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기맥(榮山岐脈)이란?
◆ 영산기맥(榮山岐脈) 개요
영산기맥(榮山岐脈)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여 이어지다가 조약봉에서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갈라져진 호남정맥 능선이 내장산의 소죽엄재와 순창새재 사이의 530봉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내려서면서 좌측으로 영산강과 우측으로 동진강을 가르며 고창, 영암, 함평, 무안을 거쳐 유달산 아래의 목포시 충무동의 목포만에서 그 맥을 다하는 총도상거리 약 157.4km의 산줄기를 말한다.영산기맥을 형상하는 주요 산들을 살펴보면,
입암산(626m), 시루봉(649m), 방장산(742.8m), 벽오봉(640.4m), 갈미봉(579m), 문수산(621.6m), 두루봉(441.5m), 소두랑봉(470m), 구황산(500m), 고산(528m), 고성산(546.7m), 월랑산(458m),태청산(593.3m), 장암산(481.5m), 분성산(318m), 장군봉(430m), 불갑산(518.2m), 모악산(352.3m),금산(305.0m), 군유산(405.0m), 발봉산(181.0m), 영태산(135.0m), 감방산(259.0m), 병산(130.7m),마협봉(288m), 기봉(264.6m), 승달산(318.9m),국사봉(283m), 대봉산(252m), 지적산(187m),대박산(155.4m), 양을산(156m), 유달산(230m) 등이다.
영산강은 담양 용면 치재산 부근의 용소에서 발원하여 가마골로 흘러들고,백암산 상왕봉에서 발원한 남창골의 물이 장성호를 이루고, 다시 황룡강으로 흘러서 나주를 적시며 영산강으로 유입되어 목포앞 서해바다로 흘러드는데,영산기맥은 영산강 북서쪽의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영산기맥은 그 길이나 산세에 있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산줄기 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칭이 산경표에 언급되어 있지 않아 뜻있는 많은 산악인들이 아쉬워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때에 노령산맥으로 명명되어 오랫동안 그 이름으로 불리워 왔으나, 조석필 님이 그의 저서 “태백산맥은 없다”“이 땅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다 ”에서 산경표를 좀더 윤택하게 쓰기 위해 명칭이 없는 몇몇 산줄기를 기맥으로 부르자고 했고,
그 중 영산강의 북쪽 울타리인 이 산줄기를 영산북기맥 이라 하였다.
최근에 이 영산북기맥을 영산기맥으로 통칭하여 부르고 있는 셈이다.
◆ 영산기맥 전체개념도
●.호남정맥 분기점~솔재 구간
▲.새재봉(530m,11:28,영산기맥 분기봉).
호남정맥 종주 당시 출입금지 구간인 이곳을 가슴 졸이며 지난 이후 영산기맥 종주를 위해 다시 이곳에 섯다.
산길 상태가 안좋기로 악명 높은 영산기맥을 당일 산행으로 10 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하며, 4대 기맥(한강/진양/영산/땅끝기맥) 중 하나이고, 영산강을 경계짓는 주요 산줄기이기에 상태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종주 길에 나선다.목포 앞바다에서 맥을 다하는 영산기맥 산줄기 끝까지 무탈 완주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영산기맥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지웅님이 서 있는 곳이 입암산 정상(665m,1:53)인듯
옛부터 왜적의 침입을 막아 항쟁의 장소였던 입암산 고려시대는 송고비장군이 몽고의 6차 침입을 맞아
이곳 에서 몽고군을 물리쳤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는 윤진이 소서행장과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입암산 갓바위봉
◎.시루봉(649m,3:47).
시루봉에서 내려서는 여정은 그야말로 고행길이다.
까칠한 암릉 구간을 통과하게 하는데, 첫번째, 두번째 암봉은 우측 사면으로, 세번째 암봉은 좌측으로 우회하며 지나야 한다.특히 첫번째 암봉은 규모도 크고 우회 루트가 거칠고 가파르며, 진행 루트 조차 뚜렷하지 않고 표식기조차 없어 감각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매우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첫번째 암봉에서 우측 사면으로 내려서게 되는데, 약 5분 정도 가파르게 내려선 후 더 이상 내려서지 않고 좌측으로 방향 전환하여 사면따라 오르내림을 진행하여 마루금에 접속하게 되는데, 마루금 접속 부분은 직벽에 가까운 암봉이다.
◎.노령(5:04).
노령에는 갈재길문화생태탐방로가 지난다.
노령 좌측(남쪽)으로는 백양사역(5.6km), 우측(북쪽)으로는 입암면사무소(4.2km)가 연결되는 갈재길문화생태탐방로가 이어진다.또한, 노령 아래로는 호남선 철도가 지나는데, 갈재라고도 한다.
