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육화와 현대적 의미 변용
송정란 (시인, 건양대 교수)
1. 들어가는 글
박제천은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장자시』 『심법』 『율』 『달은 즈믄 가람에』 『어둠보다 멀리』 『노자 시편』 『너의 이름 나의 시』 『푸른 별의 열두 가지 지옥에서』 『나무 사리』 『SF―교감』 등 10권의 시집을 상재하면서 40년을 넘어선 시적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노자와 장자의 도가적 허무주의와 불가의 깨달음 등 깊고 넓은 동양적 상상의 세계를 자신의 시세계에 편입시켜, 이를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사에 함께 아우르고자 했으며, 시라는 또다른 현실에서 고고한 정신적 삶을 살고자 했다.
박제천의 시적 편력을 살펴보면, 첫시집 『장자시』에서 상상력의 치열한 결정체를, 『심법』에서 육화된 정신의 모습을, 『율』에서는 자연과 습합된 영혼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네번째 시집 『달은 즈믄 가람에』에서 시인의 영혼은 우리 민족의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으며, 『어둠보다 멀리』에서 정신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새로이 구축하면서, 이것은 『도덕경』을 텍스트로 한 『노자시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곱번째 시집 『너의 이름 나의 시』 『푸른 별의 열두 가지 지옥에서』 『나무 사리』 『SF―교감』에 이르는 근래의 시집은 정신적 삶에 천착해온 그의 시적 여정에 육체의 삶을 덧보태어, 그의 정신과 영혼이 이끌어가고 있는 현실에서의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스스로 시쓰기를 ‘기록(記錄)’이란 말로 정의한 바 있는데, “삶을 살면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였던 것들, 나를 사로잡았던 것들,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들의 기록이 바로 시” 라고 생각했다고 밝히고 있다.1) 한 권의 시집을 낼 때마다 새로운 시세계를 열고자 했던 시인에게 시란 바로 자신의 정신과 영혼, 육체적 삶에 대한 방대한 기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달은 즈믄 가람에』에서 『삼국유사』를 텍스트로 삼은 작품들을 선별하여, 고대 설화와 시인의 상상력이 만나 어떠한 시적 ‘기록’을 남기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달은 즈믄 가람에』는 모두 세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번째 장 ‘연을 띄우며’에서 사기등잔, 갖옷, 도깨비 등 잊혀져 가는 우리의 옛 풍물에 대한 기억, 두번째 장 ‘오동나무 바람’은 허균, 정약용, 허난설헌 등 난세의 삶을 살았던 옛 인물들에 대한 조명, 세번째 장 ‘달은 즈믄 가람에’에서는 『삼국유사』 설화와 향가를 연작시로 수용하고 있다.
연작시 ‘달은 즈믄 가람에’는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장사 지내 달라는 선덕여왕의 유언을 소재로 한 「도리」, 혜숙(惠宿)과 혜공(惠空)이라는 두 이인(異人)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동진(同塵)」, 효소왕 때 득오(得烏)가 지은 향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시인의 감성으로 다시 풀어쓴 「모곡(慕曲)」 등 총 3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고대의 이야기 속에 잠들어 있던 역사적·신화적 인물들을 현대시의 공간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삶을 새로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장자든 불교든 유학이든 삼국유사든… 모든 것은 내게 있어 시의 대상일 뿐 학문일 수도 사상일 수도 역사일 수도 없다. 그것들이 우리 삶의 기록이요 증명이요 파악이라면 나는 시도 또한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수렴한다고까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2) 『삼국유사』가 고려의 승려 일연이 보고 듣고 느꼈던 우리 민족의 삶의 기록이라면, 시인의 시쓰기는 현재 우리의 삶을 기록하는 또다른 『삼국유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원형을 기록한 『삼국유사』가 시인의 정신 속에서 어떻게 여과되어 오늘날 문학적 기록으로 표출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시인의 시세계를 아울러온 큰 줄기를 찾아나서는 탐색의 길이 되리라 본다.
2. 가운데 글
『삼국유사』는 그 자체적으로 문학성을 띠고 있는 문헌설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 서사문학으로서 139편의 설화를 집대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시가인 향가 14편과 여기에 대한 감상과 비평, 그리고 일연 자신이 지은 칠언절구의 찬시(讚詩) 44편을 수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민족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사고 유형과 상상력의 체계, 생활상이 담겨 있으며, 오랜 세월 민족공동체 속에서 향수되고 전수되어 왔다. 설화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통시대성이 문학에 다양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장르의 현대 문학작품에서 『삼국유사』의 설화나 향가를 수용한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현대시에서의 『삼국유사』 텍스트의 수용은 미당 서정주를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이 시도해 온 바 있다. 민족의 삶과 정신의 원형을 현재 우리의 정서와 사고, 삶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시라는 짧은 형식으로 표출하였다. 현대시는 『삼국유사』를 수용함에 있어 다양한 시적 방법론을 모색해 왔는데, 필자는 그것을 ‘소재의 수용’ ‘기법적 변용’ ‘모티프의 수용’ 등 크게 3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3)
소재의 수용은 설화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다시 구술하거나 시인만의 재해석이 덧붙여지는 방식이며, 기법적 변용은 현대적인 정서와 감각에 맞도록 표현기법을 다양하게 적용시키는 방식이다. 모티프의 수용은 설화가 시 속에 감추어져 있거나 시인의 영감을 자극하여 상상력을 통해 재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박제천의 『삼국유사』 수용은 미당이나 다른 시인들이 설화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설화와 향가에 고루 그 손길이 미치고 있다. 특히 향가의 경우 해독이 완전하지 못한 향가를 시인만의 영감과 감성으로 새로이 읽어 내고 있으며, 이것은 이론에 의지하여 거칠게 풀어낸 향가에 새로운 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 텍스트의 서사 자체를 그대로 수용한 예가 많으므로, 이를 ‘서사의 수용’으로 새로이 용어를 설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시인의 삼국유사 수용의 방식을 ‘서사의 수용’ ‘소재의 수용’ ‘기법적 변용’ ‘모티프의 수용’ 등 네 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2.1 서사의 수용
설화는 스토리가 있는 텍스트이다. 설화를 수용함에 있어 스토리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화소 중에 어느 부분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시는 다양한 서사 구조를 갖게 된다. 서사의 수용은 설화의 스토리 중 어느 한 부분만을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 전체를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텍스트로서의 설화의 서사구조 전반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시적 언술이 진행되는 것이다. 설화 수용의 방식에 있어 설화의 원형에 가장 가깝게 표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향찰의 해독이 완전하지 않은 탓에 향가의 해석에 있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바, 시인 자신의 영감에 의존하여 향가의 미적 의미를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모곡(慕曲)」은 『삼국유사』(卷2 紀異 第2)의 ‘효소왕대 죽지랑’에 삽입된 향가 「모죽지랑가」를 원문 그대로 현대시화(化)한 것이다. 향찰을 연구한 학자들이 해석한 「모죽지랑가」의 현대역과 비교해 볼 때 의미구조의 미학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봄의 일은 모두 시름뿐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그 모습
해가 갈수록 더욱 흐릿해
오히려 눈을 감으면 보이려나
만나고 싶어라
님 그리워 헤매는 쑥대밭이라 아니라
그 어디에 쓰러져 잠들어 버릴 것만 같네.
