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높은 천장은 빌라 4층에 자리 잡은 이 집을 유럽의 어느 농가처럼 푸근하게 바꾸어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벽돌로 마감한 거실 벽 가운데 빨갛게 달구어진 페치카는 추위에 곱은 손을 녹이고 움츠러든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어 어느덧 겨울을 잊게 한다.
집안에 들어서니 나지막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거실에는 벽난로 스토브가 빨간 불빛을 내비친다. 높은 천장 아래로부터 이어지는 베이지 톤의 벽돌 벽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서형 씨 댁은 외국 영화 속 크리스마스 풍경에 단골로 등장하는 집을 연상시킨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따뜻한 수프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흔들의자에 블랭킷을 두르고 앉은 할머니가 뜨개질을 하며 미소 짓는 그런 집, 고양이 한 마리가 난롯가에 웅크려 졸고 있을 법한 그런 집 말이다. “원래는 집보다도 주변의 자연이 너무 좋아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빌라 입구의 가로수 길이며 언덕이 너무 운치 있고 예뻤지요. 빌라의 맨 위층인 덕분에 평소 동경하던 유럽 농가풍의 스타일로 천장을 한번 높여보자 싶었습니다. 생각보다 결과가 잘 나왔어요.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간 오후쯤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창밖 풍경을 내다보고 있으면 참 행복해집니다.”
1 거울에 비친 거실 풍경. 발코니를 확장한 공간에 티 테이블을 놓아두었다. 2 로맨틱한 분위기로 연출한 침실. 침대 옆으로 보이는 스탠드는 영국산 앤티크. 3 식탁 옆에 설치한 낭만적인 분위기의 개수대. 자칫 밋밋하게 버려질 공간을 잘 활용했다. 벽에 크고 작은 액자와 거울을 걸고 노출된 파이프를 따라 넝쿨 식물을 늘어뜨리니 한층 사랑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그에게 행복한 풍경을 선사하는 이 집은 창동 초안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계절 따라 변해가는 수목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새소리도 드물지 않게 들리고, 여러 가지 이름 모를 벌레가 집안으로 날아든다. 주변의 자연이 좋아 이사를 한 것에 더해 푸근한 유럽의 농가처럼 집을 개조했으니 구색이 잘 맞는 셈이다. 인테리어를 담당한 ‘디자인 하늘’의 유정현 씨는 그의 시누이. 가족이었기에 여느 디자이너 이상으로 우서형 씨의 취향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집주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도 알아서 배려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우선 이 집은 서까래 천장으로 층고를 높이면서 그에 맞는 공간 스케일을 갖추기 위해 전면과 후면의 베란다를 확장해 거실을 넓혔다. 베란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적절한 틈새에 수납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그곳에 보통 베란다에 쌓아두었을 법한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정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거실과 다이닝 룸의 경계 벽을 부드러운 베이지 톤의 파벽돌로 전면 시공했다. 이는 집안 전체의 색감을 은은하게 만들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훌륭하게 살려준다. 공간 구성도 부분적으로 변경했는데 현관은 60평형대인 집에 비해 너무 좁고 답답해 보여 넓게 개조했다. 현관 옆방의 불필요한 붙박이장을 줄여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후면 발코니를 확장하며 넓어진 공간에는 작지만 로맨틱한 개수대를 만들었다. 식사 전에 간단하게 손을 씻기에도 좋아 데커레이션 역할만큼이나 실용적인 기능도 한다. 넓어진 거실에는 앤티크 오르간, 장식장 등 우서형 씨가 평소에 모아왔던 가구와 소품을 들여놓았다. 각각의 무게감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른 가구를 배열하는 것도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한 일이라 유정현 실장이 함께 위치를 고민해가며 가구마다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었다.
원래 2.4m였던 층고를 3.8m까지 높였다. 빌라의 꼭대기 층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건축 법규상 가능한 층고 높이의 최대치는 4m. 벽에 걸린 그림은 우서형 씨의 학교 선배이자 이웃인 임정숙 씨의 작품으로 선물 받은 것이다.
“파벽돌로 시공한 벽을 제외하고는 핸디코트로 마감했어요. 석회와 물을 주원료로 한 자연 성분 마감재라서 인체에 유해한 환경 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습도도 어느 정도 자연적으로 조절해주고요. 유정현 실장이 알아서 좋은 것을 선별해주니 그저 고마웠죠.” 핸디코트는 앤티크풍의 가구와 원목 마루에 잘 어울리는 소재이기도 해 이 집에 더욱 알맞은 선택이었다.
이 집에서 우서형 씨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을 꼽는다면 단연 주방이다. 나무 프레임으로 입구를 만든 것도 멋스럽지만,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선반. 주방 전면에 길게 두 줄로 나무 선반을 달고 여기에 그동안 모아온 그릇 컬렉션을 진열해놓았다. 여행길에 사온 앤티크 그릇,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옛날 놋그릇, 시골 농가에서 구해 온 소쿠리 등을 애정과 추억이 담긴 그릇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어느 태평스러운 유럽의 시골집에서 무심하게 이것저것 올려둔 주방 같은 정겨운 분위기가 제법 난다. 이 오픈 선반의 유일한 단점은 이 집을 방문한 손님들이 그의 질박한 옛 그릇에 반하게 된다는 점. 아주 친한 몇몇 친구들에게는 이미 놋그릇 몇 개씩을 나누어 준 바 있다.
이 옛 그릇들은 그가 아끼는 애장품 1호이지만 그 못지않게 좋아하며 모은 소품으로 농가에서 직접 쓰던 농기구와 살림살이들이 있다. 이는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화분으로 변한 망태기, 과일 그릇이 된 장독 뚜껑, 장식용 오브제가 된 호미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 집안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옛날 농기구들이 침실 베란다에 가득하다. “우연한 기회에 80년 된 시골 농가를 얻게 되었습니다. 양잠을 치던 농가였는데 그곳에서 사용하던 옛날 살림살이와 농기구들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았지요. 별것 아닌 것 같은 물건 하나하나가 저한테는 다 귀하게 보이더군요. 옛날 살림살이들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냥 전통 양식으로 만든 제품이 아니라 시간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은 물건들을 보면 참 예뻐 보입니다.”
1 주방의 나무 프레임은 그릇이 진열된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준다. 2 페치카 위에 진열된 영국 앤티크 화기와 그릇. 3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놋그릇은 족히 1백 년은 된 것. 세월을 말해주듯 그릇을 뒤집어보면 굽(그릇 밑바닥의 받침)이 닳아 없어지고 흔적만 남았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갈 무렵,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들이 이 집을 찾았다. 예전 잠실에 살 때 정들어 지냈던 이웃들, 그리고 이 집의 인테리어를 담당한 시누이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유정현 실장의 방문이다. 이들은 한바탕 그간의 소식을 전하고 인사를 나누느라 북적거리다가 벽난로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와인과 케이크가 식탁에 차려지고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밝고 기쁘게 살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한다는 우서형 씨.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근심 없는 천국의 풍경이 아닌가 싶다. 창밖에 하얀 눈이라도 펑펑 내리면 좋겠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 집의 안주인 우서형 씨,
오른쪽 끝이 인테리어를 맡았던 유정현 실장(디자인 하늘 02-309-5119)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을 꼽는다면 단연 주방이다. 나무 프레임 입구도 멋스럽지만,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선반. 유럽 앤티크 그릇, 옛날 놋그릇 등을 차곡차곡 진열해놓았다. 어느 태평스러운 유럽 시골집의 주방처럼 정겨운 분위기가 제법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