◎.장성갈재(5:28)-전방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1번국도가 지나가고 통일기원 탑이 있는 오늘의 목적지인 장성갈재에 내려서게됩니다.
◎.쓰리봉(734m,10;51, 변산지맥 분기봉
● 변산지맥 분기점...변산지맥 이란?- 새재에서 유달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이 장성 갈재를 지난 734m봉(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연월리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및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백암리와의 경계점) 직전에서 서북쪽과 서남쪽, 서북쪽과 서남쪽으로 가지를 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53.4km의 산줄기로,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봉화봉에서 그 맥을 황해 바다에 넘겨주고 있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수산(237m), 배풍산(109.2m), 상여봉(398m), 옥녀봉(432.7m), 용각봉(365m), 세봉(415m), 관음봉(425.4m), 신선봉(486m), 삼신산(486m), 갑남산(415m), 사투봉(169.2m), 봉화봉(174.2m) 등을 만날 수가 있다. 아울러 이 산줄기의 서쪽에는 갈곡천 등이 서해 바다로 흐르고, 이 산줄기의 북쪽에는 백천, 직소천, 고부천 등이 서해 바다로 흘러간다.
◎.방장산(方丈山,743m,12;27)
방장산은 영산기맥의 한줄기로서 정읍의 입암과 장성 북하면, 고창읍의 월곡리, 신림면 신평리 일대에
거대한 주봉을 이루고 있으며 양고살재에서 벽오봉, 고창고개, 정상743m, 봉수대, 써래봉을 거쳐 갈재로
이어진다.무등산, 지리산과 더불어 호남의 삼신산으로 불리며 고창의 진산으로 정읍의 두승산, 부안의
변산과함께 전북의 삼신산이기도 한다. 방등산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사(高麗史)』 권71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방등산(方等山)으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반등산(半登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방등이란 불가 용어로서 방정하고 평등하다는 의미를 지니며, 반등산이란 이름은 태산이
높고 장엄하여 산을 절반밖에 오를 수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백제가요중 하나인「방등산가(方等山歌)」는 방등산[방장산]에 있는 도적떼에게 장일현에 사는 여인이 납치되자 남편이 구하러 오지 않아 원망
하면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방장산에는 천오백년 고찰인 상원사와 임공사, 방장사가 있으며 근래에
세운 미소사와 미륵암이 있다. 또한 수심이 깊어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추폭포가 흐른다.방장산 정상에 오르면
고창읍을 비롯하여 멀리는 서해 바다가 보이며 동쪽으로는 광주 무등산 까지 보인다.(고창군청홈페이지에서)
조선시대까지는 방정하고 평등하다라는 뜻을 가진 '방등(方等)'이라는 불교용어에서 유래된 방등산(方等山)이라 불렸는데, 조선 인조 때 중국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과 닮았다고 하여 현재 지명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양고살재(14;15)
양고살재는 병자 호란때 고창출신 박의 장군이 누루 하치의 사위인 적장 양고리를
살해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박의는 1599년에 태어 났으며,말을 잘타고 총을 잘 쏘아
박포수라 불렀다.병자 호란이 발발하여 한양이 함락 당하고 임금은 급히 남한산성
으로 피난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이때 박의는 방장산 근교에 숨어 있다가 적장인
양고리를 총탄으로 명중시켜 쓰러지게 하였다.적장 양고리는 청태종에 총애를 받던
명장이였으며,청태종은 그의 죽음을 듣고 크게 통곡하고 무흔왕에 봉하였다고 한다
검곡치 북쪽에 있는 고개로 소나무가 많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소나무가 무성하여 송치라고 부르다가 우리말로 바꾸어 ‘솔재’라 부르고 있다.
●.솔재~깃재 구간
◎,검곡치(16;11).
검곡치에서 438봉까지는 죽음의 지옥길이 아닌가 십다.
편백나무 조림을 위해 벌목한 438봉 사면은 편백나무 대신 성인키만한 잡목, 가시덤불, 칡넝쿨이 빽빽하게 점령하여 인간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길 흔적없는 이런 곳을 긁히고, 할퀴고, 걸리며 겨우겨우 길을 만들며 헤쳐 나가지만 쉽지가 않다. 산길 상태가 양호하다면 검곡치에서 6~7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충분한 거리를 30분이 넘게 걸려 올라서니 몸은 이곳저곳이 상처 투성이에 악전고투를 벌이고 가야할 길이기에 그 길은 영원히 한페이지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검곡치 임도 따라 좌측으로 진행해도 수량동 고개로 이어지므로 잡목과 가시덤불의 기세가 꺾이는 겨울철이 아니라면 임도따라 우회하여 수량동 고개로 이동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량동고개
◎.축령산(해발 621m),문수산 정상
이곳이 축령산(문수산)편백나무 숲이 유명한 곳으로 편백나무숲에서 뿜어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몸을 치유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환자들도 꽤나 있는듯 합니다.