―「慕曲」 전문
① 양주동 현대역
지나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울어서 시름하는구나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니려 하는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만나보게 되오리.
죽지랑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오?
② 김완진 현대역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
살아 계시지 못하여 우올 이 시름.
전각(殿閣)을 밝히오신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도다.
눈의 돌음 없이 저를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
郞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
다복 굴헝에서 잘 밤 있으리.
③ 조동일 현대역
가고 다시 오지 못한 봄을 그리워하여
죽지랑이 없어 시름에 겨워 운다.
두덩을 밝힌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간다.
눈돌림이 없이 죽지랑 만나는 것을 이루겠는가.
그리운 낭의 모습을 좇아
지향없이 가려면 다북쑥 우거진 구렁에서 자야
할 때도 있으리라
① ② ③은 향가 「모죽지랑가」를 해독하여 이를 다시 현대어로 풀어 쓴 것이다. 「모죽지랑가」는 죽지랑이 거느렸던 화랑의 무리 중의 한 명인 득오가 그로부터 입은 은혜를 잊지 못하고 죽지랑이 죽은 후 그를 기리는 사모곡이다. 님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어렴풋이 잊혀져가지만,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직도 쑥대밭 구렁을 헤매게 할 만큼 간절한 것임을 노래하고 있다. 절대적 그리움을 차원 높은 서정적 표현으로 그려 내고 있지만, 인용한 현대어 번역으로는 그 서정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세 편 모두 노래(시)로서의 향가의 미적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단순한 의미 전달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모곡」은 「모죽지랑가」를 시인의 상상의 세계에서 다시 풀어서 서정적인 시로 재창조한 것이다. 향가는 다양한 접근 방법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이나 문학적으로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향가 해독 자체가 완전하지 않아 학자들마다 자기 식대로 향가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이 난삽할뿐더러 어느 경우에는 상이한 해석상의 난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죽지랑가」 역시 학자들이 원문을 서로 달리 해독하고 있으며, 현대어로의 해석이 거칠기 이를 데 없어, 오히려 읽는 사람들의 시적 감성을 저해하고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향가는 그 언어적 해독에 치중하다 보면 노래로서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게 마련이다. 박제천 시인의 「모곡」은 향가의 서사를 그대로 수용하되 이를 다시 한 편의 현대시로 변용하여, 신라인들이 향가를 통해 느꼈을 미적 체험을 현대에 다시 이끌어 내고 있다. 학문적으로 해독된 「모죽지랑가」에서 잃어버렸던, 서정성 넘치는 향가의 제 모습을 재현해 냈다고 할 수 있다.
님은 하늘이 처음 열리는 날 저 높은 곳에서 솟아오른 달이어라
구름이 그 아래 떠돌아 다니어도 물을 보면 거기에 님이 있네
조약돌 하나 드리오니 그처럼 내 마음 굳으오
눈오는 날이면 푸른 잣나무 가지를 바라보오니
님이여 바로 당신입니다.
―「讚曲」 전문
① 양주동 현대역
구름을 열어제치므로 나타난 달아
흰구름을 따라 떠 가는 것이 아닌가?
새파란 냇물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도다.
지금부터 냇물의 조약돌에 깃들인
기파랑이 지니시던
인품의 한 구절이나마 따르고 싶구나.
아아, 잣나무 가지처럼 그 기품이 드높아
서리에도 굽히지 않을 화랑의 장이여
② 김완진 현대역
흐느끼며 바라보매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모래 가른 물가에
耆郞의 모습이올시 수풀이여.
逸烏내 자갈 벌에서
郞이 지니시던 마음의 갓을 쫓고 있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갈이여.
