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영암사지.
노덕경
합천 문인협회 초청, 고향 사랑 문학인 한마음대회가 7월에 있었다. 합천 문학 이천 년
“황강은 흐른다.”라는 논제로 문인들의 문학 토론, 상견례, 만찬과 장기자랑을 하는 1박
2일의 행사였다.
이튿날, 영암사지를 찾았다. 지리산과 가야산을 연결하는 모산재, 병풍처럼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절경이었다. 황매산은 봄이면 붉은 철쭉 군락, 가을이면 황금빛 억새가 장관을
펼쳐지는 황매산 군립공원이다.
황매산 남쪽 기슭에 9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영암사’ 절터가 있다. 1014년
(고려 현종 5년)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향연 83세에 입적하여 ‘영암사’ 서봉에서 장사를
지냈다. 선사의 부도가 대기大基마을 뒤쪽 산 중턱에 현존하고 있어 영암사지로 판명된다.
이외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강원도 양양 사림사의 홍각선사 비 弘覺禪師 碑비문에
홍각선사가 영암사에서 수행하였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탁본한 영암사 적연국사 자광 탑비(1023년 건립)의 비문에 932년
신라에서 태어난 ‘적연선사’가 개성 인근의 보법사 普法寺와 ‘내제석원 內帝釋院’에 머물다
1011년 가수 현(삼가 현의 옛 지명)의 영암사에 기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암사지는 불교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보물 3종이 있다. 쌍사자 석등(보물 제353호)
3층 석탑(보물 제480호) 적연국사 탑비의 귀부(보물 제489호)가 있다.
일제 치하에 문화재 유출을 막고자 동민들이 면사무소에 보관하다, 부산의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세 차례나 발굴조사에서 깨진 기와, 토기,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어 절의 창건
연대를 추정, 1959년 가회면민들이 영암사지를 정비하여 유지될 수 있었다.
웅장한 절터로 경사진 대지에 3단의 축대가 남아 있다. 석축은 ‘모산재’의 화강암으로 높은
곳은 11단으로 다듬은 돌로 가로 쌓기로 하다 일정한 간격으로 튀어나온 돌들이 있다. 이것은
석축의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한 돌, 못으로 사용한 통일신라의 석축 양식이다. 이러한 석축
양식은 경주의 불국사, 월정교의 석축과 같다.
쌍사자 석등은 높이 2.31m로 영암사지의 꽃이다. 고임돌 위에 아랫돌의 연꽃 받침, 중대석의
사자 두 마리가 마주 보며 힘차게 받치고 있는 형상, 불을 밝혀두는 8각의 바닥 화사석 火舍石은
연꽃이 있고, 4면의 화창은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한 쌍사자등은 5기가 있다. 보은 법주사(국보 5호) 광양 중흥산성
석등(국보 103호) 여주 고달사지 석등(보물 282호) 양주 회암사 석등(보물 389호) 합천 영암사지
석등(보물 353호)이다.
석탑을 거쳐 금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한 덩어리 돌로 만들어 계단이 폭이 좁고, 가파르게
6단이고 계단석이 무지개를 건너 극락에 이르기를 소망했던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지금은
없지만, 난간의 동자주를 세웠던 구멍 흔적이 남아있다.
3층 석탑은 높이가 3.8m이다. 경주의 석가탑과 외형이 같다. 탑의 기단과 1층의 몸돌이 다소 높은
느낌이 있으나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각 부재의 짜임새가 정교하고 솜씨가 간결하여 장식이
소박한데 추녀선이 살짝 치켜져 미 美의 극치다.
귀부는 거북 모양의 비석을 세웠던 기단이다. 서쪽 금당에 2개의 귀부가 있는데 탑신과 비석에 절의
내력이 있었을 것인데 소실되어 귀부만 있다. 특이한 것은 동쪽과 서쪽의 귀부가 다르다. 동쪽은 하얀빛의
거북 등갑은 화강암으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이빨이 보이고, 서쪽은 붉은빛의 화강암으로 여의주를 물고
이빨이 보이지 않는다.
불상을 모셨던 금당 金堂, 서금당 西金堂, 회랑 回廊, 부속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금당지의 기단은 화상석,
지대석, 면석, 갑석을 비교적 잘 갖추어 사방에 계단이 한 개씩 남아 있다. 전면 계단의 소맷돌은 좌·우측에는
부처님의 법을 전한다는 전상의 새 ‘가릉빈가 迦陵頻伽’를 조각하였으며 뒷면을 재외하고 3면에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데 초석이 두 줄로 놓여있다. 중앙에는 ‘H빔’형 불상 지대석은 8개의 장대석으로
되어있고 표면에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다. 50m, 서쪽 금당지에 양쪽 귀부가 있고 중앙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작은 서 금당지가 있다.
경주에서 먼 합천에 큰 사찰이 통일 신라 말 고려 초 가람이란 점, ‘유홍준’ 장관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6권의 표지로 장식했던 최고의 폐사지로 꼽은 합천 황매산 영암사지다. 귀중한 문화재로 의의가 크다.
합천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자.
첫댓글 형님 문인들의 문학 토론, 상견례, 만찬과 장기자랑을 하는 1박 2일의 행사에 귀중하고 대단한 문화유산의 합천 황매산 영암사지를 답사한 상세한 내용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