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검문이 산동의 해안가에 도착했다. 어주문의 어현권 은 바닷가에 나와 남해검문의 배를 맞았다. 주유성에게서 전서구를 받은 남해검문의 문주가 어현권에 게 포권을 했다. "무림맹 어사 어 대협이십니까?" 어주문이 반색을 하며 마주 포권을 했다. "그렇습니다. 주유성 대협에게서 귀하들을 무림맹으로 안 내해 달라는 지시를 받은 어모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해신께서는 어 대협이 훌륭한 분이시니 예의를 잃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문주는 어현권을 대하는 것에 예의를 다했다. 문주를 따라온 보수각주 현승금이 포구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해신의 눈썰미는 역시 대단하군. 여기에 항구를 짓고 우리와의 교역의 통로로 삼으면 꽤 괜찮겠습니다." 어현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남해에서 뱃길로 오다 보니 여기까지의 길이 꽤나 편안하 더군요. 그리고 이 해안의 구조는 우리 보수각의 기술로 항구 를 짓기에 충분한 형태. 여기에 항구를 짓고 남해와의 교역 통로로 사용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현권이 입을 떡 벌렸다. "남해와의 교역 통로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해신께서 보내신 전서구의 내용을 보고 설마 했는데 일단 와보니 꽤 좋은 곳이군요. 그리고 산 동은 하남, 하북과도 가까우니 이보다 좋은 곳이 없습니다. 더구나 해신 주 대협께서 특별히 하신 말씀이시니 우리야 이 런 좋은 곳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그... 그러면 어촌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설 마 이들을 쫓아내고......" 현승금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쫓아내다니요. 우리가 무슨 해적입니까? 이 근방 은 이제 모조리 대박을 맞은 거지요." 이 어촌은 주유성이 처음 구조된 바로 그곳이다. 주유성은 은혜를 잊는 인간이 아니다. * * * 주유성이 중원전서상회를 통해서 보낸 쪽지는 북해빙궁에 정확히 전달되었다. 북해빙궁의 담당자는 그 내용을 확인하고 기겁을 했다. "허억! 북해의 별께서 살아계시다!" 그의 동료가 반색을 했다. "뭣이? 이거 경사가 났구나!" 처음 담당자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런데 북해의 별께서는 우리 궁의 지원군이 무림맹으로 곧장 오기를 원하신다." 다른 담장자의 안색이 변했다. "궁주께서는 곧 마교와 정면충돌하실 텐데?" "일단 대지급으로 소식을 전해라. 싸움을 중지하시라고." "알았어. 시간 안에 연락이 도착하면 좋겠는데......" 남만독곡의 담당자도 전서구를 받았다. 그 역시 깜짝 놀랐 다. "아아, 왕께서 살아계시다!" 다른 담당자가 즉시 달려들어 쪽지를 같이 확인했다. "역시 우리들의 왕이시군. 그러면 그렇지. 천하에 누가 감 히 왕을 죽일 수 있겠어? 나는 왕께서 살아계심을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고." "그런데 이거 좀 곤란하게 됐군. 왕께서는 곡주께서 곧바 로 무림맹으로 오기를 바라시는데? 곧 사황성과의 정면충돌 이 있을 텐데......" 다른 담당자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사황성쯤은 단숨에 깨부수고 무림맹으로 가시면 되지 뭐." 독곡에서는 혈마 알기를 뒷집 개보다도 못하게 알고 있었 다. 혈마가 들었다면 입에서 불을 뿜을 소리다. "하여간 대지급으로 연락은 넣자고. 어차피 늦었겠지만." * * * 주유성이 무림맹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남만 무사들과 사 황성이 정면으로 대치했다. 남만이 동원한 무사는 모두 일만여 명이다. 중원 무림맹으 로 직접 보낸 무사들도 있지만 그건 소수일 뿐이다. 주력은 사황성을 향해 밀어닥치고 있었다. 사황성이 직접 동원 가능한 전력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만약 사황성이 모든 힘을 모은다면 만 명의 적 정도는 단숨에 녹여 버릴 수 있다. 모든 것은 머릿수의 힘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황성이 자기네가 직접 동원 가능한 몇만 이나 되는 전력을 모두 한군데에 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무사들 전체로 남만독곡 요격에 나설 수도 없다. 사황성은 그 많은 머릿수 대부분을 중원 정파들을 억누르 는데 사용하고 있다. 그들의 작전은 꽤 효과가 있었다. 현재 무림맹은 사황성의 작전에 말려든 상태다. 그래서 직 접 보유 중인 전력의 상당수는 그런 사황성의 행동을 견제하 고 여러 정파를 지원하는 데 소모되고 있었다. 사황성은 자기네 본진을 텅텅 비워둘 수도 없다. 그들이 그 런 짓을 한다면 자기들이 지금 즐겨 쓰고 있는 본진털이에 도 로 당하는 수가 있다. 