「찬곡(讚曲)」은 향가 「찬기파랑가」를 현대시로 서사적 변용을 한 것이다. 「찬기파랑가」는 다른 향가와는 달리 관련 배경 설화가 없으며, 다만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삼국유사』 卷2 紀異 第2)에 「안민가」와 함께 삽입되어 있다. 경덕왕이 위의(威儀) 높은 승려를 찾다가 충담을 만나게 되는데, 충담이 기파랑을 기리는 사뇌가를 지은 인물임을 알게 되자 기파랑을 찬양하는 노래가 그 뜻이 높다고 하는 데 과연 그러하냐고 물어본다. 충담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자 백성들을 편안하게 다스릴 「안민가」를 지어줄 것을 청한다. 이러한 배경설화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충담사는 사뇌가 즉 향가를 매우 잘 짓는 고승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기파랑이란 화랑이 어떠한 인물인지, 어떤 일을 해서 충담이 향가를 지어 찬양했는지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양주동과 김완진의 「찬기파랑가」의 현대어역은 해독한 내용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 이두로 해독하거나 한자로 해석해도 의미가 통하는 단어들이 많아, 해독하는 데 있어 학자들 간에 이견을 보이는 구절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덕왕이 말했던 ‘기파랑을 찬양한 드높은 뜻’과 사뇌가의 맑고 아름다운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향가는 풍부한 서정성과 함께 현대시 못지않은 다양한 비유법을 구사하고 있으며, 비유를 통해 격앙된 감정을 절제하는 차원 높은 문학적 수사를 보여주고 있다. 「찬기파랑가」 역시 기파랑의 인품과 높은 뜻을 ‘달’ ‘조약돌’ ‘잣나무’ 등으로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단어를 해독하여 단순하게 나열한 양주동과 김완진의 현대역은 그 의미가 불분명하며, 시적 운율이 파괴된 상태여서 향가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찬곡」과 「찬기파랑가」의 현대어역 서사를 비교해 보도록 하자. “지금부터 냇물의 조약돌에 깃들인/ 기파랑이 지니시던/ 인품의 한 구절이나마 따르고 싶구나(양주동 역)”“일오내 자갈 벌에서/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갓을 쫓고 있노라(김완진 역)”에서 보듯, 향가의 해독에 치중하여 서사가 그 운율을 잃어버린 채 산문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향가는 노래로 불리웠기 때문에 운문적 리듬감이 뛰어났을 것이다. 박제천 시인은 이를 “조약돌 하나 드리오니 그처럼 내 마음 굳으오”라고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시적 운율을 살리면서, 기파랑의 굳은 지조의 정신을 본받으려는 충담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잘 처리하고 있다.
“아아, 잣나무 가지처럼 그 기품이 드높아/ 서리에도 굽히지 않을 화랑의 장이여(양주동 역)”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갈이여(김완진 역)” 는 시적 서사의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시인은 “눈 오는 날이면 푸른 잣나무 가지를 바라보오니/ 님이여 바로 당신입니다” 라고 이를 읽어내고 있다. ‘흰눈’조차 감히 기파랑의 변하지 않는 ‘푸른 지조’에 이를 수 없다는 드높은 찬양을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들려주고 있다.
「찬곡」은 이와같이 불완전하게 해독된 「찬기파랑가」를 천년의 시공을 관통하여 현대적으로 복원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충담이 ‘달’ ‘조약돌’ ‘잣나무’에 비유하여 표현하고자 했던 기파랑의 높은 지절을, 우리는 천여 년이 지난 지금 「찬곡」을 통해 새로이 감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것이다.
서사의 수용은 예시 2편 외에 「우적」 「백가」 「원왕생」 「득안」 등을 들 수 있다.
2.2 소재의 수용
소재의 수용은 향가나 설화의 서사 골격은 대부분 유지하되 현대적인 관점에서 새로이 살을 붙여 읽는 방법이다. 향가나 설화의 주요 소재를 그대로 차용하고, 시인이 이를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소재를 추가하여 원 텍스트의 서사 내용을 부각시키는 방법이다. 즉 서사 원문을 그대로 차용하되, 고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사유의 원형을 추출하여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임금의 새끼는 임금이 되기 쉽지만 사람의 아들로 임금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개 사람의 아들이 아니거나 보통과는 다르다고 주장하게 된다 예컨대 복희씨는 무지개가 제 어미를 두른 다음에 태어났다 하며 신농 씨는 제 어미가 龍과 교섭해 태어났다 하며 소호씨는 갖다붙일 게 마땅치 않자 제 어미가 귀신의 아들과 사귀어 저를 낳았다 하였으며 설이란 사내는 제 어미가 알을 하나 삼키어 낳게 되었으며 후직의 어미는 거인의 발자국을 밟았더니 태기가 통했고 그도 둘러대기 힘들자 요라는 사내는 어미 뱃속에서 넉 달이나 더 지난 다음에 태어남을 자랑으로 삼았으며 패공이란 사내에 이르자 어미가 龍과 사귀었다고 되풀이 시치미를 떼었다 하기는 어미를 팔아먹었다 해도 임금이 되었으니 그 어미들이 절통해 했을 리 만무한 일이 아닌가 임금이 되는데 그만한 힘도 들지 않았다면 또한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기에 歷史를 보면 공짜로 임금이 된 자 치고 온전함이 드물지 않던가 문득 理致를 따져 보니 그렇다.
―「紀異」 전문
「기이」는 『삼국유사』 첫 부분인 권1과 권2의 두 항목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와 고대국가 시조들의 신이한 탄생 등을 다루고 있다. 일연은 「기이」편 서(敍)에서 “대개 성인이 바야흐로 예악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풀 때 怪力亂神은 말하지 않았으나”, 실은 어느 제왕이나 성인과 마찬가지로 “삼국의 시조가 모두 神異한 데서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신이한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일차적 의도임을 밝힌 바 있다.
