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여 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 준다.
맨발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비가 오려 할 때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철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앵두나무와 붉은 벌레들
앵두나무 가지 위로는 한쪽이 트인 달이 떴다
앵두나무 가지에 사는 붉은 벌레들은 오늘 밤에도 만났다
누구일까
늙은 앵두나무에 이렇게
다투는 허공을 담을 줄 안 이는
역전 이발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이 살고 있고
말라 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 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호두나무와의 사랑
내가 다시 호두나무에게 돌아온 날, 애기집을 들어낸 여자처럼 호두나무가
서 있어서 가슴속이 처연해졌다
철 지난 매미떼가 살갗에 붙어서 호두나무를 빨고 있었다
나는 지난 여름 내내 흐느끼는 호두나무의 哭을 들었다
그러나 귀가 얇아 호두나무의 중심으로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내가 다시 호두나무에게 돌아온 날, 불에 구운 흙처럼 내 마음이 뒤틀리는
걸 보니 나의 이 고백도 바람처럼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알겠다
개복숭아나무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다
처음 맺히는 열매는 거친 풀밭에 묶인 소의 둥근 눈알을 닮아 갔다
후일에는 기구하게 폭삭 익었다
윗집에 살던 어럼한 형도 이 나무를 참 좋아했다
숫기 없는 나도 이 나무를 참 좋아했다
바라보면 참회가 많아지는 나무다
마을로 내려오면 사람들 살아가는 게 별반 이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빈집 1
흙더버기 빗길 떠나간 당신의 자리 같았습니다 둘데 없는 내 마음이 헌 신
발들 처럼 남아 바람도 들이고 비도 맞았습니다 다시 지필 수 없을까 아궁
이 앞에 쪼그려 앉으면 방고래 무너져 내려 피지 못하는 불씨들
종이로 바른 창 위로 바람이 손 가락을 세워 구멍을 냅니다 우리가 한때 부
리로 지푸라기를 물어다 지은 그 기억의 집 장대바람에 허물어 집니다 하지
만 오랜 후에 당신이 돌아 와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독을 보신다면, 그 안
에 고여 곰팡이 쓴 내 기다림 을보신다면 그래, 그래 닳고 닳은 싸리비를 들
고 험한 마당 시원하게 쓸어 줄 일입니다.
빈집 2
지붕 위로 기어오르는 넝쿨을 심고 녹이 슨 호미는 닦아서 걸어두겠습니다
육십촉 알전구일랑 바꾸어 끼우고 부질없을망정 불을 기다리렵니다 흙손
으로 무너진 곳 때워보겠습니다 고리 빠진 문도 고쳐보겠습니다
옹이 같았던 사랑은 날 좋은 대패로 밀고 문지방에 백반을 놓아 뱀 넘나들
지 않게 또 깨끗한 달력 그 방 가득 걸어도 좋겠습니다
태화리 도둑골
딱따구리 한마리가 숲에서
목구멍을 치는 소리
먹는 입이 저처럼
활엽수를 쪼는 딱따구리만큼 맑아질 수 있을까
하도 맑아
상처를 잊은 듯
나무의 존재도 오롯하게
허공에 부풀어
회고적인
가령 사람들이 변을 보려 묻어둔 단지, 구더기들, 똥장군들.
그런 것들 옆에 퍼질러앉은 저 소 좀 봐,
배 쪽으로 느린 몸을 몰고 가면 되새김질로 살아나는 소리들.
쟁기질하는 소리, 흙들이 마른 몸을 뒤집는.
워, 워, 검은 터널을 빠져나오느라 주인이 길 끝에서 당기는 소리.
원통의 굴뚝에서 텅 빈 마당으로 밀물지는 쇠죽 연기.
그러나 不歸, 不歸! 시간은 사그라드는 잿더미에 묻어둔 감자 같은 것.
족제비가 낯선 자를 경계하는 빈, 빈집에 들어서면
녹슨 작두에 무언가 올리고 싶은, 도시 회고적인 저 소 좀 봐.
굴을 지나면서
늘 어려운 일이었다, 저문 길 소를 몰고 굴을 지난다는 것은. 빨갛게 눈에
불을 켜는 짐승도 막상 어둠 앞에서는 주춤거린다.
