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탐문회 3차 민오름, 4.3평화기념관 답사 자료
▲ 답사일시 : 2015년 6월 21일(일요일) 09:00~16:00
▲ 답사일정 : 09:00 제주시청 출발 → 10:00 민오름 입구 도착 등산 - 12:00 점심
13:30 평화공원 둘러보기 → 15:00 주차장 출발 → 16:00 제주시청 도착 해산
*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답사안내 : 김창집 직전회장(010-5698-1948)
1. 민오름(뒷민오름, 무네오름, 敏岳)
① 소재 : 제주시 봉개동 산64번지 일대
② 현황 : 표고 651m, 비고 136m, 둘레 3,433m, 면적 581,910㎡, 저경 1,042m
③ 특징 : 북동쪽으로 터진 말굽형 화구를 가지고 있으며, 말굽형 화구 침식부는 그 형태가 잘 보존된 소위 혀 내민 모양(tongue-like type)을 하고 있으며, 말굽형 화구 상단부, 즉 주봉의 안쪽 사면에는 깊이가 약 70m쯤 되는 깔때기형 화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민오름은 남쪽 봉우리를 주봉(主峰)으로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가 완만한 기복의 등성이를 이루면서 북동쪽으로 터진 말굽형 오름이다.
④ 식생 : 말굽형 화구 안에는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오름 전사면은 울창한 자연림을 이루고 있다. 정상 남쪽 사면에 억새와 찔레, 청미래덩굴 등이 엉켜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말굽형 화구 안과 밖의 오름 전사면은 울창한 자연 혼효림을 이루고 있는데, 겨울에는 서쪽 길가 낮은 곳에 복수초와 나도바람꽃이 많이 핀다. 주요 식생을 보면 서어나무, 개서어나무, 물참나무, 졸참나무, 층층나무, 곰의말채, 소나무, 당단풍, 굴거리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아교목층, 산벚나무, 참꽃나무, 쥐똥나무, 국수나무, 동백나무, 꽝꽝나무, 보리수 등의 나무와 고사리를 비롯한 관중, 개족도리, 억새, 띠, 백량금, 자금우, 마삭줄, 계요등, 댕댕이덩굴, 인동덩굴, 천남성 등이 자란다.
⑤ 이름의 유래 : ‘오름나그네’(김종철, 1995.) - 산 위에 나무가 없어 민머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오랜 옛날 민머리였거나 아니면 다른 말의 와전인지도 모른다. 일명 무녜(무녀)오름이라고도 하는데, 세모진 산머리가 송낙(여승이 쓰는 모자인데 제주에서는 무당의 쓰는 고깔모자를 이르기도 한다.)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오창명, 1998,) - 이 오름은 ‘탐라지’에 ‘禿岳(독악)’, ‘제주삼읍전도’, ‘제주군읍지’ 등에 ‘文岳(문악)’, 민간에서는 ‘민오롬’이라 한다. ‘禿’은 ‘민’의 훈독자 표기, ‘文’은 ‘민’의 불완전한 음가자 표기로 모두 ‘민오름’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곧, 옛날 민둥산이었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⑥ 가는 길 : 봉개동에서 번영로(97번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절물자연휴양림으로 가면 입구 맞은편으로 진입로가 나 있다. 비자림로를 따라 가다가 산책로 표시가 된 곳으로 오를 수 있으나 가파르다.
