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초콜릿공장을 조조상영으로 보고 돌아오니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다. 공부할 책은 모두 학교 사물함에 집어넣어뒀고(무거워서 못 들고 다닌다), 따라서 일요일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시간이 남아돌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잠이나 자려 하니, 비몽사몽간에 공자가 꿈에 나타나서 갈(喝)했다.
"우(宇)야! 나는 일찌기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밤 새워 자지 않으며 진정으로 생각해 봤지만 별다른 성과를 못 얻었느니라! 그러하니 생각만 하는 것은 실제로 글을 읽고 배우느니만 못할진저, 어찌 이렇게 행동을 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삼라만상을 계획으로만 굴리려 한단 말이냐!"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user.chollian.net%2F%7Ekimgme1%2Fperson%2Fimages%2Fconfucius01.gif)
벼락맞은 듯이 일어나 채지충 만해본을 뒤적거리니 논어 위령공편 15-30에 나와 있는 내용이 그대로였다. 그야말로 이 무슨 계시같은 일인지, 어쨌든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학교에 갈까 하다가 그냥 을지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종로 2가에서 내려, 대충 근처에서 요기를 했다. (지도를 보면 어딘지 대충 감이 올 터이다. 정답은 삼각동에 하동관임.) 왜 종로로 갔느냐 하면, 전부터 한번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요즘 서울에 대한 글도 써 보려고 하니... 도심의 옛 흔적을 찾아서 나선 것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1.egloos.com%2Fpds%2F1%2F200509%2F25%2F32%2Fb0007832_20122625.jpg)
청계천에 물이 흘러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게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되어 있었다. 예로부터 종로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흩어진다고 운종가(雲從街)라고 했는데 - 청계천 따라 구름이 일어나서 그렇다는 김용옥의 해석은 틀린 것이다. 운현의 경우에는 그 해석이 맞지만 - 이제는 청계천에 새로이 그 이름을 갖다 붙여야 하지 싶다. 청계천 다리를 건너 종로로, 탑골공원으로 건너간다. 지나가면서 종로구의 심볼마크가 좀 귀엽다고 생각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jongno.go.kr%2Fportal%2Fimgs%2Fintro%2Fci_img01.gif)
인사동 놀이마당에서는 여자가 창을 하고 사물이 그 뒤를 받쳐주며 농악패가 놀고 있었다. 같이 들썩들썩하다가 발걸음을 인사동길 쪽이 아닌 낙원상가쪽으로 돌렸다. 전에 가 보지 않은 방향이다. 터널같은 낙원상가를 빠져나오니 뭔가 분위기에 가을 냄새가 완연하다. 안내도를 보니 교동초등학교, 운현궁, 천도교 본당 등이 자리를 하고 있다. 교동초등학교는 뭔가 해서 봤더니 조선시대 말에 세워진 최초의 초등학교라는 비석이 있다. 아, 그런 것이군. 그 옆에 고대광실 기와집 담이 있어, 그것이 바로 운현궁이다.
들어가려니 반가운 팻말이 있다. "지금 이후로 입장하시는 분은 무료로 관람 가능합니다." 주말에 무료개방인가 하여 갸웃하니 자원봉사 아주머니도 덧붙인다. "들어가요. 오늘은 프리(free)야." (왜 영어인가 했더니 나중에 보니까 외국인이 들어올 때 그녀가 "I'm volenteer guide for foreigners in this palace."라고 하였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jongno.go.kr%2Ftour%2Fimgs%2Fplace%2Fp_palace%2F6mansion%2F6mansion_02.jpg)
사랑채격인 노안당의 특이한 집모양새가 눈길을 끈다. 덕수궁을 제외하고 운현궁이나 기타 큰 종택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경상도쪽과는 달리 집이 ㄱ자로 꺾여 있거나 ㅁ자로 붙어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어 하늘이 높고 깊으니 단청도 없는 밋밋한 추녀가 그렇게 하늘에 녹아들 수가 없다.
날아갈 듯한 자태에 넋을 잃고 있는데 뒤에서 나 학자요 하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한 모양새의 할아버지 한 분이 개량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사람을 부른다. 목에 걸고 있는 신분증에는 Hi Seoul 가이드라고 적혀 있었다. 함자를 보니 하정효라는 분이다. 집에 와서 뭐하는 분이신가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오 마이 갓, 이분 엄상익 변호사 자서전에 나오던 바로 그 양반 아닌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도, 공직을 은퇴하고서도 아직도 주말마다 소일거리로 나와서 설명을 하신다니.... 대단한 양반이다. 그는 운현궁 공식 사이트에도 안 나올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지식을 줄줄 외고 있어 관람에 도움이 많이 됐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tpi.re.kr%2Fdatabase%2Fbokji%2F157%2Fimages%2Fsub01_4_17.gif)
운현궁에서 열린 고종 가례 재현. 둘째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에 팔자 풀리긴 했지만 고종이 운현궁에 문안을 드리러 오면 정작 흥선대원군 부처는 예법에 따라 옆방으로 쫓겨나야 했다. 임금이 자식이긴 해도 어쨌든 임금이고 자신은 신하였으니까. 그래서 맨날 옮겨다니느니 에라 한채 더 짓자 해서 지은 게 이로당(二老堂)이라 했다. 늙은이 둘(대원군과 부대부인)이 기거한다고 해서다.
