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11구간 - 차현고개 ~ 칠장산까지
엊그제 시작했던 것 같았는데 벌써 마지막구간이네요
당연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건 세상사 일이지만 어쩐지 섭섭하기만 합니다.
금강의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북진을 속리산에서 멈추게 했던 산줄기가 한남금북정맥입니다.
정치적 핍박아닌 핍박을 받았던 금강의 힘찬 기상을 금강의 다른 한줄기인 미호천이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아직 개인적으로는 금남정맥을 끝내지 않아 금강의 모든 산줄기를 얘기 할 수 없지만
금강 북쪽의 산줄기를 정맥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구간도 이 초보산꾼과 함께 어떤 삶의 얘기들이 있었는지 여행을 떠나 봅니다.
우리가 걸었던 한남금북정맥
![](https://t1.daumcdn.net/cfile/blog/014BA44850C2FDE52A)
마지막 구간 등로
수레티고개(차현고개)
지방도 583번 위에 있는 화봉육교가 있는 마이산과 서쪽의 황색골산 사이에 있는 고개
음성군 금왕읍 내송리에서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까지 연결되는 지방도이다.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속국도와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삼죽면으로 바뀐 전설
신라가 망할 무렵 곳곳에서 무장세력들이 할거할 때 이곳은 죽주라 불렸는데 기훤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과 세력을 겨뤘던 궁예가 원주 양길에게 가기 전에 기훤에게 한때 의탁했다고 한다.
죽주(竹州)는 지금 안성시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이다. 죽주산성 터가 남아있다.
원래는 죽일면 죽이면 죽삼면이었는데 죽일면장…. 다 죽이고 나면 어떻해? 이 어감이 좋지 않아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009021552529190981
죽림산345 갈림봉
경기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에 있는 산으로 용암과 설동의 이름을 따서 붙였고,
설동의 지형이 용의 혀처럼 생겼기 때문에 용설리龍舌里라 칭하였다
안성은 '안성맞춤' 유기로도 유명하지만,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에서 보듯이 대나무(竹)로도 유명하니 죽림산으로 어울린다.
안성맞춤
요구하거나 생각한 대로 잘 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안성하면 유기였고 대량생산 유기에 비해 주문제작한 유기는 최고의 수준을 자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문하여 만든 것처럼 잘 들어 맞는다는 데서 유래를 찾고 있다.
황색골산352/ (도고리봉)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조금 비껴서 나무에 한남금북정맥 352.9 m 준,희님의 표지판 걸려 있음
마이산 서쪽의 음성 삼성면과 안성시 이죽면 경계이며 “황세 골”이란 골짜기 때문에 얻은 이름인 듯
고려시대에 삼성면 주변에 연탄처, 대조곡처, 상맥곡처, 하맥곡처 등의 처라는 특수부락이 설치되어 있던
천민족 또는 소외지역이었던 것 같다.
저티고개(지현) 사거리 안부 산박골 2.3km 이정표 / 돌탑
음성 삼성면 대사리 범말과 안성 일죽 용설리를 잇는 고개
성황당 흔적인 듯한 돌무덤이 있고 “겨티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범말은 마을앞에 벌판이 있어 벌말이라 부른다고 한다
猪峙? 멧돼지라도 열심히 넘어 다녔나?
삼박골산
여기서 음성과의 인연을 썬밸리 골프장을 감싸고 있는 능선으로 넘긴다.
그리고 이제 안성땅으로 완전히 접어 들게 된다
당목리고개 좌측의 음성군 당목리와 우측의 죽산면 용설리龍舌里를 연결
당목리는 난리를 피하기에 더 없이 좋은 피난고지(처)라 할 만큼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 많은 곳이다
주거리 마을은 새색시가 가마타고 시집오다 죽음을 당해서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주거리 고개에서 마을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도솔산 비로봉 278.7
비로자나란 '무한한 빛을 발하여 어둠을 쫓는다'는 뜻으로 대광명의 화엄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도솔산 보현봉 260
兜率 (육욕천의 넷째 하늘).
普賢 대승불교의 보살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보살로서 일체제불의 이법(理法), 실천을 대표하고 모든 불국토(佛國土)에 나타나 교화(敎化)를 맡는다고 하며
걸미고개
경기도 안성과 충북도 진천이 갈라지는 도경계, 안성컨트리클럽 진입로와 17번 도로가 만나는 곳,
“걸미고개”는 장을 보러갈 때 짐을 걸머지고 다녔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하기도 하고,
농사가 잘 안되는 척박한 땅이라 주민들이 거지가 되다시피 했고 곡식조차 맛이 없어 “걸미”라는 이름을 얻었다고도 한다.