작대기 하나를 벽면에 긁으면서 굴을 지나간다. 때로 이 묵직한 어둠의 굴
은 얼마나 큰 항아리인가. 입구에 머리 박고 소리지르면 벽 부딪치며 소리
소리를 키우듯이 가끔 그 소리 나의 소리 아니듯이 상처받는 일 또한 그러
하였다.
한 발 넓이의 이 굴에서 첨벙첨벙 개울에 빠지던 상한 무르팍 내 어릴 적
소처럼 길은 사랑할 채비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 길 내는 법 없다. 유혹당하
는 마음조차 용서하고 보살펴야 이 굴 온전히 통과할 수 있다. 그래야 이 긴
어둠 어둠 아니다.
한 호흡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우고
피어난 꽃은 한 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짧은 낮잠
낮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꽃을 보내고 남은 나무가 된다
魂이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질 때가 있으니
오늘도 뒷걸음 뒷걸음치는 겁많은 노루꿈을 꾸었다
꿈은, 멀어져 가는 낮꿈은
친정 왔다 돌아가는 눈물 많은 누이 같다
낮잠에서 깨어나 나는 찬물로 입을 한 번 헹구고
주먹을 꼭 쥐어보며 아득히 먼 넝쿨에 산다는 산꿩 우는 소리 듣는다
오후는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다
개미
처음에는 까만 개미가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가 가을 끝물 서리맞은 고욤처럼 말랐다
댓돌에 보리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며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해 다 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온 여자
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
저녁에 대해 여럿이 말하다
세상 한 곳 한 곳 하나 하나가 저녁에 대해 말하다
까마귀는 하늘이 길을 꾹꾹 눌러 대밭에 앉는다고 운다
노란 감꽃이 핀 감잎은 등이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내가 난 들고양이는 우는 아가 소리를 업고 집채의 그늘을 짚으며 돌아나
간다
나는 대청에 소 눈망울만한 알전구를 켜 어둠의 귀를 터준다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찬물에 발을 씻으며 검게 입을 다물었다
그믐이라 불리던 그녀
옻처럼 검고 얼음처럼 차디차지만
얼굴에는 개미굴이 여럿 나 있지만
다리는 사슴보다 야위었지만
그녀의 너른 속뜰로 들어가
마음이 쉬어 가는 날이 많았다
나는 그 이상한 평온을 슬픈 그믐이라 불렀다
조모를 열다섯 살 때 마지막으로 보았다
꽃 진 자리에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산수유나무의 농사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 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뻘 같은 그리움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놓았었다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밀어올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맷돌
마룻바닥에 큰 대자로 누운 농투사니 아재의 복숭아뼈 같다
동구에 앉아 주름으로 칭칭 몸을 둘러세운 늙은 팽나무 같다
죽은 돌들끼리 쌓아올린 서러운 돌탑같다
가을 털갈이를 하는 우리집 새끼 밴 염소 같다
사랑을 잃은 이에게 녹두꽃 같은 눈물을 고이게 할 것 같다
그런 맷돌을, 더는 이 세상에서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내
외할머니가 돌리고 있다
나는 심장을 바치러 온다
나는 심장을 바치러 온다
호두나무 잎에 어둠이 뭉쳐있을 때 그 끝에서 새벽을
기다리는 외로운 산까치처럼 나는 살아왔다
거친 꽃을 내뱉으며 늙은 영혼의 속을 꺼내 보이는
할미꽃처럼 나는 살아 왔다
그러나,
허물을 벗어놓고 여름을 우는 매미처럼
하나의 열망으로 노래하리니
꾹꾹 허공에다 지문을 눌러찍으며 물결쳐 가는 노래여
절절 끓는 아랫목으로 불 들어가듯 가는 노래여
더 슬픈 노래여
나는 이제 심장을 바치러 온다
장대비 멎은 소읍
땅이 소란스러운 때를 보냈으니 누에가 갉아먹다 버린 뽕잎같다
장대비가 다녀가셨다
복사꽃처럼 소란한 논도 걔중에는 있었고
귓불이 도톰하고 거위 소리처럼 굵은 울대를 가진 놈도 다녀가셨다
비 내린 땅은 돌꽃미냥 꼿꼿이 파인 얼굴이다
팔랑팔랑 하얀 나비 새로이 나는 것으로 장대비 멋은 줄 아는 것이지만
집을 주섬주섬 나오는 촌로들은 늙고 초췌하다
봉숭아
- 다현(茶顯)에게
봉숭아라는 이름
조그만 복숭아뼈 같지
오늘 낮에는
여섯 살 딸이
화단의 봉숭아꽃을 보고 있다
홍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쪼그려 앉은 두 발목이 붉다
발목에서부터 붉은 물이 번지고 있다
한 종이가 사각사각 젖고 있다
여섯 살은 아무래도 무른 몸
무릎이 젖고 작은 어깨가 젖는데
삐에에 울지도 않는다
뜨락 위 한 켤레 신발
어두워지는 뜨락 위 한 켤레 신발을 바라본다
언젠가 누이가 해종일 뒤뜰 그늘에 말리던 고사리 같다
굵은 모가지의 뜰!