▲.서우재에서 다시 오르막길 가시덩쿨을 헤치고 오르니 두루봉(441.5m) 삼각점에 도착 한다.
◎.구황산(九皇山)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두평리·성송면 계당리와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죽림리에 걸쳐 있는 산.구황산 명칭은 이곳의 명당에 묘를 쓰면 9대에 걸쳐아홉 명의 임금이 나온다는 풍수설에서 유래되었다. 구황산에
있는 구신봉에서 구황이 난다고 하여 구황산이라 부른다. 구암산이라고도 한다.
구황산 서쪽에 있는 삼태봉은 풍수지리삼국 시대에 세 명의 정승나왔다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고창에는 또다른 구황봉[299m]이 있어 혼동되기도 하는데, 이는 선운산 도립공원 내에 있는 것이다.
서쪽의 영산기맥을 3㎞쯤 가면 전라남도 장성군과 고창군 성송면을 잇는 암치가 있다
◎.암치고개
암치마을은 장성 삼계로 가는 언덕에 바위가 많이 깔려 있어 얻은 이름이다. 문화유적은 석불좌상과
암치리 석계정은 구황산과 고산의 맑은 물이 돌 사이를 흐른다는 의미며,석계정의 시원한 계곡물은 암치저수지의 수원이 된다.
893번 도로가 지나는 암치치 고갯마루에서 장성 방향으로 조금 내려선 지점에 고산 등산로 입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임도에서 산길로 접속되며 등로는 관할 지자체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지 비교적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어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고산(527m)
고산은 전북 고창, 장성 전남 영광군에 걸쳐 있다. 산의 남쪽 계곡은 와탄천, 북쪽은 대산천으로
흘러가다가 법성포로 흘러든다. 높을 고(高)를 쓰는 이 산은 고창 들녁에 높이 솟아 주변조망대 역할을 한다. 아직까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창의 숨은 명산으로 세계문화유산인선사시대지석묘(고인돌) 300여 기, 후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고산산성(약 4.1km) 등문화유적의 보고다.고산은 비록 해발이 527m이나 평야에 위치해 있어 장수지역의 1,000m대 산과 어깨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350m까지는 육산으로 송림이 울창하고, 6부 능선부터는고산산성이 있으며, 암봉과 산죽이 어우러져 산행미를 더해준다.
고산은 5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있는데 제1봉은 각시봉이라 부른다.
이봉우리는 옥녀봉으로 소가 누워 있는 형태를 하고 있어 와우형국을 이루고 있다. 자연지형과 돌의 흔적으로 보아 고산산성의 전초기지로 보인다.
제2봉인 깃대봉은 이곳부터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산산성의 치(雉)(성벽에서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하고 전투시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 또는 측면에서 결퇴시킬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 시켜 장방향으로 내쌓은 구조물)가 있는 지점이다.
이성은 방장산부터 구황산, 영광 불갑산 연실봉에 시작하여 태청산 월랑산을 거처고상산이 지정학적으로 전혜의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어 내륙을 침략하는 외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을 실감나게 한다.
이곳이 외부의 침략에 의하여 함략되었다면 정읍의 입암산성, 담양의 금성산성으로 이어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상상하기 조차 싫다.
이성을 쌓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으며 집을 떠나 고된 노동, 굶주림, 병마, 부상으로부터 괴로와 했을까? 지금도 그때 선현들의 고통이 귓가를 맴도는 듯하여 마음이 숙연하여진다. 그러나 선현들의 호국의 정신은 유비무환의 귀감이 되어 오늘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깃대봉에서 상금고인돌군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으나 산의 정산을 향하여 능선을 따라 가면 용의 머리형국을 하고 있는 용두암(용의 머리 형상을 한 바위)과 그 위에 용의 알이 놓여 있다. 이 알이 부화하여 용이 된다면 산하를 호령하던 자리를 2세에게 넘기고 승천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지 용의 머리를 오를 때에는 자세를 낮추고 로프를 이용하여야 용두암에 오를 수 있다.
이 주변에는 산성의 서문터와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추굴, 매바위가 있는 곳이다
제3봉으로 불리우는 띠꾸리봉 이다.
