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성공을 거둔 불후의 명작을 초과하는 원작의 품위
해피엔딩이 불가능한 재난 이후에서 시작하는 회복
〈미래 소년 코난〉은 패전 이후 침체한 일본 국내 정세를 타계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파도치는 바닷가를 힘차게 달려나가는 코난과 라나의 이미지는 〈미래 소년 코난〉의 상징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저자 알렉산더 케이 역시, 대공황 시기의 미국 청년 세대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소설을 집필했다. 두 사람이 독자를 위로하기 위해 택한 전략은 달랐다. 〈미래 소년 코난〉은 시리즈 전체를 원작의 톤보다 밝고 명랑한 쪽으로 조율했을 뿐만아니라, 심지어 결말은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각색했다. 주요 등장인물의 결혼식이라는 희극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 공식을 따른 것이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은 열린 결말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분위기가 한층 더 어둡고 비관적이다.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유복한 유년기를 보낸 알렉산더 케이는 KKK 단에 의해 아버지가 화형당하고, 어머니를 의문의 사고로 잃는 충격적인 청소년기를 경험하게 된다. 형제들과 함께 재산만을 탐낸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게 된 케이는 14개의 학교를 옮겨 다니며 보호자가 없는 가난한 고아로서 세상의 냉혹함에 노출된다. 소설 속 코난이 대 해일로 부모님과 고향을 잃게 된 시기와, 케이가 부모님을 잃은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미래 소년 코난〉의 라나가 기원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디즈니 초 중기 여주인공들처럼 결혼이나 애정 관계를 지향하는 대신 궁극적으로는 세계 속의 자립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미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의 상을 전환한 업적을 선취했다. 하지만 코난 애니메이션의 대대적인 성공에 가려진 원작 소설 속 주체적인 여성 인물 라나와 만스키는 조금 더 진보적이었다. 〈미래 소년 코난〉에서 다이스 선장과 결혼식을 올리는 만스키, 그녀는 원작에서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녀는 가식을 넘어선 세대에게만 희망이 있다는 알렉산더 케이의 사상을 대변하는 저자의 페르소나와 같은 존재였다. 인더스트리아의 주요 사령관 격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하이하버에서 세계를 재건할 가능성을 발견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운명을 걸었다는 점 역시 알렉산더 케이의 입장과 일치한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에서 라나는 자신보다 위압적인 남성 인물 올로와 싸워 도끼를 되찾아 온다. 그런 라나는 〈미래 소년 코난〉에서 인질로 잡혀 구조를 기다리는 클리셰적인 여성 주인공의 연약한 면모도 보여준다. 원작의 라나는, 〈미래 소년 코난〉의 라나처럼 적들에게 잡혀 구원받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원작에서 적국 인더스트리아의 인질이 된 것은 라나가 아닌 코난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왜 두 주인공의 포지션을 바꾸고, 코난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초능력을 부여하며 라나를 조력자로 물러나게 했을까? 〈미래 소년 코난〉을 사랑해온 많은 분들이, 원작 소설의 한국 출간을 오랫동안 기다리며 염원해왔다. 독자분들이 이번에 출간되는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의 일독으로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경이감을 경험하기를 권한다.
두 소년 소녀 주인공이 세계 멸망까지 내달리는 폭발적인 서사
〈너의 이름은〉,〈신세기에반게리온〉에 영향을 준 세카이계 원형
이 책은 지구의 자전축을 뒤흔들만큼 강력한 첨단 무기를 사용하며 세계 멸망으로 치닫는 시대를 그렸다. 세대 갈등, 기후 재난, 폐허가 된 세계 재건 등을 담은 이 소설 속에는 두 세대가 강렬하게 대비된다. 대륙 대부분이 수몰되어, 고지대로 대피한 ‘하이하버’의 청년 세대. 동력이 잠겨 무용지물의 첨단 기계들이 가득 찬 수중 도시를 점거한 ‘인더스트리아’의 기성세대. 이전 세대의 무한한 욕망과 욕심에 희생된 ‘하이하버’의 청년 세대가 ‘인더스트리아’의 기성 세대를 불신하고 증오하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들에게 망가진 세상을 물려주었다는 부채 감을 가지면서도 그 가책을 덜기 위해 청년 세대가 가진 미래와 힘을 두려워하며 기득권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이 가진 주요 본능이 공격성이며, 혐오 역시 비상 체제에 자연스럽게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임을 드러낸다. 동시에 독자는 인간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서로를 증오하기 쉬운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과정을 통한 연대의 진리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두 소년 소녀의 애정 관계가 세계의 멸망 혹은 구원과 직결되는 세카이계 상상력의 시원이 된 소설이기도 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별의 목소리〉, 〈너의 이름은〉에서 핵심 코드인 원거리 연애 모티프는 이 소설의 코난과 라나의 관계성에 영향을 받았다. 안노 히데아키도 〈신세기 에반게리온〉 창작 당시 만스키라는 강렬한 서브 주인공에 대한 오마주로서 주요 인물들에게 그녀의 서사와 성격 등을 나눠 심어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주인공 라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미래 소년 코난〉을 애니메이션화 당시 가장 공들여 각색한 인물이다. 이후 라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속 나우시카, 시타, 산, 소피, 치히로 등의 인물로 변주되며 우리가 사랑하는 지브리 주인공들의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보호 본능을 일으키지만 험악한 세계와 맞서 싸우는 강인한 존재들이다. 이 소설 속 코난과 라나가 증오하던 적대 세력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재난을 헤쳐가는 과정은 혐오가 일상화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 독자들의 생존과 몹시 닮아있다.
“나는 알렉산더 케이의 책과 함께 자랐고 평생 동안 그것을 사랑했다.”
- 〈굿리즈〉 독자 서평
저자 알렉산더 케이는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와 미국 대학교 영문과 교재에 함께 소설을 수록한 작가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루이스 캐럴 어워드" 수상작. 알렉산더 케이의 북미 독자들은 말한다. 그의 책과 함께 자랐으며 평생 그것을 사랑했다고. 멸망한 세계의 무인도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잡고, 보트를 만들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이 놀라운 모험담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 모험담은, 가슴 한편에 꿈을 봉인해 두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성인 독자들에게도, 설레임과 모험심을 되찾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