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 |
불, 법, 승 |
반면에 원불교 교주는 부처님이 아니라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실재했던
소태산(少太山이라는 호를 가진 박중빈(朴重彬)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교리는 정전과 대종경이라는 소태산의 어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단의 구성 또한 불교의 교단과는 판이합니다.
따라서 종교 형성의 구성요건으로 보았을 때 불교와 원불교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불교 | 원불교 |
석가모니 부처님 | 소태산 박중빈님 |
또한 원불교가 비록 그 연원을 불교에 두고 있으나, 불교와는 역사적 교섭관계가 전혀 없으며,
불교 교리의 분파적 입장이 아닌 전혀 새로운 교단으로서의 개혁과 창조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정교입니다.
따라서 교단의 운영방식과 제도면에서도 불교의 사찰제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원불교가 내용적으로 다소 불교적인 면이 있으나 형식적인 면에서는 불교와 동질성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불교행사에 참여하지도 않고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불교와 구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견해도 잘못이다. 원불교도 부처님 오신날을 4대 봉축일로 봉축한다.)
그 밖에 표면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을 든다면
원불교는 일원상의 진리라는 것을 최고 종지로 내세워 원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그 어떤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는 궁극적인 경지인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 불교는 구체적인 신봉 대상을 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일원상을 신봉한다는 우학스님의 해설은 완전히 잘못이다.
원불교는 깨달음의 원리를 일원상으로 설명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원불교는 불교의 근본진리와 일부 사상적 맥을 같이 하는 부분도 있으나 불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입니다.
<우학스님 신행상담> 中에서
댓글
장민수:
원불교에서도 '부처님 오신날'은 원불교 4대 봉축 행사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탄생일'이 아닌 '대각하신 날'을 봉축합니다.
불교와의 차이점은 등상불을 모시지 않고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법신불 일원상을 모시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하는 종교입니다.
원기 93년인 원불교는 93년 전에 남녀 평등을 내세워 원불교 최고직인 종법사를
여성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현재 교구장도 절반이 여자교무가 재직중에 있습니다.
송도원:
원불교는 일원상의 진리라는 것을 최고 종지로 내세워 원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그 어떤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는 궁극적인 경지인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 불교는 구체적인 신봉 대상을 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법당에 불상을 모시고 있지요.
그런데 이 불상을 모신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복적인 신앙을 하게 하는 폐단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원불교는 법당에 모신 불상이 궁극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고 기복적인 면을 부각시킨다고 보고
불상을 철패하고 궁극적인 깨달의 진리(말로 표현할 수 없고 형태가 없는 진리)를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서
일원상으로 그리고 법당에 불상대신 일원상을 모신것 뿐입니다.
원불교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궁극적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일원상은 원래 불교에 있는 것입니다.
단편적으로 성철큰스님이 3000배를 하면 종이에 그려주신 것이 바로 일원상(동그라미)입니다.
http://blog.daum.net/elsa123/16788303
한국불교의 특징, 원불교와 한국불교의 차이점
1. 원불교의 특징
(1) 현실적이다.
그 당시 여러 종교들에서 보이던 기적이나 신통같은 것을 부정하고 철저하게 현실적 실용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리하여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 같이하면서 개간을 하고,
농사를 짓고 하면서 자립적인 교단을 구축했습니다.
(2) 유교적 색체가 강하다.
기존의 전통적 불교가 유교적 덕목인 충, 효 등과 같은 것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않고,
가정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에만 힘쓰는 경향을 보였는데,
원불교는 유교적인 사상을 거부하지 않고 충,효,인의 같은 유교적 덕목을 같이
강조하면서 그것을 자기들의 경전에 포함시키며 실천을 했습니다.
(3) 출발이 토착적이다.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가 기존의 어느 불교 종단에 소속되어 그 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혼자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달음을 얻고, 나중에 불교와 자기의 사상이 일치하는 것을 보고
불교 쪽으로 소속되어 온 것이므로 출발이 토착적입니다.
수행의 과정 중에 불교 뿐 아니라 그 당시 토착 종교인 동학, 증산교 등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2.한국불교의 특징
(1) 통불교적이다.중국, 일본 등의 불교에서는 종파, 교파의 구분이 뚜렷하여 따로 공부하고 수행을 하는데,
한국불교에서는 선종과 교종의 구별이 거의 없고, 한 절에서 일단 교를 공부하고,
그리고 선을 공부하고 하면서 강원과 선원이 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토종적인 염불도하고 합니다.