이 바위 아래에는 3겹으로 된 치마바위가 위용을 자랑한다. 선사시대 고인돌상석과 축조에 필요한 채굴지였음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어 무상한 세월과 역사의 변천과정을 잘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옛 부터 생명수인 龍井(우물)이 있었으나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지명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제4봉은 촛대봉이라고 하며 정상 가는 길에는 남문이 있는데 이곳에서 성송백토마을과 가래재로 하산길이 있으며 주변에는 진달래를 비롯하여 아름다움의 극에 이른 치 산 벗, 금강송으로 부르는 춘양목, 때죽나무, 어름나무, 인동초 군락지 참갈나무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식물들이 고산지형에 적응하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원형대로 잘 보존 된 성곾을 따라 억새를 벗삼아 600m쯤 오르면 드디어 제5봉인 고산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 오르면 무등산, 추월산, 병풍산, 방장산, 태청산까지 조망에 들어오며 대산 성송등 14개읍면 고창군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의 먹구름이 여름에는 비가 되고 겨울에는 눈이 되어 이산에 내린후 해어져 한줄기는 대산천을 이루어 흐르고 또 다른 줄기는 와탄천을 이루어 합류지점인 영광 덕오리에서 1차상봉후 손을 맞잡고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며 서해바다를 향해 유유하게 흐른다.
이러한 연유에서 헤어져 있거나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이곳 정상에서 만남을기원하면 서로 만날 수 있다는 속설을 나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쉽다.
대산면에서는 산 정상에서 매년 1월 1일 새해 소망을 담은 해맞이 기원제를 올리고있으며 무송인들이 고산신령위(高山神靈位)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고산산성(高山山城)
고산성은 대산면 상금리와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경계인 고산에 있다
축성양식은 포곡형이고 석축의 공법은 내탁법(內坼法)을 써서 외면은 석축이고 내면은
흑과 잡석으로 다져서 축성되었다.
외면은 자연석을 수직 또는 물림쌓기로 아랫돌에 비해 윗돌을 5-6㎝ 씩 안쪽으로
물려쌓은 방식을 썻다
성문은 남문과 북문의 형태가 남아 있으며 문헌에 의하면 내유 3천(內有三泉) 이라는
기록이 있어 성내에는 용지(龍池)와 서봉사(瑞峯寺) 수고암(水庫菴)등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신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등에 의하면 고려이전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추정 된다.
성의 둘에는 8,100척 (2,400m), 고적조사자료 (이기화 문화원장 제공) 1,500칸
(2,700m) 고창군의 자료에 의하면 산성의 형태는 600m 정도가 남아 있고 거의
파되괴된 상태로 기록되어 있으나 태봉산악회에서는 4.1km로 실측하였다.
1) 성곽의 종류와 분류
- 거주 주체에 따라 : 도성, 읍성
- 지형에 의해 : 평지성, 평산성, 산성
- 지리적 위치에 따라 : 국경성, 해안성, 강안성, 내륙성
- 축성재료에 따라 : 목책성, 토성, 토석성, 석성, 전축성
- 구조의 평면에 따라 : 방형성, 원형성, 부정형성, 장성,차단성
◎.고성산(古城山) 546m 일명깃대봉
위치 전북 고창군 성송면 / 전남 장성군 삼계면 부성리
해발 546.3m, 호남지역의 산으로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편이다. 산맥의 방향에 따라 산세도 남북으로 주능선을 길게 늘어뜨리며, 양옆으로는 자잘한 지능선이 흘러 내린다. 산의 중턱부터 바위들이 아기자기하게 갖가지 동물모양을 띠며 등산객을 반긴다. 이런 암벽미는 정상까지 계속된다. 가을에는 정상부근의 억새풀도 장관이다.
이 산은 이름에서 알수 있듯 고풍스런 산성(古城)이 산의 4부 능선쯤 남사면에 빙 둘러 축조되어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산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 내려오지 않아 언제 축조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깃재
월랑산 410.0m 와 고성산 546.3m의 사이에 있는 깃재는 장성군 삼계면 부성리와 영광군 대산면 복평리를 넘나드는 人馬가 왕래하였던 교통수단의 고갯길이며, 임진왜란 · 병자호란시는 왜병이 서해안을 따라 영광쪽에서 장성지방을 진격할때는 이 고개 옆 고성산성의 아군과 격전장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시에는 이 고장 장성인들이 영광 법성포항까지 공출(세금)을 갖다 바치는 애환을 같이 했던 수탈로의 고갯길이다. 이 재의 형국은 갯벌의 게모양을 닮았다 하여 겟재로 불리어오다가 지금은 깃재로 불린다.
●.깃재~선치 구간
◎.월랑산(458m)<다랑산>『산』월암 남쪽에 있는 산.
◎.태청산[太淸山] 593m
전남 영광 / 장성, 영광에서 북동쪽 고창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에서 어디서나 동쪽이나 남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산이 태청산이다. 영광군 대마면과 장성군 삼서면 경계를 이루는 태청산은 영광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그래서 이 산은영광이나 장성뿐만 아니라 고창, 함평 등지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산이다.
