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연의 서정시학과 그 진실 --김순자 시집 『』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나’의 내면에서 인식하는 삶 현대시에서 화자(話者)가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상황을 설정하거나 스토리(story) 를 전개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여기에는 화자가 인칭대명사로서 ‘나’ 또는 ‘너’의 보편적인 정서의 흐름이 상호 대칭이거나 아니면 독자적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작품을 흔하게 대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나’라는 화자는 상당한 호소력이나 흡인력(吸引力)을 내포하고 있어서 많은 시인들이 상용(常用)하기도 하는데 이를 자칫 잘못 사용하게 되면 그 시인의 독백으로 떨어져 버릴 염려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화자가 어떤 어조(語調-tone)로 이미지를 창출하느냐에 따라서 그 화자는 공적인 것이 되어 공감을 획득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그 시인의 자기 스토리나 관념으로 표현된다면 그 시인의 넋두리로 변질되고 마는 위험요소가 있어서 상당한 주의가 요망되기도 한다. 여기 김순자 시집 『』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이와 같은 기우(杞憂)에 먼저 젖는 것은 이러한 화자의 남용(濫用)이 없이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작품을 구성한다는 좋은 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들어주는 이 있어 두 손을 모아 흔들리지 않게 바람을 밀어내지 더러는 기쁨으로 더러는 아픔으로 소진하는 시간 속에 처마 밑 용트림 짖던 냉기마저 온몸으로 녹여 냈지 정수 물 맑음에 무릎 끓고 모진 바람 다 재웠지 이 작품 「결국 나였지」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나’에 대한 인식으로 자아(自我)와 존재의 문제를 깊게 성찰하고 있다. ‘나’를 정점으로 하여 ‘소진하는 시간 속에’서 접맥(接脈)하는 우리 인간들의 칠정(七情-喜怒哀樂愛惡慾)에서 분사(噴射)하는 온갖 상황들이 김순자 시인의 정서와 사유(思惟)를 ‘처마 밑 용트림 짖던 냉기마저 / 온몸으로 녹여 냈지’라거나 결론적으로 ‘정수 물 / 맑음에 무릎 끓고 / 모진 바람 다 재웠지’라는 어조로 자인(自認)하고 있는 것이다. 상큼한 아카시아 꽃향기도 무심하고 햇살 자지러지는 꽃 덤불에 온몸 뒹굴어 봐도 시들한 것 뿐 오래 두었던 꽃 화살 하나 관통 하고 싶다 그리운 이 거기 있어 방향을 틀면 신명나는 징소리 거기 일렁이고 있었지 풀밭에 엉겅퀴의 생애라도 좋으리 노을에 그늘지던 이면 더 반기우리 내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 이 행복한 눈물이어서 끝 소절까지 흐느끼리. 여기 「행복한 눈물」전문에서도 우리는 ‘꽃향기도 무심하고’ ‘햇살 자지러지는 꽃 덤불’과 ‘온몸 뒹굴어 봐도 시들한 것 뿐’이라는 시적 정황(situation)은 김순자 시인의 심저(心底)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나’를 탐구하는 일련의 심경(心境)의 지향점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오래 두었던 꽃 화살 하나 관통 하고 싶다’는 심정을 기원으로 분출하고 있다. 이것이 ‘그리운 이’와 ‘신명나는 징소리’라면 ‘풀밭에 엉겅퀴의 생애라도 좋으리 / 노을에 그늘지던 이면 / 더 반기우리’라는 수긍(首肯)의 어조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그는 ‘내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 이 / 행복한 눈물이어서 / 끝 소절까지 흐느끼리.’라는 결론적인 심정의 정리로 그의 ‘행복한 눈물’은 하나의 활력소로 작용하는 시법에서 우리는 감동을 공유(共有)하게 된다. 이 밖에도 ‘어느 날 지쳐서 / 설령 답이 써질지 모른다 해도 / 나는 내일을 맞이할 것이며 / 하루의 칸을 가득 채운다.