이래저래 빠지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러고 나니 사황성 이 독곡을 처리하기 위해서 동원한 무사의 숫자도 일만이다. 혈마는 이 정도 숫자만 빼와도 독곡쯤은 얼마든지 처리할 자 신이 있었다. 어쨌든, 양측의 전력은 머릿수만 놓고 보면 비슷했다. 각각 일만 명으로 구성된 두 부대가 거대한 평원에 개미 떼 처럼 늘어서서 대치하고 있었다. 두 부대 중 어느 하나만 몰 려가도 거대 문파 하나를 단숨에 짓밟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혈마는 여유만만하다. "흐흐흐. 촌구석의 잡놈들. 실력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 까? 남만독곡이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을 테니 저 중에는 검이 나 제대로 잡아봤을지 의심스러운 자가 널려 있겠지. 사냥질 이나 하던 부족 놈들이 대부분일 거야. 하지만 내 부하들은 정예 무사들이지." 총관도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간 가진 정보로 판단해 보건대, 저 중에 남만독곡에서 보낸 무사들은 많아야 수천에 불과할 겁니다. 설마 그들이 일 만이 넘는 무사들을 유지할 수 있었을 리가 없으니까요. 나머 지는 대충 머릿수만 맞춰온 놈들이이 무공을 모를 것이 틀림 없습니다. 우리가 병력으로 밀어버리면 필승입니다." 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거기에 더해서 내가 먼저 곡주 놈을 쳐 죽인다면 사 기가 크게 오르겠지?" "성주님의 명성 역시 더 높아질 것입니다." "크흐흐. 총관. 내 명성이 더 올라갈 곳이 어디 있다고 그 러는가? 겨우 시골 잡파의 곡주 하나 죽였다고 올라갈 만큼 내 명성이 가볍던가?" "그것도 그러하옵니다. 사실 성주님의 명성을 올리려면 검 성이나 천마 정도는 목을 바쳐야 하지요." 남만독곡도 분위기가 좋았다. 그들은 주유성의 연락은 받 지 못했지만 귀가 있어 소문은 들을 수 있었다. "왕께서 살아계시다는 소문은 확실한 건가?" "물론입니다. 이미 그 명성이 하늘을 찔러 십절사신 잠룡 주유성 대협이라 불리신다고 합니다." "좋은 일이야. 그럼 우리는 혈마를 잡아 왕께 선물로 바치 면 되겠군." 독곡 곡주가 사황성의 군대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사황성 놈들이 역시 수가 많기는 많구나. 우리 를 상대하겠다고 순식간에 일만 군세를 만들어내다니." 장로들이 낄낄거렸다. "아마 우리가 온다는 말에 놀라 여러 군소사파에서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을 겁니다." "사형, 그런 군소사파 놈들 중에 무공을 제대로 쓰는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잘해봐야 삼류무사겠지요." "우리 곡에서 독을 수련한 자들이 나서면 삼류무사들 따위 는 모조리 중독시켜 없앨 수 있습니다." "각 부족에서 모아온 전사들도 그들이 자랑하는 날랜 자들 입니다. 중원의 삼류무사 따위는 그들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 입니다." 곡주도 혈마 못지않게 여유만만한 상태다. "너희들이 사파 잡놈들을 처리해라. 혈마는 직접 내가 잡 겠다. 왕께 얻은 인면지주의 독. 그것을 완전히 흡수한 지금 에 와서 혈마 따위는 내 상대가 아니야." "사형만 믿습니다. 크흐흐." "곡주님 만세입니다." 서로를 얕잡아보고 있는 총 이만 명의 무사들이 서서히 다 가섰다. 수뇌부만이 아니라 일반 무사들도 양쪽 모두 자기들 의 전력이 훨씬 더 강하다고 믿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어느 쪽도 따로 병력을 숨겨두지 않았 다. 혈마나 독곡 곡주 모두 상대를 구태여 포위섬멸하거나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둘 다 상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산산 이 조각낼 꿈에 부풀었다. 독곡곡주가 먼저 호통을 쳤다. "혈마! 감히 네가 왕께 불경을 범하다니! 내가 너를 잡아 왕께 바치겠다!" 혈마는 어이가 없었다. "그 애송이 자식을 왕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꼬락서니하고 는. 네놈들은 자존심도 없느냐?" "왕께서 베푼 은혜가 크고도 큰데 자존심 타령이나 하고 있으면 그게 사람이냐? 혈마, 닥치고 목을 내밀어라. 내가 일 성이마 위에 일독이 있음을 오늘 보여주겠다." 혈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일성이마라고 불리는 것 을 대단히 싫어한다. 검성이 자기 위에 있는 것도 싫고 천마 와 같이 이마로 불리는 것도 싫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들이군." 혈마가 손을 들었다가 내리며 외쳤다. "쳐라!" 잔뜩 당겨져 있던 사황성의 일만 무사들이 즉시 돌격하기 시작했다. "우와아!" 남만의 부대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독을 쓰는 독곡 무사들과 각 부족의 일반 무사들이다. 