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피아골.
-지리산의 피아골은 말하고 들을 때 마다 여느 골짜기와는 다른 느낌을 받곤 한다. 피아골을 얘기 할 때면 한국전쟁 때 지리산 골짜기에서 처절하게 저항했던 빨치산을 빼 놓을 수 있을까. 너무나 지독한 상처고 아픔이기에 50년도 넘는 세월 뒤에서 경험 해 보지 못한 세대도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피아골이란 이름도 피아간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피의 골짜기란 의미로 붙여졌다는 말이 있지만 실은 그게 아니다. 옛 부터 곡식인 피를 심었던 피밭골이 피아골로 되었다는 요것이 진실이다.
지리산 산행은 천황봉까지 서너 번 되지만 이상하게 중산리 쪽으로만 갔던 것 같다. 장터목산장이니 고사목이니 하는 기억 밖에 없고 보면 지리산은 까막눈이나 다름없어서 비록 정상까지의 산행은 아니지만 이번 피아골 산행은 자못 기대가 컸다. 그런데 너무 늦어서 단풍을 보기는 어려울 거란다. 단풍산행이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결국 가기로 작정을 한다. 지리산 그 깊은 골에 색색의 단풍이 있어 금상(錦上)에 첨화(添花) 격이면 더욱 좋겠지만 이미 낙엽이 되었다 한들 뭐 어떠리. 피아골의 어느 기슭인들 낙엽조차 아름답지 않겠는가. 가을이 떠나가는 계절에 단풍보다 더 붉은 마음으로 피아골의 낙엽을 밟아보리라.-
“어? 5번이네. 요기는 임원들 자린데.. 로비를 했나 우찌 된 기고?” 살짝 웃고 있지만 고등계형사 같은 눈빛의 산행대장이 무섭다. (그래 달마 모가지를 좀 비틀었다 와?) 근데 임원들 자리라는 소리에 은근히 찜찜하다. 에고 그랬거나 말았거나 잠 한숨 못 잤더니 눈꺼풀에 아령을 매달아 놓은 것 같고 졸려서 사람 죽겠다. 조용한 임원자리에서 잠 좀 자자. 임원들은 뭐 뿔나고 금테 둘렀으까이.. 그런데 안 하던 짓을 하면 동티가 난다 카더마는 산행 끝에 시껍하게 될 줄이야.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고..
졸다가 깨다가, 몸도 정신도 정리가 안 되면서 바이러스 먹은 컴처럼 버벅대는데 이크 고문님이 털썩 옆에 앉자 임원자리가 실감이 난다. “사람들이 말이야!” (사람들이? 에이고 겁대가리 없이 임원자리에 한 번 앉았다가 인자 작살나는구나. 달마야 너무 땡깄다카이..) “산행 당일 아침에 예약취소를 하는 데가 어딨어? 이런 예약문화는 고쳐야 돼!!” (흐이고 간 떨려라 그 얘기셨구만.. 옳소! 맞습니다 맞고요. 짝-짝-짝)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된다는 말이 하나도 안 틀리더라. 시끌벅적해도 뒷자리가 맘이 편한데 괜한 짓을 했다 싶다. 그새 뒷동네 사람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창 밖을 보는데 낯이 익다. 어느새 섬진강의 하동송림이다. 강줄기는 하얀 모래밭 사이로 실개천이 되었다가 끊어질듯 이어진다. 강은 하동에서 구례로 흐르고 물새 한 마리 날지 않는 강가의 갈대밭은 외롭고 쓸쓸하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고 아무래도 한 줄기 할 것 같다. 오후 6시 이후에나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기상청 아저씨들이 엉터리실력 발휘를 할 모양이다.
들머리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모두 산행차림인데 가만히 보니 거의 노친네들이다. “다 유통기한이 넘었네” “폐기처분 할 때 다 됐구마는” “나는 저기 비하면 유통기한이 아직 많이 남았어” “저거 바라 저거, 차가 뒤에 와도 퍼뜩 안 비키주제? 와 그런 줄 아나? 귀는 안 들리제, 몸띠도 말을 안 듣제 우짤끼고” “그래도 마음은 이팔청춘인기라” 차 안에는 한 바탕 우스개가 난무하고 웃음이 낭자하다. 정말 노친네가 되면 저리 되는 걸까. 에고 늙는다는 게 두렵고 세월이 무섭다.