할아버지의 강의 중 인상깊은 것은 운현궁과 서울을 둘러싼 풍수에 관한 이야기다. 첫째로는 운현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구름이 가끔 얹히는 구릉지대라고 해서 나온 말이라는 이야기. 지명에서 보듯 북악의 지세가 경복궁을 타고 내려 이 곳까지 뻗는데, 이것이 옛날에 휘문고보가 들어서면서 지맥이 끊기고 또 그 자리에 현대그룹 사옥이 들어오면서 지하 5층까지 파내려가는 바람에 수맥까지 끊겨 버렸다 했다. 그래서 이로당 뒷뜰의 질 좋은 우물이 말라 버렸다 한다.
원래 운현궁은 1만 평이 넘는 방대한 부지였다고 했고, 그 범위는 옆의 교동초등학교와 삼환기업, 창덕궁 앞 일본문화원까지 전부 아우르는 규모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명당은 지금의 운현궁이 아닌, 담 옆의 개인 소유 저택이라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누구누구나 박찬주 여사 등을 배출한 집안이라는데, 명당이라고 해서 죽어도 안 팔겠다고 한단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와 그렇게 암투를 벌였던 이유가, 운현궁의 동쪽 축선이 정남인데 비해 지맥은 약간 동남으로 삐딱하게 가는데 이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기어오르는 격이라 한다. 대원군의 경우는 남연군 묘도 그렇고 전부 자기가 직접 지관이 되어 터를 보았다. 따라서 지관이 의뢰자에게 터를 보아주기 전에 <이 땅은 이 사람에게 어울리는 곳인가의 여부>가 자동적으로 생략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겠느냐, 라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어느덧 반 시간이 넘어가는 강의는 운현궁의 풍수에서 서울의 풍수와 음양학의 이치로 스케일을 넓힌다. 우주의 음양오행은 각각 음과 양으로 나뉘고 또 화, 수, 목, 금, 토라는 5대 요소가 된다 한다. 간단히 필설하면 이런 것이다.
우선 음과 양 중에서 센 것은 음이라 한다. 양은 불이고, 남자이고, 하늘에 있는 해이다. 음은 물이고 여자이고 바다이다. 물은 불을 이기므로 당연히 음은 양을 덮어버리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청실홍실이라는 표현에서, 흔히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홍실이 남자고 청실이 여자가 된다 한다. 태극에서도 빨강이 위에 있는 이치라 했다. 이게 현대에 잘못 알려진 것은 화장실에 픽토그램을 처음 만들 때 언놈이 색깔을 거꾸로 칠해 놔서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
그리고 오행의 이치는, 다음과 같이 서로 대응되는 관계라고 한다.
인 - 의 - 예 - 지 - 신
동 - 서 - 남 - 북 - 중
청 - 백 - 적 - 흑 - 황
봄 가을 여름 겨울 늦여름
운동회 때 홍백전을 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가 청백전을 하는 이유는 바로 동쪽이 청이고 서쪽이 백이라서 서로 갈려서 시합하는 방위가 저 모양이라서 그렇다며 운을 뗀 후, 할아버지는 음양오행과 서울의 사대문과 풍수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대문 - 동쪽은 <인>에 대응된다. 그런데 청계천이 흘러나가는 방향이 동쪽이므로 당연히 서울은 동쪽이 우묵하게 낮다. 그래서 이 낮음을 보충하기 위한 방편이 <인>을 <높인다(흥하게 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흥인지문>이라 한 것이다. 현판 또한 정방형으로 써서 <토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갈짓자(之)는 뫼산자(山)의 형상이기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토대를 높인 것이라나?
서대문 - 서쪽은 <의>에 해당되므로 이를 돈독히 한다는 뜻에서 <돈의문>인데, 원래 서대문은 독립문 넘어가는 쪽의 언덕배기에 있었다 한다. 이게 음양의 이치에 안 맞다고 해서 태종 때 옮겼다가 세종 때에야 비로소 강북삼성병원 앞의 서대문 자리로 옮겼다는데, 여기에서 <새문안>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확실히 버스 타고 지나가다 보면 정동 앞에 새문안교회라고 오래된 게 하나 있었다.)