그들이 두 갈래로 나뉘 며 사황성 무사들을 요격했다. "죽여라아!" "독살시켜!" 거대한 양쪽의 힘이 충돌했다. 충돌과 동시에 선두에 서 있 던 무사들 중 상당수가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수수깡 부러 지듯이 박살이 났다. 그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자들은 하늘을 붕붕 날며 적의 목 을 쳤다. 사람의 목이 피와 함께 허공으로 솟았다. 뒤이어 이만 개의 창칼이 피와 살을 가르며 서로의 목을 노 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피분수가 뿜어지고 잘린 팔다리 가 날아다녔다. 총 이만 명의 무사가 서로 칼질을 해대고 장력을 날리는 전 투다. 더구나 칼에는 눈이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름을 날 리던 고수도 뒤통수가 갈라져 죽는다.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그런 전투 중에도 무사들이 접근하지 않는 공간이 하나 있 었다. 독곡 곡주와 혈마가 대치한 곳이었다. 둘을 중시므로 상당히 큰 공간이 완전히 텅 비었다. 누구도 그 초고수들의 싸움에 끼어들 용기는 없었다. 남만독곡 곡주가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흐. 혈마, 네가 잡무공을 여럿 익히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어디 내 독공 앞에서 재롱을 피워보아라." 혈마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남만독곡 곡주의 무공이 낮을 리는 없지. 하지만 내 상대 가 될 리는 없다.' "네 끝없는 자부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 디 잡무공에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꾸나." 혈마가 바닥의 돌멩이 하나를 툭 찼다. 옆을 찼는데도 돌멩 이는 회전하면서 수직으로 떠올랐다. 그 돌을 혈마가 가볍게 낚아채더니 슬쩍 던졌다. 모든 동작은 자연스러웠다. 곡주가 보기에도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곡주는 조금 긴장했다. '명색이 혈마가 던진 돌이다. 이게 그저 단수한 돌팔매질 일 리가 없다. 알아보지 못하는 어떤 것이 숨어 있다.' 곡주가 방심하지 않고 독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 주위로 검은 기류가 부드럽게 회전했다. 그의 양손은 어느새 검게 물 들었다. 곡주가 독장을 날리며 소리쳤다. "장난하지 마라!" 검은 독장이 매섭게 날아갔다. 원래 독장은 물리적 타격력이 높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독 장의 주목적이 독을 가능한 은밀하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을 전달하면서 내력에 의한 타격력 까지 얹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건 내공의 높낮음이 아니라 무 공 수위의 문제다. 그러나 곡주가 날린 독장은 달랐다. 날아가는 독장 주위로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곡주의 독장이 혈마가 던진 돌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혈마 가 던진 돌에 담긴 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독장에 맞은 직 후 그 기운은 힘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돌이 퍼석 소리를 내 며 가루가 돼서 사라졌다. 혈마는 조금 놀랐다. '독곡 곡주의 독장에 이런 강력한 물리적 타격력이라니. 제법이군.' 힘이 넘치는 독장이 돌을 단숨에 부수고 혈마를 향해 곧바 로 날아갔다. 혈마가 코웃음쳤다. "흥!" 혈마가 왼손으로 일장을 날렸다. 두 사람의 장력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폭음이 터졌다. 혈마의 장력이 곡주의 독장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러나 독장에 실려 있던 독기가 확 퍼지며 혈마 쪽으로 밀려들었다. 곡주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놈. 한 수도 못 버티는군. 역시 나는 강해.' 혈마가 왼손을 획 뒤집었다. 그가 날렸던 장력이 즉시 퍼지 며 독기를 차단했다. 살상력은 크되 힘을 잃은 독기가 그 벽 을 뚫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혈마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독곡 곡주의 무공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군. 이러면 사천 당문의 독왕도 그대의 위라고 할 수 없겠는걸?" 곡주도 낮게 웃었다. "흐흐흐. 일성이마가 내 아래인데 십이왕 중 하나인 독왕 정도를 언급하다니. 