여러가지 수행법을 같이 쓰면서 깨달음에 이르려고 한다고 합니다.
(2)원융회통적이다.
이것은 위의 (1)과 비슷한 맥락이긴하나 사상 자체로
나누기 보다는 통합 회통하는 쪽이 강조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원효의 사상이 그렇고, 의천, 지눌 모두가
항상 그런 쪽으로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3) 호국불교적이다.
이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그런 것 입니다.
나라가 작고 항상 외침에 시달리다 보니까 승려도 급하면 나라를 위해
무기를 들어야 한다는 의식이 잠재해 있는 듯 합니다.
요즘도 어떤 외국출신학자는 한국 스님들이
군대에 현역 전투병으로 가고 총들고 훈련하고 유사시에
전투에 참가하는데 대해서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우리 스님들은 그런대 별로 저항감이 없는 듯 합니다.
(4)전불사상에의한 자존심같은 것이 있다.
삼국유사 이래로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부처님이 여기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고,
최근에도 부처님이 한국땅에 왔다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수미산이나 여러 지명들이 한국을 의미한다는 주장 등
한국이 다른 어느 나라 보다도 불교의 정통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은연 중에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sb0275?Redirect=Log&logNo=60121029208
원불교와 불교의 관계 反芻와 感想
석가모니를 칭송.비판하기도...
대종사께서는 때로 석가모니불을 크게 칭송하시는가 하면때로 불교를 크게 비판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원불교와 불교와의 관계를 알고 싶습니다.
답:
(((김경일 교무 - 종로교당)))
우선 우리는 이 질문의 원만한 이해를 위하여 대종사께서 새로운 교법으로
새 회상을 여신 때(시기)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대종사께서 회상을 여신 때는 우주사적으로 선천(先天)과 후천(先後)의 교역(交易)기라고 말합니다.
정산종사께서는 이를 밤과 낮이 서로 바뀌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우리가 밤과 낮을 생각할 때 그 질서 안에 생활하는 사람(생령)들의 삶의 양식과
특징이 다르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되시리라 믿습니다.
선후천을 총섭하고 밤과 낮을 주관하는 진리의 세계는 항상 여여하나
그 가운데 선후천의 문명 판도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원불교의 교리와 가르침은 후천의 문명도수에 따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과거의 불교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대종사께서는 불교의 한계에 대한 엄격한 비판과 함께 그 혁신을 주창하셨습니다.
대종사께서 직접 집필하신 ‘조선불교혁신론’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저서는 불교의 등상불 숭배를 타파하여 불성(佛性)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신앙하도록 하는가 하면
시대에 맞지 아니하고 출세간적인 각종 제도와 교리의 혁신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간추리면 ‘불교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조선불교혁신론의 중심 사상은 훗날 원불교 교법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대종경 서품15-19장 참조)
한편 대종사께서는 특정 종교나 스승의 지도 없이 진리를 스스로 깨달으셨지만
그 진리를 이미 과거의 많은 성현(聖賢)께서 이미 깨치신 것임을 뒤늦게 알으셨습니다.
과거의 많은 성현들이 진리를 이미 먼저 아시고 창생 제도에 애쓰신 것을 찬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에도 진리의 깊고 낮음(深淺)이 없지 않다고 하시며
“석가모니 부처님은 진실로 성인(聖人)들 중의 성인(대종경 서품 2장)”이라고 칭송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종사께서는 자신의 구도와 깨달음의 과정이
서가모니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가 많다 하시며
깨달음의 연원(淵源)을 부처님에게 정할 것과 함께
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佛法)을 주체삼아
광대무량한 회상을 건설할 것을 만 천하에 천명하셨습니다.
대종사께서는 과거 서가모니불의 깨달음에 대하여는
그 공덕을 높이 드러내시고 계승하는 입장에 있으며,
한편 과거 불교의 제도와 교리에 대하여는
과감한 혁신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원불교와 불교의 관계를 강연히 표현하자면
근본 진리의 계승과 시대에 맞는 교법의 혁신,
이 두 가지 입장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가모니불과 대종사의 관계가 불(佛)과 조사(祖師)와의 관계가 아니라
선후천의 시대를 관통하는 불불계세(佛佛繼世)의 입장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불법(佛法)을 표방하면서도 대종사께서 후천 개벽의
주세불(主世佛)로 오셨음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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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불교를 믿는 교도입니다.
