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영향력
마이클 본드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생각에 깊은 고민 없이 동조하는 사람들을 ‘귀가 얇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는 타인이 주는 영향력을 무시하는 말이다. 인간은 철저한 사회적 존재이기에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남에게 조종당한다. 또한 인간은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데 아주 익숙하다. 어떤 임의의 기준이 정체성으로 확립되고 집단 성향으로 굳어진다. 집단으로 구분되는 현상은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게 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는 연대의식을 통해 사회 변혁을 이끌 수도 있지만 강력한 반사회적 행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흔히 사실이 아닌 소문에 휩쓸린 사람을 조롱하기 쉽지만 그 사람은 겉보기만큼 그렇게 무분별하지 않다. 다만 무언가를 원할 때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휩쓸리기 쉬울 뿐이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스스로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많이 좌우되는 것이다. ‘카멜레온 효과Chameleon Effect, 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의 버릇을 흉내 내는 현상’라고 불리는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마주 앉은 사람의 식사 형태까지도 따른다고 한다. 이런 모방 본능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체로 감정은 우리에게 직접 벌어진 사건에서 발생한다. 감정 전염,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는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행복한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성취했던 경험을 떠올리고, 양보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면 관심 있는 누군가와 깊이 공감하면서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 된다. 가장 전염성이 강한 감정은 솔직한 감정으로 본능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감정은 지켜보는 모든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一笑一少 一怒一老’라고 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도 있다. 결국 감정은 몸의 자세와 움직임과 발성으로도 손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할 때와 같은 심리 상태라면 자신의 행동을 더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잘 알게 해 주는 말이다. “각 개인의 추론과 능력은 기대하는 것보다 팀에 기여하는 정도가 훨씬 적다. 좋은 팀을 꾸리려면 성공적인 의사소통 양식을 따르게 해야 한다.”고 한 MIT의 컴퓨터 과학자 펜틀런드Alex Pentland의 말을 떠올리면 지금 시대 각광받는 재택근무의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 같은 의미로 성과급은 개인의 동기를 끌어올리는 데 목적을 둔 성과급제도는 동료들 사이에 경쟁을 부추기고 한 팀으로 일하는 방식의 장점을 줄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 말이 모방이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기제였음을 알게 해 준다. 감정에 전염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 기분의 구름에 방패를 들 수 있을까? 관심을 덜 주거나 거리를 두거나 정서적으로 멍해지면서 물러설 수는 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함께 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집단에 속하고 집단의 구성원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구태의연하고 비과학적인 사고가 군중에 대한 공공의 담론을 지배할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대중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민중의 의사 표현이 되기도 하고, 악령에 사로잡힌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기도 하는 정치적 힘이 있다. 군중이 되면 ‘개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를 중단한 자동장치가 된다’는 말이 그런 모습을 보았던 나에게 더 깊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1980년 미국 ‘세인트폴 사건’, 우리의 5·18에서 공권력이 주장했던 체제전복을 꾀하는 무리는 볼 수 없었다. 2009년 G20 런던 정상회담 반대 시위와 2011년 영국폭동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강제적 해산이 오히려 폭력을 강화시키는 모습으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사회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어느 누구도 최악의 사태에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우리의 차이는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고 해서 주변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훨씬 민주적이고 더 견고하다는 뜻이다. 크든 작든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의견들에 대한 반감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없게 되면 그 조직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명하다. 군중은 절대 우매하지 않다. 수많은 어려운 상황에서 올바른 연대 행동의 사례는 너무나 많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심리적 군중을 이루며 각자의 이해 범위가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장된다. 우리의 아픈 사례를 말하지 않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으므로 모두 같이 움직여야 한다. 반대로 움직였기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변화의 초석을 다진 경우도 있었다.