계산이 그렇게 안 되는 머리로 용케 사황 성을 이끌고 있었구나." 혈마가 공력을 끌어올렸다. "어디, 그럼 본격적으로 해볼까?" 혈마의 몸이 옆으로 스르륵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장 력을 연달아 날렸다. 절정의 연환장력이었다. 곡주를 중심으 로 회전하는 그의 보법 속도는 정말 빨랐다. 그가 날리는 연 환장력은 더 빨랐다. 마치 수십 명이 곡주를 포위하고 장력을 날리는 듯한 위력이었다. 곡주가 그 무공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실전됐다던 금쇄연환장? 역시 익히지 못한 무공이 없다는 혈마로군!" 곡주는 말을 하면서 독공을 잔뜩 끌어올렸다. 그의 몸을 돌 고 있던 검은 기운이 한층 짙어졌다. 곡주는 몸을 도는 기운 을 허리에 집중시켰다. 검은 기운이 얇아지며 그의 허리춤에 서 둥근 고리 모양으로 뭉쳐졌다. 그가 검은 고리를 모으는 시간은 눈깜빡할 만큼밖에 걸리 지 않았다. 곡주의 두 팔이 그 고리를 슬며시 잡았다. 검게 물든 손이 고리 속으로 빨려들었다. 곡주가 두 팔을 옆으로 강하게 떨치며 소리쳤다. "연환흑사환!" 곡주는 일부러 초식명을 크게 외쳤다. 두 손이 검은 고리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짙은 검은 고리가 곡주의 몸을 중심으로 급격히 커졌다. 마치 장력을 날리는 듯 한 속도였다. 검은 고리는 하나로 끝이 아니었다. 곡주는 계속 검은 기운 을 모아 고리로 만든 후 그것을 바깥으로 터뜨리듯 확장시켰 다. 곡주의 몸을 중심으로 연못에 동심원이 연달아 만들어지 듯 여러 개의 검은 원이 생성되었다. 혈마의 장력이 그 고리를 연달아 두들겼다. 고리와 장력이 충돌하며 만들어지는 충격파가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혈마는 당황했다. 그가 날린 장력은 고리를 압도적인 힘으 로 부수고 있었다. 문제는 고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꾸 밀려드는 검은 고리에 혈마는 다소 불리함을 느꼈다. '이대로는 내가 손해다.' 그가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확장되는 고리를 막아주던 혈마가 공격을 포기하자 고리는 그의 발밑을 스쳐 상당히 먼 곳까지 퍼져 나갔다. 둘의 싸움터 근처에 있던 남만의 무사들은 곡주가 '연환흑 사환' 이라고 외치는 순간 꽁지가 빠져라 그 장소에서 도망 쳤다. 그러라고 초식명을 외친 것이다. 그러나 사황성의 무사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런 사황성의 무사들을 향해 혈마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흑사환 이 덮쳤다. "크, 크악! 독이다!" "으아악! 모, 몸이......."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의 사황성 무사들이 독에 격중당했다. 그들은 급히 공력을 끌어올려 저항했다. 하지만 소용없었 다. 순식간에 얼굴이 검어지며 무릎을 꿇었다. 공력이 낮은 자는 즉사했다. 공력이 높은 자도 운기조식에 빠져들었지만 안색이 순식간에 검어졌다. 그 꼴을 본 혈마가 분노해서 소리쳤다. "네 이놈!" 곡주는 아직도 자신의 독기가 충만한 것을 느꼈다. '역시 인면지주의 독단은 대단하군. 예전이라면 단 한 번 펼치는 것으로 독기가 고갈됐을 텐데.' 곡주의 눈에 하늘에 떠 있는 혈마가 보였다. 그는 독공을 다시 끌어올렸다. 몸 주위로 검은 기류가 빠르게 생성되더니 그것이 그의 두 팔에 모여 회전했다. "전설의 허공답보를 익히지 못했다면 피할 방법은 없을 터. 혈마도 별것 아니구나. 죽어라!" 곡주가 두 팔을 떨쳤다. 강력한 독장 두 줄기가 혈마를 향 해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갔다. 혈마는 굳이 공중에서 몸을 움직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까의 싸움은 분명히 그의 열세였다. 그는 그 사실에 이미 열이 뻗칠 만큼 뻗친 상태였다. 혈마의 몸에서 내공이 솟구쳤다. 그의 몸 주위를 붉은 기운 이 뒤덮었다. "짓이겨 주마!" 혈마도 곡주를 향해 떨어지며 두 팔을 뻗었다. 그의 두 팔 에서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강력한 붉은 장력이 곡주를 향해 날아갔다. 허공에서 두 가지 색의 장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귀를 찢 는 폭음이 터졌다. 싸움에 열중해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잠시 눈을 돌릴 정도로 엄청난 폭음이었다. 곡주의 산장이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혈마의 장력도 사 라졌다. 허공에 부서진 독기가 만들어놓은 검은 구름이 생겼다. 혈 마의 모습은 그 검은 구름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곡주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됐다! 저 독 속에서 누구도 버티지는 못한다!" 갑자기 구름에서 한줄기 검기가 번쩍였다. 검은 구름은 곧 바로 두 갈래로 쫙 갈라졌다. 