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munhwa.com/amp/view.html?no=20010618MW154537119726
저 기사가 2001년으로 꽤 오래 전인데, 유튜브에 풀영상이 있었네요.
https://blog.naver.com/go_roro/220732737044 내용이 정리된 포스팅
https://www.youtube.com/watch?v=tDPId8Eg-_0
다큐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미군정이 끝나기 전이라 비밀리에 미군의 한국전 군수지원을 도왔는데, 당시 미국을 도와서 전후 일본의 미국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고자 했던 요시다 내각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다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동시에 진행되던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에선 중국과 한국을 초청하지 않았는데 대표국을 어디로 할지 애매하다는 거였습니다.
중국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의 중화민국 중 어디를 정통 중국으로 볼지 판정할 수 없어서 초청국에서 빠졌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미국은 한국의 조건부 참가를 고려했으나 일본은 재일 한국인에 대한 보상문제를 이유로 반대했고 영국도 2차대전 당시에 한국이 독립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건에 미달된다며 반대해서 한국은 제외됩니다.
http://contents.nahf.or.kr/item/level.do?levelId=edeah.d_0006_0010_0020_0030
당시 샌프 회담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한국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한국의 부속도서로 독도를 명기하진 않아서, 샌프 회담과 별개로 51년 12월에 발표한 677-1호 각서 및 앞선 1947년에 발표된 677호 각서를 통해 독도는 한국령임을 규정했음에도 일본에선 미련을 갖게 됩니다. 즉 일본국의 주권이 공인된 샌프조약 때 명시하진 않았으니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미련을 못 버리는 거죠.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맥아더 사령관에게 일본 의용병 참전을 요청했던 고다마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고다마는 구일본군 출신이며 1954년에 잠시 결성된 민주당(자유당과 통합해서 자유민주당=자민당이 됨. 아베 외조부로 알려진 기시가 이 당을 거쳐감)의 기시 등과 친분이 있었고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우익 정객입니다. 다큐에 따르면 고다마가 맥아더에게 일본의 한국 통치권을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하는데 2001년 다큐 방영 당시에 소개된 기사가 이 내용을 다룹니다.
고다마의 주장은 절반만 받아들여졌습니다. 구일본군 자료와 인력을 미군이 활용했지만 카이로와 얄타에서 이미 한국을 주권국가로 독립시키기로 정해졌고 샌프회담에서 재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일본은 철저히 미국의 의중에 따르면서 전전 기반을 바탕으로 경제강국으로 부흥을 맞게 되며, 한국과 수교했으며 불완전하게나마 군사력도 갖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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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샌프회담 때 특별상태국으로 지정된 국가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발트 3국은 이 시점에서 이미 소련에 강점된 지 11년째였고 태국은 친일정권 수립 뒤 일본과 협력했던 전적,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실각 후 무솔리니 잔당과 연합국 파벌로 내전, 핀란드는 겨울전쟁의 복수를 위해 독일과 협력, 한국은 패전국의 일본의 식민지였고 공통점은 1945년 8월 15일 당시 붕 뜬 국가 및 식민지였습니다.
임정과 광복군이 있지 않았냐고 물으실 수도 있고 임정이 장제스를 따라 중일전쟁과 버마 전선에서 각각 중국군과 연합군을 도운 건 맞습니다. 문제는 임정의 참여와 연합국이 임정을 조선 독립운동 단체 중 하나 이상으로 봤느냐는 별문제라는 점인데, 샌프회담 때 대표성 문제로 빠진 중국을 제외해도(중국은 장제스 때 한국을 독립시키자는 주장을 했고 관철시켰음) 미영소 3국은 분단과는 별개로 한국의 독립과 일본의 한국을 포함한 식민지 포기에는 동의했지만 임정을 조선의 공식 임시정부로 승인하지는 않았죠.
일이 이렇게 된 건 임정이 1920년대에 창조파와 개조파의 분열 및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의 분열을 거치며 세가 꺾였기 때문이고, 이봉창&윤봉길 두 의사의 의거로 인해 장제스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민족유일당 운동처럼 한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독립운동 전선을 결성하진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원봉의 조선의용군과 협업만 잘 됐자면 조금이라도 항일전쟁에 도움이 됐을 텐데...
괜히 김구가 일본이 항복하기로 했을 때 광복군을 국내에 보내지 못해 아쉬워한 게 아닙니다. 광복군의 규모가 작아서 크게 도움은 못 됐을지라도(버마전선은 영국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한반도를 해방하려면 미군이랑 같이 와야 성공률이 높아졌을 거란 생각도 저는 해 봤습니다. 소련은 광복군보다 세력이 더 컸던 국내군이 폴란드에서 당한 냉대를 볼 때 좌익을 싫어하는 임정을 방해했지 도움은 주지 않았을 거고요. 이미 그때 김일성과 88여단을 준비시켰고 폴란드에서도 친소 인민군을 앞잡이로 내세운 게 소련입니다) 시도도 못 해봤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죠.