다 쓴 여인네의 분첩
긴 세월 몸을 담아오느라 닳아진
한 켤레 신발이었다
아, 길이 끝난 곳에서도 적멸은 없다
팽나무 식구
작은 언덕에 사방으로 열린집이 있었다
낮에 흩어졌던 새들이 큰 팽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한놈 한놈 한곳을 향해 웅크려 있다
일제히 응시하는 것들은 구슬프고 무섭다
가난한 애비를 둔 식구들처럼
무리에 볼이 튼 어린 새도 있었다
어두워지자 팽나무가 제 식구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흰자두꽃
손아귀에 힘이 차서 그 기운을 하얀꽃으로 풀어놓은 자두나무 아래
못을 벗어나 서늘한 못을 되돌아보는 이름모를 새의 가는 목처럼
몸을 벗어나 관으로 들어가는 몸을 들여다보는 식은 영혼처럼
자두나무의 하얀 자두꽃을 처량하게 바라보는 그 서글픈 나무 아래
곧 가고 없어 머무르는 것조차 없는 이 무정한 한낮에
나는 이 생애에서 딱 한번 굵은 손뼈마디 같은 가족과
나의 손톱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와글와글와글와글와글
고샅을 돌아 부푼 달 아래 걷는데
거뭇거뭇한 논배미에서
한 뭉테기로 와글,
귀를 촘촘하게 열었더니
논개구리들이
와글와글와글와글와글
와글와글와글와글와글
이 봄밤에 방랑악사들이
대고를 두드리는데
참 멋진 춘화 한장입니다
온 우주가 잔뜩 바람난 꽃입니다
따오기
논배미에서 산그림자를 딛고 서서
꿈쩍도 않는
늙은 따오기
늙은 따오기의 몸에 깊은 생각이 머물다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어느날 내가 빈 못을 오도카니 바라보았듯이
쓸쓸함이 머물다 가는 모습은 저런 것일까요
산그림자가 서서히 따오기의 발목을 흥건하게 적시는 저녁이었습니다.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어리숙한 나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당신의 눈에서 눈으로 산그림자처럼 옮겨가는 슬픔들
오지항아리처럼 우는 새는 더 큰 항아리인 강이 가둡니다
당신과 나 사이
이곳의 어둠과 저 건너 마을의 어둠 사이에
큰 둥근 바퀴 같은 강이 흐릅니다
강 건너 마을에서 소가 웁니다
찬 강에 는개가 축축하게 젖도록 우는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낮 동안 새끼를 이별했거나 잃어버린 사랑이 있었거나
목이 쉬도록 우는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는 소의 희고 둥근 눈망울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리숙한 나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혀
잠자다 깬 새벽에
아픈 어머니 생각이
절박하다
내 어릴 적
눈에 검불이 들어갔을 때
찬물로 입을 헹궈
내 눈동자를
내 혼을
가장 부드러운 살로
혀로
핥아주시던
붉은 아궁이 앞에서
조속조속 졸 때에도
구들에서 굴뚝까지
당신의 눈에
불이 지나가고
칠석이면
두 손으로 곱게 빌던
그 돌부처가
이제는 당신의 눈동자로
들어앉아서
어느 생애에
내가 당신에게
목숨을 받지 않아서
무정한 참빗이라도 될까
어느 생애에야
내 혀가
그 돌 같은
눈동자를 다 쓸어낼까
목을 빼고 천천히
울고, 울어서
젖은 아침
어두워지는 순간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와서 문에 문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오래여서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 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
어두워지는 것은 그래서 까무룩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한 것,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어두워지려는 때에는 개도 있고, 멧새도 있고, 아카시아 흰 꽃도 있고, 호미도 있고, 마당에 서 있는 나도 있고……. 그 모든 게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늑대처럼 오래 울고, 멧새는 여울처럼 울고, 아카시아 흰 꽃은 쌀밥 덩어리처럼 매달려 있고, 호미는 밭에서 돌아와 감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마당에 선 나는 죽은 갈치처럼 어디에라도 영원히 눕고 싶고……. 그 모든 게 달려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다른 개의 배에서 머무르다 태어나서 성장하다 지금은 새끼를 밴 개이고, 멧새는 좁쌀처럼 울다가 조약돌처럼 울다가 지금은 여울처럼 우는 멧새이고, 아카시아 흰 꽃은 여러 날 찬밥을 푹 쪄서 흰 천에 쏟아 놓은 아카시아 흰 꽃이고……. 그 모든 게 이력이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베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이상하지, 오늘은 어머니가 이것들을 다 버무려서
서당골에서 내려오면서 개도 멧새도 아카시아 흰 꽃도 호미도 마당에 선 나도 한 사발에 넣고 다 버무려서, 그 모든 시간들도 한꺼번에 다 버무려서
어머니가 옆구리에 산미나리를 쪄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이 다 어두워졌네
시월에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 태생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處暑」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2006년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과 [맨발]이 있다
