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언니는 나하고 4살 터울이다.
성격도 언니라서가 아니라 마냥 착하기만하다.
어릴때 많이 싸우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싸우면 내가 이겨먹었었다.
나한테 말빨로는 안됐다.
그럴때면 언니는 울어버렸었다.
엄마가 빗자루 들고 쫓아오시던 기억도 난다.
어느겨울날 내가 우리 텃밭등성이나 정 성배네 산등성이에 널어놓았던 김발을 머리에 이고
뒤뚱뒤뚱 집으로 걸어가는데 어떤 남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오더니 날보고 "옥희야"하는 거였다.
난 "저 옥희 아닌데요?" 알고보니 언니를 좋아하던 남학생이 내가 언니인줄 알고 그런거였다.
내가 봤을땐 우리 언니가 훨씬 더 예쁜데 자매다보니 아무래도 많이 닮았었나보다.
학교 소풍을 갈때면 엄마는 둘이 옷을 똑같이 사입히셨다.
그러면 사람들이 "저기 쌍고라니 간다"라고 했던것도 기억난다.
그러다 언니도 결혼해서 집을 떠나고
엄마와 둘이 남았다.
생각해보니 내나이 23살에 엄마 떠나시고 나혼자 시골집에 남겨놓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가슴이 미어터졌을것같다.
물론 우리 고모가 한달정도 같이 살아주셨다.(강혜정 할머니)
고모마져 안계셨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하다.
그래서 9남매가 막둥이라면 항상 애잔하고 안쓰러워한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니까 왜그리 주위에 남자가 많아지던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하자는 청혼도 많고 소개해준단 사람도 많고
면사무소 직원,의료보험 소장(이분은 동성동본이었는데 어떻게해서라도 결혼하고 싶다더니
집에가서 물어보니까 두 집안이 너무 가까운걸 알고 포기하겠다고했다).
귀숙이 땜에 알게된 칭구도 결혼하자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울 엄마가 외로운 막둥이 외롭지않게 하늘에서 내 주위에 많은 사람을 있게
해준거같다.
그러다 엄마가시고 이년후 5년 동안 같이 근무하시던 시아버지께서 당신 둘째 아들이랑 중매를 넣으셔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시어머니는 조실부모한 나를 못마땅해하셨다. 시아버지 성화에 못이겨 결혼을 시키신 눈치였다.
일년뒤 첫 딸을 낳았다.
딸을 낳은것부터 못마땅하신데다가 시어머니 당신께서 아들 둘을 슬하에 두셨는데 둘다 출산을
양수가 터진 보름쯤뒤에 하시느라 출산의 고통이 너무 심하셨던 모양이었다.
요즘세상이 아니라 그때는 별수없이 양수가 터졌는데도 산기가 있을때까지 기다리셨던것이다.
그때의 고통이 생각 나신다며 출산 뒷바라지를 못해주신다고 하셨다.
병원에 오실때도 빈손으로 오셨었다.
여자에게있어 출산이란 엄청난 인생의 큰변화의 한 정점이다.
나만 알던 내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또다른 삶을 책임져야하고 내 손에 그아이의 일생이 좌지우지 된다는걸 임신했을땐 모르다가 막상 아기가 내 품에 있게되니 절감하는거다.
그엄청난 순간에 친정엄마가 없었던 나로선 남편도 그 누구도 그 중압감을 이해해주겠는가?
그런데 시어머니까지 뒷바라지를 못해주신다니......
하는수없이 부산에 살고 있던 내 바로위에 언니가 산후수발을 들어주러 내려왔었다.
막상 그때는 서운했어도 사실 언니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시어머니보다는 백배천배는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이년뒤 또 둘째 딸을 낳았다.
또 시어머니는 병원 오실때 빈손으로 오셨다.
옆에 다른 산모들은 친정엄마,시엄마 번갈아서 밥통에 밥해오고 찜통에 소고기 미역국가져오고
병원 밥만으론 안된다고 아기 젖때문에도 잘먹어야된다고 시도때도 없이 먹고있었다.
첫째딸때문에 남편은 저녁에 집에가서 잠을 자야해서 밤엔 나만있어야했다.
한밤중에 배가고파 일어났는데 먹을게 아무것도 없었다.
미쳐 이런생각못하고 돈도 하나도 가지고 있지않았다.
옆에 다른 산모들 옆에는 밥통,찜통가득하고 보호자가 다들 하나씩 있는데 나만 혼자였다.
그때의 설움은 지금도 잊을수없다.
퇴원하는날 둘째 언니가 또 내려왔다.
병원에서 같이 퇴원하고 집에 왔는데 온기가 없는 방바닥을 보고 언니가 그랬다.
"할매가 너무하다고"
그때 우리언니도 갑자기 늦둥이가 생기는 바람에 임신중이었다.
임신초기라 입덧까지 하고 있었던 때였는데 나땜에 두말도 없이 내려왔다.
두말도없이... 싫은소리 한마디 없이...
올가을엔 그런 내 언니 첫딸이 결혼을 한단다.
다른 형제들 한텐 미안하지만 그조카 결혼 축의금은 특별히 많이 아주많이 할거다.
그리고 또한 그조카도 내가 9남매이니 조카가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조카가 얼마나
귀여운 존재인가를 알게해준 그조카 결혼이라 무척 기대된다.
다른 조카들은 나랑 같이 크거나 나보다 훨씬 나이많은 조카들인데 그조카부터는 내가 어느정도
나이를 먹어서 정말 예뻐했던 조카이다.