혈마가 검을 든 채 곡주에게 떨 어지고 있었다. 혈마가 공중에서 열이 뻗쳐 소리쳤다. "내가 독에는 조예가 없을 줄 알았느냐!" 그는 혈마다. 수많은 무공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에는 당연히 수주 높은 독공도 있다. 곡주는 혈마가 거기서 빠져나오자 정말 기겁을 했다. 하지 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혈수로 만들어주마!" 곡주가 쌍장을 연달아 휘둘러 혈마를 공격했다. 검은 독장 이 허공으로 줄기줄기 솟아올랐다. 혈마의 검이 검기를 두른 채 그 독장을 연달아 쳐냈다. 어 느 독장도 혈마를 직접 타격하지 못했다. 혈마는 독장을 쳐내 느라 그 반탄력으로 천천히 떨어졌다. 하지만 둘 사이의 거리 는 어느새 검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혈마의 검을 타고 흐르는 검기는 너무 짙어 검강이라고 부 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혈마가 곡주를 향해 그 검을 뻗었 다. 단순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그 일격에 담긴 힘은 곡주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파멸적인 것이었다. 곡주는 감히 장력으로 그 공격을 저지할 생각을 못했다. 그 는 즉시 물러서며 혈마의 공격을 피했다. 혈마의 공격은 검이 전부가 아니었다. 곧바로 그의 발이 곡 주를 향해 날아갔다. 언제 발길질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날아온 발길질이었다. 곡주가 다시 물러서며 외쳤다. "헛! 무영각!" 다음으로 날아온 것은 혈마가 왼손 손가락으로 펼친 지법 이다. 비록 두 번째 손가락 하나뿐이었지만 그 끝에는 붉은 기운이 잔뜩 맺혀 있었다. "이놈! 지법도 장난이 아니구나!" 곡주가 급히 몸을 뒤집으며 몇 걸음 더 물러섰다. 둘 사이 의 거리가 확 벌어졌다. 혈마가 손가락만 내밀고 있던 왼손을 뒤집었다. 그러면서 기운이 맺혔던 두 번째 손가락을 엄지에 걸었다가 퉁겼다. 손 가락 끝에 맺혔던 붉은 기운이 하나의 빛이 되어 일직선을 그 렸다. 손가락을 돌린 움직임이 빨랐고 그 기운이 날아가는 속도 는 빛이나 다름없었다. 기운이 곡주의 심장을 노렸다. 곡주가 크게 놀라며 몸을 다시 휙 뒤집었다. 그러나 이번에 는 혈마가 날린 기운이 빨랐다. 혈마의 지력이 곡주의 왼쪽 어깨에 충돌했다. 곡주는 자신의 독공을 믿었다. 창졸간의 일이지만 그럭저 럭 공력을 끌어올려 어깨를 보호했다. 혈마가 날린 지력은 그냥 간단한 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곡 주의 어깨에 부딪침과 동시에 날카롭게 변했다. 심지어 회전 까지 하고 있었다. 곡주의 독공으로 만들어진 호신독기를 간 단히 돌파한 기운은 어깨를 깨끗이 관통했다. "크윽!" 곡주가 몇 걸음을 비틀거리면서 소리쳤다. "어떻게 혈마가 소림의 탄지신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이냐!" 탄지신통은 소림 칠십이종 절기 중 하나였다. 사파에 유출 될 만한 무공이 아니다. 승세를 점한 혈마가 빠르게 다가오며 외쳤다. "그까짓 탄지신통, 내 내공으로 비슷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 내가 바로 못 다루는 무공이 없다는 혈마 구제조다! 용케 빠져나갔구나. 어디 이것도 한번 받아보아라!" 혈마의 검이 다시 곡주의 목을 노리고 움직였다. 검의 움직 임을 따라 부챗살 모양으로 잔상이 퍼졌다. 곡주는 크게 놀랐다. '잔상 하나하나가 치명적이다! 허초가 없다!' 곡주는 넘치는 공력을 이용해 강력한 쌍장을 날렸다. 장력 과 검이 화려하게 충돌했다. 완벽하게 막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미 곡주의 두 팔에 가는 칼자국 수십 개가 그어졌다. 잔상들에 의한 부상이었다. 그곳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곡주는 인면지주의 독단을 흡수한 후 세상에 적수가 없는 줄 알았다. "크으. 혈마. 제법이구나." 우세를 점한 혈마는 이제 붕붕 날며 검을 뿌렸다. "으하하하! 독곡의 잡배야! 제법 실력이 쓸 만한 것을 보니 어디서 무슨 기연이라도 얻었나 보구나.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아직 하룻강아지! 내 상대는 아니다!" 혈마의 검에서 끝없이 새로운 초식들이 펼쳐졌다. 매번 다 른 초식에 곡주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더구나 검에 의한 공격이 전부가 아니었다. '크윽. 검법만이라면 그나마 나으려나. 역시 혈마!' 혈마는 검을 날리는 사이사이에 장법과 지법, 각법과 퇴법 을 두루 사용했다. 틈틈이 암기까지 날아왔다. 곡주는 마치 여러 명의 초고수와 싸우는 것 같았다. 명색이 독곡의 곡주인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 은밀히 독을 뿌렸다. 공격해 오는 혈마가 그 독을 밟고 중독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혈마의 독공 역시 얕은 수준이 아니었다. 