(「어느 것에 대하여」중에서)’거나 ‘맞닿은 그곳에 / 마음이 물들고 있었을까 / 가을볕에 곱게 물드는 여자 / 나와 함께 가슴에 담고 싶다(「그런 생각이 나 2」중에서)’ 그리고 ‘바람과 물결의 공유 / 공간 속의 공존은 부딪침의 충전 / 그놈은 가끔 암울한 침입자로 다가오는 / 상대하기 강한 존재지만 / 절대적인 존재 같은 것 / 나와 내가 빗나갈 때 / 원하지 않아도 빚어오는 / 삶의 주제 같은 것(「고독은 다이아몬드 같은 것」중에서)’이라는 그의 자의식(自意識-self consciousness)에서 창출하는 이미지들은 그가 현재의 상황에서 ‘삶의 주제’를 좀더 명민(明敏)하게 추적하는 시적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 2. 삶과 사랑의 소통 그 ‘진풍경’ 김순자 시인은 그의 서정시학에서 우리의 삶과 밀접한 실생활(real life)에서 감응(感應)하는 정감(情感)의 발현이 명징(明澄)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평상심에서 깊이 간직한 천성적(天性的)인 성품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가 착목(着目)하는 사물의 시간적 공간적인 형상뿐만 아니라, 거기에 투영하는 관념적 이미지들도 그의 삶에서 추출하는 진정한 사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내가 앉아있는 주춧돌 수맥을 따라 가다보면 / 자연의 순리를 더 깊이 알게 된다’는 자각(自覺)은 바로 김순자 시인의 의식에서 분사하는 자연 순리에 대하여 심도(深度) 있는 지적인 방향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아 / 송두리째 마음 들어내고 허물을 닦다가 / 그 맑은 풍경소리 닮지 못해 / 깜박 잠이 들었다(이상「수종사」중에서)’는 그의 사유에는 삶보다 더 진한 정감의 언어가 항상 그와 동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사랑하고 싶던 날 다알리아꽃 담장너머 필 때 발 돋음 하던 휘파람 소리 그 여운을 안고 스무 살 나이를 다 내어 주고 싶던 세상 모두가 너무나 신비로워서 막무가내로 빠져 들던 환상 두고두고 설레는 휘파람 소리. --「여운」전문 입김으로 돌아오는 봄손끝 아직은 맵지만 둔덕의 남루부터 지우려는 개나리꽃의 노란 의지 솟는 해를 업고 길을 내어주는 올림픽대로 어깨의 힘으로 핸들을 다잡고 함께 달리는 사람과 사람들 --「소통」전문 김순자 시인의 서정성은 이 두 편의 작품에서 여실(如實)하게 엿볼 수가 있는데 시의 위의(威儀)와도 연관되는 시법이 그의 시학을 더욱 승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여운’은 바로 ‘사랑’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휘파람 소리의 환상에서 그가 감응한 ‘세상 모두가 너무나 신비’로운 정경(情景)에서 생성하는 진실이다. 또한 이와 같은 중심에는 항상 ‘나’라는 존재의 근원에서 창출되는 속깊은 관념에서 ‘소통’하려는 그의 시적 원류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개나리꽃의 노란 의지’와 ‘솟는 해를 업고 / 길을 내어주는 올림픽대로 // 어깨의 힘으로 / 핸들을 다잡고 함께 달리는 / 사람과 사람들’과의 ‘소통’이 우리의 삶과 상호 교감을 이룰 때 우리의 공감은 그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다. 그는 다시 ‘겨울은 겨울로 가고 / 봄은 봄으로 오는 / 일상의 의미임에도 / 가끔은 아리게 눈길로 와 / 깊게 도려내는 공허 / 강물같이 불어 오르면 / 갈대의 노래를 부른다.(「머물러 산다는 것」전문)’거나 ‘무료함에도 길이 있더냐고 / 그 간의 침묵에게 물었다 // 하나의 고리를 잡고 있던 / 내 안의 다짐이 / 물음표 아래 / 마침표를 찍었다.(「어떤 심중」전문)는 그의 인식 단정은 그에게 내재된 순수 서정의 발현을 위한 의식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순자 시인에게는 ‘수채화 같은 사람’이 그의 정서에서 그리움과 사랑의 매체(媒體)로 작용하면서 그의 시정(詩情)을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것이 ‘친구들과의 우정도 / 이웃 간에 따듯한 사랑도 / 삶 뒤에 이야기로 들어나는 사람 / 생각보다 조문객이 많았다는 것을 / 공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밖에도 그는 「어머니의 생각」 「엄마 딸」등에서 진솔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에는 항상 자연현상과 더불어 우리 인간의 문제가 긴밀한 소통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강 둔치 바라보며 겨울 강진풍경이라는 생각에 들다 문득 내가 화가라면 무채색 만개한 허무 위에 붓질을 했을 것이야 찐 빨강이거나 혹은 화가의 이름이 될 색조에 파란 점을 찍거나. 