대마면 곡창지대의 젖줄이기도 한 태청산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빼어나게 좋기 때문에 '대마막걸리'라는 명주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영광에서는 대마 막걸리 맛을 보지 않고 다른 술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할 정도다.
태청산은 산세가 육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상과 주능선 일부에 마치 코끼리 몸에서 상아가 돋아나듯 바위지대가 돌출되어 있어 경관을 한층 더 아름답고 돋보이게 한다. 정상에 오르면 영광에서 제일 높은 산임을
상징하듯 광활한 조망이 전개된다
◎.태청지맥 이란?
태청지맥은 영산기맥 태청산에서 분기되어 태산, 제당산, 월악산, 병풍산, 기암산, 병풍산, 망산, 구절봉, 국사봉, 백룡산, 청림산을 거쳐 고막원천이 영산강에 합류되는 석관정 까지 이어지는 거리 약 51.7Km의 마루금이다
◎.장암산(場岩山;482m)
전남 장성 / 영광영광의 장암산은 펑퍼짐하게 초원을 이룬 정상에 너럭바위가 있는데 덩그러니 올려 놓은 듯한 바위는 기이한 느낌을 준다. 마주보고있는 태청산은 이따금 눈에 띄는 단단한 바위들이 모가나 날카로운데 비해 장암산 정상에 덩그러니 올려 놓은 듯한 바위는 다듬은듯이 매끄럽다.
장암산은 바람을 타고 비행하는 행글라이더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주변경치가 아름답고 행글라이딩에 적당한 바람이 있기에 행글라이더들에게 인기가 많은 탓이다.
대마면의 넓은 들에 물을 대주어 그곳을 곡창지대로 만드는 태청산은 물맛이 좋을 뿐 아니라 수량도 풍부해 `대마막걸리'를 생산하는 원천이 되었다. 산세로 보아서는 육산이지만 정상과 능선일부에바위지대가 튀어나와 단조로움을 덜어준다. 정상에서는 영광읍이 다 보이고 백수와 흥농 앞바다도 볼 수 있다.
◎.장암지맥 이란?
장암지맥은 영산기맥 장암산 부근 분기봉에서 분기되어 장암산, 오동산, 우이봉, 검은산, 수태봉, 비룡양노원, 벼락재, 서금산, 동초교, 백두개재, 수리봉, 갓봉, 봉화령을 거쳐 대초마을 북쪽 바다로 이어지는 거리 36.8Km의 마루금이다.
●.사동고개(덤바위재,10:25).
상무대CC 정문 앞에서 사면을 치고 오르자 바로 이어지는 가시덤블이 이어져 산행을 시작한다.
조금 오르면 성인 키보다 훨씬 큰 산죽 군락지를 지나고 잡목과 가시덤불 극성지역이라 걱정했건만 겨울철이라 그런지 진행하는데 심한 장애가 되는 수준은 아니라 다행스럽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과 전남 장성군 삼서면 경계 및 전남 영광군 불갑면과 전남 함평군 해보면 경계.
●.318m(분성산) 앙증맞다고 해야 하나 조그마한 봉우리가 고요하기만하다.
◎.밀재(선치,13:35).
밀재는 22번 국도가 지나고 있으나 고개 아래로 터널이 개통되어 이곳은 차량 통행이 뜸하다.
밀재 버스 정류소에서 우측 묘량면 쪽으로 조금 이동한 후 '전망좋은곳' 입간판 있는 임도로 진입하여 마루금을 이어간다.
●.선치(밀재)~지경재 구간
◎불갑산 연실봉(516m,15:48).
불교적 색채가 짙은 불갑산은 영광군과 함평군 2개 군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모악산'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산세의 수려함과 신령스러움이 마치 산들의 어머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신령스러운 '불갑사'를 품고 있게 된 후부터는 '불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주변에 비해 비교적 골이 깊고 산세가 우람한 불갑산은 가을산행이 손꼽히는 곳이다. 가을철 추수가 끝나고 단풍이 무르익을 무렵 불갑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함평, 나주, 평야 일대를 바라볼 수 있고, 멀리 서편 서해 칠산 앞 드리우는 아름다운 바다의 낙조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꽤 넓은 바위로 이루어진 불갑산 정상 연실봉(516m)에 오르면 평야와 바다의 일몰을 지켜보면서 겨울산의 정취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불갑산만이 지닌 독특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불갑산의 단풍도 뛰어난 풍광도 좋지만,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고즈넉한 겨울 산행으로도 잡아 끄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산이 아닐까 싶다.
깊은 계곡의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오솔길도 불갑산의 자랑이다. 불갑사의 오솔길은 마치 산책로처럼 그리 가파르지 않아 사색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불갑산에는 꽃잎이 지고 나면 잎이 돋아 눈 속에서 봄까지 그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대표적인 명물 '상사초'가 있다.
