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알람은 어김없이 6시 30분에 울렸다.
늘 그렇듯 알람음은 한길쌤 호통소리.
3년 가까이 매일 아침 듣다보니 이제는 어느 타이밍에 어떤 말이 나올지 줄줄 외울 지경이다.
조금만 더 누웠다 일어나야지... 하고 눈감았다 뜨니 어느덧 9시.
도대체 국가직 시험 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잘 일어났지?...
그제서야 샤워를 하고 다소 늦은 하루를 시작한다.
국가직 시험이 끝난 지는 오늘로 2주가 되었지만 아직 내 생활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산해보니 국가직 이후 2주 동안 공부한 시간이 국가직 전 공부하던 평균 5일보다 적었다.
그렇게 조심하자고 다짐했던 슬럼프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난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책상에 앉아 습관처럼 노트북 화면을 켜고 공드림, 구꿈사, 민준호 사회 카페를 둘러본다.
뭐 재미난 이야기 없나...
그러다 질문 글을 보게 되면 내가 아는 내용은 댓글도 달아주고
재미난 글 보면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 라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든다.
어느 덧 낮 12시.
오전 공부를 끝낸 12시는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시간이다.
오늘은 왠지 매운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좀 풀릴까? 기분이 나아질까?
집과 떡볶이 가게는 왕복 30분 거리였지만 식욕이 귀차니즘을 이겼다.
이제는 나랑 한몸이 된 아디다스 추리닝을 입고 후드티를 걸치고 오랜만에 외출해본다.
생각보다 날씨가 더 더웠다. 집에만 있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올해도 벚꽃구경은 물 건너갔구나...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골목길에서 여대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와 마주쳤다.
덥수룩한 머리, 추리닝에 삼선 슬리퍼. 순간 내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어떡하지?
다른 길로 자연스럽게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어쩔 수 없다.
고개는 전방 30도 아래로 숙이며 괜스레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본다.
그리고 양손으로 폰을 만지며 친구랑 연락을 주고받는 척 한다.
하지만 사실 나에게 온 연락은 없다. 카톡도 지운 지 오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날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냥 내 자격지심이란 것도.
드디어 떡볶이 집이다.
떡볶이 하나 포장해주세요...
매운맛, 보통맛 어느 걸로 드릴까요?
매운맛으로 주세요...
가족과 가끔 연락 오는 친구 말고 낯선 사람과 이렇게나마 얘기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돌아오는 길 집 근처 김밥집에 들러 김밥 2줄을 포장했다. 김밥은 이집이 맛있다.
예전엔 1000원 하던 김밥이 1100원, 1300원, 어느새 1500원이다.
다른 건 조금씩 다 변했는데 나만 아직 그대로인거 같다.
드디어 집 도착.
포장해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TV를 튼다.
채널은 언제나 예능 프로그램. 이때가 아니면 웃을 일이 별로 없다.
떡볶이와 김밥은 생각했던 것만큼 맛있었고,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매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너무 매워서 눈물이 난 거였다.
다시 책상에 앉아 공단기에 접속해본다.
어디보자 하나..둘..셋.. 다행이다. 내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아직 1배수 안 쪽.
그렇지만 50명 남짓 뽑는 소수직렬이라 언제 어느 때 1배수 컷에서 밀려날지 모른다.
아마 5월이 되면 등수 밖으로 밀려날지도 모르지.
불안한 마음에 하루 종일 들락날락 들락날락... 공부는 뒷전.
올해는 민쌤이 말씀하신대로 국가직 점수에 연연하지 말고
점수입력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하면서도
결국 궁금함을 못 이기고 얼마 전에 입력하고 말았다.
나 정말 구제불능인가.
그래도 다행히 저녁에는 어느 정도 공부가 잘됐다.
이제 정말이지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해야하는데 생각대로 몸이 잘 안돼 걱정이다.
예전 이 카페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되어 읽은 민쌤 일기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시작하는 수험생들에게
왔던 길을 돌아 다시 일 년을 이 길을 가야하는 건
정말 말로 하기 힘들 만큼 절망적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다.
이미 경험해 본 일이기에 내년에는 정말이지 두 번 다시 이 길을 걷고 싶진 않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내년이 오기 전에 올해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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