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 월봉산과 국수봉은 호남정맥의 아들들이며 무등산과 맥을 같이 한다. 면적 33.803㎢ 에 인구 5천 명이 사는 창평면은 논이 밭보다 4배가 많다.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면 전체가 평온한 느낌을 준다.
‘햄버거 없이도 살 수 있다. 백화점, 자동차 없이도 살 수 있다’며 최초의 슬로시티를 선언한 '그레베 인 키안티' 마을 주민의 삶을 표방한 창평 삼지내 마을. 그곳을 오가는 303번 시내버스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광주 유명백화점(대인광장)을 기점으로 하고 있었다. 303번 창평행 버스(편도 1천400원)를 서방시장 부근 무등 도서관 정류장에서 승차하니 20여 분만에 창평면에 도착했다.
하늘을 향해 유난히 곧게 뻗어 한겨울에도 씩씩한 기상을 풍기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왼편으로 빨간색 건물의 창평고등학교가 보이고, 좁은 이차선 도로 양쪽에 닥지닥지 붙은 일층짜리 상가들이 저마다 간판을 올리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번화가였다.
삼지내 마을 표지판을 따라가자 아주 큰 교회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는 잎이 다 떨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작은 공터를 사이에 두고 줄지어 늘어서 마을의 오랜 내력을 말해줄 뿐, 면사무소의 콘크리트 건물과 교회의 적벽돌 건물은 '슬로시티'를 연상하기엔 생경한 느낌이었다.
창평면사무소 앞마당에 아담한 팻말에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265호 삼지천마을 돌담길-이 오래된 마을의 돌담길은 향촌마을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 이를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넘겨주고자 한다' 라 씌여있다. 돌담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준다.
연한 자주빛 개량 한복차림의 슬로시티 사무장 김철중씨의 안내로 마을로 들어서니 조금 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돌담길이 완곡선을 그리며 얼어붙은 마음속에 녹아들기 시작하였다.
흔히 초가들이 주를 이루고 그중 부자로 보이는 한 두 집의 기와집과 넓은 정원이 전부인 여느 시골마을과 다르다.
삼지내 마을의 대다수 가옥은 제대로 갖춰진 양반가의 모습으로 전통한옥 구성에 소홀함이 없었고 화강석과 논흙을 사용한 담장들도 그와 어울려 제 역할을 했다.
등록문화재 265호인 담장은 약 3천600m에 달하며, 영산강의 시원지인 용소와 멀지 않고 월봉천, 운암천, 유천이 모아 삼지천이 되었다는 유래에서 엿볼 수 있듯이 여기에 쓰이는 돌들은 강 상류를 짐작할 수 있는 매끄럽지 않는 투박함이 발견된다.
그 집에 얽힌 수많은 역사와 사연들을 모두 알고 있을 담장들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옆자리 돌맹이와 자신을 안아준 흙들과 도란거리며 서로 얼싸안은 채 작열하던 태양과 풍상을 견디며 항상 한결같이 집을 지켜낸 뚝심이 찾아간 나그네를 고개 숙이게 한다.
담장들은 월봉산의 꽃내음과 넓은 들녘의 봄나물로 따스한 봄소식을 집안으로 전해 들였을 것이고, 싱싱한 신록들의 수다와 결실들의 충만함을 같이 넘겨주고 담집 위에 앉아있는 박이며, 호박이며 강낭콩들과 저마다 재잘거렸을 계절마다의 아름다움을 비발디 '사계'가 무색하게 전해주었을 것이다.
한겨울 날세운 추위에 담지붕에 쌓인 설경들을 감상하며 다시 찾아올 봄을 그리면서 찾아온 나그네도 따뜻함과 희망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담장이 있는 골목길에 황토길과 실개천이 복원된다고 한다. 흙길의 오묘한 맛과 돌돌거리며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담장너머 들려오는 것 같다.
고재선, 고재환, 고정주 가옥 등 이름에서 보듯, 삼지내 마을은 고씨 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임진왜란 때 문신임에도 분연히 일어선 의병장 고경명의 후손들이 자리잡은 곳. 고경명 장군은 6천명의 의병을 담양에서 일으켜 충북 금산에서 왜병과 싸우다 두 아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여 충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 마을에는 그의 '세독충정'이라는 호가 현판으로 남아있다.
민속자료 5호로 지정된 고재선 가옥. 금계(錦溪) 고재선이 1915년 지은 튼실한 기와집의 위용은 여전하였으나 빈집이었다. 사랑채와 살짝 비껴 앉은 안채에선 큰살림 꾸리던 안방마님의 발소리가 들릴 듯 했다.
사랑채 사이에 난 작은 문으로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드나들었을까? 그중 인상적인 것은 사랑채 옆의 굴뚝이었다. 기와와 진흙으로 만든 사각형 기둥모양이 마치 집을 수호하는 수문장인 것만 같았다.
연기를 뿜는 입술을 오므리고 우뚝 서 있었는데 그 연기는 집 문을 드나드는 사람을 향하여 내 뿜었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방역을 위하여 살수를 하듯 연기를 쐰 것이다. 이젠 잠든 그를 깨워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두 생각해 볼 때이다.
영학숙과 창흥의숙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고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한 춘강 고정주 가옥을 들렀다. 솟을3문이라 부르는 삼단 대문이 특징이고 다른 집보다는 허름한 기와집이었으나 사람이 살고 있었다.
수건과 옷가지가 빨랫줄에 널려 있었고 마당에선 흰 개 한 마리가 우리 일행을 보고 크게 짖어대 는 바람에 기웃대다가 나왔다. 빈집을 방문 할 때마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를 만지는 느낌을 받다가 이 집에 오니 어쩐지 말랑한 생동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고재욱 가옥 안채에는 한옥을 사랑하는 사람인 독일인 베르너 잣세(Werner Sasse) 한양대 교수가 살고 있다고 하나 문이 잠겨 들어가진 못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 것이 라는 말이 실감나듯, 우리의 것을 외국인 들이 먼저 인정하고 있나보다.
마을 한 바퀴를 돌아 나올 때, 멀리 남극루를 배경삼아 치타슬로(이탈리아말로 슬로시티)의 흰 깃발은 석양에 펄럭이고 있었다.
매주 둘째주 토요일에 놀토달팽이 시장이 삼지내 마을 입구에서 열리며, 창평 슬로푸드의 대명사인 전통장류, 창평쌀엿, 한과, 창평국밥은 이고장의 자랑거리이다.
이외 다수의 숙박시설과 체험시설이 있으며 마을탐방 및 해설가 문의는 담양 창평면사무소 슬로시티 위원회 (061-380-3807)로 전화하면 된다.
민박집 '한옥'에서 맑은 차와 따뜻한 난로로 나그네를 대접해 준 김영봉·전유례 부부, 추운 날씨에 열렬히 설명해주신 김철중 사무장에게 감사드린다. 글=김선옥·곽선미, 사진=박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