소태산대종사님이 깨달으신 것이 나중에 알아 보니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으신 것과 꼭 같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연원을 석가모니부처님으로 하신 것이고,
당신이 깨달으신 진리를 설명하시면서 많은 부분에서 불교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세가지로 기존 불교와 원불교의 차이를 설명 하겠습니다.
1. 기존불교는 사찰이 산속에 있고, 불상을 모셔서 신앙을 하는데,
원불교는 교당이 시내에 있고, 일원상(둥그런 원)으로 부처님을 대신하여 신앙한다.
===> 미신적인 불상숭배, 타력신앙의 단초를 아예 없애 버림. 진리의 상징을 일원으로 표현
2. 기존불교가 석가모니부처님의 애초 의도와는 관계없이
무속신앙, 타력신앙으로 흘러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신앙으로 바뀐 것을
처처불상, 사사불공, 4은4요의 실제불공, 자력신앙으로 바꾼 것이 원불교이다.
3. 기존불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생업을 포기하고 산속의 절에 들어가서,
타인공양으로 생활하며, 어려운 한자불경으로 공부해야 하지만,
원불교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수행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한
공부방법인 3학공부(수양,연구,취사)로 공부하면 된다.
===> 불법의 생활화, 대중화(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신앙생활할 수 있게 함)
간단하게 말하자면
면죄부 판매등으로 타락한 천주교에서 종교개혁을 주장하며 나온 것이 기독교(개신교)라면,
기존불교의 폐습을 타파하고, 스님중심의 불교를 일반인의 생활불교로 바꾼것이 원불교이다.
http://blog.naver.com/plkm999?Redirect=Log&logNo=20015648867
wonsysop:
원불교와 불교의 차이점을 몇가지 단순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조
불교 : 석가모니부처님 원불교 : 소태산 대종사님
국가
불교 : 인도 원불교 : 한국
연대
불교 : 불기 3036년 원불교 : 원기93년
교법
불교 : 불법 또는 불경 원불교 : 교전 또는 전서
신앙의 대상
불교 : 부처님 원불교 : 법신불 사은
상징
불교 : 불상 원불교 : 일원상
최고 경축일
불교 : 부처님 탄생일(석존성탄절) 원불교 : 소태산 대종사의 크게 깨달으신 날&개교기념일 (대각개교절)
생활
불교 : 출가 : 수행위주의 생활 원불교 : 출가 : 신앙 수행 겸한 생활
재가 : 신앙위주의 생활재가 : 신앙 수행 겸한 생활
이상과 같이 단순히 차이점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sss4834:
원불교는 불교에서 파생한 것은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신흥교단이지요.
그러나 사회적 활동이나 교리 구축 등 이미지에 있어서 다른 신흥종교들과는 달리 건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사회에 영향력 있는 주요 교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조직체계도 다르지요. 불교의 경우 수행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체계와 여러 종파별 체계가 나뉘어 있어
일괄적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원불교는 대중적 접근을 위한 전략이 강하다고 하겠습니다.
앞 분이 기억 못하신 명칭은 '교무'인 것 같군요.
주로 전북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최근 원음방송이라는 라디오방송국도 만들어 교세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보는 원불교는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불교를 표방하면서도 전통적인 교단에서 갈라져 나갔으니 바깥 사람들이 크게 보면 불교계통으로 몰아서 보지만,
그들 간에는 서로 다른 종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마치 천주교와 개신교의 관계를 연상시킵니다. 크게 보면 다 같은 그리스도교인데,
조직체계나 사상의 강조점, 전통 등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서로 다른 종교처럼 되어 버린 것이죠.
yman63:
간단히 말하면 원불교는 불교의 한 종파는 아닙니다.
교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불교의 교리와 흡사한 부분이 있지만 개혁되거나 새롭게 창조된 부분이 많습니다.
좀더 생활화 되고 혁신되고 개혁된 불법을 담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름이 비슷하여 원불교가 불교의 한 종파로 오인되는 경우도 많지만
원불교는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스스로 발심하여 구도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은 후
새롭게 문을 연 한국에서 발생한 새 종교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여러 종교의 경전을 참고로 가져다 보셨습니다.
과거 성현들의 깨달음과 비교해 보기 위한 과정을 가지신 거지요.
모든 성현들의 깨달음과 소태산 대종사님의 깨달은 바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그중에서도 금강경을 보신 후 석가모니 부처님을 성인중의 성인이라 하시고 석가모니 부처님께 연원을 정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바라문에 연원을 정하신 바가 있듯이 성인들도 깨달음 후에 연원을 정하시지요.
