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대형 마트에서도 수입 맥주를 구입할 수 있지?
전세계적으로 1만 5000종류 이상의 맥주가 판매되고 있고 독일은 양조장 숫자만 3천 군데가 넘는데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수입 맥주는 아주 제한적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뭘 골라야할지 망설여지는 횽들이 있을 거야.
그런 횽들을 위해 맥주병이나 캔에 적힌 이름만 봐도 대충 맛을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게.
흔히 맥주를 생맥주와 병맥주로 구분하는데 그건 열처리 방식에 따른 거야.
생맥주는 열처리를 하지 않아서 효모가 살아있지만 병맥주는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효모를 살균처리한 다음 유통하는 거야. 똑같은 브랜드의 맥주라면 효모가 살아있는 생맥주 쪽이 더 맛있지.
맥주를 분류하는 또다른 기준은 발효 방식에 따른 것인데 상면발효(上面醱酵) 맥주와 하면발효(下面醱酵) 맥주로 나눌 수 있어.
상면발효는 20도 안팎의 온도에서 발효를 진행시키는데 이렇게 되면 효모가 맥아즙 위로 떠오른 채 발효가 되기 때문에 상면발효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만들어진 맥주는 탄산이 적고 색이 진하며 과일향이나 꽃향기가 나는 게 특징이야. 이런 상면발효 맥주를 에일(Ale)이라고 하지.
하면발효는 1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발효를 진행시키는데 효모가 아래로 가라앉은 채 발효가 되기 때문에 하면발효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만든 맥주는 향이 적은 대신에 맑은 황금색을 띠고 탄산이 많아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한 ‘톡쏘는 맛’이 되지. 이런 하면발효 맥주를 라거(Larger)라고 해.
(OB에서 라거라고 이름 붙힌 맥주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하면발효로 만들어진 맥주 전체를 부르는 이름일 뿐이야)
에일과 라거는 각각 또 여러 가지 맥주로 나눠지지만 여기선 대표적인 맥주 종류에 대해서만 얘기해 볼게.
에일 맥주로 분류되는 것들 중에선 스타우트(Stout)와 바이스(Weiss) 맥주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어.
먼저 스타우트는 맥주의 원료가 되는 맥아를 볶아서 만드는 맥주야. 맥아를 볶았기 때문에 색이 진하고 구수하거나 씁쓸한 맛이 나지.
흔히 흑맥주라고 부르는 맥주가 바로 이 스타우트인데 영국이나 아일랜드쪽 스타우트가 유명해.
대표적인 스타우트 맥주는 역시 기네스! 세계의 온갖 최고 기록을 모아둔 기네스북을 만드는 회사가 바로 흑맥주로 유명한 기네스사야.
그리고 바이스는 맥주를 만들 때 밀을 50% 이상 사용한 밀맥주야. 바이스(Weiss)가 바로 밀을 말하는 거거든.
지역에 따라 바이젠(Weizen)이라고도 하고 영어권에선 휘트비어(Wheat Beer)라고도 해.
밀은 보리만큼이나 오래된 맥주의 재료인데 밀로 만든 맥주는 감칠맛과 과일과 같은 향기가 나는 게 특징이야.
하지만 양조 과정이 어렵고 끈적거림이 있어서 단독으론 사용하지 못하고 보리와 섞어서 맥주를 만들지.
그런데 맥주순수령이라고 해서 독일에선 보리, 홉, 물, 효모 외에는 다른 재료를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독일산 맥주 중에 밀을 사용한 바이스비어가 나올 수 있을까?
이건 재미있는 역사 얘기니까 맥주 마시면서 자매님들 꼬실 때 사용하라고 짤막하게 설명을 좀 할게.
사실 맥주순수령이라는 게 맥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용도만은 아니었어.
16세기 무렵의 독일에선 대개 백성들이 보리로만 만든 맥주를 마시고 귀족들은 밀맥주를 즐겨마셨을 정도로 밀맥주는 맛이 좋은 맥주거든.
그런데 맥주의 주재료가 되는 보리는 왕실이 독점적으로 재배권을 움켜쥐고 있었어.
왕실 입장에선 백성들이 보리를 많이 재배할수록 세금을 많이 거둘 수 있으니까 보리 말고 다른 곡식으로는 맥주를 만들지 못하도록 금지할 필요가 있었던 거야.
그 당시 독일에선 빨리 취하게 만들기 위해서 독초를 넣는 양조업자도 있었다지만 맥주순수령이 제정된 밑바탕엔 백성들을 더 많이 착취하려는 왕실의 탐욕이 깔려있었던 게 사실이야.
1567년 독일 왕실이 밀맥주 제조를 금지할 때 백성들에게 내건 명분은 밀맥주는 영양분이 없어서 마셔도 힘이 나지 않는 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
그런데 그런 거짓말로 밀맥주 제조를 막기엔 밀맥주의 맛이 너무 기막혔거든.
