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역사-고대 이집트은 훨씬 더 행복했다는 문화 엿보기 -
<고대 이집트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삶의 장소였던 고대 이집트.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대 이집트에 대해 생각할 때, 강력한 파라오가 사람들에게 강제로 피라미드와 사원을 짓게 하고 히브리인을 노예로 삼았으며 사후세계에 집착한 문명을 떠올린다. 한 문명에 대한 이러한 오류적 이미지는 다분히 서구적 시각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기반한 것이다. 한편, 기독교 문명권의 서구에서 제작된, 모세와 유대인을 박해하는 폭군 람세스 2세를 묘사한 할리우드 영화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와 이집트의 다른 유명한 건축물을 지은 사람들은 강제 노동을 한 것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그들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 물론, 고대 이집트인들은 노예 노동을 사용하기는 했다. 이집트의 노예들은 범죄자, 빚을 갚을 수없는 사람들, 또는 전쟁포로였다. 이들은 자유인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삶을 견뎌야 했다. 일반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고, 비이집트인을 얕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지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지속되는 내세가 있다고 믿었다. 피라미드는 죽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영원한 삶과 생명을 위해 세워졌다. 이집트인의 일상생활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즐기는 데 중점을 두었다. 땅을 경작하거나 건축물과 사원을 세우는 것 이외에도, 스포츠, 음악과 춤, 보드 게임, 축제를 통해 삶을 만끽했다. 당시 역사를 기록한 서기의 문서나 고고학적 유물, 편지, 그 시대 작가들의 기록, 현재 남아 있는 그림 등 다양한 자료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 문화는 다양한 오락거리로 구성돼 있었다. 사료들은 모든 사회 계급의 이집트인들이 삶을 소중히 여기고 현대인처럼 최대한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겼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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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여성의 지위 -
고대 이집트에서 여성은 놀랍게도 남성과 거의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 그들은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었고 자신의 땅과 집을 소유했으며, 자유롭게 이혼을 하거나 낙태를 하고, 재산을 처분할 수 있었다. 다른 고대 문명들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성평등의 수준이었다. 현대와 비교해도 20세기 중반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적어도 네 명의 여성이 파라오가 되어 이집트를 통치했으며, 가장 잘 알려진 두 명은 하트셉수트와 클레오파트라 7세다.
고대 이집트에서의 결혼은 대부분 부모가 주선했다. 소녀들은 보통 12세경, 소년들은 15세경에 결혼했다. 이집트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젊은 여성이 결혼을 위해 타국으로 보내지는 것은 불운한 것으로 간주된 반면, 외국에서 태어난 여성이 신부로 이집트에 오는 것은 완벽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집트에 온 여성들 역시 원주민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사회 계층의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특히 상류층의 남편과 아내는 같이 식사하고 파티를 즐겼으며 사냥도 같이 갔고, 모든 법적 권리를 평등하게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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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남녀 복식 및 몸 치장 -
그들은 리넨(linen) 옷을 입었다. 초기 왕조 시대 (Early Dynastic Periods)에는여성과 남성 모두 단순한 리넨 킬트(kilt, 치마)를 입었다. 그것은 가볍고 시원한 면 소재의 옷감을 몸에 둘둘 감아 늘어뜨리는 방식의 의복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열 살 무렵까지 알몸이다. 여성들은 젖가슴을 노출한 채 그 밑으로 긴 롱 스커트를 입었고, 남성들은 단순한 킬트를 입었다. 종교 의식이나 궁정에서는 주로 흰색을 사용했지만 염색한 옷을 입기도 했다. 신 왕조 시대에는 여성은 가슴을 덮고 발목까지 오는 긴 리넨 드레스를 입었고, 남성은 짧은 킬트를 입거나 때로는 느슨한 셔츠를 입었다.
모든 사회 계층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맨발로 다녔다. 다만, 긴 여행을 떠나거나 발을 다칠 수있는 장소에서나 추운 날씨에는 샌들을 신었다. 저렴한 샌들은 골풀로 짠 것이었고, 가장 비싼 샌들은 가죽이나 채색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신발은 이집트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청결은 이집트인들에게 중요한 가치였다. 모든 계급의 여성과 남성은 자주 목욕을 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머리를 밀었으며 때로 가발을 썼다. 강에 가서 씻거나, 길러온 강물로 채운 큰 대야로 집에서 목욕을 했다. 비누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대신 오일, 라임, 향수로 만든 클렌징크림으로 닦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치약을 발명해 구강을 청결하게 했다. 남성과 여성, 어린아이들 모두 메이크업을 했는데, 메이컵에 마법의 치유력이 있다고 믿었다. 특히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피부 손상을 막기 위해 눈밑에 콜(kohl, 눈가에 바르는 검은 가루)을 발랐다. 여성들은 빨간색 립스틱을 발랐고 머리카락을 염색했으며 손톱을 칠했다. 눈의 윤곽선을 회색이나 검은색, 혹은 녹색으로 그렸고 눈썹도 칠했다. 남성들도 종종 여성만큼 많은 메이컵을 했다. 오늘날의 선남선녀처럼 고대인들도 세심하게 외모를 가꾸었고 스킨케어를 했던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액세서리로 자신을 치장했다. 패션, 혹은 종교적 목적으로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반지를 꼈다. 농민들은 귀를 뚫어 귀걸이를 하고 팔찌, 목걸이를 하는 게 보통이었고, 부유한 이들은 보석이나 구슬로 장식한 목걸이와 펜던트를 걸었으며 금, 은, 일렉트럼(호박색의 금은 합금)으로 만든 액세서리로 멋을 냈다. 남녀 모두 향수를 사용했다.
고대 이집트에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았으며, 순수 이집트 혈통이 아닌 누비아계 흑인이나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그리고 고대 사회에서는 드물게도 여성까지 파라오가 될 수 있었다. 동성애도 자유로웠고 상류계급에서 하층민까지 각자 나름대로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21세기 우리 사회의 외국인(특히 동남아 시아인과 흑인),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양성 불평등 현상을 생각해볼 때, 과학기술문명이 아닌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 문화적 측면에서는 현대인이 결코 고대인에 비해 선진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은 여기서 힘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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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뜻밖의 미술사 뜻밖의 역사 밴드에서 /
https://band.us/page/78675262/post/69 - 링크 허용중 일부 발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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