[원재훈 시인의 작가열전] |
장수하늘소를 닮은 시인 문태준
|
“시는 가죽나무 같아요, 비릿하고 어두운 울음을 우는…”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문태준의 시는 비 온 다음 뻘밭을 기는 지렁이인가 싶더니, 어느새 뿌연 수면을 내리찍는 물총새 부리처럼 날카롭다. 아니다. 장수하늘소 한 마리가 달빛 없는 밤, 세상의 갈라터진 껍질 사이로 배어나오는 수액을 느리게 음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외롭지만 깊고 맑고 투명하다. |
시를 읽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시를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도 외로울 때가 있다. 아니 사람을 만나면 더 외로워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혼자가 되면 차라리 덜 외롭다. 어제 낮에는 과로했고, 밤에는 과음을 했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친구가 말했다. “우리 참 많이 외롭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깊은 새벽에 헤어져 새벽에 잠이 들었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문태준(文泰俊·37) 시인과 약속한 장소에서 잠시 졸았다. 그를 만났다. 그 역시 어제는 피곤한 하루였다고 한다. 피곤한 두 남자가 만났다. 그에게서 몇 마디 들은 것 같지 않은데 돌아와 생각하니 옥수수 알처럼 많은 것이 내 마음에 박혀 있다. 서재에서 그의 시집을 다시 펼쳐 들고 읽다가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 갈 곳이 멀리 / 마음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자꾸 먼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항상 멈추어 있는 내 몸을 보고 슬퍼한다. 외롭다. 슬프다. 이런 추상적인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자꾸 거기에 머물고자 한다. 요즘은 누가 그리운 것인가. 나도 문태준처럼 ‘너무 먼 바깥까지’ 가버린 것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시인 문태준이 문득 이런 말을 한 것이 떠올랐다. “시 쓰는 일도 쓰면 쓸수록 외로운 곳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점점 더 외로운 곳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견디는 것. 그것이 시 쓰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듯 마는 듯한 향기 삶이 동굴 같을 때가 있다. 멀리 희미하게 빛이 보이는 동굴, 그러나 걸어 들어갈수록 점점 더 그 빛이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 그 어둠 속에서 호롱불 하나 들고 사방을 가늠하면서 되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은 혼란스럽다. 우리의 생은 되돌아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가다가 쓰러져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릴지라도 계속 가야만 한다. 마치 한 발자국을 옮기면 그 뒷자리는 바로 절벽으로 변해버리는 그런 동굴과 같은 삶일 수도 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시는 그런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인간의 평범한 삶이 비범해지는 순간에 시는 탄생한다. 그런데 시의 모습은 평범함 그 자체다. 쉬운 말로 다룰수록 더 깊은 비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외로운 곳으로 가는 것과 그것을 견디는 것이 시 쓰는 일이라는 말로 나름의 결론을 내린 셈이다. 그의 외로움은 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두꺼비가 고요한 절간의 앞마당을 건너가듯이,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깊은 우물 속으로 낙하하듯이. 그는 뚜벅뚜벅 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시인 문태준이 근무하는 불교방송에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소리보살’ 같은 불교방송 아나운서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녀가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다시 약속을 정하고, 잠시 그의 작은 책상 위를 보았다. 주인 없는 책상에는 불교 관련 서적과 시집을 포함한 책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의 직업은 방송국 PD다. 그것도 12년차 되는 고참 PD다. 그의 책상 위치는 다른 PD를 통솔하는 높은 자리였다. 입사 이후 불교방송 라디오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거쳐 지금은 편성부에 근무한다. 불교방송국 지하에 있는 허름한 찻집에서 만나, 우리들은 지상으로 나가자고 했다. 