인용시 「기이」는 『삼국유사』 첫머리서 밝힌 일연의 찬술 동기를 시로 옮겨 적는 서술적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시인은 서(敍)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적 어법을 빌어 이를 쉽게 풀어쓰고 있다.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탄생신화는, 보통사람이 임금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하늘이나 신의 힘을 빌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고대인의 보편적인 사유 방식이다. 시인은 그러한 고대적 사유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 이치라는 깨달음을 덧붙임으로써 시적 서사를 확대하고 있다. 첫 부분에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지칭한 데 반해 ‘임금의 새끼’라 한 것은, ‘새끼’라는 종(種)의 개념을 취함으로써 평범한 사람이 세습을 뛰어넘어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타고난 운명과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는 비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고대설화에서 복희씨나 신농씨와 같은 성인들이 모두 신이한 탄생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다스리는 자가 되었듯이, 이것은 건국신화가 인류의 보편적인 신화 원형으로서 어디에나 존재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노력한 만큼 성취할 수 있다는, 그것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살아가는 보편적 이치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와같이 신화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인간의 생활을 양식화한 근원적 동기를 이해하게 한다. 신화가 단순히 태고의 이변이나 신비한 탄생을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이나 역사가 제시하지 못하는 사실, 즉 가장 근원적인 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의 의미는 과거 이상으로 현재와 미래를 향해 있으며, 현실 생활의 근거가 되는 참다운 지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제천의 「기이」는 신화 속에 담겨 있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재해석함으로써, 임금 되기, 즉, 오늘날의 권력자도 그와 같은 통과의례를 겪는 것임을 갈파하고 있다.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어야만 자신의 뜻을 성취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 옛적에 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동쪽 바닷가에 머물며 지아비는 고기를 잡고 지어미는 길쌈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바다에 나간 지아비가 미역이랑 다시마를 거둬들이다가 바위 위에 올라앉아 땀을 들였습니다 그러자 그만 그 바위가 이 사내를 등에 태운 채 먼 섬나라로 가 버렸습니다 지어미는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찾아 바닷가를 헤매다가 그 사내가 남겨두고 간 신발을 보고서는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어 저도 얼른 바위에 올라섰습니다 지아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바위는 물결을 타고 흘러가 섬나라로 그 여자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부가 섬나라로 떠나간 뒤부터 이 나라의 해와 달은 희미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논 끝에 섬나라로 그 부부를 찾아가 까닭을 물었더니 사내는 걱정없다는 듯 아내가 짠 고운 비단을 주면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하였더니 과연 해와 달은 다시 정기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옛날 옛적에는 해와 달이 사람으로 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혹은 이쪽에서 해와 달이 되거나 산으로 서 있기도 하고 강물로 흘러가기도 하였습니다 꿈결같은 한 시절이었습니다
―「日月」 전문
「일월」은 『삼국유사』 卷1 紀異 第1에 수록된 「연오랑 세오녀」를 텍스트로 한 시이다. 설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신라 제8대 아달라왕 때(157년) 동해 바닷가에서 해초를 따던 연오를 바위(또는 고기)가 싣고 일본으로 갔는데, 일본 사람들이 왕으로 모셨다. 연오의 아내 세오 역시 지아비를 찾으러 나섰다가 같은 방식으로 일본으로 가 연오를 만나 왕비가 되었다. 그때 신라의 해와 달의 빛이 없어졌는데, 이것은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신라왕은 사신을 보내 연오와 세오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연오는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 지내면 해를 다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비단을 주었다. 그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이 다시 밝아졌는데, 제사를 지낸 곳이 지금의 영일(迎日)이다.
설화의 주인공인 연오와 세오는 해를 맞이하고 비단을 짜는 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민의 이동과 함께 일본의 건국신화와 접맥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4)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 권2에서 『신라 수이전』을 출전으로 한 내용을 보면 연오(延烏)는 영오(迎烏)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고구려 벽화를 보면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가 해 속에 그려져 있는데, 고대사회에서 까마귀는 해를 상징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오는 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으며, 연오는 해맞이를 관장하는 신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신화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거나 의식(儀式)을 확립하거나 의식 준수를 위한 구실과 명분을 제공하거나 하는 역할을 한때 담당한 일련의 이야기라고 할 때, 「연오랑 세오녀」는 이러한 신화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5)
「연오랑 세오녀」를 시화함에 있어, 미당 서정주 시인은 ‘해’와 ‘베틀’을 같은 등가물로 설정하여 세오녀의 비단 짜는 솜씨를 찬양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에, 시인은 설화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여 이를 풀어 쓰고 있다. 그런데 설화의 서사구조를 그대로 옮겨오되, 연오와 세오를 평범한 범부와 그의 아내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들이 간 곳도 섬이라는 미지의 공간으로 그리고 있다. 왜 박제천은 연오와 세오라는 신화적 인물들의 캐릭터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시의 결말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박제천은 시의 결말에 이르러 옛날에는 해와 달이 ‘사람’으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산’으로 서 있기도 하고 ‘강물’로 흘러가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했다고 말한다. “꿈결같은 한시절”을 살아가던 원초적이며 신비로운 고대의 신화적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시인은 「일월」에서 연오와 세오의 신비로운 행적보다는 해와 달에 나타난 신화적 상상력을 시적 발화점으로 삼았으리라 생각된다. 즉 신화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歷史性)이나 신성성(神性性)보다 신화 속에 스며있는 자유롭고 광대한 상상력의 세계에 더 매료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옛 설화에서 ‘해’와 ‘달’은 단순히 천체의 일부가 아니라 사람들과 우주적 교감을 나누는 존재들이었다. 월명사 도솔가조(『삼국유사』 卷5 感通 第7)에서 월명사가 「도솔가」를 짓게 된 원인은 바로 해가 2개가 나타나(二日竝現) 재앙을 예고하기 있기 때문이며, 월명사의 피리 소리에 달이 취하여 멈추었으며 그곳을 월명리라고 이름하였다는 배경설화가 뒤에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같이 우리의 설화에 나타난 해와 달은 당시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해와 달은 사람으로, 혹은 강물로, 산으로 시인은 고대인의 이러한 상상력의 세계를 「일월」에서 나타내 보이고자 한 것이다.
그는 西域사람입니다. 東方에 가면 한몫 쥔다는 소리에 배를 탔습니다. 험한 뱃길이 고비를 넘겼다 싶을 즈음 안개에 휩싸여 조난을 당했습니다. 깨어나보니 후미진 갯벌에 배는 얹혀 있고 일행은 겨우 여덟 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이윽고 원주민들이 몰려와 그들을 에워쌌으므로 겁이 나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바다 밑에서 온 것으로 여겼습니다 먹을거리를 주고 부서진 배도 손질해 주더니 바다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한 사람, 일행 중에 가장 젊었던 그를 볼모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龍王의 아들로 받들었으며 벼슬과 여자를 주었습니다 이판사판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어딘들 어떠랴 마음을 굳혔지만 아무것도 그리울 게 없을 고향 생각에 시름에 겨운 것은 어쩔 수 없어 술에 취해 지내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 이슥히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던 그는 못볼 꼴을 보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그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한데 엉겨붙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꿈 속에서 사는 터 까짓것 오쟁이를 지면 어떠랴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구나 에라 춤이나 추고 노래나 부르자 남은 술기운에 부추겨 그는 춤추며 노래 부르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갔습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집집마다 그의 畵像을 그려 붙여 雜鬼를 막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神이 된 한 젊은 사내의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저절로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處容이여 그대는 어떤가.