긴 고개’ 혹은 ‘진 고개’라고도 했고, 채표노름을 많이 했던 곳이라서 ‘채팻골’, 비석이 있던 자리라고 해서 빗돌골,
4월 초팔일 날 음성에서 칠장사로 가는 사람들로 붐벼 큰 고개로 불렸다고 한다.
[출처] 7. 한남금북정맥 7구간 (바리고개 ⇒ 걸미고개) 산행기 (순천한울산악회) |작성자 산악인
또한 외딴집에 할머니 한 분이 살던 곳이라해서 할미고개라고도 하고...
장수봉 구:바가프미산
경기 안성시 죽산면 장계리
장계저수지
죽산장을 보기 위해 넘던 장고개 왼편의 뜰을 '비렁뱅이 뜰'이라고 했는데 이곳은 물이 귀하고 마른땅이라 옛부터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죽산 사람들은 장서니로 시집 보내면 보리쌀만 먹으니 시집보내지 마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장계저수지가 생기면서 비렁뱅이 땅은 이제 가장 농사가 잘 되는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좌벼울고개
제비울 고개에는 소나무 서낭이 있고 천계에는 내목동이라고 부르눈 마을의 느티나무에서는
내목동 주민들이 정월달과 팔웦 추석에 고사를 지냈고 초당마을에서는 산제사를 지냈는데 일제시대떄 없어 졌다고 한다.
바사리열두고개
칠장리에서 넘어 오는 고개가 북전고개와 바사리 고개인데 북전고개를 12고개 혹은 삐뚤이 고개라고 불렀다.
그만큼 구불구불했던 길인데 그래도 마차가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한남정맥. 칠장산)
바사리 고개는 바(밧줄)을 사린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나무를 하던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죽산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이 고개도 이제는 골프장에 가로막혀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칠장산(七長山, 492m) 3정맥 분기점이다,
국내 최대 복조리 생산지이자 복조리만들기 400년 전통을 이어오며 전형적인 농촌체험마을로 정평이 나있는 신대마을 갈림길
광혜원 백정 출신이었다는 일곱 명의 도적을 개과천선케 하여 일곱 현인이 되게 한 산자락이라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칠정산(七丁山)이라 부르다가 칠현산(七賢山, 516m)이란 산명을 갖게 됐다고 하며, 이곳 사람들은 두 산 모두 칠현산이라 부른다
칠장사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648년 창건한 칠장사는 과거를 보러 가다 이곳에 머문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가
꿈에서 신선에게 과거 시험 문제를 받아 장원급제했다는 이야기(몽중등과시)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조선시대 명종 때 임꺽정이 스승 병해 스님과 함께 10여년간 머물던 사찰로, 벽초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주요 무대가 되기도 하는 곳이 칠현산 칠장사인데
백정 출신의 갖바치가 병해대사로 도통을 하여 임꺽정 무리들의 아지트가 되도록 해주고 있었다
임꺽정 - 갖바치 출신인 병해대사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85세에 병해대사가 입적하자 이곳 칠장사에 모시게 되었는데, 그래서 핍박 받던 백성들의 애환이 전해지는 유서깊은 절이다.
궁예는 변란을 피해 차현고개 인근의 칠장사에서 유아때부터 10여세까지 보냈다 (http://blog.chosun.com/casy/3585459).
그런 연유로 칠장사에서 가까운 5소경중 하나인 서원경이 있었던 청주지방 일대는 궁예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으며
궁예가 청주출신 사람들을 각별히 신임하여 중용하였고 왕권강화를 위해 청주사람들을 철원으로 이주시켜 왕조의 기반으로 삼았다.
불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병해대사와 궁예의 전설같은 얘기가 전해지는 마지막 구간인 만큼
산이름도 비로봉, 보현봉이 함께하는 구간입니다.
마지막 한남금북정맥구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초보산꾼 도 덕 산
첫댓글 형님 축하합니다. 그 열정 쭉 이어가시고요.. 가고 싶지만. 종친회 빌딩 기공식이라 쩝..~집안 일이 먼저겠지요.. 오후 시간되면 은비령님 아들 결혼식 가려합니다.
그러니까요? 마지막 구간 함께였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잘 끝네시고 담에....
마지막까지 함께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총무님의 열정을 또 언제 볼까요? 인연이란게 그렇죠?
그 열정의 기운을 마지막 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텐데...
마지막 구간 멋있게 마무리하고 그간의 노고에 박수를 많이 받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