◎.모악산(347.8m,16:46).
◎.화신골재(17:48).
이번 구간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임도 좌측으로 함평군 신광면 원산리 이다.이곳까지 25인승 버스가 대기 중이라 수월하게 마무리를 한다.
○.지경재(11;06).
미루금은 도로 건너 김철선생 숭모비 뒤쪽으로 이어진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곳에서 구봉고개까지 약 2.5km는 도로따라 좌측으로 이동, 서해안고속도로 하부통로를 통과한 후 고속도로 철망을 따라 능선길로 접어든다.
●.지경재~건김재 구간
○.금산 (305.4m,13;50)
상광암고개에서 힘들게 오르내림으로 진행하여 올라서는 갈림길 능선 분기점에서 영산기맥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우측 약 30m 정도 떨어진 곳이 삼각점이 매설된 금산 정상이므로 둘러 보기로 한다.
▲.금산 삼각점(와도,417/1985,재설)
○.군유산(406m,15;51).
고려 왕건, 공민왕의 발길이 이곳에 닿았다는데, 전해 내려오는 얘기와는 다르게 초라한 행색이다.유래는 아래 사진으로 대신한다.
○.복성이재(차경동고개).
2차선 도로가 지나는 복성이재에는 김해김공세장산비가 있다
◎.건김재(10:03).
손불면과 신광면을 잇는 838번 도로가 지나고, 고부이씨세장산비가 있다.원 마루금은 도로 우측으로 조금 이동한 후 산길로 진입하여 140봉을 올라야 한다.편의상 고부이씨 종친묘소로 이어지는 임도따라 묘소로 이동한 후 마루금을 접속하게 되므로 140봉은 우회 통과하는 실정이다.
도로 건너 건설폐기물 임시 야적장 출입문을 통과하여 묘소로 이어지는 임도따라 올라서서 첫번째 묘소 앞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계속 따르면 두번째 묘소에 도착된다. 두번째 묘소 좌측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산길로 진입하면 140봉에서 이어져 오는 마루금에 접속되어 160봉을 오르게 된다.
●.건김재~작동고개 구간
◎.발봉산(181m, 11:47).
오늘의 제1높은 봉우리다.정상석이나 표지판하나 없는 초라한 잡목만 무성한 발봉산이다.
발봉산 삼각점 2기만 덩거라니 남아 있다.
◎.영태산(135.2m,16;15)과 삼각점
◎.중봉(135m,16;56).
중봉에서 앞으로 나가면 암릉이 시작되는데, 암릉을 내려서면 길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잡목의 저항이 덜한 곳을 따라 내려서면 대규모로 조성된 밭 상단에 도착된다.<길 주의>
중봉을 내려선 다음 산세를 둘러보니, 중봉 정상에서 정면의 암릉쪽으로 진행하지 말고 우측으로 내려서자 다시 좌측 아래로 내려서는 것이 고생을 덜하지 않을까 싶다.
◎.산음고개(여시고개,10:10).
815번 도로가 지나는 산음고개 들머리에는 철문이 설치되어 있고 철문 사이를 지나 잘 관리된 묘소를 지나고 과수재배지와 넓은 잔디밭을 지나 신틀봉을 오르게 된다.
◎.곤봉산(190m.10:41).
이정석에는 영산기맥은 우측 '함평골프고, 초동마을' 방향으로 이어지고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작동고개.
811번 도로가 지나는 작동고개에서 도로따라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작동버스정류소이다
●.작동도로~초당대후문 구간
△.감방산 삼각점
◎.감방산(258m,12:52).
감방산에서 영산기맥은 우측 '도산마을' 3시방향으로 급하게 우회하여 나무계단길로 네려선다. <길 주의>.
감방산 정상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바로 갈림길이다. 직진 방향 희미한 산길은 영산기맥에서 벗어난 발산 방향으로 이어지고, 영산기맥은 우측 가파른 나무 계단길 따라 내려서야 한다
◎.186봉(산불감시초소,3:19)
이곳부터 뚜렷한 산길이 잠시 어지고 초소뒤 잡풀에 가려져 있는 삼각점을 확인 하고 24번 국도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을 이어간다.
△.초소 삼각점
△.병산 삼각점(목포/3001998/복구)
◎.172봉(16:37)
무안실버타운에서 172봉 정상까지는 영산기맥다운 산길이 이어진다.
잡목, 가시덤불, 쓰러져 있는 나무가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고사목과 가파른 오름길은 이곳이 영산기맥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다행스럽게도 172봉에서 초당대 후문으로 내려서는 산길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초당대 후문(16:57)
오늘의 목적지인 초당대 후문 진입한 후 기숙사로 이어지는 구내 도로를 약 20m 정도 따르면 도로 우측으로 남산, 연정산 등산로를 알리는 팻말과 시그널과 함께 상태좋은 산길이 보인다. 다음 들머리 확인후 오늘 산행을 종료 한다.