―「處容」 전문
처용이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異見)이 있다. 처용설화는 특히 많은 시인들이 이를 수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처용이란 인물의 신비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卷2 紀異 第2)에 나타난 처용은 그 태생이 불분명하며 그의 인물됨 역시 평범함에서 벗어나 있다. 역신(疫神)을 감동시키고 물리쳐 우리나라 최초의 벽신(壁神)으로 추앙받는 것 역시 그러하다.
처용의 출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남해안의 호국룡(護國龍)으로 인식되어온 사제자(김동욱), 개운포의 용신제의에서 용신의 가면복식으로 분장한 사제자 가운데 한 사람(허영순), 용신의 아들을 재연한 남무(男巫, 김열규), 울산 지방 반(反) 중앙적 호족의 아들로서 질자(質子), 이재술(理財術)을 지녔던 이슬람 상인의 일원(이용범), 설화 형성 당대(헌강왕 이전)는 실존인물이되, 강자(권력상층)에게 침해받는 약자(민중)의 상징적 인물(김학성), 주술의 능력과 가무의 의식을 통해 기상의 변괴를 물리칠 수 있는 격(覡, 박노순) 등으로, 대부분 처용을 무격(巫格)의 주술적 인물로 보고 있다.6)
시인은 처용을 실크로드를 통해 무역에 종사하던 아라비아 상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당시 신라사회는 유럽이나 중동아시아와 활발한 무역을 하고 있었으며, 이들 중 어떤 무리가 조난당해 신라 땅에 도착하자 신라 사람들은 이들의 배를 수선해 돌려보내고 그 중에서 가장 젊은 처용을 볼모로 삼았다. 처용에게 벼슬과 여자를 주어 신라 땅에 살아가도록 했으며, 처용은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어딘들 어떠랴’ 라며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아간다. 그런데 처용은 아내의 외도를 목도하고도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다며 스스로 위로하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사람들은 그의 관대함에 놀라 처용을 신으로 받든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처용설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내의 외도에도 눈을 감아주는 너그러움과 관대한 포용력이다. 역신과의 갈등과 대결에서 승리한 처용은 역병을 막아낼 수 있는 벽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시인은 텍스트의 이면에 감추어진 신화적 진실을 시로써 해석하고 있다. 즉 외간남자(신이 아닌)와 통정한 아내를 용서하고 스스로 물러서버린 처용의 행위에 사람들은 예사사람이 아닌 것을 깨닫고 신으로 모시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방인으로서의 처용의 신비로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인은 신화의 이면을 꿰뚫어보며, 이에 대한 확신으로 시적 서사를 마무리 짓고 있다. 즉 마지막 구절 ‘처용이여 그대는 어떤가’에서 의문형 종결어미는 반문이라기보다 강조의 어조로 볼 수 있으며, ‘처용’은 ‘신화’를 상징하는 시적 기호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화가 한때 특정 문화집단에 의해 진실이라고 간주되었던 것이지만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여기지 않아야 비로소 신화로서 논의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에서, 시인은 현대인의 눈에 비친 신화의 비논리성을 통해 설화의 신화성을 오히려 부각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재의 수용에 의한 변용은 예시 3편 외에 「손순」 「만불」 등을 들 수 있다.
2.3 기법적 변용
기법적 변용이란 설화를 시화하면서 원래의 설화가 가진 구조나 내용을 다르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기법의 변용은 설화의 내용을 압축하거나 비유하여 현대의 정서와 의미에 부합되도록 표현상의 변화에 주력하며, 시적 완성도에 중점을 두는 방법이다. 서사의 수용이 설화나 향가의 서사를 거의 그대로 차용하는 데 반하여, 기법적 변용은 서사의 골격만 제시하고 설화에 대한 시인의 자의식이 나머지 시적 서사로 채워지게 된다.
山수유나무에 바람이 불면 산수유나무의 소리가 들린다 대나무에 바람이 불면 대나무의 소리가 들린다 넋을 놓고 바람소리를 듣다 보면 바람소리가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 자기가 하고 싶은 소리만 들린다 대나무에 바람이 불어도 산수유나무에 불어도 듣고 싶지 않은 소리만 용케도 골라 들었다는 귀가 긴 景文王 또한 실상은 그러했던가 그렇다면 바람소리 속에 들어 있는 갖가지 소리를 다 헤아려 듣는 중의 가장 가느다랗게 섞여 있는 저 뜻도 모를 소리는 이 세상의 어디에서 누가 내게 보내는 소리의 암호인가 누구에게 보내는 이 나의 서러움인가 덧없음인가.
―「耳長」 전문
고대 중국에서 소리의 미학적 개념은 ‘율려(律呂)’이다. 율(律)은 양(陽)이고 여(呂)는 음(陰)이다. 따라서 율은 남성이며 제왕이며 질서이다. 여는 여성이며 민중이며 혼돈이다. 바로 이 음양의 음률이 조화롭게 어울려야만 우주의 질서가 바로잡히고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율려는 바로 우주의 마음이며 숨소리며 질서이며 가락이라 할 수 있다.7)
이러한 소리는 소우주라 할 수 있는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 하고 싶은 소리로만 들으려 할 때 내면의 질서가 깨지고 평정심을 잃게 된다. 자신의 단점을 지적하는, 듣지 말아야 좋을 소리까지 용케 골라 듣는 큰 귀를 가졌던 경문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의 소리만 들려올 때는 양의 소리로써 그 균형을 맞추어주어야 한다. 소리의 중심이 무너지면서 군주가 평정심을 잃었을 때 그것은 정치적 위기와도 직결되며, 나라의 안위가 무너지는 조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세파에 섞여 있는 모든 바람소리를 다 헤아려 들으려 한다. 그것이 시인된 자의 직무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모든 소리를 듣고, 시인만의 목소리로 그 소리를 사람들에게 노래로써 들려주는 자이다. 그리하여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게 되는 것을 늘 경계하며, “가느다랗게 섞여 있는 저 뜻도 모를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기쁘고 즐거운 소리보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며, 벌레와 같이 하찮은 미물의 울음소리나 바람에 꺾어지는 가녀린 풀포기의 들리지 않는 외침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러한 “소리의 암호”들을 풀어내 세상 사람들에게 노래로써 들려주는 율사(律士)이다. 그 노래는 세상의 모든 서럽고 덧없는 것들의 소리이며, 그들의 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함께 서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자가 바로 시인인 것이다.