그는 「진풍경」전문에서 적시하듯이 우리들의 삶이나 자연의 풍광(風光)이 김순자 시인이 관조(觀照)한 시공(時空)의 관점(觀點)에서 다양한 시법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내=화가’라는 깊은 관념에 침잠(沈潛)하게 된다. 3. 친자연적인 교감, 꽃과의 대화 김순자 시인의 특징은 누구에게서나 접목할 수 있는 일반 자연에서 교감하는 보편적인 응시를 통해서 작품을 형상화한다는 점이다. 우선 그는 화훼(花卉)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그가 응시하거나 관조한 화훼류는 지천으로 피어 있는 만유(萬有)의 꽃들에게서 정감으로 포괄하는 이미지는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늦더위 끝나갈 무렵 가을비 소란스레 오는 9월이면 단풍잎 깃드는 선운사 삐죽삐죽 열병 도지는 꽃 무릇 일편단심 붉은 감옥 풀벌레 울어대는 밤이면 저 홀로 가는 시간조차 사슬에 감기는 상사화 붉은 정점 딛고서야 새벽이슬에 젖는다 --「선운사 상사화」전문 제 몸 가누지 못해 쓰러지는 겨울 강가에 홀로 서 있어도 눈보라 매섭게 휘몰아쳐도 홀연히 날아가는 갈대꽃 홀씨 두려움도 없다 영혼의 뿌리만 깊을 뿐이다 --「갈대의 다짐」전문 우선 이 두 편의 작품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는 것은 시적인 상황이 모두 자연 서정에서 취택한 소재라는 점이다. 이 꽃들이 간직하고 있는 이미지가 우리들과 접맥하려면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전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김순자 시인의 시각에는 미학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교감하는 상황 설정과 전개는 더욱 공감을 확산하게 되고 우리를 흡인(吸引)하는 정감을 유로(流路)하게 하나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상생(相生)의 한 부분도 있겠지만, 상사화나 갈대꽃의 생리적인 식물성에서 순정적인 이미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는 시적 공간을 ‘선운사’와 ‘겨울 강가’로 설정하고 ‘단풍잎’과 ‘눈보라’라는 시간성을 대입시켜서 절묘하게 작품 전체의 전개를 시도하는 서정적인 감성(感性-sensibility)이 김순자 서정시학의 정점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그는 결론에서 ‘붉은 정점 딛고서야 / 새벽이슬에 젖는다’거나 ‘두려움도 없다 / 영혼의 뿌리만 깊을 뿐이다’는 단정적인 어조는 그만큼 그의 사유나 상상력에는 현대 서정시에서 여망하는 시학이나 시론의 원점이 되는 것이다. 김순자 시인의 서정시는 우선 표현에서 그 간명(簡明)한 어법(語法)이 남다르다. 이는 언어의 조탁(彫琢)을 생명으로 하는 시의 위의나 시 정신에 부합(附合)하는 그의 숙성된 시법으로서 독자들의 감도(感度)가 상승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생을 돌아온 수련 꽃 삶의 무게만큼 떨어지는 진동위로 피어 오른 수련 꽃 세상은 무거워도 제 몸은 가볍다고 물위에 동동 뜨는 수련 꽃. 이 작품 「수련」처럼 그의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함축된 의미가 시적 마력(魔力)을 적시하고 있는 그만의 시법이다. ‘전생’이나 ‘삶의 무게’라는 어휘(語彙)에서 짐작하게 되는 것은 그의 내면에 잠재한 서정적인 심성을 이해하게 한다. 한편 작품「모란」에서도 ‘봉우리 지을 때부터 /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 나비가 될 수밖에요 / 황홀함에 취한 나비 // 꿈에 든 꽃의 궁전 / 레드와인을 마시듯 / 아주 조금씩 다가가 / 꽃잎 베어 물을 때 // 절정을 이루는 / 모란꽃 환영.’이라는 그의 순정성이 돋보이는 서정시이다. 이 밖에도 작품「능소화」「꽃덤불」「동백꽃」「검단산 진달래」「등꽃」「홍매화」「찔레꽃」「수국」「민들레」「산딸기」「목련」「하지장미」등등에서 그가 심취하거나 탐색하려는 꽃들과의 화해를 음미(吟味)할 수 있게 하고 있다. 4. 시간성과 접맥하는 서정시학 이와 같은 김순자 시인의 서정시학은 다시 계절적인 시간성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가 성립한다. 