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포공 김행은 이번에 감찰공 박여해 선조의 생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강릉김씨한림공파 대동보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인물이다.
그런데 그 이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이다.
장포공은 감찰공 선조의 장인이 되시는 운암공 김윤남의
5대손으로 탄생하였는데, 휴암공 백인걸과 청송공 성수침의
문하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청송공은 우계공 성혼의 선친이기도 한데,
포저공 조익이 찬한 장포공의 묘갈명에 의하면 장포공에 대한
청송공의 신임이 두터워 청송공이 우계공에게 집안에 관한
일을 장포공과 함께 의논하라고 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특히 우계공은 장포공과 함께 청송공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평생 형제같이 지냈다고 하니 가히 당시의 우정이 어느정도
였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장포공은 문과에 급제한 이후 여러 벼슬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필자가 관심이 가는 대목이 있으니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4년전인 1588년 충장공 신립이 장포공은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조정에 천거하였다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장포공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충장공이 장포공을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천거할 정도라 하니 그가 문신으로서 무관의 기품도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2024년 5월 13일(월)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