들머리는 직전마을에서 시작한다. 짐작했던 대로 높은 봉우리는 단풍이 거의 다 졌다. 들머리 초입의 낮은 봉우리에 남은 것도 색이 바랬고 끝물이다. 그렇지만 그런대로 보기 좋다. 산은 투명하고 맑은 공기로 상쾌하다. 따가운 볕은 구름에 가렸고 산행하기에는 딱 좋다. 기와지붕 뒤로 높은 감나무에 발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렸고 비탈진 기슭에는 벌을 치는데 벌집이 고층 아파트를 닮아서 얄궂다.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낯설고 정겨운 풍경이다. 피아골에 간다기에 작심하고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산과 계곡, 사람마저 붉게 물들인다는 삼홍(三紅)의 피아골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색색의 잎들은 온데간데없고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었다.
산행 길은 계곡을 따라서 이어지는데 건너는 다리 밑에 물이 제법 흐른다. 계류에 떨어진 낙엽들이 운치와 스산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카메라를 쥔 탓일까. 그냥 갈 수 없어서 물가로 내려간다. 렌즈로 그리는 디지털그림에 물소리, 바람소리, 낙엽 지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담고 싶다. 이곳저곳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뒤처졌다가 따라 붙고 또 뒤처지고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자 숨이 차고 온통 땀범벅이다. 길 위에서, 골짜기의 다리 위에서 여인들은 단풍처럼 곱고 어여쁘다. 실바람 부는 길, 낙엽 지는 숲에서 여인은 끝내 향기가 된다.
지다 남은 노오란 나뭇잎 뒤로 가지마다 가을의 흔적을 떨어내는데 숲은 오히려 가을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눈물 같은 그리움의 끝에서 마지막 남은 계절은 소리 없이 다가오고 하늘과 땅 사이로 가을이 덧없이 간다. 마음도 낙엽처럼 흩어 진 걸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새의 울음소리처럼 그저 속절없어 아 처음 만난 피아골에서 눈물이 날 뻔 할 줄이야.
구계포계곡의 이정표는 0.9km피아골대피소와 2.9km임걸령삼거리로 가는 길을 가리킨다. 누군가의 이름 같은 그 고개이름이 정겹다. 피아골대피소에서 흘러넘치는 샘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숨을 고른다. 누군가가 길가 바윗돌에 하얀 회칠을 하고 대강의 산행로를 그렸는데 임걸령, 노루목, 반야봉 하나 같이 고운 이름들이다. 늘 푸른 잎의 산죽길을 지나서 다리를 또 하나 건너는데 쇠다리다. 조각조각 이어 붙여 아치형의 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난간을 세웠다. 엇지게 이은 받침 덕에 제법 운치가 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려니 된 비알은 피할 수 없다. 볕이 없어 제법 서늘한데도 땀은 등짝을 타고 흐르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아직 산등짝에 올라서지 못했는데 후득 후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산행대장으로부터 피아골삼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무전이 날아든다. 삼거리고 사거리고 간에 사람 죽겠다. 이리 박고 저리 박고 아래로 위로 설쳐 댔더니 이건 뭐 꼬랑지에 붙어서도 헉헉거린다. 휑하니 앞서 간 유사노친네(^^)들은 죄다 짝퉁이 아니면 나이를 구라 친 게 틀림없다는 아주 요상한 생각까지 든다.
고개에는 벌써 점심도시락을 까먹고 뒷정리가 한창이다. 산대장은 어디 짱 박혀서 젓가락질을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배는 고픈데 어디가 삼거린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헷갈린다. 이제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추적추적 내린다.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찬 기운이 드는 탓에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 묵고 갑시다” 요런 멘트가 이구동성으로 터진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 질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어 슬며시 웃음이 난다. “밥 묵고 가자는데.. 아이고오~ 이~ 이~” 산에서의 소리를 찾아서, 남해 설흘산에서 들었던 산새님의 <밥 묵자고 조르는 소리> 였습니다.