법당에 모신 신앙의 대상도 불상이 아닌 진리의 상징은 일원상을 모십니다.
불공의 대상도 법신불에 대한 진리불공과 함께 우리에게 직접 죄와 복을 줄수 있는 힘이 있는
천지, 부모, 동포, 법률 즉 사은님께 사실적인 불공을 함께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다운 불공은 자신의 수행이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신앙과 수행을 함께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불교의 스님 천주교의 신부님 교회의 목사님과 같은 위치의 원불교의 성직자는 교무님입니다.
sih79:
간단히 말씀드리면 불교와 원불교가 나뉠것은 일재강점기였던 1916년 일재당시 불교를 개혁해서
불교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주창하며 당시의 불교를 개혁하고자 개교하게 된것입니다.
나뉘었다기 보다는 새롭게 창시가 된것이라 하겠습니다.
한자상의 불교와 원불교의 해석은 이렀습니다. 먼저 불교는 깨달을 불에 가르칠 교를 써서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가르치는 종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불교는 교명에 원자가 들어간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근본진리를
동그라미 원으로 표기하고 그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근본진리를 깨달아 알게하고 가르치는 종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의미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불교와 불교의 차이점은 다소있습니다.
하지만 원불교를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잘 모르는 분들의 이야기입나다.
혹여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오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원불교 경전(대종경)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올려드립니다.
원불교에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일원상을 모시는 이유
1
한 사람이 여쭙기를 [귀교에서는 어느 부처님을 본사(本師)로 모시나이까.]
대종사(원불교 창시자)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불을 본사로 숭배하노라.]
또 여쭙기를 [서가모니불이 본사일진대 법당에 어찌 서가모니 불상 을 모시지 아니하고 일원상을 모셨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 불상이 우리에게 죄 주고 복 주는 증거는 사실적으로 해석하여 가르치기가 어려우나,
일원상은 곧 청정 법신불을 나타낸 바로서 천지 ·부모·동포가 다 법신불의 화신(化身) 이요,
법률도 또한 법신불의 주신 바이라 이 천지·부모·동포·법률이 우리에게 죄 주고 복 주는 증거는
얼마든지 해석하여 가르칠 수가 있으므로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것이니라.] 또 여쭙기를
[그러하오면 서가모니 불을 본사로 모신다는 것은 말뿐이요, 특별히 숭배하는 행사는 없지 아니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비록 법당에 불상을 모시지는 아니하였으나, 일반 신자들에게 부처님을 지극히 존숭하도록
신심을 인도하는 동시에 참다운 숭배는 부처님의 말씀하신 근본 정신을 존중히 받들고 또한 육근을 작용할 때에
그대로 행을 닦아서 부처님의 법통과 사업을 영원히 계승 발전시킴에 있다는 뜻을 역설하는 바인즉,
어찌 불상을 모시고 조석 예불하는 것만을 숭배라 하리요.]
대종사말씀하시기를 "우리 회상 에서 일원상을 모시는 것은 과거 불가에서 불상 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形體)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 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하였나니, 곧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라, 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太極) 혹은 무극(無極) 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이를 일러 자연 혹은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청정 법신불이라 하였으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로서 비록
어떠한 방면 어떠한 길을 통한다 할지라도 최후 구경에 들어가서는 다 이 일원의 진리에 돌아가나니...
여쭙기를 [일원상의 신앙은 어떻게 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나니,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네가지은혜인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 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 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할 것이며, 천만 사물의 당처에 직접 불공하기를
힘써서 현실적으로 복락을 장만할지니, 이를 몰아 말하자면 편협한 신앙을 돌려 원만한 신앙을 만들며,
미신 적 신앙을 돌려 사실적 신앙을 하게 한 것이니라.]
또 여쭈기를 [그러하오면 도형(圖形)으로 그려진 저 일원상 자체에 그러한 진리와 위력과 공부법이 그대로 갊아 있다는
것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저 원상은 참 일원을 알리기 위한 표본이라, 비하건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손가락이 참 달은 아닌 것과 같나니라. 그런즉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저 표본의 일원상으로 인하여
참 일원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며, 일원의 참된 성품을 지키고,
일원의 원만한 마음을 실행하여야 일원상의 진리와 우리의 생활이 완전히 합치되리라.]
쉽게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진리본체를 형상화해서 모신 것이 일원상 입니다.
그리고 원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인류의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석가모님 부처님이 소원이 이루어 주거나 죄복을 주는 신으로 모시지는 않습니다.