그는 우선 봄과 가을에 대한 심취(心醉)로 그 향기를 발산(發散)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자연 섭리의 정취(情趣)에서 창출하는 이미지들이 다양하게 발현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의 정서는 시간(혹은 세월)과 동행하면서 형성하는 사물들의 변화와 그 흐름에 대해서 많은 사유를 통한 상상력의 재생은 우리 시인들에게서 심적변화도 새롭게 지향점을 설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을 타는 나무들 한동안 몸살을 하더니 붉게 타다 남겨놓은 불씨같이 빨갛게 피어나는 꽃단풍 봄부터 여름 내내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이 마냥 곱다고 나뭇가지 흔들어 주더니 이제 함께 어울려서 넘어가는 가을 고갯길 풋풋한 배추밭에 쑥 뽑아 올린 호걸 찬 무 밑 둥 발이 저린데 어느 별이 쓸쓸 했나 서리꽃이 하얗게 피었다. 이 작품 「봄 여름 가을」전문에서 흡인할 수 있는 것은 사계절에 대한 이미지를 동시에 현현하는 시간적인 변전(變轉)을 탐색하면서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김순자 시인은 대체로 자연 사물을 시각적으로 착목하면서 변화하는 그 모습에서 이미지(心象)를 창출하는 시법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는 ‘가을 타는 나무들’과 ‘빨갛게 피어나는 꽃단풍’, ‘가을 고갯길 풋풋한 배추밭’, ‘꽃’, ‘나뭇가지’ 그리고 ‘별’과 ‘서리꽃’ 등으로 시각적인 이미지의 합성으로 사계절의 여운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봄에 대한 그의 언어는 ‘갓 태어난 아기울음 소리에선 / 개나리꽃이 피어나고 / 처마 밑에선 자글자글 / 제비 입 벌리는 소리(「3월」중에서)’로 청각적 이미지를 투영하는가 하면 ‘휘파람처럼 스쳐가는 눈보라 / 휘감아 반짝이는 햇살 아래 / 흙의 체온 달이 차는 / 나뭇가지에 방긋이 걸린 / 한 단락 새싹 같은 봄 이야기(「봄 이야기」중에서)’와 같이 봄에 관한 시간성과 융합하는 작품들을 많이 대할 수가 있다. 이 봄에 대한 형상화는 작품 「봄밤이 초조하다」 「봄맞이」「계양산의 봄」「섬진강의 봄」등등에서 한 폭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그 시간적인 풍광에서 생성시키는 서정의 물결이 아름답게 창조되고 있다. 그 얼마간의 이별 가을은 그런 것이었어. 삶속에 비껴있던 그리운 것들이 되돌아오고 되돌아가는 기쁨도 슬픔도 아닌 사이 미완의 유정 같은 것 담 밑에서 긴 그림자 짓던 코스모스 필 때나 질 때의 연민 같은 가을 물들어 갈 무렵 뜨겁게 사랑했나 몸을 대고 품으려는 애틋한 몸짓 베개 밑에 바스락 거릴 때 이 한 몸 머무는 한 칸에서의 가을 연가. 여기 작품 「가을 연가」전문에서도 봄과 마찬가지로 그의 서정은 ‘삶속에 비껴있던 그리운 것들’이 시의 주제로 현현하고 있다. 사실 봄의 이미지가 탄생과 새로운 희망의 창조라면 가을의 이미지는 어쩐지 약간 고독한 심정의 발현으로 이별과 그리움 등으로 사랑을 대칭적으로 묘사(描寫)하는 시법을 많이 대하게 된다. 김순자 시인의 ‘가을 연가’도 이러한 그리움을 재생하는 사랑의 진폭을 예감할 수 있는 그의 언어들과 화법(話法)이 공감을 유발시키는 시적 효과를 잘 나타내고 있어서 가을의 고독과 동시에 생성하는 사랑의 고뇌가 연가로 변전하는 심중(心中)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 가을에 대한 어조도 작품 「갱년기」「가을 소묘」「가을 정복」등에서 그의 진정한 내면 풍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작품 「첫눈」의 겨울 이미지에서 ‘첫눈’은 ‘그대 순결’이며 ‘하얀 축복 머리에 쓰고 / 손잡고 발맞추는 / 웨딩 마치.’라는 은유적 문장의 처리는 간명하면서도 그 이미지가 살아 숨쉬는 정감을 이해하게 된다. 김순자 시인은 완벽한 서정시인이다. 그의 서정시학은 단순하게 자연 사물에 심취해서 정감적인 언어로 형상화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연에서 재발견하는 만유의 생리적인 현상을 자신의 시학으로 승화하는 친자연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호라티우스의 시론을 경청(傾聽)해서 시 창작에 참고하면서 숙명적인 과제의 해법을 찾는 일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