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극복 할 수 있습니다.
성경본문 : 에스더 4: 15-17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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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달 전에 사회사업가이자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폴 호켄Paul Hawken이라는 사람이『축복받은 불안』(에이지21, 2009)이라는 책의 내놓았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참 기이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불안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는 시대에 폴 호켄Paul Hawken 박사는 불안과 축복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호켄은 지구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고 인류의 삶의 불안해지는 만큼 그 위기와 불안을 바로잡으려는 다양한 운동들이 자연스레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보지 않거나 믿지 못하고 불안에 사로잡혀 현실에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불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몇주동안 계속적으로 불안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고 너나 할 것 없이 남녀노소 할것없이 있는자나 없는자나 누구나 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것입니다.
아니 오늘 이 복된 은혜의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들도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한 주간을 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물질 때문에 불안하고 인간관계 때문에 불안하고 자녀문제 때문에 불안하고 믿을 수 없는 나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불안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보다 더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모르드개라는 사람입니다.
원래 모르드개는 조국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페르시아의 포로로 끌려와서 페르시아의 수도인 하산이라는 궁에 살던 포로민족 유대인입니다. 그는 굉장히 특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끌려온 포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페르시아의 대궐문을 지키는 관직에 오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로 말하면 고급 공무원입니다.
그런데 이 모르드개에게는 삼촌이 낳은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촌여동생이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딸같이 에스더를 잘 키웠습니다.이쁘게 아름답게 잘 키웠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딸같은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인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포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왕후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모르드개는 걱정할 것이 없었던 사람같습니다. 비록 나라가 망해서 페르시아에 와있지만 자신은 고급관직으로 명예 지휘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딸같은 여동생은 왕비가 되어져 있습니다. 무엇이 부럽고 아쉽겠습니까? 정말 부러울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생의 불행은 소리소문없이 찿아옵니다. 갑자기 들어 닥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불행이 싹트기 시작하고 그 불행은 성난 파도처럼 우리 인생을 삼킬려고 달려듭니다. 이 모르드개도 예상하지 못했던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와는 철천지 원수지간이었던 아멜렉 족속가운데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만은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르에 다음가는 2인자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권력자 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하만은 모르드개를 미워합니다. 단순히 미워하는 차원을 넘어서 모르드개를 죽일려고 합니다. 그는 모르드개뿐만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다 죽이려고 합니다.
하만은 철저하게 계획을 짭니다. 그리고 왕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내용이 3장7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왕이시여 우리 나라 가운데에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는 민족이 있는데 그 민족을 진멸해야 합니다. 만약 그 민족을 그만 놓아두면 나중에 그들은 왕과 이나라를 배반할 것입니다. 그러니 왕은 조서를 내려 주십시오’
그런데 이 말은 들은 아하수에르 왕은 조서를 내립니다. 그래서 12월 13일은 페르시아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일시에 약탈하고 그 약탈한 재산을 약탈한 자들이 갖고 심지어 유대인 모두를 죽여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그러니까 페르시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약탈하기 위해서 모두가 12월 13일만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 하만 혼자의 생각이었다면 어떻게해든 막아볼 수 있겠지만 벌써 왕의 허락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모르드개를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 가망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12월 13일 지금부터 한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그 날이 되면 민족이 말살을 당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의 가슴은 터질것만 같았습니다. 모르드개의 입장에서 보면 가슴속에 원통함이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잘못한 댓가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특별히 잘못한게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담대하게 섬기기로 다짐한 것 외에는 없고 하나님외에는 그 어떤 권력자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신앙의 정도를 지킨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다가 모르드개는 또한 이스라엘 민족은 죽음을 맞이해야합니다.
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아니 모르드개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어서 내게 덕되는게 도데체 무엇이 있는가?
막 가슴속에서 원망과 시비가 불일 듯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이 일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그는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을 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4:1)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가슴속에 원통한 일들이 없습니까?
불안하고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속상한 일이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이 모르드개처럼 원통하고 속상한 일들이 있을것입니다.
믿음대로 살고 어떻게해서든 말씀을 먹으며 신앙으로 씨름하며 살고 있는데 도저히 환경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하고 버겁게하는 도저히 이해 안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이 모르드개처럼 두려움 때문에 불안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우리가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정말 놀라야 할 것은? 우리가 두려움가운데 매일 매일을 살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벅차고 두려운 세상인지를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이 얼마나 불안하고 이 불안한 세상을 얼마나 버겁게 씨름하며 살고 있는지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불안해 하지 않도록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안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라 평안을 주시느니라....“요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평화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평안 세상이 말할 수 없는 평안! 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면 우리는 무너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르드개는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왔습니다. 12월 13일!!! 그런데 모르드개는 이 죽음의 불안을 한방에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부림절을 그 민족 가운데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모르드개는 이 불안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 불안을 한방에 날려 버리는 비결이 무엇인지 오늘 14절 말씀을 큰 목소리로 합독하십시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는 왕이 12월 14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살해도 된다는 조서를 내렸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성문앞에서 통곡하며 웁니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그런데 이 소식을 왕궁에 있었던 동생 에스더가 듣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사람을 보내어 오빠에게 묻습니다. 오빠 무슨일입니까? 도데체 무슨일이 있으시기에 그렇게 통곡하시며 우십니까? 제가 도와줄 일은 없습니까? 지금까지 자기를 딸같이 키워준 아버지 같은 오빠가 성문밖에서 베옷을 입고 통곡한다는 소식은 에스더의 가슴을 찢는것과 같았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가 에스더 왕후에게 말합니다.