「이장」은 ‘제48대왕 경문대왕’(『삼국유사』 卷2 紀異 第2) 설화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설화가 중심이 아니라 설화를 통한 새로운 발화가 서사구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시인은 소리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설화 속에서 발견하고, 시인 역시 소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자임을 천명하고 우주적 질서 속에서의 노래의 참의미를 깨우쳐주고 있다. 시에 대한 시인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경문왕 설화에 비유하여 표출해 내는, 기법적 변용을 보여주고 있다.
갈대는 포아풀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가 큰 놈은 3m나 된다 그것들을 골라 발을 만들어 걸면 무심한 달마저 벗이 된다 갈대잎을 들여다보면 피처럼 붉은 자죽이 드문드문 찍혀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朴堤上의 핏자죽이라고 전한다 발가죽이 벗겨진 채 갈대 그루터기 위를 걸어갔고 마침내는 木島에서 불에 타 죽었던 사내 長沙의 모랫바닥에 주저앉아 길게 부르짖었던 그의 지어미도 마침내 소리쳐 울다가 자진하고 말았다 한다 갈대밭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다보면 갈대발이 시나브로 흔들릴 적마다 무언가 울음처럼 번쩍이는 것이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드문드문 섞여 있는 붉은 點들이 달빛을 받아 한결 뚜렷해질 때는 피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주 무시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다시 한 번 달을 바라보게 된다.
―「木島」 전문
「목도」는 ‘내물왕과 박제상’(『삼국유사』 卷1 紀異 第1)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내물왕의 셋째아들 미해(美海)를 구하고 왜국에 스스로 볼모가 된 박제상은, 발가죽이 벗기우고 갈대를 벤 위를 걸어가는 형벌을 받는다. 쇠를 달구어 그 위에 세워놓아도 박제상이 왜국 신하가 될 것을 거절하자, 왜왕은 목도라는 섬에서 박제상을 불태워 죽였다.
시인은 먼저 갈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휘어지는 약한 풀포기가 아니며 3m되는 것은 발을 엮을 수 있다는, 갈대의 식물학상의 정보를 제시한다. 그러한 갈대발을 걸어놓고 보니 거기에는 마치 핏자국처럼 붉은 색들이 드문드문 번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시인은 박제상이 갈대 위를 맨발로 걷는 형벌을 받아 온통 붉은 피로 물들였다는 설화를 떠올린다. 갈대의 붉은 자국들이 박제상의 피라고 구전되어온 민간 설화가 시인에게 역사적인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하여 갈대발이 흔들 적마다 ‘울음’처럼 번쩍이는 것이 보이고 달빛에 비치는 섬뜩한 ‘피’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갈대발에 섞인 피와 울음은 섬뜩한 그 어떤 대상이 아니라 ‘달’처럼 어둠을 밝혀주는 우리 역사의 선연한 표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시인은 「목도」에서 설화가 근거 없는 허황된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갈대의 식물학적 특성을 시의 서두에 내세움으로써 박제상 설화에 삽입된 갈대에 관련된 이야기의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즉 갈대를 온통 붉은 피로 물들였던 박제상의 숭고한 지절은 역사적 사실이며, 우리의 선인들은 그러한 역사를 잊지 않고자 갈대의 붉은 빛을 ‘피’라는 등가물로 각인시켜 놓은 것임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 설화는 문헌적 기록으로 메꿀 수 없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박제상 설화는 시인의 기법적 변용을 통해 「목도」로 작품화되면서 역사적 사실로 재인식되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져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가는 덫을 보았다
덫에 갇힌 꿈의 얼굴이 눈물에 젖어 번쩍이고 있었다
아득한 벼랑 위에 한 무더기 꽃으로 피어나 있었다
돌아와 다오 소리쳐도 그 소리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뿌리째 뽑힌 한 아름의 붉은 철쭉꽃이
풀려날 길 없는 덫을 이끌고 水路夫人의 철쭉꽃이 온하늘을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
―「水路」 전문
「수로」는 향가 「헌화가(獻花歌)」를 변용한 시이다. 「헌화가」는 수로부인이 남편 순정공을 따라 동해안을 순시할 때 소를 몰고 가던 늙은 노인이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높은 절벽에 올라가 철쭉꽃을 꺾어 바쳤다는 이야기를 배경설화로 하고 있다.(『삼국유사』 卷2 紀異 第2) 견우노옹(牽牛老翁)의 정체에 대해서는 선승, 신선, 촌로, 농신(農神) 등 그 견해가 다양하지만, 비록 늙었지만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남자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노인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관한 관심이 두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이한 일들을 야기할 정도로 뛰어난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에 중점이 두어져 있다.8)
따라서 「헌화가」는 선승이나 신선, 농신 등이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주술적인 노래가 아니라 여인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노래하는 순수한 서정시라 할 수 있다. 「헌화가」는 현대 시인들이 향가 중에서 가장 많이 소재를 차용하여 시화한 노래로서, 이것은 바로 「헌화가」를 사랑의 노래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선호되어온 문학적 모티프가 아닐 수 없다.9)
박제천 시인 역시 「헌화가」를 사랑의 노래로 수용하여 이를 시적으로 변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 「수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절함과 그리움이다. 사랑의 덫에 갇혀 “풀려날 길”을 찾지 못한 자의 처절한 울부짖음이다. 그 덫은 ‘신분의 덫’ ‘윤리의 덫’으로서,9) “돌아와 다오”라고 소리쳐도 그 소리마저 돌아오지 않는, 철저하게 차단된 사랑이다. 온마음이 ‘뿌리째 뽑’혀 철쭉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만남이었지만,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그림자처럼’ 현실에서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사랑인 것이다. 「수로」는 사랑의 노래인 「헌화가」를 이루어질 수 없는 처절한 사랑의 노래로 변용되고 있다.