원불교를 창시하신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님을 아버지로 모신다면 석가모니부처님은 할아버지로 모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석가세존이나 대종사께서 깨달으신 진리 본체를 신앙의 대상 수행의 표본으로 하고 교조를 신앙으
대상으로 하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이나 대종사님은 다 닮아가야할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때문에 불단에 불상이나 대종사님의 성상을 모시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yho5958:
불교의 분파는 여러가지인데 크게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그리고 한국의 경우 종단별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변질 된 부분들도 있습니다.
즉 민간신앙이나 무속과 같은 것이 혼합된 사고(생각이나 사상)를 갖고 있는 종단이나 승려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절에 가면 산신당도 있고 삼성당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교조(고타마 싯달타)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종교입니다.
소승불교의 경우 교조 붓다(부처:각자:깨달은 자)를 위대한 스승으로 보고,
대승불교의 경우 선재(인간으로 있기 전에 존재했다고 보는 것)한 신(절대자)과 같은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교조에게 불공드리고 절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절대자에 대한 숭배입니다.
그래서 교조의 탄신일을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합니다.
즉 중생을 구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교에서 예수가 죄인을 구하러 왔다는 것처럼.
그래서 '기쁘다 구주오셨네'라고 하죠.
그런데 원불교는 명칭이 불교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많이 다릅니다.
중요한 부분만 본다면,
원불교는 1916년 전북 익산군에 본부를 둔 소태산 박중빈 이라는 사람이 창시하였습니다.
신앙의 대상은 부처가 아니고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원상(원불교의 심벌)의 진리이며,
시주 동냥 불공등을 폐지하고, 각자 직업을 가지고 교화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활불교를 내세웠으며,
1947년 원불교라고 개칭 하였습니다.
불교계의 신흥 단체는 50 여개가 넘습니다.
원불교는 원효대사가 불교를 한국불교화(?) 하면서 생활불교를 말한것과 같은식 입니다.
박중빈은 '불법 연구회'로부터 출발하여 불교계에서 성공한 케이스 입니다.
그런데 원불교에서는 창시자를 교주화 하여 기도시 이름을 인용 합니다(아래 기도문 참조).
교도 박중빈은 1891.3전남 영광 출생으로 1943.6 사망.
자호는 소태산(少太山),'대종사'라함.
산신과 도사를 찿았으나 못하고 스스로 고행 후 26세에 깨달았다(대각)함.
즉 우주및 인생의 근원적인 진리로서 생성원리를 나타낸 것이 '일원상'으로 상징한것.
9인 제자 중 정산이 1대 종법사로 취임(송규).
이 때 원불교라함(1962.1사망).
2대 종법사 대산.
*이들의 기도문*
천지하감지위부모하감지위
동포옹감지위
법률옹감지위
피온자 ( )는 삼가 정심재계
하옵고 법신불사온전에 고백 하옵나이다.
하늘은 만물을 다 덮어주시고,
땅은 만물을 다 실어주시고,
佛星은 만물을 다 호렴하여
和之育之케 하여 주시옵나니
불제자 ( )도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상사님 좌산종법사님과 마음을 연하여
天地人 三才에 합일할수 있도록까지
힘밀어 주시와 道明德和의
主人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심을 모아 받을어 바옵나이다.
*이상은 그들의 기도문을 그대로 올린것임
이상과 같이 불교의 형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sih79:
원불교와 불교의 관계
불교와의 관계에 있어서 원불교의 위상(位相)정립은 아직도 상당한
세월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시점에서 원불교와 불교의 관계를 살펴본다.
⑴ 원불교는 불교에 뿌리한 새 종교이다.
「서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내가 스승의 지도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
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대종경 서품 2장)
이와같이 원불교는 불교에 뿌리한 새 종교이다. 서가모니불이 성인들
중의 성인이요, 불법이 가장 진리가 깊으며, 서가모니불과 소태산 대종
사의 출가·수행·성불의 경로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서가모니불
을 연원불로 하고 불법에 뿌리해서 새 종교를 창설한 것이다.
⑵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가 창건한 새 종교이다.
원불교는 서가모니불을 연원불로 하고 불법에 뿌리했으면서도 불교의
한 종파가 아니요 독창적인 새 종교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종교
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교조·교리·제도(조직·기구)의 세 가지이다.
원불교는 교조·교리·제도가 불교와는 다른 독창적인 새종교이다.