"하만이 여차여차하여 우리를 비롯한 우리 이스라엘 민족을 다 말살하려고 한다. 네가 왕후가 아니냐 왕을 만나라 왕을 만나서 우리를 모함한 하만의 이야기를 해라 그리고 왕에게 도움을 구해라."
그러자 에스더는 아버지같은 오빠에게 답장을 합니다.
‘오라버니 왕은 내가 마음대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오빠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시 왕비든 후궁이든 누구든 간에 왕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만나자고 해야 만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왕에게 왕비가 한명이 아닙니다. 수십명 아니 수백명인지도 모릅니다. 당시 문화입니다. 그런데 왕비가 왕이 보고 싶다고 달려간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것도 10명이 동시에...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그때 왕비는 왕이 보고 싶어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왕이 만나줘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왕이 만나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왕비가 왕을 만나러 오면 왕은 가착없이 목을 베었습니다.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에스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라버니 제가 왕을 만날 수도 없을뿐더러 왕을 만난지가 이미 30여일이 지났습니다’
11절입니다.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둘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하라 하니라’
여러분!
에스더는 왕을 만난지 30여일이 지났다고 말합니다. 왕이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이 말은 이미 자신은 왕에게 잊어진 여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간다면 자신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네가 만일 이때에 잠잠하고 왕을 만나 도움을 구하지 않으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다른 방법으로 놓임을 받고 구원을 할 것이다.
기도하던 모르드개의 가슴속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네가 안도와 준다 하더라도 우리는 놓임과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누가 도와준다구요???그렇습니다. 하나님!!
지금의 환경은 시시각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이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덮쳐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살아날 가망이 없습니다. 왕의 허락이 떨어졌고 최고의 권력자가 작정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드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에스더야 우리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놓임과 구원을 얻을 것이다’
모르드개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승리를 주신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은 승리케 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아름다운덕소가족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이것이 불안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비결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환경에도 어떤 상황 어떤 형편에서도 어떠한 환란속에서도 하나님은 나에게 승리를 주신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불안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 전교인 공동체 캠프때 바닷가에서 저는 예은이 한나 유치부 어린이들 곁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아이들을 물가에 그냥 놓아두면 도저히 불안해서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왜 불안했을까요? 그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 두 아들 은 저하고 물놀이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 친구들하고 함께 즐겁게 놀더라구요...제가 아들녀석들이 물가에서 물놀이 할 때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믿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믿으니까 불안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왜 주어진 인생을 살면서 불안하고 두려운지 아십니까?
평안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이 험난한 환경속에서 승리를 주신다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아니 이시간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네게 평안을 주노라...
그런데 여러분!
요즘 몇주간 불안에 대해 계속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기왕이면 우리 가족들 불안하지 않게 하시면 안됩니까? 세상 사람들이 불안한 것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름다운 덕소가족들은 이런문제 저런 문제 때문에 조금 불안감에서 해방되고 좀 평안한 환경을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안은 나를 더 붙들라는 싸인이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불안할 때 하나님의 싸인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불안하면 세상으로 달겨가면 안됩니다.
불안하다고 세상환경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안하다고 술로 또 다른 방법으로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제 나이 또래 되신분들은 타이밍이라는 조그마한 알약을 잘 아실것입니다. 고등학교때 한참 공부할 때 시험때면 밤을 지새면서 공부했습니다. 평상시때하면 되는데 꼭 시험때만 공부합니다. 저도 시험때면 밤을 지새면서 공부했는데 밤을 지샌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한시까지 두시까지는 어떻게 버티겠는데 두시지나면 눈껍풀이 무거워집니다. 시험과목은 3-4과목이고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그래서 꼭 타이밍을 먹습니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라는 알약을 먹고 5분만에 잠든적이 있습니다. 눈떠보니 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 그때 얼마나 불안한지 아십니까? 공부는 안했죠 날은 밝았죠..완전히 타이밍믿고 낭패 당했습니다.
술, 담배... 그 어떤 쾌락도 우리의 불안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 만을 의지하셔야 합니다.
내가 평안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두 번째 비결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불안은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에스더는 오빠에게 답장을 합니다. 이렇게 말하죠...
본문 16절입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는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금식한다는 것은 밥을 안먹는 것을 말하지만 하나님께만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기도에 전력을 다한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가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걱정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기도하면 불안이 안개가 겉치는 것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대충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안타까운 것 하나가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기도를 우습게 봅니다.
농담처럼 말합니다. ‘뭐 기도한다고 다 되나?’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생사를 걸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목사가 기도하면 복을 받습니다.
교회 믿음의 동역자들이 무릎을 꿇으면 그 교회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더는 기도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했습니다.
그랫더니 에스더는 죽지 않았습니다.
12월 13일 모르드개의 목을 높은 장대위에 매달아서 꽃아 놓겠다고 했던 하만이 오히려 그 자신이 그 장대위에 목이 달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모두가 전심을 다한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 우리교회가 이렇게 더딜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 지난주 예배후에 여러분에게 격려하고 독촉했습니다.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소홀하지 말자구...그런데 그 주일 이후 한주간은 그 어떤 한주간과 변함이 없었습니다. 정말 실망이 컸습니다. 한편으로 하나님 어떻게 해야 우리 가족들이 우리 집사님들이 정신을 차릴까요? 속상한 마음도 표현한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금요일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 차라리 가족중 누가 암이라도 걸려야 하나님만을 의지할까요? 큰 사고라도 나서 병원에 입원해야 하나님을 의지할까요? 아주 두려운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만이 불안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도만이 우리에게 평강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는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1)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것 =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