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사고 현장인 호남석유화학(주) PE(폴리에틸렌) 제3공장은 융단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된 상태다. 제품 저장 창고인 '싸이코'의 콘크리트 벽과 배관은 시커멓게 그을린 채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사고현장을 둘러 본 여수산단 환경·안전팀 관계자들은 싸이코가 터졌을 경우 인근 공장인 NCC 공장까지 연쇄 폭발사고로 번졌을 것이라며 아찔해 했다. 폴리에틸렌 제품 저장창고인 '싸이코'가 터졌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NCC 관계자는 "만일 호남석유 안에 있었던 수소탱크가 터졌다면 여수산단은 초토화됐을 것"이라며 "수소는 대기 중에 노출되면 자연 발화하는 성질을 지닌 물질로 독가스보다 더 무서운 위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사고 공장과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NCC는 폭발사고로 인해 공장 가동이 일부 중지된 상태다.
호남석유화학 이영일 사장은 4일 오후 1시께 공장 주변마을인 여수시 중흥동 마을 앞 광장에서 주민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를 갖고 대형 폭발사고에 대해 사과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정부당국과 회사측에 △이주대책 조속한 해결 △마을과 공장의 비상연락망 구축 △재난 발생 시 회사직원 24시간 대기 △마을 가스측정기 설치 △사건·사고일지 제출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유독가스 누출과 폭발사고에 떨던 주민들은 두통과 구토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전 주민(3300명)에 대한 건강정밀진단 실시와 함께 주민피해 완전 복구를 회사측에 요구했다. 또한 폭발사고로 중화상을 입어 서울한강성심병원에 긴급 이송된 이 마을 청년 김정민(27)씨에 대한 철저한 치료를 요구했다.
주민들은 내일(5일) 오후 6시까지 요구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집단 시위를 전개하겠다는 강경한 방침을 회사측에 전달했다.
박우신 호남석유 팀장은 "공장 안전이 우선인 만큼 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마을 주민들의 요구 중 답변 가능한 것은 내일까지 하겠지만 시간을 두고 해야 할 것은 양해를 구하겠다"는 정도로 답변해 주민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충돌이 우려된다.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장종채(57·중흥 3동 통장)씨는 4일 "가스 흡입과 폭발음에 놀란 노약자와 어린이들을 병원으로 후송하고 있다"며 "월남전 참전 당시 폭탄 위력을 다시 실감하는 것 같았다"며 폭발사고의 불안감에서 떨치지 못했다.
공장 인근인 여수시 평여동 남수마을에서도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사고 공장과 맞은 편에서 위치한 탓에 유독가스에 그대로 노출됐다. 유독가스 후유증을 시달리던 이 마을주민 16명은 병원에 후송됐다. 이 마을 집 벽과 지붕도 폭발의 영향으로 부서지고 유리창과 형광등도 깨졌다.
오무영(55·여수시 평여동 2통장)씨는 "어제 밤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두통을 호소하고 있어 병원으로 후송하고 있다"며 "폭발음에 놀란 대다수 주민들의 불안감을 호소하는 등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마을주민에 대한 건강검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여수환경운동연합은 4일 성명서에서 "올해만 해도 금강고려화학(1명 사망), 남해화학(1명 사망), 엘지칼텍스정유(1명 사망), 엘지화학(1명 사망, 2명 부상) 등 여수산단 내 사망사고가 기록경쟁이라도 하듯 줄을 잇고 있다"며 "연이은 환경·안전사고로 여수시민은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으며, 불안에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또 "사고 발생 1시간이 지난 뒤 대피명령을 내린 것은 여수산단 재난관리에 허점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며 "정부와 여수산단 입주업체는 탁상공론을 멈추고 주변마을 주민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즉각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민 이주를 촉구했다.
이 단체는 특히 "정부와 입주업체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늑장대응과 무대책으로 일관했다"면서 "대형 화약고나 다름없는 여수국가산업단지 전체에 대한 환경안전 정밀진단과 특단의 대책수립"을 촉구하며 여수산단을 '재난위험시설·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
호남석유화학 폭발사고는 '인재'
(여수=연합뉴스) 남현호 기자 = 3일 발생한 호남석유화학 제1공장의 폭발사고는 현장 근로자들의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人災)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4일 전남 여수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불이 날 당시 제1공장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3공정 생산라인에는 호남석유화학 직원 14명과 하청업체 직원 2명이 폴리에틸렌 중합 과정에 원료를 공급하는 배관이 막히자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이를 복구하는 청소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일단 경찰은 반응기 배관 청소 작업 과정에서 작업자의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1차로 3일 밤 안모(39)씨 등 당시 현장 작업자 2명과 목격자들을 상대로 사고 경위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안씨는 "폴리에틸렌 응고를 막기 위해 공정을 중지시키고 탱크와 연결된 지름 10인치의 배관을 잠가 놓고 배관 라인 클리닝 작업을 하고 있었다"며 "식사 후 돌아와 보니 탱크 배관에서 헥산이 세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폭발이 중합과정에 남아있던 잔류 수소 가스나 인화성이 강한 헥산(hexane)이 누출되면서 스파크가 발생, 폭발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보고 공장 관계자들을 상대로 배관과 연결된 탱크 밸브가 열려있었던 이유, 안전조치 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원인을 알고 있는 작업자가 사망해 사고 원인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오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 감식 결과를 지켜보고 작업자의 과실여부가 드러날 경우 사법 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폭발사고 화재원인은 '미궁'
(여수=연합뉴스) 손상원.형민우 기자 = 전남 여수산단 내 호남석유화학 폭발화재 원인에 대해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사고가 난 공장은 건설된 지 3년여 밖에 되지 않아 배관노후 등 설비 부분 하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운전과정의 실수 등 '인재' 의혹을 사고 있다.