① 원불교의 교조는 소태산 대종사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에야
서가모니불과 불교를 알게 되었으며, 대각이전에는 아는 바가 없었고,
배움을 받은 일이 없었다.
② 불교의 기본교리는 사제·팔정도·십이인연·육바라밀 등인데, 원불교
의 기본 교리는 일원상·사은 사요·삼학 팔조·사대 강령 등이다. 원불교
는 불교의 기본교리를 인정하고 그대로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
원상·사은사요·삼학팔조·사대강령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교리 체계를
새롭게 형성하였다. 오늘의 한국불교의 대표적 종단인 조계종이나 태
고종은 서가모니불을 본존으로, 〈금강경〉과 〈조사법어〉 등을 소
의경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원불교는 법신불 일원상을 본존으로,
〈정전〉·〈대종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
교리와 소의경전에 있어서 원불교는 독창적인 새종교이다.
③ 제도·기구·조직 등에 있어서 원불교는 불교와 비슷한 점도 있으나
크게 다르다.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은 문화적 교류가 과거보다 훨씬 쉽
고 빈번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이와같이 교조·교리·제도
등의 기본조건에 있어서 원불교는 독창적인 새종교이다. 원불교는 미
래세계의 주세불 소태산 대종사가 불교에 뿌리하여 독창적으로 창립
한 새 종교이며, 미래종교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종교의 진리가
함께 만나는 곳이며, 모든인류·모든사상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다.
⑶ 원불교는 긍정과 실천의 종교이다.
불교의 고해(苦海)사상이나 기독교의 말세사상 등은 현실 부정의 입장
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원불교는 현실세계를 사은의 큰 덩어리, 곧
은혜의 세계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원불교는 법멸(法滅)시대
나 종말론이 없다. 미래세계를 긍정적·희망적으로 전망한다. 원불교는
개인성불이나 개인 구원 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대중전체의 성불을
강조한다. 제생의세란 말도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원상을 신앙
의 대상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다든가, 무시선 무처선, 불법시생활 생활
시불법, 동정일여 영육쌍전, 이사병행 등의 교리표어라든가, 삼학 병진
수행의 강조, 삼학의 결론을 작업취사에 둔 점, 사대강령의 결론을 무
아봉공으로 귀결시키는 것 등은 모두 원불교가 행동종교·실천종교 임
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⑷ 원불교는 종합과 융통의 종교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처음부터 과거 모든 성자들의 깨친 경지를 다 인정하
고 찬탄하였다. 모든 종교의 궁극 목적도 하나임을 알았다. 그래서 일
원세계 건설을 표방하고 모든 종교의 교리와 목적을 하나로 종합 융통
하려고 한다. 따라서 원불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거나 독선
적인 태도를 배제하고 있다. 정산종사의 삼동윤리사상이나, 대산종사
의 종교연합운동 등은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⑸ 원불교는 개혁의 종교이다.
불교에 뿌리했으면서도 불교개혁에서 출발하여 모든 종교를 개혁하
여 새 종교를 창설해 가려는 입장이다. 신앙의 대상을 법신불 일원상
으로 한 것은 불교에 대한 가장 큰 개혁이다. 예법개혁은 유교에 대한
개혁이다. 원불교의 교리·제도·의식·예법 등은 모두 종교개혁·사회개
혁·인간개혁의 입장에서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원불교가 불교냐 아니
야 하는 관점보다, 원불교가 불교에 대해서 장차 어떠한 위상을 정립
해 갈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욱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첫댓글 신흥종교는, 시대에 따라서 필요하다.
어떠한 종교든 세월이 흐르면 나태해지고, 자기 들이 최고라는 권의적 자만만 앞세운다.
특히 불교는 법의 진리라는 상까지 다 버리라고 하면서도, 권의와 자만이 그 어떠한 종교보단 독단적으로 흐른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가 흐름에 따라 새로운 중생의 근기에 맞는 종교가 형성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불교의 형성은 적절하다고 본다.
기독교와 같이 우리 민족과 전혀다른 사상을 같다가, 우리 것은 모두 미신이라고 때려부수는 종교와는 전혀 다르다.
원불교는 좋긴한데 상가집에서 하는 행위보고 놀랬음, 기도 같은거 해주고 몇십만원내라.49재 백만원내라.물론 절보다 저렴하지만,,,불교고 원불교고 신도들 그냥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평소 보시,헌공 했는데 장례마저 돈을 받아야하나? 기독교 목사들은 부주까지 하더라. 물론 감사헌금내기도 하지만 안내도 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