2. 제주 4.3 평화공원
4.3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을 교육하게 될 ‘제주4.3평화기념관’이 지난 3월 28일 4.3 60주기를 앞두고 문을 열었다. 제주시 거친오름 기슭에 자리한 제주4.3평화공원에 들어선 이 기념관은 지하2층, 지상3층 연면적 1만1천455㎡ 규모로, 제주의 설문대할망 설화를 바탕으로 해서 4.3의 모든 아픔을 담은 그릇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200석 규모의 대강당과 세미나실, 유물 수장고,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실은 4.3사건의 전개 과정에 따라 ‘역사의 동굴’, ‘흔들리는 섬’, ‘바람 타는 섬’, ‘불타는 섬’, ‘흐르는 섬’, ‘새로운 시작’ 등 6개 상설관과 희생자 유해 11구가 발견된 다랑쉬굴의 현장을 재현한 동굴 등 2개의 특별관도 꾸며졌다. 그밖에 4.3 관련 문화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시실과 어린이 체험실 등이 마련됐으며, 기념관의 외곽에는 독일 베를린시가 기증한 ‘베를린 장벽’ 2개가 설치됐다.
이곳 평화공원과 기념관의 건립 배경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2002년에 1948년 남로당 무장봉기로 군경이 무력진압한 제주도 4.3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4.3사건의 진실과 화해의 과거사 정리 차원의 4.3평화사업의 하나이다. 총예산 993억을 들여 2009년에 대규모 평화공원이 완성되었고, 계속적인 추가 사업을 벌이고 있다. 기념관은 평화공원 안의 주 건물로 연건평 1만 455㎡ 규모의 4층 건물로 380억 원이 들었다한다.
외부 시설로는 위령제단을 중심으로 시간의 길, 각명비, 조형물(변병생 모녀상), 위령탑, 조형물(귀천), 지역별추념관, 추념광장, 유해봉안관, 행방불명인 표석 등이 설치되어 있다.
□ 참고 자료 : 제주 4․3 사건
1. 제주4.3사건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음력 2월 24일) 새벽 1시 한라산과 제주지역의 89개 오름에 일제히 봉화가 오르면서 터진 사건으로 아직까지도 좌파(左派)나 우파(右派)가 자신들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으며 정확한 명칭도 정해지지 않았으나, 머지않은 장래에 역사가들에 의해 정당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다음은 4.3사건에 대하여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언급된 내용이다.
① ‘4․3특별법’ 제2조 -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함. ②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결론 부분 -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536쪽).
2. 제주4․3사건과 오름
오름은 제주4․3사건의 배경이라 할 만큼 사건에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제주도 전역에 수많은 오름이 골고루 산재해 있고, 도민의 생활에서 오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데서 더욱 그렇다. 먼저 봉기의 시작을 알리려고 새벽 1시를 기해 89개의 오름에 일제히 봉화를 올렸다는 사건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조선시대 섬의 해안선 가까운 오름에 25개의 봉수(烽燧)를 설치해 놓고 상호 교신했었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결7호 작전에 의해 제주도에서 마지막 옥쇄작전을 펴기 위해, 군인과 주민들을 동원하여 도내 주요 오름에 굴을 파고 여러 가지 시설을 하기 시작할 즈음,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 투하로 항복을 하고 떠난 후 얼마 없어 4․3사건이 일어나서 이곳이 피신자의 은신처가 되었으며, 무장대들은 이를 아지트로 삼아 생활을 하면서 훈련과 작전을 수행했다.
또한 오름과 그 주변은 은신했던 주민들이 발각되어 현장에서 사살되거나 작전 중에 잡힌 포로들의 처형 장소로 이용되거나 제거를 위한 은밀한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오름은 때맞춰 파놓은 굴과 울창한 나무, 그리고 높은 데서 적의 접근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장대나 마을 사람들에 의해 이용되었고, 그 때문에 토벌대에 의해 많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4․3유적지로 알려진 50곳 중 오름은 토벌대 주둔소가 3곳, 학살터가 1곳, 총살을 집행하고 암장한 오름이 1곳으로 나와 있다. 토벌대 주둔소로는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 2-1번지 일대 수악주둔소, 서귀포시 서호동 산 1번지 일대 시오름 주둔소, 서귀포시 중문동 산 5번지 일대 녹하지 알오름 주둔소 등이다. 주둔소는 산에서 활동하는 무장대와 해안으로 내려간 주민들을 차단시키며, 무장대가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한편, 작전 지휘소가 되었다.