또 사고 직전 공무부 직원들이 반응기 배관 청소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청소작업 뒤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이 과정에서 실수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장 근무 중 다친 근로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입을 다물거나 사고 상황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하고 있어 경찰이 원인규명에 애로를 겪고 있다. 더욱이 회사측은 사고조사와 간병을 이유로 병실을 지키고 있어 이들 '입 단속' 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입술과 어깨 등에 부상을 입은 안효상(32)씨는 "작업 중 '꽝'하는 폭발음이 있었으나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다물었다.
협력업체 직원 한상기(29)씨는 "폭발현장에서 50여m쯤 떨어진 운행대기실에 있었는데 굉음과 함께 유리 등이 깨졌다"고 말했다.
한편 이 회사 기술담당리더 김언철씨는 "사고가 난 공정은 에틸렌을 수소와 결합, 폴리에틸렌을 생산하는 공정으로 이 과정에는 헥산(용매제)과 촉매제가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폭발력이 강한 물질이 누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구멍난 재난체계, 1시간 뒤 발령된 주민 대피령
(여수=연합뉴스) 남현호 기자 = 3일 오후 여수 호남석유화학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공장 주변 주민들에 대한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사고 발생 1시간 뒤에야 대피령이 발령돼 행정 당국이 산단 주변 주민 안전대책 마련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여수시 재난상황실은 폭발 사고가 나자 중흥동, 평여동, 월하동 등 3개 동에 대해 주민 대피령을 내리고 주민 2500여명을 공장에서 10km떨어진 여수시 쌍봉동 흥국체육관과 여수시청 등으로 긴급 대피시켰다.
주민들은 이날 집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는 광경을 목격하고 겁에 질려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상당수 주민들이 폭발 위험에도 불구하고 불 구경에 여념이 없었지만 이를 통제하는 경찰과 시청 공무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주민 대피령은 사고 발생 한시간 뒤인 오후 7시에 내려졌다.
이처럼 주민 대피령이 늦어진 데 대해 여수시는 화학공장 성격상 정확한 사태 파악이 힘들었다는 입장이지만 주민 10여명이 호흡곤란과 심리적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행정당국의 안일한 사고대처에 주민들 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이날 화재로 체육관 등에서 하룻밤을 꼬박 세운 주민 가운데 600여명은 4일 오전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400여명은 폭발사고의 정확한 원인과 안전진단이 모두 끝난 뒤 귀가하겠다며 집단 반발하고 있어 이번 폭발사고가 행정당국과 주민간 마찰로 번지고 있다.
주민들은 폭발사고로 인해 발생한 매연이 바람을 타고 마을을 모두 뒤덮어 당장 귀가하더라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또 이번 폭발화재 사건으로 호남석유화학 주변 마을 주민에 대한 이주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게 됐다.
평여동 이주대책위원회 임준규 위원장(37)은 "주민들이 공해와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는 데도 당국이 남몰라 하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일괄보상을 전제로 한 조속한 이주대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석유화학 사고 수습 착수
(여수=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호남석유화학은 4일 폭발사고 현장에 대한 수습작업에 들어갔다.
호남석유화학은 이날 회사 관계자 등을 보내 가스 추가유출 여부 등 확인작업 등을 벌인데 이어 경찰과 소방당국의 폭발원인에 대한 정밀감식이 끝나는 대로 본격 수습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회사측은 공무팀 근로자 100여명을 동원, 수습 및 복구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하지만 화학공장의 특성상 설비가 대형 구조물이어서 철거 등의 어려움이 커 완전 복구에는 1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사망자 및 부상자에 대해서 유가족 등과 협의, 원만히 처리되도록 할 계획이다"며 "산재 및 상해보험 등에 가입돼 있는 만큼 충분한 보상과 치료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호남석유화학 생산 차질 불가피
(여수=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3일 발생한 전남 여수산업단지내 호남석유화학 폭발사고로 이 회사 폴리에틸렌(PE)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호남석유화학은 4일 "이번 사고로 PE 제3공장 가동이 최소 1개월 중단될 예정이며 복구비용으로만 8억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제조과정에 있던 폴리에틸렌 등이 불에 타 1억4천여 만원의 피해를 냈다. 이 회사는 농업용 필름 등의 원료인 폴리에틸렌을 연간 36만t 생산하고 있으며 폭발사고가 난 제3공장은 절반 가량인 15만t을 담당하고 있다.
가동이 1개월 중단될 경우 제품 생산 차질 액은 70억 원을 넘을 것으로 회사측은 추정했다. 한편 회사측은 "중합 공정내 반응기 순환배관을 청소하다가 폭발력이 강한 헥산이 유출돼 사고가 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