독장에 직접 당했다면 모를까, 그렇게 뿌리는 정도의 독은 혈 마에게 씨도 먹히지 않았다. 모든 수단이 차단되었다. 이제 곡주는 그 엄청난 독공 말고 는 믿을 것이 없었다. 그는 그 독공의 힘으로 버티며 계속 물 러서기만 했다. 혈마의 공격을 한번 막을 때마다 전신에 작은 상처가 하나씩 늘었다. 독곡과 사황성의 전투 부대는 초반에 대등한 전투를 벌였 다. 독곡의 전력에 혈마도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독곡 최고수인 곡주가 혈마 에게 연신 밀려나고 있었다. 곡주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독곡 무사들이 그 모습을 보고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곡주께서 밀린다!" "혈마, 저놈은 인간도 아니다. 어찌 곡주를 저리 일방적으 로......." 반면에 사황성 쪽은 사기가 크게 올랐다. "역시 성주님이시다!" "성주님의 무공은 광세무적이다!" 동등한 전력을 가진 부대가 정면으로 붙었을 때는 당연히 사기가 크게 높은 쪽이 일방적으로 이긴다. 사황성 무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밀어붙였다. "와아! 남만의 잡놈들을 모두 쳐 죽여라!" "우리에게는 성주님이 계시다!" 독곡 무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밀려났다. "곡주님! 어떻게 좀 해보십시오!" "역시 왕께서 계셨어야 했어! 왕만 여기 계셨다면 혈마 따 위 벌써 죽었다고!" 곡주는 당황했다. 그의 부하들이 일방적으로 밀려나고 있 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반드시 진다!' 그의 눈이 독해졌다. 곡주가 빠르게 물러섰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속 후퇴 였다. "혈마, 잠깐!" 혈마의 태도가 진중해졌다. '시간을 벌겠다? 아 독쟁이가 뭔가 큰 수를 쓰려나 보군. 기회를 주지 말까? 아니지. 내가 바로 혈마다. 어떤 수인지 구 경이나 해보자.' 혈마는 자신의 무공을 자신한다. 자신이 무림최고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구나 이런 강력한 상대는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는 곡주의 공격을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만약 혈마가 작정하고 밀어붙였다면 곡주는 이 한 수를 쓸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혈마는 오만했다. 곡주는 쾌재를 불렀다. '혈마 이 바보 자식. 그 여유가 너를 죽이는구나.' 곡주는 찰나의 여유를 얻자 독기운을 잔뜩 끌어올렸다. 지 금까지와는 다른 시커먼 기운이 그의 전신 모공에서 확 뿜어 져 나왔다. 검은 기운에 의해서 그의 전신이 가려질 정도였 다. 그 직후 검은 기운은 곡주의 전신을 휘감으며 거세게 회전 했다. 하나의 소용돌이가 그의 몸을 감쌌다. 거기서 퍼져 나 오는 독기운에 싸움을 잠시 멈춘 구경꾼들의 피부가 다 따끔 거릴 정도였다. 혈마도 긴장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좋지 않다.' 그는 곡주에게 기회를 준 것을 조금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곡주의 몸 주변은 강력한 독기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었다. 이 런 때는 어설픈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맞받아치는 것 이 더 낫다. 소용돌이치는 검은 독기가 곡주의 몸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 기운은 빠르게 그의 두 팔로 모여들었다. 곡주의 두 팔에 짙은 소용돌이가 압축되어 회전했다. 엄청난 고속 회전의 기 운에 곡주의 소맷자락이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곡주가 혈마를 보고 소리쳤다. "으하하하! 이게 바로 삼백 년 전 검마를 중독시킨 그 무공 이다! 죽어라! 혈마!" 검은 회오리가 곡주의 팔에서 떨어져 나와 혈마를 향해 날 아갔다. 회오리가 지나가는 경로 아래쪽 땅바닥이 요란하게 파였다. 혈마가 바짝 긴장했다. '회오리의 흐름을 저 독쟁이가 통제하고 있다. 피해봤자 회오리가 쫓아온다.' 혈마도 이미 공력을 잔뜩 끌어올린 상태다. 그의 막대한 내 공이 검으로 밀려들어 갔다. 수많은 붉은 검기가 화라락 일어 났다. 그것이 곧바로 하나로 합쳐지며 투명한 붉은 검으로 변 했다. 무사 하나가 놀라서 소리쳤다. "검강이다!" 독 회오리는 이미 혈마의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혈마는 침 착한 표정으로 검강을 휘둘러 독 회오리를 베었다. 회오리가 잠시 정지하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다음 순간 회오리 사이에 붉은 선이 만들어졌다. 그 직후에 회오리가 폭 발했다. 