●.초당대후문~목포요양원 구간
남산 팔각정
△.마협봉 삼각점(목포,417/1986,재설)
◎.사자바위산(317m).
풍천노씨부부묘와 사각정자가 있고, 주변 조망이 좋은 곳 중의 한군데이다.
◎.승달산(333m).
승달산에는 헬기장이다. 가장자리에 삼각점이 매설되어 있고. 영산기맥 마루금은 헬기장 우측 4시 방향으로 이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승달산에 오르면 좌측 방향으로 400m 떨어진 정상석이 있는 깃대봉 있다.이곳 사람들은 깃대봉을 승달산정상이라고 칭한다.
무안의 승달산에는 호승예불형(好僧禮佛形) 즉 승려가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하며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그 날로 길을떠나 / 무안으로 작로(作路)하니 / 산진수회(山盡水回) 하는곳에 / 다소명혈(多少名穴) 없을소냐 / ..... / 사십삼절(四十三節) 건해맥(乾亥脈)에 / 승달산이 특립하니 / 금수병장(錦繡屛帳) 둘렀는데 / 우리스승 계시도다./ 당국이 평순하고 / 규모가 광대하니 / 제좌기상(帝坐氣像) 높았는데 / 산수회동 하였구나 / 천장지비(天藏地秘) 하온혈을 / 제마다 구경하리 / ..... / 성령(聖靈)은 여덟이요 / 장상은 대대로다./ 이후자손 천억이라 / 만세만세 장구하리 / 이 산로(山路) 헤아리니 / 구십팔대 향화(香火)하니 / 주인나서 찾거드면 / 일야간(一夜間)의 영장처(永藏處)라...."
이것을 대략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무안지방에 산줄기가 끝나고 물이 감도는 곳에 그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당연히 명당자리가 있을 것이다. 마흔세마디의 산줄기가 서북쪽에서 내려와 승달산으로 맺혔으며 비단으로 수놓은 병풍같이 생긴 형상아래 혈이 맺혔는데 형상은 평범하게 생겼지만 규모는 광대하여 임금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하늘이 깊이 감춘 것을 저마다 찾으려고 하지만은 성인이 여덟이고, 장상(將相)은 대대로 나며 자손이 번창하며 구십팔대의 세월동안 영화를 누릴수 있는 혈이라 사람마다 찾고자 하나 컴컴한 밤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형상이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신한국풍수 : 최영주 저자, 동학사 출간)
그런데 이러한 내용에는 산의 형상과 혈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만 있지 내용 어디에도 어느 특별한 종교를 상징하는 이야기는 없다.
◎.승달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온다.
승달산은 500명 불제자들이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남정맥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로 해발 317.7m로 비교적 낮은 산이다. 하지만 각종 풍수지리서에서 호남 8대의 명혈 중 제1의 혈처를 안았다고 하는 명산이다.
풍수상으로 보면 고승이 제자들을 모아좋고 불공을 드리는 이른바 노승예불(老僧禮佛), 혹은 호승예불(好僧禮佛)의 지세라고 하면서 우연히도 승달산 자락에는 국립 목포대학교, 초당대학교, 목포기능대학등 3개의 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새로운 전남 도청이 들어설 삼향면 남악리 지역은 풍수적으로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의 선황산과 목포 유달산, 그리고 무안의 승달산 정상이 이룬 삼각형의 중심이어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말한다.
(무안군청 관광자료집 참조)
그런데 이 이야기중 앞의 내용에는 승달산에 호승예불형이니, 노승예불형이니 하는 자리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뒤에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자리라고 이야기 하는것은 스스로의 모순에 빠진것이라고 밖에 볼 수 가 없다.
◎.깃대봉(333m)
영산기맥을 종주하면서 정상석을 본게 몇코스만인가?산도 산 같지않고 능선도 능선 같지가 아닌 길을 얼마나 달려 왔든가 이제 영산기맥도 그 대단원의 막이 눈 앞에 있지 아니 한가?
감돈재(목포요양원)
●.목포요양원~다순금 구간
◎.국사봉(283m).
△.국사봉 삼각점(목포,306/1989,재설)
◎.대봉산(251m).
등산 안내도가 있는 대봉산에서 영산기맥은 우측 방향으로 이어지며, 로프가 있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뚜렷한 등로와 합류된다
▲.지적산 삼각점
◎.지적산(188.7m).
지적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매설되어 있고 앞으로 진행할 지적산 웅지봉, 대박산, 양을산, 유달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목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 오는 전망이 좋은 봉우리다.
