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스포츠의 발전과정>
15세기를 전후하여 생겨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사교춤은 민속무용에 그 뿌리를 두고 발전되었으며, 이렇게 발전된 사교춤은 17세기부터 유럽의 궁중 무도회에서 사교를 목적으로 남녀가 서로 원형을 이루고 파트너를 바꾸어 추는 춤의 형식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는 유래나 기원을 밝힐 수 없는 많은 춤들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그리고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유행하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이에 동반한 사회적 대변혁을 겪으면서 새롭게 획득한 정치적 자유는 댄스를 포함하여 사실상 삶의 모든 측면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럽 역사상 최초로 남녀가 공개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특권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궁중무용이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일반화되고 대중화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남녀 1조가 어울려 추는 춤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19세기까지는 발레의 기법을 사용하는 올드타임(Old Time)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세기 이후 민속음악의 요소가 크게 가미된 댄스 음악의 발달과 함께 각종 사교댄스로 발전하여 갔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댄스를 올드타임과 구별하여 모던댄스라고 불렀다.
한편 미국에서는 유럽에서 이주하여 정확한 사람들이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한 1800년경부터 사교춤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무용교사가 무용 정규반을 가르쳤고, 상류층의 가정에는 예절과 사교춤을 전담하여 지도하는 무용교사가 반드시 있었다. 여러 모임의 절정은 사교춤이었고 춤은 가장 인기 있는 오락 중에 하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춤에 매료되었다. 이때의 사교춤의 종류는 버지니아 릴, 컨트리 지그, 쉐이크 다운즈 등이 있었다.
1830년대에는 유럽에서 왈츠와 폴카가 유행하고 이것이 바로 미국에 수입되었다. 또한 입장료를 받는 무도회장이 여러 곳에 세워졌다. 대부분의 단체에서는 정기적으로 무용행사를 열었고 언제나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왈츠’, '폴카‘, '카드릴’, '요크’, ‘포틀랜드’, ‘팬시’, ‘칼레도니아’, ‘버지니아 릴’ 등이었다. 춤은 점점 호화스럽고 대규모화 되어갔다. 1985년 Allen Dadworth는 사교춤 교재를 출판하였는데, 여기에는 스텝과 도표를 곁들인 춤의 체제와 개요가 음악과 함께 상세하고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춤들이 발전하여 현재의 댄스스포츠가 만들어지는 모체가 되었으며, 이러한 발달과정으로 댄스스포츠는 사교와 예절을 매우 중요시하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춤은 음악과 함께 추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댄스의 명칭은 왈츠, 탱고, 룸바 등 종목별로 댄스음악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무도회에서 추는 춤이란 뜻의 볼룸댄스란 명칭은 1922년 개최된 ‘세계 프로페셔널 볼룸 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영국황실 댄스교사협의회‘(ISTD)가 1904년 설립되어 모던댄스의 연구개발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ISTD는 1924년 볼룸분과 위원회를 설치하고 왈츠, 탱고, 퀵스텝, 폭스트롯트, 비엔나 왈츠 등 5개 종목의 도형과 기법을 정리하여 모던 볼룸댄스의 개정기법을 발표하였다. 또한 ISTD는 1974년 룸바, 차차차, 삼바, 파소도블, 자이브 등 5개 종목의 도형과 기법을 정리하여 라틴아메리칸 댄스의 개정기법을 발표하였으며, 그에 따라 국제선수권 대회의 경기종목은 모던댄스부분 5개 종목과 라틴아메리칸 댄스 5개 종목으로 통일되었다.
영국의 이러한 노력은 세계 댄스의 중심지를 파리에서 런던으로 옮겨 놓았으며, 영국스타일의 모던댄스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발레에 기초한 궁중무용형식은 점차 사라지고 20세기 후반에는 대중화 시대에 적합한 대중댄스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축음기, 라디오, TV 등이 크게 보급되면서 댄스음악은 대중음악이 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칸 계통의 댄스음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업주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로 급속하게 번져나갔다.
이즈음 세계 각국은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하여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였으며, 각종 스포츠 대회가 프로와 아마추어로 구분하여 개최되었다. 자연히 세계의 무도계는 프로와 아마추어로 양분되어 프로 무도인들은 1950년 스코틀랜드 에덴바라에서 국제무도평의회를 창설하였고, 아마추어 무도인들은 1957년 독일 바스바덴에서 국제 아마추어 무도인 평의회를 창설하였다.
그 후 ICBD와 ICAD는 협동과 경쟁을 통하여 볼룸댄스의 보급에 주력하였으며, 각종 국제경기 대회를 자주 개최하여 볼룸댄스가 경기댄스로 발전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기댄스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중요한 목표로 창설된 ICAD는 1980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입을 꾸준히 추진하여 왔으며, 경기댄스의 올림픽 스포츠로서의 적합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볼룸댄스보다는 댄스스포츠라는 명칭이 더욱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ICAD는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앞두고 회원국들에게 볼룸댄스를 대신하여 댄스스포츠로 명칭을 바꾸어 사용하도록 권장하였으며, 마침내 1990년 댄스스포츠를 관장하는 국제적인 연맹이란 뜻에서 ‘국제댄스스포츠연맹’으로 다시 탄생되었다.
같은 해 프로단체인 ICBD도 ‘세계 댄스스포츠평의회’로 개명하였으며, 이로써 세계 무도역사에서 볼룸댄스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댄스스포츠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하였다. IDSF는 1977년 6월 파리의 총회에서 WD & DSC의 준회원 가입을 인준하였으며, IDSF는 헌신적인 노력 끝에 1997년 9월4일 스위스 로잔느에서 개최된 ‘제106회 국제올림픽총회’에서 올림픽헌장 제29조에 의거 국제 올림픽위원회의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다. 또한 IDSF는 2008년 올림픽대회에서 댄스스포츠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1977년 9월 현재5대륙에서 69개 회원국을 확보하고 있고, 39개국에서 자국의 NOC 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댄스스포츠를 보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 2005. 변해심 "댄스스포츠의 특성을 통한 발전 방향"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