세월이 흘러 이젠 시어머니 인정도 받고 사랑도 받고있다.
반찬이며 국까지 안떨어지게 해서 보내주신다.
이나이에 시어머니한테 그런 사랑받는 며느리도 몇명없을거다.
며칠전엔 내 똥차가 맘에 안드신다고 쪼그만 새차 하나 사라고 돈까지주셨다.
하지만 난 그때의 기억을 잊을수가없다.
우리언니의 고마움을 잊을수가 없다.
난 그때는 몰랐는데 엄마없는 빈집에 나혼자두고 발걸음이 안떨어졌을 우리언니를.....
나에게 하염없는 사랑을 주는 우리언니를.....
며칠전에 모처럼 시간이 난다고 마침 내 휴무랑 날짜가 맞아서 언니가 내려왔다.
둘이서 매실 축제 갈려고 진상으로 갔다.
언니가 배고프대서 역전에 고깃집서 고기먹다가 아무래도 축제 첫날이라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질않아서 "언니 니 칭구들한테 연락좀해라" 했더니 금방 칭구하나가 달려왔다.
아니나다를까 밥먹고 나섰는데 몇발작 안가서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필녀 다니던 교회서부터 입이 딱 벌어졌다.
교회서 댐밑에 마을 감공장까지 가지도 못하고 차를 돌렸다.
차를 돌리니까 지나가시던 어떤 엄마가 "생각잘했네~ 볼것도 없는디 머허는짓이당가?"
중마동 언니칭구이자 옥곡금촌 동네 오빠한테 연락하니 언능와서 차라도 마시고 가라해서
중마동을 갔는데 거긴 얼마나 따뜻한지 벚꽃이 많이 피었다.
차를 마시고 여수가서 오동도 배를 타고 한바퀴돌고 (오동도서 배는 첨 타봤다).
광양서 칭구들이 기다린대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차도 마시고
우리언니가 보고싶어하던 어떤 남정네도 만나고 집으로왔다.
우리 언니가 행동을 잘했기도 하겠지만 전화 한통하니까 금방 달려오는 언니 칭구들을
보니 정말 보기 좋았다. 부럽기도했다.
위에 말한 칭구들은 모두 중학교때 남자 칭구들인데 정말 고마웠다.
어딘가에 가서 전화한통에 만날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도 돼야겠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위로가되고 행복이될테니까....
내가 사랑하는 우리 언니,평생을 두고 감사하며 살고싶은 우리언니,또다른 나 우리 언니
남편한테도 두 딸한테도 모두 말했다.
이모한테 잘해야한다고.....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되고 안식이되고 편안한 칭구이고싶다.
치매걸린 칭구가 자기 치매를 숨기지않고 칭구들에게 말해서 그 칭구들이 산에가거나
여행가거나 꼭 치매걸린 칭구를 가운데에 에워싸고 다녔단다,
그 결과 그 치매걸린 친구가 엄청난 호전을 보였단다.
내가 이런 글을 올린적이 있을거다.
나이먹으면 친구가 제일이라던데 우리 친구들은 어떤 생각인지.....
이 글을 쓰면서 우리 언니 우리 엄마 생각하면서 눈물이 주르륵... 손끝이 파르르...
어떤 스님이 그러신걸봤다. 엄마잃은 어떤 여인이 스님에게 "스님 엄마를 잃고 몹시 슬픈데
우리 엄마가 천국에 가셨을까요? 천국이 있습니까?"
스님이 "엄마가 천국에 있다고 믿고 싶소? 지옥에 있다고 믿고싶소?"
"천국에 있다고 믿으세요~ 그러면서 이젠 엄마를 보내세요. 따라해보세요
엄마 안녕~~ 잘가~~"
나도 이젠 엄마를 보내야겠다. 25년 동안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던 엄마를
엄마 안녕~~~거기서 행복해~~~나도 행복할게~~~사랑해~~~잘가~~~
엄마떠나시고 고모도 집으로 가시고 옥곡으로 이사할때 리어커에 나의 작은 짊들을
옮겨서 이사해주던 그 멀매가 생각난다.
아마 내가 이말을 아직까지 못했을거다. 기억이없다.
그때 고마웠다고 그리고 미안했다고~~~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말하고싶다.
우리언니가 있어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나의 두 딸도 우리 자매처럼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
이 세상 모든 딸과 엄마,자매들 행복하길.....
여수가서 최정원 콘서트보고 와서 마무리 하려니 이시간이됐다.
이젠 자야겠다.
우리 엄마 만나는 꿈꾸면 뒷날 좋은일 생기던데 엄마 만나러 가야지...
첫댓글 많이 행복하구나. 아주 좋아보인다. 삶 속에서 달콤한 향기가 난다.
오늘 드라마 한편 본듯하다. 말년에 웃을 수 있는 삶이 최고의 행복 아닐까 생각한다. 고런 삶을 지향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오늘도...
구구절절 애절하고 사랑이 넘치고 감사함이 넘치네여~ 그런 맘을 먹을 수 있다는건 친구의 맘이 따뜻하다는 증거여 친구 사랑한다 근디 넌 친구가 전화하면 달려가기는 새로간에 왜라고 문자를 해~ 일하는 중이 였으면 문자 할 시간에는 전화를 눌러야제 자꾸 그러면 삐진다ㅋㅋ
주글래??문자는 잠깐 할수 있어도 통화는 못한다는거 여태 겪어보고도 모리냐??중찬아 말좀 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