◎.대박산(천박산, 155.4m).
대박산에서 진행은 통신중계소 울타리 좌우 어느 쪽을 선택해도 된다.
울타리 우측으로 진행하면 송신소 정문으로 내려서게 되고 중계소로 이어지는 진입로따라 내려서면 목포재활용센타를 거쳐 레미콘 공장 삼거리로 이어진다. 울타리 따라 좌측으로 내려서면
산길을 따르다가 송신소 진입로에 합류되어 목포재활용센타를 거쳐 레미콘 공장 삼거리로 이어진다.
◎,양을산(156m).
이곳에서 마루금을 이어가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좀 전에 합류한 도로로 되돌아나가 도로따라 체육공원을 거쳐 길상사 입구로 진행하는 방법과 팔각정을 지나 체육시설에서 100m지나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산길따라 체육공원으로 진행한
후 도로따라 길상사 입구로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
▲.108.699m삼각점(1980년만 희미하게 보인다.)
◎.석산(71.355m).
석산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고.석산에서 영산기맥은 팔각정 바로 앞(아래사진 참조) 좌측 방향으로 내려서야 하고, 내림길에서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좌측 일신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중앙하이츠아파트로 내려서게 된다. 일부 영산기맥 종주자들이 중앙하이츠아파트 방향으로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곳은 바다 매립지라고하니 마루금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 볼 수 있다.
유달산 이등바위
◎.유달산(鍮達山,230m)
유교를 의미한다는 유달산의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오지만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 할만한 근거있는 이야기는 아무곳에도 없다는 것이다.
◇.유달산의 유래
유달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기록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한국지명총람》(14권 전남편-Ⅱ-, 한글학회)에 보면 「유달산은 유달동·서산동·죽교동·동명동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228m, 삼학도와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명승지로 “전남의 소금강”이라 불림. 노적봉·일등바위·흔들바위 들의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공원산지이다.
유달산의 이름은 한자(漢字)로 선비 유(儒) 또는 유도 유(儒)자와 사무칠 달, 이를 달(達)자를 써 유달산(儒達山)으로 쓴다. 그러나 옛날의 문헌(文獻)에서는 다르게 표기(表記)하고 있다. 한자로는 느릅나무 유, 서련쪽 유라고 하는 유(楡)자와 사무칠 달자인 달(達)자를 써서 유달산(鍮達山)이라고 하였으며 특이하게 뫼 산(山)자 대신 유달이(鍮達伊)라고 쓴데도 있고 일제시대에는 깨우칠 유(諭)자를 써서 유달산(諭達山)으로도 썼다. 그러니까 유달산을 한자로는 楡達山·鍮達山·諭達伊·諭達山·儒達山으로 쓰거나 쓰고 있다. 이렇게 한 이름을 서로 다르게 쓰고 있는 출처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楡 達 山(유달산)
유달산의 유자를 느릅나무 유(楡)자로 쓴 기록은 《증보문헌비고》(19권 여지고 7 산천편)에 나온다. 《증보국문헌비고》(명문당 발행, 상권 301쪽가) 지금의 해남군에 있는 옥천산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 찾을 수 있는데 《국역증보문헌》(여지고 2권 60쪽)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옥천산(玉泉山) : 한 기슭은 서쪽으로 금강산(金剛山)에 이르러 남쪽으로 해남현(海南縣)의 치소(治所)가 있고 서쪽으로 옥매산(玉梅山), 일성봉(日星峯)에 이르러 남쪽에 우수영(右水營)에 이르며 남쪽으로 명량(鳴梁)의 포구(浦口)에 임(臨)하고 일성봉(日星峯)으로 부터 서북쪽으로 등산(登山)의 포구에 이르러 동북쪽으로 유달산(楡達山)을 사강(沙江)의 남쪽에 바라본다.」
여기서 일성봉이란 지금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일성산을 이르고 등산은 현재 목포의 해안동쪽에서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를 오가던 나루터이다. 또한 사강(沙江)이란 영산강의 옛 이름이다. 그런데 같은 기록의 바로 다음에 유달산(鍮達山)으로 씌어 있는 것을 보면 유달산(楡達山)은 기록상의 오기(誤記)라고 밖에 볼 수가 없고 또 유일하게 여기에서만 유(楡)자를 쓰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바침한다.
2013년 12월1일 출발한 영산기맥 약170KM 긴 여정을 2014년 5월4일 완주 하였습니다. 참석하신 회원님들 아무런 일없이 무탈하게 완주하신데 축하를 드리며.또다른 땅끝기맥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긴여정에 고생들 많았습니다.
첫댓글 긴여정산행함겠하느라수고했습니다
좋은내용글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