오후 2시, 늦어도 한참 늦은 시각에 밥 먹으려고 허덕대는 걸 불쌍히 여겼는지 신령님이 조화를 부렸다. 비는 살짝 그치는 기미가 보이고 마빡을 맞댈 듯이 오종종 모여 앉아 전을 편다. 그런데 어째 온통 풀밭이다. 에이그 이 언니야들 달마한테 한 소리 듣겠다. 조석으로 자연산 전복에다 한우고기만 먹는 달마는 너무 너무 기가 차고 가스도 차는지 생탁막걸리모가지를 따더니 안 먹는 줄 알면서 내게 잔을 권한다. 그때는 몰랐는데 곰곰이 생각 해 보니 이런 뜻이었는 갑다. “나는 평소에 집에서 호의호식 하니까 어쩌다가 한 번 쯤은 이런 것도 별미지만 니는 집에서나 나와서나 요런 대접 받고 살아서 머 할래. 아이고 인간아 인간아 못 묵는 술이나 한 잔 묵고 죽어라 고마” (이런 닝기리조또쓰파야 같은 인간이 다 있나..)
풀밭이라지만 그래도 고깃간, 해물전도 하나 씩 있고 묵은 배추김치를 결대로 크게 찢고 씨감자를 반 토막 크기로 곁들여서 자작자작 졸여 낸 <밸라표김치찌개>는 달마가 입에 달고 있는 한우고기보다, 자연산 전복보다 더 맛있다. 먼저 전을 폈던 이들이 보따리 챙겨서 길을 재촉 하는 터라 덩달아 마음이 급한 탓에 내 입인지 니 콧구녕인지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얼른 퍼뜩 싸게 싸게 한 숟가락 씩 퍼 넣고 일어선다.
노고단으로 가는 능선에는 이미 안개가 자욱하다. 누렇게 마른 풀들이 비에 젖었고 하얀 비옷을 두르고 안개 속으로 가는 이들의 뒷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능선은 안개에 묻혔지만 노고단으로 가는 길은 거침이 없다. 생각해 보면 비도 바람도 그리고 이 산중 안개도 자연이 빚어내는 경이로움이 아닌가. 그 경이(驚異)에 인간은 언제나 경탄과 숙연함으로 대할 뿐이다.
3시 9분, 드디어 노고단고개다. 돼지령에서 노고단(1507m)정상으로 가지 않고 정상 밑의 길을 따라 바로 노고단고개로 온 셈이다. 노고단에는 커다란 돌탑이 있는데 멀리서 보아도 동남아의 불교사원을 닮았다. 수많은 나무계단 끝에 있어서 일까 아무도 올라 갈 엄두를 내지 않는다. 건너 편 봉우리의 골짜기에 운무가 가득한데 이리저리 바람에 흩어진다. 삶도 저와 같으니 100년도 못사는 인생, 부여잡을 틈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겠지. 노고단(老姑壇), 신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데 글자풀이대로라면 늙은 시어미와 관련이 있을라나? 요거는 순전히 혼자만의 생각이다.
노고단에 올라보지 못한 아쉬움을 접고 노고단대피소로 향한다. 비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3시29분, 15분 정도 거리의 노고단대피소다. 대피소는 아담하고 깔끔한 목조건물이다. 현관입구에 나무로 깎은 실물크기의 노고할매가 섰다. 비녀로 쪽을 진 옛날 우리네 할매 모습 그대로다. 복스러운 얼굴에 환한 미소가 참 보기 좋다. 이정표는 이제부터 산을 나가는 길을 가리킨다. 오후 3시 31분, 이정표에서 코재를 지나 화엄사계곡을 따라 화엄사까지 7km, 2시간은 족히 걸리는 20리 내리막길을 간다.
노고단대피소에서 화엄사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덜겅을 닮은 순전히 돌밭길이다. 자연적으로 되었다기보다 일부러 돌을 놓은 것 같다. 오늘 같이 비가 내리면 돌은 그냥 밟아도 미끄러운데 다행히 돌은 표면이 꺼칠꺼칠해서 젖은 낙엽이 묻었는데도 미끄럽지가 않다. 처음엔 흙도 묻지 않고 밟는 맛도 있고 해서 괜찮타아~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돌밭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 그 자체였다. 무릎보다 발바닥과 발가락을 이어주는 관절, 특히 체중이 많이 실리는 엄지발가락 쪽의 관절에서 통증이 심했다. 견디다 못해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렸다. (어느 세빠질늠이 할 짓이 없어서 요따우로 돌을 놨노 에이 칠성판 등에지고 빌어묵을 짜석..)