다음은 제주시 화북1동 소재 별도봉 남쪽에 있는 일본군 진지동굴로 1948년 겨울, 토벌대에 의해 총살이 집행·암장된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언제, 몇 사람이 희생됐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주민들의 증언에 의해 유해 발굴 사업을 벌여, 여러 구의 시체를 찾아냈다. 자료에 따르면 9연대 장병들에 대한 숙청 작업시 이 일대에서 총살에 처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592-2, 1597-2번지 일대에 위치한 송악산 섯알오름 탄약고 터는 학살 터로 유명하다. 이곳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후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할 때, 모슬포를 중심한 제주도 서부지역의 예비검속자 132명을 처단한 장소이다. 현재 이곳은 2001년 2월, 유족들이 희생자 시신과 유물들을 재발굴하면서 그 전에 일부 메워졌던 현장을 모두 파헤쳐 놓아 큰 구덩이가 형성되어 있다. 현장 입구에는 사건 개요를 설명해주는 안내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 밖에 4.3유적지인 오름은 다음과 같다.
(1) 봉개동 산78-1번지 일대 ‘족은대나오름 일본군 진지동굴’ - 봉개주민들이 5․10선거를 거부하여 며칠 동안 피신했던 곳이다. 주민들은 200여명이 들어갈 정도로 큰 일본군 진지동굴 중심으로 은신했었다.
(2) 봉개동 산2번지 일대 ‘명도암오름 일본군 진지동굴’ - 1948년 11월 20일경 명도암 마을이 소개되었을 때 주민들이 피신하여 지내던 곳이다.
(3) 봉개동 1800번지 ‘봉아름 군주둔지 옛터’ - 1949년 2월 4일 동부 8리 대토벌작전을 감행했던 2연대 일부병력이 성을 쌓아 주둔했던 곳이다.
(4) 도두1동 ‘도두봉’ - 1948년 5월20일, 토벌대가 도두리를 기습해 무차별 체포한 주민과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던 사수동 출신 어부 5명 등 주민 10명을 학살한 곳이다.
(5) 조천읍 교래리 산137-1번지 일대 ‘말찻오름’ - 1948년 11월 중순, 대토벌을 피해 조천면과 남원면 중산간 마을 주민 다수가 숨어 지내던 곳이다.
(6) 조천읍 교래리 산 108번지 ‘바농오름’ - 1948년 11월 중순경 조천면 중산간 마을이 초토화된 뒤 인근주민들이 숨어살던 곳이다.
(7) 구좌읍 종달리 말미오름(두산봉) 일대 ‘말미오름 희생터’ - 4․3초기 세화지서에서 고문을 당하여 거의 죽음 직전에 있던 하도리 지도자들을 학살한 곳이다.
(8) 애월읍 어음리 ‘바리메 토굴’ - 1994년 이곳에서 4․3당시 숨어 있다가 토벌대에 희생된 정 아무개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9) 애월읍 봉성리 산59-8번지 ‘새별오름’ - 새별오름은 유격대의 훈련장이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한림면 유격대의 거점이자 서북부지역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10) 한립읍 명월리 ‘갯거리오름 일본군 진지동굴’ - 1948년 5월14일, 한림지서를 습격하고 돌아가던 무장대가 당시 독립촉성국민회 간부의 가족 4명과 한림면사무소 직원 집안의 3명을 납치해 살해한 곳이다.
(11) 대정읍 상모리 ‘섯알오름 탄약고터’ - 6․25전쟁 발발 직후인 8월 20일 모슬포를 중심으로 한 제주도 서부지역의 예비검속자 132명을 군인들이 학살한 장소이다.
(12) 사귀포시 중문동 산5번지 일대 ‘알오름주둔소’ - 100사령부 소속의 경찰토벌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이상은 제주도와 4․3연구소가 공동으로 펴낸 ‘제주 4․3유적’에서 발췌했음)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잘보고 갑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