행동은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모든 조직은 위기를 겪는다. 변화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오래 기억하며 들먹이고, 조직원의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함께 하기 힘들다. 탐험가가 같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시무룩하며, 용서하지도 않고, 잘 잊어버리지도 못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란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드러나는 본성을 보면서 동행할 사람을 신중하게 고르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친구와 가족, 동료와 연결되어 있음을 가끔 잊는다. 그래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여러 가지 작업에서 수행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잘 구성된 조직은 응집력이 신뢰와 소통과 배려, 그리고 구성원들끼리 서로 협조하는 분위기를 형성해 모든 구성원의 수행능력을 올릴 수 있다. 흔히 집단 사고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단 사고는 집단이 균형을 이루려 할 때마다 항상 위험요인으로 작용하여 큰 문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화목한 분위기에 휩싸여 위기를 분별하지 못하고 간과하면 그 조직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집단사고는 ‘동조경향’이라는 심리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개인의 평균 능력보다 더 낮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집단 신의는 개개인의 부족함을 메꾸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전쟁터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동료들에 대한 신의에서 비롯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념이나 지도자의 능력, 생존 본능, 적을 향한 증오 등 보다는 연대의식과 더불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다. 집단 신의가 가득한 곳에서 동료를 실망시키는 행위는 가장 비겁한 모습으로 인식된다. 집단 응집력이 약하거나 흩어진 조직의 내일은 불문가지이다. 삶의 과정이 다른 사람들을 서로 협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군대에서 함께 발맞춰 행진하는 것처럼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다. 수많은 조직에서 신입에게 가해지는 신고식 또한 이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즉 의식儀式은 사회적 유대를 강화한다. 무섭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그 경험은 내 삶의 일부가 되고, 그 경험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자아 감각이 그들에게 확장되고 사실상 그들이 나의 일부가 된다. 집단의 유대는 서로 성격이 잘 맞아서가 아니라 함께 나눈 경험에서 우러난 상호의존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악인을 비난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악인을 이해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도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이 말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대변하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되새겼다고 한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필립 짐바르도의 ‘감옥 실험’ 등은 평범한 사람이 권위자에 의한 부당한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폭력의 부속품이 되면 직접 방아쇠를 당길 때보다 양심의 가책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보면, 관리자의 적절한 감독이나 개입의 부족, 높은 스트레스와 열악한 근무 조건, 도덕적 타락이 심화되는 문화, 인간성 말살을 부추기는 권력 구조 등은 평범한 사람도 양심의 가책 없이 엄청난 악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심리학적으로 ‘의존회피성_대중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고 묵묵히 권위에 복종하는 성향’이거나 강박적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성향의 사람은 거절을 두려워하고 남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한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젊은이들은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극단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영웅으로 인정받으려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왕이면 극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당할수록 좋았다. 현대판 헤라클레스들에게는 이보다 덜 기대하지만 ‘영웅이란 두려움을 특출하고 두려움을 모르며 기량이 뛰어나다’는 개념은 우리 문화에 잔존하고 있다. 영웅적 저항이나 이타주의 행동은 보통 사회적으로 추동된다. 루세사바기나는 「평범한 사람들An Ordinary Man」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내재하는 심리를 ‘개성이 집단의 의지 속에서 해체되면 어떤 식으로든 집단의 지시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하게 된다. 혼자 남은 사람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지만 오직 그 사람만이 인류애와 깊은 구렁텅이 사이에 설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복종 실험’에서 실험자의 명령을 거부한 사람들은 이런 성향을 갖는다. 영웅은 악당만큼 비교적 평범한 사람이다. ‘누구나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잠재적 영웅’인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영웅은 언제나 실수로 영웅이 된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정직한 겁쟁이가 되기를 꿈꾼다.”고 했다. 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사람은 강해진다. 권위주의 체제가 나타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묵묵히 역할을 맡을 때가 아니라, 오직 주어진 역할에서 공범자와 연결될 가능성이 허용될 때뿐이라는 사실을 ‘BBC 감옥실험’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죽는다는 인식을 감추기 위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을 통해 불멸에 도전하는 문화적 규범과 개념을 수용한다고 한다. 두려움이 행동에 미치는 왜곡된 효과는 매우 크다. 인간의 유한성을 떠올리게 하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 신의와 통합, 응집은 우리가 행동에 직접 관여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지만, 내집단의 규범을 맹종하는 태도만큼 사회 화합에 악영향을 주는 것도 없다. 위협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확실성을 갈망하게 되어 익숙한 사람에게 매달리며,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이나 악마의 역할을 맡긴다. 경제와 사회 문제가 삶의 방식을 위협할 때는 테러 위협 못지않게 사람들을 내집단의 품속으로 파고들게 한다. 사람들의 근원적 공포를 조작하고 취약성을 일깨움으로써 자신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것은 예전부터 행해오던 지도자의 전술이었다. 서로 알지 못하면 두려움을 갖는다. 두 집단이 동등하고,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공동체의 지지를 얻을 때 접촉을 통해 적대감을 줄일 수 있다. 부족사회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 집단행동의 여러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타인의 무의식적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 몸은 친구를 만들어줄 방법을 고안한다.’는 문구에서 우리가 갖는 집단에 대한 동경을 살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혼자 있어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혼자라는 느낌을 덜 받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경에 더 강할 수 있는 것도 ‘나’보다는 ‘우리’라는 용어를 일상적인 삶의 주어로 사용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인’이든 ‘고독한 미식가’든 혼자만의 삶의 일탈을 향한 그리움 같은 것일 뿐 지독하리만큼 ‘우리’를 원한다. 임재범의 노래 ‘비상’의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 ~ 더 이상 아무 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 줄거야.’라고 노래한 것도 ‘우리’를 원하는 간절함이 담긴 고독은 자신만의 상상으로 꿈을 꾸었기에 삶의 힘을 주었다. 사람들은 일상화된 공포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부재를 흔히 꼽는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없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적절한 감정을 유지하며 폭넓은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힘들다. ‘군중 속의 고독’은 더 외롭다. 사회적 동물로 소통에 대한 욕구가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는 SNS를 통해 반쪽짜리 인간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더 외롭다. 글의 마지막 문장을 옮겨본다. ‘집단 정체성이 자기 정체성에 앞서고, 협력이 자율성에 앞선다. 우리는 다양한 흐름에 휩쓸리지만,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주는 존재는 바로 함께 헤엄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