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시골집 시암(샘)가의
구석진 곳 낡아 버려진 살강(찬장)밑에서
발견된 물건이었습니다.
조선말의 시대인지?
대한제국의 시대인지?
강점기의 시대인지?
대한민국의 시대인지?
이것 저것 합쳐진 것인지?
물어볼 어머님 마져 기억이 지워져 가신다.
건강하실 때 물어 본 기억으로는
증조할머니가 주신거라하셨다.
증조할머니는 1896년 생이시고
1984년 89세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1919년생이시고 2009년에
서류상 둘째부인과 함께 사시다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1916년 생으로 1986년에
곡간열쇠도 못 만져 보시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돌아 가셨으니...
1935년생이며 선친과 동갑이신
어머님이 바로 곡간열쇠를 관리하셨다.
자잘한 그릇들이 담겨진 냄비 같은 그릇은
긴 세월동안 방치된 탓으로
녹이 너무 심하여 엄두도 못 내었고
광주 집에서 마져도 몇 년을 방치하다
저번주 일요일 늦은 저녁에 물을 적셔가며
거친(#200) 사포를 이용하여
시퍼런 녹과 탄흔을 제거하니
겨우 본 모습이 나옵니다.
2차도 고운 사포를 사용하여
습식으로 갈아낼 예정이며
3차로 광내는 것은 고민 중입니다.
(광내면 거울도 되겠죠잉..ㅋ)
겁나 묵직허니 좋습니다.
조선의 코펠인지? 그렇다고
받침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니 제기는 아닌 듯 합니다만(?).
조금 남은 어릴때의 기억으로는
아버지께서 삼(대마)찌러 물가로 나가실때 챙기셨던거 같기도 하고
천렵, 수렵이나 버섯 따러 다니실때도
대동기(대동공업 발동기 경운기)에 실으셨던 거 같기도(?)
미군A형 텐트도 함께 챙겨 다니셨던거 같은데
그 텐트는 아무리 찾아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진에 없지만
두어소쿠리 정도의 엄청 큰 그릇들은 그대로 시골에 있습니다.
뚜껑인데 다용도 그릇으로도 사용이 가능하고
꽹과리로 사용해도 될 듯 합니다.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고 경쾌하기도 합니다.
국 냄비로 사용해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바닥엔 푸른녹을 벗겨내니
탄흔으로 보여지는
검게 그을린 자욱이 아주 심하였습니다.
바닥은 파란 녹도 없었습니다.
무얼로 사용되었는지?
밥냄비로 사용해도 될 듯 보입니다.
징 만큼 깊고 넓은 울림은 없지만
뚜껑보다 깊어 소리는 더 좋습니다.
내부의 그릇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했으며
사용 후 씻지 않은 채(추정)
보관된 그릇 두어개의 녹은 심하였습니다.
나열해봅니다.
현재의 소주잔 용량의
딱 두배인 크기의 잔 네개
잔 네개 중 두개는 바닥에 구멍이 뚫어져 있었습니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아버지께서 워낭을 만드실려다가...
몇 년전 명심형님께 사연을 말씀 드리고 수리를 요청하였습니다.
(명심형님 다시 한번 깊은 감사 올립니다...OTZ)
안이 시커멓게 보이는 술잔 하나는
어머님께서 염색약 그릇으로...ㅋ
지우느라 혼났습니다.(현재 80% 지워짐)
(또. 추정입니다)
맨 왼쪽 부터
반찬그릇 세개
현재 소주잔 두배인 술잔 네개
작은 밥그릇 한개
물잔인지? 막걸리 잔인지? 한개
마지막으로 국 그릇 같은 대접한개
(수저세트를 시골서 돌라와야 것,,,)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아버지께서도 실사용하셨던 기억이 가물 거리지만
증거는 불충분합니다.
진짜로 우공도 궁금할 따름입니다.
조합인지?
세트인지?
코펠인지?
성묘용 제기인지?
아님 아무것도 아닌지?