어쨌든 한국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던 건 순국선열 분들이 40여년 간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보여주었고, 그 독립 의지를 본 장제스를 시작으로 미영중소 4개 열강이 일본이 모든 식민지를 포기하도록 만든 게 큽니다. 만약 그런 게 없었거나 약했다면 독립은 더 힘들었을 거고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자력해방을 못했다는 거고, 유럽에서 자력으로 독일과 이탈리아를 몰아낸 유고랑 알바니아가 결과(티토 사후 와해/호자의 독재와 쇄국으로 가난해짐)는 둘째치더라도 최소한 소련에게 꿀리는 입장은 아니었던 걸 생각하면요.
그리고 미국은 아직 한국보다는 일본을 다뤄본 경험이 많고, 일본이 일제 패망 이후로 철저히 미국에 숙이고 들어가서 일본의 편의를 더 봐주려는 경향이 있는데, 민주당이 대미외교에도 좀 더 신경썼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이 친미+반공 노선을 표방하면 어느 정권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한 건 사실이고 한국의 군사정권도 그 때 미국의 지지 내지 묵인을 받은 것도 사실인데, 그렇다 해도 1987년에 민주진영에 대한 무력진압을 시도하려던 전두환을 말린 것도 미국입니다.
즉 미국은 비록 자기 국익을 중시하는 국가지만 최소한 어떻게 하면 한국의 민심이 나빠지지 않을지 광주항쟁 이후 늦게나마 알았던 겁니다.그래서 한국이 지금보다 더 미국의 지지를 얻으려면 우리의 핵심 이익에 대해선 자기 주장을 내되, 큰 틀에서는 미국 노선을 따라가 줘야지 지금 윤석열 정부처럼 저자세로만 나서면 곤란하고, 시민 사회에서도 그런 부분을 반영할 수 있는 후보에 가까운 정치인들을 (특히 더불어민주당에서 찾아서)후원하고 투표해 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저는 다큐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점에선 노통이 일찍이 주장했던 한반도 균형자론과 문통의 운전자론은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섣불리 중립이나 제3세력을 자처하기에 한국은 입지가 애매하고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의 우호관계로 얻는 이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얼마 전에 중국의 티벳 자치구에 간 민주당 의원들이 굳이 거기 가서 비난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는데 하는 생각을 했네요. 국민들의 대중감정이 나쁜데 굳이 간다고 중국에서 고마워할지는 둘째치고, 국힘의 친중몰이에 말려드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죠.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자기네 회사가 운영을 못해서 터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무책임하게 바다에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한국은 반대를 해야 나중에 일본이든 중국이든 원전 사고로 불똥이 튀더라도 항의할 명분이 서는데, 정부는 중국 원전들로 물타기를 하면서 괴담으로 치부하기에 급급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조선과 명나라를 침략하려 했던 도요토미 정권은 2대 18년 만에 무너졌고 조선을 강점한 뒤 아시아를 침략한 일제는 3대 79년 만에 무너졌지만 조선에 사과하고 공존을 선택한 도쿠가와 막부는 15대 246년 동안 일본에 평화를 가져왔음을 많은 일본인들이 깨달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양식 있는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힘을 합쳐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일본이 우경화됐다지만 1억이 넘는 일본인 중에 그런 사람이 아예 없을 거란 생각은 들진 않네요. 당연히 지금처럼 저자세 외교만 고집하면 오히려 일본 정계에서 한국을 우습게 보지 제대로 상대해 주진 않을 테니 그런 식으로 대일정책을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다큐를 보면서 고다마 같은 작자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으려면 한국이 자체 역량을 유지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에 한국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정계, 특히 민주당 의원들이 많이 노력해야 하고 시민사회에서도 그런 정치인들을 찾아서 후원하고 지지함으로서 주요 결정사항을 결정하는 자리에 가능한 많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저도 제 투표권을 잘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정리
1) 일본이 주권국가로 인정받고자 미국과 밀약을 맺고 한국전 때 소해지원을 도울 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우익인 고다마가 한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 사실임
2) 하지만 고다마의 망상과 달리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은 한국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했으나, 독도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해서 일본이 미련을 갖게 만들어 분란의 여지를 남기는 실수를 범함
3) 한국이 국제관계 특히 대미관계에서 발언권을 높이려면 자기주장도 확실히 하되 미국과 다방면으로 소통할 창구를 넓혀야 함, 일본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 외교는 국익에 도움이 안 되며 표트르 3세의 전철을 밟아도 안 됨
4) 이 모든 게 잘 풀리려면 시민 사회와 시민 개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 참정권과 투표권은 그냥 주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현명한 결정이 요구됨
첫댓글 글 잘 봤습니다.. 정말 정리를 잘하는 군요.. 이해가 쏙쏙 됩니다.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