독기를 품은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멀지 않은 거리 에서 싸우던 무사 백여 명이 그 기운에 휘말렸다. "크아악!" "독이다!" 피해는 무사들로 끝나지 않았다. 곡주의 회심의 일격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이런 큰 수법은 보통 실패하면 그에 따른 대가가 있는 법이다. 그는 조금 전에 자기가 가진 독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공 격했다. 그것이 혈마에게 깨졌다. 기운을 조절하던 흐름이 깨 졌다. 당연히 그에 대응하는 충격을 받았다. 곡주가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서며 가슴을 잡았다. "크윽. 어떻게 그걸 막느냐? 그건 검마도 중독시킨 무공이 거늘... 쿨럭!" 그의 입에서 검은 피가 한 모금 튀어나왔다. 내상을 입었다 는 증거였다. 그가 쓴 무공은 삼백 년 전에 독성이 검마를 쫓아내는 데 사용한 마지막 초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설사 전해진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곡주 와 독성의 무공 수위가 같을 리가 없다. 곡주가 인면지주의 독단을 흡수해서 얻은 것은 독공의 비 약적인 상승이다. 그는 독공 자체는 독성과 비교해도 꿀릴 것 이 없는 경지에 올라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무공의 깨달음 까지 독성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곡주는 독단을 흡수한 덕에 이 무공을 쓸 수 있게 됐다. 하 지만 그의 무공에 대한 깨달음 자체가 독성에 비해 워낙 많이 떨어진다. 무공이 내공만 높다고 능사가 아니듯, 독공도 독기 만 강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그가 펼친 이 무공은 독성의 것보다 위력이 많이 떨어 졌다. 혈마가 검강 한 방으로 깨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혈마가 곡주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나는 혈마! 내가 바로 천하제일인다! 삼백 년 전의 검마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아!" 혈마의 왼손이 장력을 날리고 동시에 그의 검이 춤을 추었 다. 두 개의 공격이 동시에 곡주를 압박했다. 곡주는 내상을 입어 기혈의 흐름이 자유롭지 않다. 설사 몸 이 멀정해도 자기가 혈마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방금 알았다. '일단 목숨이 우선이다.' 곡주가 급히 몇 걸음 더 물러섰다. 그가 서 있던 자리로 혈 마의 검기가 요란하게 꽂혔다. 곡주는 혈마에게 독장을 한 방 날리며 소리쳤다. "혈마! 그럼 이거도 받아봐라!" 혈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격을 멈추었다. 조금 전의 독 장은 정말 대단한 위력이었다. 그런 것이 다시 오나 싶어 검 강까지 일으켰다. 곡주는 즉시 뒤로 휙 돌아섰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도망치 며 소리쳤다. "후퇴하라! 후퇴!" 이미 밀리던 남만 무사들이다. 남만 무사들이 그 명령만 기 다렸다는 듯이 썰물처럼 빠졌다. 전쟁에서 제일 쳐부수기 쉬운 적은 후퇴하는 부대다. 혈마 는 곡주가 갑자기 달아나자 어이가 없기는 했다. 하지만 이겼 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쳐 죽여라!" "와아아!" 사황성 무사들은 남만 무사들의 뒤를 쫓으며 사냥을 시작 했다. 남만 무사들이 뒤쪽부터 차곡차곡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장에 남만 무사들의 피가 흘러 강을 이루었다. 혈마가 그 뒤를 느긋이 쫓아가며 말했다. "이봐, 총관. 내 실력이 어떤가?" 총관이 즉시 대답했다. "역시 성주님의 무공은 천하에 적수가 없습니다. 검강을 그리 쉽게 사용하시니 누가 성주님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천 마의 천마도법이라고 하더라도 성주님의 검강을 막을 수는 없 을 겁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다. 천마의 명성이 검강 한 방에 무너질 만큼 어수룩하지는 않다. 하지만 총관도 전투가 승리하는 이 시점에서는 아부 한 방 정도는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나게 추 격하던 사황성 무사들 몇이 거꾸러지기 시작했다. 사파 중에서도 독에 능한 자가 소리쳤다. "독이다!"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듯이, 사황성 무사들 수십 명이 일제 히 자빠졌다. 추격은 중지되었다. 독술에 능한 사파 무사들이 즉시 선두 에 나서 상황을 확인했다. 혈마가 앞으로 뛰어가며 외쳤다. "무슨 일이냐?" 무사 하나가 즉시 보고했다. "놈들이 도망치면서 땅에 독을 깔았습니다. 독의 양이 많 고 넓어 이대로 추격하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혈마가 쓰지 못하는 무공이 없다는 소문이 괜히 난 것은 아 니다. 