남대문 - 역시 오행설에 따라 <예>를 숭상한다 하여 <숭례문>이다. 현판을 좁다랗고 높게 쓴 이유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좀 잠재워보기 위해서라고.... 옆쪽으로 누워 쓰면 불기운이 넘실넘실 도성 안으로 넘어온대나. 현판은 양녕대군의 글씨라고 한다. (그런데 저렇게 세로로 쓰고 경복궁 앞에는 물의 동물인 해태까지 끌어다 놔도 조선시대 궁궐은 참 화재가 많았다. 심지어 운현궁의 고종황제 생가 건물도 1960년대에 홀라당 불타 버렸댄다.)
북문 - 흔히 북문으로 알려져 있는 <숙정문>은 음양오행과는 관련없는 이름이라 한다. 말인즉슨, 개국 초창기에 북악의 기가 워낙에 세어 삼선교(돈암동)쪽의 여인네들이 바람이 그렇게 많이 났다는데, 그래서 문 이름을 숙정(肅靖)이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뭄이 들면 양기가 너무 세다 하여 숙정문을 열어 음기를 세게 하고 양의 방향인 남대문을 닫아걸었다고 한다.
이후에 북한산성을 개축하면서 서울의 문루가 음양오행에 안 맞다 하여, 다른 쪽 문에 겸사겸사 붙인 이름이 바로 <홍지문>이라고 한다. <지>를 널리 편다는 뜻.
"그럼 <신>은 어딥니까" 하고 물었더니 할아버지의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보신각>, 못 들어봤어요?" 듣자하니 서울 한복판에 있는 종루이기 때문에 <신>을 보완한다고 하는 이름의 보신각이라고 한다.
- 나머지는 운현궁 공식 홈페이지나 아니면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 얘기니까 이쯤에서 줄여 본다.
어느덧 경내를 다 돌아 "가르침 고맙습니다"하고 운현궁을 나섰다.
원래는 인사동길로 되짚어 내려와 종로에서 불광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었는데, 운현궁에서 이것저것 얻은 것도 많고 시간을 많이 보낸 터라 그냥 인근의 헌법재판소 건물과 그 뒤뜰의 백송나무를 한번 살펴보는 걸로 만족했다. 헌법재판소를 살펴본 이유는... 뭐 다들 알다시피 내가 법돌이기도 하고, 작년에 그 생난리를 쳤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듣던 대로 무궁화는 아홉 개였고, 생각보다 건물 크기가 꽤 웅장했다.
터덜터덜 내려와 던킨에서 잠깐 다리를 쉬고, 안국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탔다. 거리쪽 창가 좌석에 홀로 앉아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책을 읽던 트렌치코트의 언니가 참 매력적이었는데... (......)
깊푸른 색의 가을 하늘이 계절이 깊어감을 알리는 저녁이었다.
첫댓글 태극에서 빨강이 위에 있다는 말씀은 바로 앞의 설명과 들어맞지 않는군요. 참고로 역학계에서는 현재의 태극기가 옆으로 뒤집어졌다고 난리인데 그 문제로 하도 시끄러우니까 아예 정부에서는 태극기에 역학적인 의미는 묻지 않는다고 못박았지요.
빨강=불=해=남자 라던데요. 저도 들은 풍월이니 여기다가 지청구를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그리고 음이 양을 이긴다... 이건 근원적인 면에서는 맞지만 현실적인 면에서는 반대라고 들어 알고있습니다. 송대의 철학자 소강절의 말을 빌리면 지금 세상에 뜨거운 물, 즉 온천은 있지만 차가운 불이 없는 것은 그러한 이유라고 합니다.
그나마 예외적인게 반딧불과 일부 미생물들이 내는 빛입니다. 생물이 내는 빛은 과학계에서는 냉광(冷光)이라고 통칭합니다.
아... 제가 말한 것은 불 火입니다만. ;;;
불 火면 도깨비불뿐입니다. 그나마 이놈이 불 중에서는 '차가운' 축입니다.
또한 한동석 선생도 저서에서 말하길, 고대에는 사람이 수백 살까지 산 기록이 왕왕 있음에도 지금은 볼 수 없는 까닭은, 사람이 3陽2陰을 가지는데 여기서 양, 곧 영혼이 3이며 음, 곧 육체가 2로 육체가 영혼의 힘을 이기지 못하여 본래는 수백 세까지 살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100세 전후로 수명이 다한다고 했지요.
왜그러셨어요~~~ 안그러셨잖아요~~~ㅋㅋㅋ (박성호 버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