기법적 변용으로 씌어진 시는 예시 3편 외에 「사소」 「구정」 「보양」 「몽파」 「동진」 「멸신」 「어산」 「삼십육종, 진신」 등이 있다.
2.4 모티프의 수용
융(C.Jung)은 인류 선사시대로부터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존재해온 원초적 체험을 재생(Rebirth Archetype)이라 했으며, 쿤즈(R.Kuhns)는 신화의 세계나 먼 조상의 삶까지도 추적하는 데 관여하는 기억작용을 想起(anamnesis)라고 명명했다.10) 재생과 상기의 메카니즘을 통해 시인의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었던 체험과 의식을 시로써 발화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시적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모티프의 수용은 설화의 모티프와 무의식 속에 편입되어 있던 시인의 체험이 만나 영감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적 모티프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티프(motif)는 테마적 소재의 최소 부분을 일컫는 것으로 한 문장 한 행에까지 각각 그것의 고유한 모티프가 있는, 더이상 분해할 수 없는 부분의 테마이다.11) 따라서 하나의 설화 속에도 수많은 모티프가 있으며, 이것이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시로써 발화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티프의 수용은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설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며, 그 결과 설화적 모티프가 철저하게 감추어져 설화와의 관련성을 제대로 밝혀내기 힘들다.
한 그루 나무의 수백 가지에 매달린 수만의 나뭇잎들이 모두 나무를 떠나간다.
수만의 나뭇잎들이 떠나가는 그 길을 나도 한 줄기 바람으로 따라 나선다.
때에 절은 살의 무게 허욕에 부풀은 마음의 무게로 뒤처져서 허둥거린다.
앞장서던 나뭇잎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쩌다 웅덩이에 처박힌 나뭇잎 하나 달을 싣고 있다.
에라 어차피 놓친 길 잡초더미도 기웃거리고 슬그머니 웅덩이도 흔들어 놀밖에
죽음 또한 별것인가 서로 가는 길을 모를밖에.
―「月明」 전문
生死의 길은
이승에 있어 두렵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 지는 落葉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 모르누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祭亡妹歌」 전문12)
위의 시 「월명」은 卷5 感通 第7 「월명사 도솔가(月明師兜率歌)」에 삽입된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에서 제재를 가져온 것으로, 그 아래 인용시는 향가의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제망매가」는 승려인 월명사가 자신의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시로서 시인은 이를 자신의 정신세계로 끌어와 육화시키고 있다.
두 편의 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삶과 죽음의 허무한 경계 앞에서 그 인식을 함께 하고 있지만, 시적 전개에 있어서 서로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월명사는 ‘한 가지에 나고도 가는 곳을 모르는 낙엽’처럼 죽음의 세계는 알 수 없고 두렵지만, 아미타도량(阿彌陀道場)에서의 누이와의 재회를 위해 열반적정(涅槃寂靜)의 길을 가겠다는 종교적 신념을 보여준다. 서방정토에서 누이를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며 죽음의 허무를 극복하고 있다.
시인은 “수만의 나뭇잎들이 모두 나무를 떠나”가야만 하는 죽음의 세계를 “한줄기 바람으로 따라 나”서야 하는 개체의 운명으로써 인식한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육체적 삶은 “때에 절은 살의 무게 허욕에 부풀은 마음의 무게”로 허둥거리며 죽음이라는 또다른 세계를 잊게 마련이다. 그래서 “잡초더미도 기웃거리고 슬그머니 웅덩이도 흔들”어 놓으며 진흙탕과 같은 현실 속으로 되돌아와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이 “별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언제 어디로 따라나서야 할지 모르는 것이 죽음일진대, 바람처럼 제 갈길을 모른 채 이리저리 떠도는 것이 삶이라면 이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라는 인식이다. 따라서 죽음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적인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순응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두 편의 시가 삶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초극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월명사가 종교적인 신념으로써 이를 극복하려는 데 비해, 시인은 우리가 삶의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가듯 죽음 역시 마찬가지라는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향가에 나타난 신라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자신의 세계관 속에 용해시켜 놓은 것이다.
향가의 원문과 인용시를 비교한 결과, 시인은 「제망매가」를 수용함에 있어 향가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에 충실하기보다 자신의 정신과 영혼으로써 재해석하여 새로운 시세계를 창조해 내고 있다. 이것은 설화에서 모티프를 차용한 ‘모티프의 수용’에 해당한다. 「제망매가」의 죽음의 모티프를 시인의 정신세계에서 새로이 해석하여 시화하고 있음이다.
아무래도 내가 죽어 묻힐 곳은 저 하늘밖에 없다
저 하늘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떠 있는 나의 별을 찾기 위해서라도 그 길밖에 없다
인연이 닿았던 이승의 이 바람소리 물소리
오고 감을 꾸며 주었던 이 살의 옷마저 버리고
미친 넋의 불길로 온몸 온마음을 불살라 버리려던 어린 꿈은 이미 흘러간 지 오래다
바람의 힘, 물의 힘을 빌어 이제는 저 하늘에 가 묻힐 것을 기다릴밖에 없다.