그가 정말로 모든 무공을 쓰는 건 아니지만 아는 무공 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독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혈마가 간단한 조사를 한 후에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주 독으로 땅을 덮었구나. 이 미친놈들. 독을 얼마나 가 져온 거야?" "엄청난 양의 독입니다." 혈마가 웃었다. "흐흐흐. 그래도 이만한 양을 여기에 버렸으면 이제 다 빈 털터리가 됐겠군."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살고 싶은 욕심에 가진 독을 다 뿌렸다고 봐 도 좋을 정도입니다. 당분간은 남만독곡의 무사는 무시해도 괜찮겠습니다." "그렇지 독공을 쓰는 자가 독이 없다면 그 무력은 무시해 도 좋겠지. 무리해서 추격하면 쓸데없이 전력만 줄어든다. 꽤 호되게 쳤으니 그만 돌아가자." "그들을 용서하시는 건지요?" "용서? 나의 사전에 용서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무림제패 가 먼저다." "그럼 저놈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놈들을 추격하느라 신경 쓰기에는 무림의 상황이 그 리 여유롭지 않다. 아무래도 주유성 그 개새끼가 자꾸 걸린다. 남만독곡은 무림제패 후에 치겠다. 그때 이번 일에 대한 책임 을 묻겠다. 몰살시켜 버리겠다." 남만 무사들은 하루를 도망쳤다. 그러고 나서야 전열을 정 비하고 간단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곡주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휴우. 혈마는 정말 무섭구나. 내가 인면지주의 독단을 흡 수했는데도 상대하기 어렵다니. 만약 예전의 나라면 몇 초식 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겠구나." 장로 중 하나가 한마디 했다. "사황성의 무사들도 무섭습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정예를 데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놈들을 상대하기 버거웠습니다. 사형만 좀 잘해줬어도......" "그래그래. 다 내가 혈마에게 져서야. 그래, 우리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총일만 군세 중에서 삼천을 잃었습니다." "사, 삼천? 삼천이나 죽었어?" "삼천 중에는 중상을 입고 낙오된 자들도 많이 섞여 있습 니다. 그들을 위해 무사들을 조금 남겼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재주껏 피하라고 했습니다." "허어, 그래도 삼천이나... 단 한 번의 전투로 이런 피해를 입다니......" 그들은 한숨 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혈마 의 추격이 두려워 돌아가서 부상자들을 구할 수도 없었다. 남 겨둔 무사들이 부상자들을 데리고 깊은 숲 속으로 숨기를 바 랄 수밖에 없었다. 다들 하루 만에 요기를 했다.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루를 굶은 몸은 그런 밥이나마 술술 받아들 였다. 그들이 밥을 먹고 있을 때, 무사 하나가 곡주에게 뛰어왔 다. "곡주님, 왕께서 보낸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곡주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허어. 왕께서 우리가 여기 있음을 이미 아신다고? 역시 왕 이시구나." "그게 아니라, 우리 곡으로 전서구를 보내셨습니다. 그걸 받은 곡에서 다시 여기로 보냈습니다." "그렇구나. 아무리 왕이시라고 해도 천하를 내려다보고 계 실 수는 없지. 그래, 무슨 내용이더냐?" "약속된 지원군을 보내달라는 내용입니다." "지원군이야 이미 여기 와 있거늘." "그리고 사황성이나 마교와의 전투를 최대한 피하고 무림 맹에 집결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곡주와 장로들의 얼굴이 허무한 표정으로 변했다. "허어. 왕께서는 전투가 벌어지면 어찌 될 줄 미리 아셨군. 소식이 이틀, 아니, 하루만 일찍 도착했어도 삼천의 무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지 않았을 텐데......" 주유성은 남만이 이렇게 많은 무사들을 보내줄 줄은 상상 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시비 일으키지 말고 무림 맹으로 곧장 와달라는 뜻이다. 곡주와 장로들은 엉뚱한 오해를 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었다. "우리가 어리석었다." |
첫댓글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
즐독입니다
즐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