그래서 15세기부터 밀맥주를 만들어온 데켄베르크(Degenberg) 가문 만큼은 맥주순수령과 상관없이 밀맥주를 계속 만들 수 있도록 예외가 인정됐지.
그리고 1602년, 데켄베르크 가문의 대가 끊기자 밀맥주 양조권은 바바리아 왕실 소유가 됐어.
그래서 바바리아 지역(바이에른, 뮌헨)에선 맥주순수령을 벗어나 꾸준히 밀맥주를 만들 수 있었던 거야.
하여간 이런 밀맥주에도 효모를 걸러낸 클리어 바이스와 효모를 걸러내지 않은 헤페바이스 두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엔 헤페바이스 계열이 잘 맞는 것 같아.
독일어로 헤페는 효모라는 뜻이니까 헤페바이스는 효모가 남아있는 밀맥주라고 해석하면 돼.
물론 생맥주가 아닌 경우 헤페바이스에 남아있는 효모는 죽어있는 상태로 가라앉아있는 셈이지만 그래도 그게 꽤 맛이 있거든.
헤페바이스 맥주로 유명한 건 호가든이나 에딩어, 바이엔슈테판 맥주가 있지.
참고로 호가든은 얼마 전부터 OB에서 라이센스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맛이 옛날 같지 않아. -.-
그 다음, 라거.
라거 중에서 제일 유명한 건 아메리칸 라거인데 말 그대로 미국식 맥주라고 할 수 있어.
대량 생산을 위해 발효시간도 짧게 줄이는 등 맛과 향을 희생해 만든 맥주지. 좋게 말하면 깔끔하고 나쁘게 말하면 깊이가 없다고나 할까.
맥주의 본고장 유럽인들은 이런 아메리칸 라거를 맥주도 아니라고 폄하하지만 값이 싸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이기도 해.
밀러, 버드 와이저, 코로나 같은 것들이 아메리칸 라거의 대표 주자들이고 국산 맥주도 대부분 이쪽 계열이지.
흔히 맥주의 맛을 평가할 때 진하고 묵직한 맛을 바디감이 있다고 하는데 라거 계열엔 이런 바디감이 별로 없어.
사실 맥주 마니아들이나 외국인들이 한국산 맥주를 싫어하는 이유도 대개는 바디감이나 향기가 없고 깔끔하기만한 아메리칸 라거 계열의 맥주를 싫어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거의 다 아메리칸 라거 계열들이고 그마저도 하이 그래비티 공법으로 물타기를 해서 팔고 있으니 제대로 만든 맥주를 먹어본 사람들 입맛엔 불만스러울 수밖에.
High Gravity Brewing System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술에 물타는 기계
페일(Pale) 라거는 아메리칸 라거보다는 좀 더 쌉쌀한 맛이 살아있고 연한 황금색인데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유러피안 페일 라거라고 해.
이쪽으로는 하이네켄이 제일 유명하지.
필스너(Pilsener, Pils)는 체코에서 처음 만들어진 라거 맥주야. 아주 밝고 투명하지.
맥주에 있어서만큼은 체코도 독일 못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데 이 필스너 양조법이 여러 나라로 확산되면서 아메리칸 라거와 페일 라거에 영향을 미친 거야.
유명한 맥주로는 필스너 우르켈, 벡스 등을 꼽을 수 있을 듯.
둥켈(Dunkel, Dunkles)은 라거 계열의 흑맥주야. 맥아를 볶아서 사용한다는 건 스타우트와 같지만 라거 특유의 하면발효 때문에 맛과 향에 차이가 있어.
벡스에서 나온 다크 제품이 유명하지. (맥주 이름에 다크나 브라운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대부분 맥아를 볶은 흑맥주 계열이라고 보면 돼)
복(Bock)은 재료를 더 많이 넣고 오랫동안 발효시켜서 알콜 도수가 높고 맛이 강한 맥주야.
독일에서 추운 겨울을 이기기 위한 용도로 만든 독한 맥주지.
일반적인 맥주의 알콜 도수가 5% 안팎인데 복은 제조사에 따라 알콜 도수가 11%가 넘는 경우도 있어. (보통 복 맥주는 7~8도 정도)
드라이(Dry) 맥주는 일본에서 개발한 건데 쌀이나 옥수수 당분을 넣어서 발효 과정에서 찌꺼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든 맥주야. 단맛이 적고 뒤끝이 깨끗하지.
얘기가 길어지다보니 오늘은 여기까지.
첫댓글 생맥주의 상쾌함은 병맥주가 따라가기 힘들지만... 장사 안되는 생맥주집이나, 생맥주 노즐을 자주 청소하지 않는 가게의 생맥주는 상한 맥주를 마시게 되는 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