―「픧刀利」 전문
도리천은 불교에 말하는 욕계 6천(欲界六天) 중에서 제2천(第二天)에 해당하는 곳으로, 신라 27대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내린다. 모두들 왕의 시신을 어떻게 하늘에 묻을 것인지 몰라, 왕의 유언대로 경주 낭산 남쪽에 묻었다. 선덕여왕의 다음 대 임금인 문무왕은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 사천왕사를 창건했는데, 사천왕사의 사천왕천은 도리천 아래에 있는 욕계의 네 하늘을 가리킴이니 이로써 왕의 유언이 실현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선덕여왕의 슬기로움과 지혜로움을 말해주는 ‘선덕왕(善德王)의 지기삼사(知幾三事)’(『삼국유사』 卷1 紀異 第2) 설화에 들어 있는 세 가지 사건 중의 하나이다. 선덕여왕 설화에서 우리들은 선인들의 지혜와 꿈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죽어서 하늘에 묻히겠다는 아름다운 꿈은 우리 현대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박제천 시인에 있어서 별은 죽음의 이미지로 자주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별이 희망이나 꿈을 상징하고 있는 데 비해 박제천의 별은 죽은 자들이 화(化)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어느 날 무심히 밤하늘을 바라볼 때 갑자기 한 줄기 불꽃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면 그대 곁에 어느 누가 또 보이지 않으리라”(「地上」, 『장자시』, 문학사상사, 1988)는 시구에서처럼 사람이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별이 떠 있는 하늘은 저승의 하늘이므로 이것은 선덕여왕이 하늘에 묻히겠다는 꿈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어 떠오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어딘가 떠 있을 나의 별을 찾기 위해서” 죽음이라는 통과제의를 거쳐야 한다. 속세의 인연을 모두 끊고 육체의 옷을 벗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마저 흘려보내야 한다. 선덕여왕이 도리천에 묻힐 수 있었던 것처럼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나서야 자신의 별을 찾을 수 있다는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박제천의 「도리」는 「선덕왕 지기삼사」 설화에서 시적 모티프를 차용, 천년의 시공을 넘어서서 오늘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주고자 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서 꿈의 하늘에 떠 있을 자신의 별을 찾으려는 시인의 소망은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 현대인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천년 전 선덕여왕의 꿈이기도 했다. 이것은 설화가 지니고 있는 산문적인 기능인 메시지적 의미를 시적인 의미로 환치시켜 현재 우리의 정신적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기법적 변용의 시는 예시 2편 외에 「천안」 「포산」 「앵무」 「구법 「낭지」 「금살」 「연좌석」 「박박」 「불언」 「신효」 등이 있다.
3. 나가는 글
지금까지 우리는 박제천 시인의 제4시집 『달은 즈믄 가람에』에서 『삼국유사』를 텍스트로 삼은 작품들을 선별하여, 시공을 초월한 시인의 상상력의 세계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용되어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시인은 고대의 신화적 공간을 현대로 옮겨와, 고대인의 삶이 지금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그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삼국유사』 설화를 텍스트로 한 시인의 35편의 연작시는, 설화 텍스트의 서사를 그대로 차용하는 ‘서사의 수용’, 이야기의 주요 소재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새로운 소재를 덧붙여 이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소재의 수용’, 원래의 설화를 현재 우리의 시적 정서에 부합되도록 표현기법에 변화를 주는 ‘기법적 변용’, 설화에서 모티프를 차용하여 시인의 시정신과 접목하거나 상상력을 통해 그 주제나 내용을 전혀 다른 내용으로까지 확대시키는 ‘모티프의 수용’ 등으로 그 수용 양상을 분류할 수 있다. 고찰한 바에 따르면 35편의 시 중에서 서사의 수용은 「모곡」 등 6편, 소재의 수용은 「기이」 등 5편, 기법적 변용은 「이장」 등 12편. 모티프의 수용은 「월명」 등 12편이다.
수용 양상을 분석한 결과 서사의 수용과 소재의 수용이 모두 12편인 데 반하여 기법적 변용과 모티프의 수용은 각각 12편으로 24편에 달하고 있다. 시인은 설화 텍스트를 그대로 차용하기보다 현대적인 감각이나 정서에 부합하는 기법적 변용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설화의 모티프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시인의 상상력과 접목시켜 또다른 시적 발화로 확대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인은 이와같은 방식을 통해 설화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더욱 심화시키고, 현대적 표현기법으로 변용하여 높은 시적 성취를 일구어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이라는 것이 더이상 화석화된 고대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까지 면면히 내려오는 삶과 정신의 바탕이었음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주고 있다. 선인들의 삶과 정신의 총합적 서사인 『삼국유사』의 이야기와 노래를 그의 내면에서 육화하여 현대적 의미로 변용시켜 우리에게 다시 들려준 것이다. 따라서 연작시 ‘달은 즈믄 가람에’는 우리의 전통에 새로운 시적 생명을 불어넣어준 뜻깊은 작업으로서 그 의의를 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註
1) 박제천, 「詩作노트」, 『어둠보다 멀리』, 오상출판사, 1987, 64쪽
2) 박제천, 「독자를 위하여」, 『푸른별의 열두 가지 지옥』, 청하, 1992, 96쪽
3) 송정란, 『현대시의 삼국유사 설화 수용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1998
4) 조동일, 삼국시대 설화의 뜻풀이, 집문당, 1991, 19쪽
5) 현대문학 문화비평 용어사전, 조셉 칠더즈 게리 헨치 엮음, 황종연 옮김, 문학동네, 1999, 291쪽
6) 김승찬, 향가문학론, 새문사, 1997, 403~404 참조
7) 김지하,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1999
8) 신은경, 『삼국유사』의 揷入詩歌 연구, 고전문학 제13집, 한국고전문학회, 1998, 37쪽
9) 박노준, 『향가 여요의 정서와 변용』, 태학사, 2001, 208쪽
10) 김준오, 『시론』, 삼지원, 1991
11) 김윤식, 『문학비평용어사전』, 일지사, 1993, 47~48쪽
12) 홍기삼, 『향가설화문학』, 민음사, 1997, 3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