.
남자는 적령이 되면 결혼할 상대가 주어지고, 여자도 시집갈 곳이 있다. 재화가 땅에 버려지
는 것을 싫어하지만 반드시 자기가 사적으로 저장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노동하는 걸 싫어
하지 않지만, 반드시 자기만을 위해서 일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남을 해치려는 음모가 생
기지도 않고 도적이나 난적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집마다 대문을 닫을 필요가 없
다. 이런 상태를 대동이라고 한다.”
(大道之行也,天下爲公,選賢與能,講信修睦。故人不獨親其親,不獨子其子,使老有所
終,壯有所用,幼有所長,矜、寡、孤、獨、廢疾者皆有所養, 男有分,女有歸。貨惡其棄於
地也,不必藏於己;力惡其不出於身也,不必爲己。是故謀閉而不興,盜竊亂賊而不作,故外
戶而不閉,是謂大同。)
12. 인수봉
13. 인수봉
14. 인수봉
15. 파랑새능선, 가운데는 장군봉
16. 파랑새능선, 오른쪽은 장군봉, 앞은 숨은벽능선
17. 도봉산 자운봉 주변
18. 도봉산 오봉
19. 상장능선 너머 도봉산
20. 수락산, 앞은 영봉 북릉
밤골 오르막. 잘 다듬은 돌계단이 나오고 그 다음 슬랩은 데크계단으로 덮었다. 안부에 올라
서니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라니. 가을 냄새가 난다. 예전에는 안부 오른쪽의 슬랩 크랙
을 레이백 자세하여 백운대를 오간 적이 있지만 지금은 손끝과 발끝이 무디어 눈으로나 넘는
다. 등로 따라 사면 오른쪽을 길게 돌아 백운대 주등로인 산성 데크계단에 다다른다.
백운대를 들르기로 한다. 바람에 떠밀려 오른다. 난간 쇠줄 달군 뙤약볕이 바람에 맥을 못 춘
다. 많은 사람들이 백운대에 올랐다. 사방 자세히 둘러보고 나서 암반에 앉아 지나온 숨은벽
능선 바라보며 얼려온 캔맥주 꺼낸다. 손바닥부터 시원하다. 예전처럼 탁주이며 맥주이며 정
상주 마시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드러내지 않아서 일 것.
내 눈으로 다시 한 번 정약용의 「백운대에 오르다(登白雲臺)」를 실경과 대조해 보고 내린다.
어느 뉘 뾰족하게 깎아 다듬어 誰斲觚稜巧
하늘 높이 이 대를 세워 놓았나 超然有此臺
흰 구름은 바다 위에 깔려 있는데 白雲橫海斷
가을빛 온 하늘에 충만하구나 秋色滿天來
육합은 어우러져 결함 없건만 六合團無缺
한번 지난 세월은 아니 돌아와 千年漭不回
바람을 쏘이면서 휘파람 불며 臨風忽舒嘯
하늘 땅 둘러보니 유유하기만 頫仰一悠哉
주) 육합은 천지와 동서남북을 말한다.
백운대 암문은 등산객들로 문전성시다. 아무래도 볼거리는 만경대 오른쪽 산허리를 돌아가
는 길이 낫다. 아기자기하던 바윗길을 죄다 데크계단으로 덮어 발걸음이 심심하다. 가다 멈
춰 서서 고성 첨탑처럼 보이는 백운대와 그 아래 관문인 염초봉, 그 아래 동산 같은 부드러운
원효봉을 바라본다. 노적봉의 뒷모습은 단정하다는 말 말고는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노적봉 직전 안부에 올 때마다 목책 넘어 노적봉을 들를까 말까로 갈등이 인다. 다행히 많은
등산객들이 자리 펴고 쉬고 있어 마음을 돌리는 데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잰걸음하여
용암문이다.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동벽을 또 보고 싶어 성곽 따라 일출봉을 오른다. 돌
계단 길에서 뒤돌아보는 병풍바위가 절경 그대로 담은 거대한 병풍이다.
노송 그늘진 성곽이 솔바람까지 부는 명당이다.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나뭇가지 사이 기
웃거려 바라보는 건너편 용암봉 용출봉이 한 반찬이다. 다시 용암문으로 내려오고 그만 하산
한다. 가파른 돌길을 지그재그로 내리고 내려 계곡에 이르렀으나 계류는 이곳도 말랐다. ‘등
산로 아님’이라며 곳곳의 금줄 친 산길을 보면 더 가고 싶어진다. 김상궁바위가 있다고 안내
까지 하면서 막았으니 그냥 가는 발걸음이 힘들다.
수능시험이 100일이 채 남지 않았으니 기도에 더욱 정진하라는 설법에 이어 알아듣지 못할
염불소리가 들리고 곧 도선사 절집이 나온다. 계곡 길은 막아놓아 오른쪽 산허리를 길게 돌
아서 내린다. 도선사 절집은 인산인해다. 수능시험 특수(?)라서인지 사람과 차량들로 꽉 찼
다. 이속한 게 아니라 환속한다. 일주문 지나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앞 주차장. 우이동 가는 택
시는 여전히 4인 합승 1인 1,000원을 받는다.
21. 인수봉
22. 앞은 인수봉, 뒤는 사패산, 도봉산 오봉과 자운봉 주변
23. 노적봉(716m) 뒷모습, 단정하다
24. 백운대
25. 염초봉(640m, 본래 이름은 영취봉(靈鷲峰)이라고 한다)
26. 원효봉 옆모습
27. 의상능선의 용출봉
28. 앞에서부터 용암봉 병풍바위, 만경대 동벽, 인수봉
29.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동벽
30. 용암봉 병풍바위
첫댓글 뒷태미인이 진짜 미인이라는데 맨 윗사진 멋지네요. 그걸로도 본전 뽑은 거나 진배 없어요.
어휴 행님...나중에 못알아보는거 아닙니까...너무 깜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