황동망치는 아무 생각 없이 남은 재료를 활용하여 맹근 것이었는디
놋그릇 품질 시험용으로 안성맞춤입니다.
닿는 면적을 최소화 하여 댕 하고 치면
깨진 그릇, 두께가 고르지 않는 그릇 등 구별이 가능하더군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소리가 경쾌하니 아주 좋습니다,,,^^
우공님이 고조할아버지 될때까지는
되물림 하겠습니다^^~
우공은 모르는 일입니다요,,,^^
소싯적
울동네 사용하던
일상 그릇(제기)과 비슷합니다..
명절때면
잿물묻힌 볏집으로
힘들여 저것을 닦으시던
엄니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공도 우리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아련합니다,
골동품 축하드립니다.
다행이 엿장수 눈에 안띄었나 봅니다.
나쁜 도적놈들이 사랑채를 싹 훌터 가 버렸습니다...
그 파란만장했던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수탈을 당하지 않은게 용합니다.
집성촌 덕장집안이었을려나요?
예전 들은 기억으로는, 밥 보시기라고 해서, 가마솥 밥해서 퍼담아 아랫목에 넣어 뒀던 그 뭐시깽이 같습니다. 이왕이면, 놋주걱도 찾아보세요. 그래야 풀셋.
부럽습니다.
할아버지가 행정공무원이었고
작은 할아버지가 교육공무원이었으니
친일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읍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아닌게 확실하니,,,ㅋ
@우공이산(이승헌) 음, 이런 고백 귀합니다.
당시 다들 식솔들 이끌고 살아가야 하는 방편으로서 어딘가에는 줄을 섰어야 겠지요.
(불쑥, 우공님 멋져 보입니다.)
@lagom 신디 울 할머니 맘 고생시키신 할아버지의 여색에
눈에 밖혀 기억이 생생합니다...
울 할아버지 안 좋아했습니다만...
돌아 가시고 나니 뭐 괜히 그랬나 싶어요...ㅋ
@우공이산(이승헌) 의외인 팩트가 가부장제(일부일처제 중심)라는 제도는, 서구를 통해, 일본 메이지 유신때 일본이 아시아에서 계몽제의 일환으로 적극으로 도입하여, 일제 강점기때, 호주제로 정착시킨 방편 중에 하나라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사실, 사랑과 결혼제도의 양립은 근대, 아마 우리 부모님세대에서 절정을 이룬 신화적 개념인 것 같아요.
다시말해, 우공님의 할아버님은 그시절 남성으로서의 흔한 보편률을 따르신 분이셨을 수도요. 당시에도 제도는 비록 일부일처였다지만, 현실속에서는 과도기였던 시기였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이제 우공님이 남성으로서 조부의 시대적 삶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드신다면, 어쩜 시나브로, 선대를 향한 우공님의 열린 다각적 사고로 가는 성숙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놔, 오늘 저 왜이리 우공님께 말랑말랑한거죠... ㅋㅋㅋ, 암튼 제 말이 별다른 곡해 없이 우공님께 전달되길 바랍니다. 히힛)
멋지네요. 누군가는 고물로 생각하고 버릴법한 것들이 우공님손에서 살아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보물 소장을 축하드립니다.
명심형님이 큰 도움을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조선 코펠 맞네 ㅎ
그 중 몇 개는 실사용중입니다...^^
생활공간 한켠에 조신스럽게 놔두면 ..^^
잘 살려서 그리하겠습니다...^^
아직도 보물을 보관하고 계시는 집이있군요.신기합니다.ㅎ
거의다 도둑 맞고 꽁꽁 숨겨진 몇 가지만 남아있습니다...
고색이 완연한 소중한 물건들입니다. 우리어머님 세대때 명절 제사면 흙하고 짚으로 수세미 삼아서 단디 닦앗던 기억이. 세제 하나 안쓰고 어찌그리 거울처럼 잘도 닦으셧는지.
살강은 우리조상들이 쓰시던 설거지하고 그릇에 물기를 빼려고 놓앗던 대나무같은 걸로 엮어 걸쳐놓은 시렁같은것이 아니엇나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