길은 하염없이 이어지고 30분 정도 내려오다 모여박기도 하면서 잠깐 다리쉼을 한다. 조금 더 내려오자 숲은 온통 안개로 자욱하다. 4시 40분, 모두 마음이 급했던지 걸음이 빨라진다. 안개 핀 숲을 찍느라 잠시 머뭇거렸더마는 혼자 남았다. 갑자기 으스스 하고 냉기가 돈다. 얼른 따라 붙었더니 죄다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고 앞에는 야생화님만 뎅강 잘린 도마뱀꼬리처럼 남았다. 졸지에 보호자겸 인솔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언니야는 바쁠 것도 없고 답답한 것도 없는지 느긋하니 태평이다. 느릿느릿 때로는 슬로모션을 보는 것 같다. 꽁지에서 두 번짼데 여유 치고는 지나치다 싶어서 자세히 봤더마는 지쳐서 주저앉기 직전이다. 에고 내 코도 석잔데 이 일을 우야노. 언니야배낭을 가슴팍에다 걸었더니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당장 허리에 부하가 걸린다. 이러다가 이 빗길에 쫄딱 미끄러져서 허리에 기스라도 생기면 집에가서 대접 받긴 글렀다. 우쨌기나 집에서 나올 때 그 상태로 돌아가야 될낀데..
달마가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 가버린 까닭은 내가 꽁지에 붙은 때문이지만 날은 자꾸 어두워지는데 휘청대다가 어디 한 군데라도 삐끗 했다가는 여간 낭패가 아니다. 에이그 요것이 동티의 조짐이구나. 인자부터 죽은 조상님이 실시간으로 보호 해 주시겠지만 우짜든동 상전 모시듯 해야 될 판이다 에이고 내 팔자야.. 두런두런 이 얘기 저 얘기 케케묵은 이바구까지 해 가면서 한참을 내려와도 화엄사는 보이지 않고 드디어 컴컴해 지기 시작한다. 콩이 튀는 5시 38분, 키를 훌쩍 넘게 자란 산죽 속으로 난 길을 빠져나오자 불빛이 보이고 마침내 화엄사다. 한시름 놓는데 달마가 귀신 같이 알고 전화를 했다. “어디고?”
화엄사에서 방향을 잃고 오도카니 서 있는 한백님이 있어 얼른 꽁지에 달고 큰 길로 나온다. 길에는 화엄사로 들어가는 차량의 불빛만 띄엄띄엄 보이고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허공을 향해 어둠을 밀어내는 가로등불빛은 서러운 듯 외로운 듯 홀로 밝다. 6시 3분, 꼬박 7시간의 제법 긴 여정이었다. 직전마을, 피아골, 노고단, 화엄계곡 그리고 대화엄사까지 40 여리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아직 가 보지 못한 임걸령, 반야봉, 토끼봉, 화개재, 뱀사골, 대성골, 칠선계곡 등 숱한 고봉준령들을 두고 그만 돌아가야 되지만 남은 날에 지리산을 가로지르는 종주의 날이 오면 저기 천왕봉에 서서 오늘을 기억하리라 가을날의 아름다운 하루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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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에 경련성호흡곤란증으로 몸 가눌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심히 부끄럽고 당황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신적장애를 유발하는 요따우 버전의 대사는 지양하심이 가 할 줄 아뢰옵니다. 대장이라니 천부당 만부당 하옵고 그냥 백의종군하게 내 버려 두시옴이 피차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외람 되오나 어찌 종지기에 물을 담으라 하오시는 지 민망하기가 그지 없사옵니다. 그릇은 따로 있는 법, 번지 수가 틀렸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데 딴 데 가셔서 알아 보시기를 앙망하나이다.
그날 산행은 악몽이었답니다 허튼날에님 올린 사진과 재밋는 글을 읽고 악몽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되었네여 그래두힘든기억많은~
아름답고 상큼한 글솜씨 감사 드립니다..산은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되는것 아닌가 합니다..비가온 덕분에 산능선에 구름이 넘실대는 구경 하셧 잔읍니까..
수고 많았구요..^^즐감하고 갑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