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해체산업이 뜬다 올 선박해체 작년보다 4배이상 늘어…TVㆍ휴대폰ㆍ자동차서 재활자원 찾기
지난 1월 말 STX팬오션은 삼미 오로라호를 중국의 해체 조선소로 떠나보냈다. 삼미 오로라호는 1983년에 건조돼 한국제분공업협회 전용선으로 미주에서 밀가루를 실어 나르던 선박이다. 통상 벌크선박 수명이 25년 정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삼미 오로라호는 평균보다 5년 더 오래 운항했다.
해체 조선소는 말 그대로 `선박의 무덤`이다. 해체 작업이 노동집약적인 까닭에 중국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 집중돼 있고 국내에는 한 곳도 없다. 태평양을 호령하며 장수했던 삼미 오로라호는 타국에서 고철로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지난해 말 LS니꼬동제련은 휘닉스엠앤엠을 인수했다. 휘닉스엠앤엠은 휴대폰이나 TV 같은 전자제품에 들어 있는 금이나 은, 백금을 비롯한 귀금속을 추출 생산하는 업체다. LS니꼬동제련은 충북 단양에 짓고 있는 공장을 중심으로 귀금속재활용사업의 본산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해체산업은 선박 외에 휴대폰 TV 등 가전제품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미 보편화한 자동차 폐차시 재활용 외에도 요즘에는 가전제품 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귀금속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은 올해부터 휴대폰을 비롯한 소형 가전제품 회수를 의무화했다. 제품에 들어 있는 금을 비롯한 희소금속을 전부 재활용하기 위해서다. 일본에선 가전제품 속에 있는 희소금속을 아예 도시광산이라고 부르면서 법 규정까지 모두 바꾸고 있을 정도다. 해체ㆍ재활용 산업은 `불황`일수록 오히려 뜨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경기 침체로 해운 시황이 급락하면서 노후 선박 해체가 급증하고 있다. 2003년 이후 해운 경기가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크게 줄었던 벌크선 해체가 해운 시황이 본격적으로 침체에 빠진 지난해 10월부터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12월 한 달에만 58척(241만DWTㆍ재화중량톤수)이 해체 완료돼 월 단위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5일 현재 100척이 훨씬 넘는 선박이 인도 방글라데시 중국 등에 있는 조선소에서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해체 선박의 경하배수량톤(LDT :선박을 해체하기 위해 지급하는 선가 단위)당 매매가격은 270~300달러 정도다. 2~3년 전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수준임에도 많은 선사들이 선박 해체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처럼 낮은 가격에도 해체가 늘어나는 것은 `깡통배`를 유지하는 것보다 해체가 경제적일 정도로 운임이 낮기 때문이다.
선박 해체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5년 이상된 벌크선은 1651척으로 전체 선박 중 15.6%를 차지한다.
업계에서는 선박 해체 선령을 낮춰 의무적으로 노후 선박을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해운 호황을 틈 타 발주된 선박들이 올해 인도되면서 수급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도 노후 선박 강제 해체에 나섰다. 중국 조선업체 신규 수주가 급감하고 기존 물량마저 취소가 이어지자 조선업계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선박 조기 해체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노후 선박을 강제로 폐선하면 그만큼은 곧바로 신규 주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