오전의 마포 인도는 사람들로 붐볐고, 차도에는 크고 작은 차들이 즐비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우리는 실외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았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얼굴을 응시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자세히 보니 여전하다. 가끔 본 얼굴인데 그의 얼굴에는 중심이 확실한 안정감이 머문다. 나보다도 젊은 시인인데 성숙한 사람의 향내가 난다. 그 향기는 내 책상 위에 피어 있는 치자나무의 꽃처럼 강한 향이 아니다. 풀잎이거나, 뿌리에서 나는 듯 마는 듯하는 마음의 향기, 사람의 향기다. 문태준은 깊은 사람이다. 그 깊이는 맑고 투명함에서 나온다. 그 맑은 것의 뿌리를 나는 그의 유년에서 더듬어보았다. 눈먼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유년시절로 들어가본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뿌리는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어 파 들어가기가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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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그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김천, 정확하게 금릉군 봉산면 태화2리다. 직지사가 있는 황학산을 배경으로 한 태준의 시골집은 산이 크게 들어오는 곳에 있다. 산이 크게 들어온다, 라는 설명을 하면서 두 손으로 산 모양의 제스처를 취한다. 말을 할 때 몸짓이 거의 없는데 그런 동작을 취하는 것으로 보아 그 산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문태준을 자연물에 비교하라면 산 같은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산을 보고 자라면서 그도 그 산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사시사철 변하는 산을 보면, 송충이가 나비로 변하는 것 같은, 장구벌레가 잠자리로 변하는 것 같은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겨울이 지나고 연초록의 산은 그것이 송충이에서 나비로 변하는 것 같은 황홀함이 있는 것이다. 시도 태어나거나 깨어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모습이 변하면서 태어나는 나비 같은 것인가. 그 산이 보이는 흙담집에 문태준의 가족이 있다. 모두 이 마을의 토박이들이다. 문태준 부친의 형제는 모두 9남매인데, 그 식구들이 모두 그 마을에서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결혼하면서 분가할 때 구입한 저수지 밑에 있는 작은 논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77년까지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식구들은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호롱불은 전등과 다르다. 전기는 온통 환하게 밝히기 때문에 좁은 방안은 온통 밝음뿐이다. 하지만 촛불이나 호롱불은 적당히 머물고 있는 어둠의 치마자리를 보여준다. 어미의 품에 드는 새끼처럼 우리는 어둠에서 편안하다. 어둠이 빛 속에 숨어 있다가 걸어 나오는 그림자가 너울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빛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하지만 전등은 모든 것을 밝히기 때문에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 호롱불이나 촛불 아래에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독자도 가끔 그런 정서를 즐기길 바란다. 여럿이 아니라면 혼자라도 촛불을 켜놓고 잠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덜어내지길 바란다. 그것도 일종의 시를 읽는 것이다. 문태준의 어린 시절에 가물거리는 호롱불 아래엔 꿈틀거리는 누에가 있었다. 그가 살던 흙담으로 만든 집에 방이 두 칸 있었는데 안방에는 잠박(누에치는 것)을 들여놓고 그 방에서 살았다면서 웃었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그의 유년시절은 연초록으로 풍성하다. 소년 문태준은 초여름이 되면 뽕잎을 따서 누에를 먹였다. “누에에게 젖은 뽕잎을 먹이면 안 돼요. 설사를 하거든요. 비가 내려 뽕잎을 따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때 빗방울이 뽕잎에 떨어지면 아주 듣기 좋은 소리가 나요.” 수십년 전에 들었을 그 빗방울소리를 마치 지금 듣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특별한 문학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문학교육을 더 잘 받았다고나 할까. 그는 책에서 배운 것보다 자연에서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갔거나 혹은 그전에 들었을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구쟁이 시골아이인 태준은 그 뽕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시를 쓴다. 그의 시를 읽는 이의 마음은 그래서 촉촉해진다. 아버지는 가난한 살림살이여서 아이들에게 우산이나 우비를 사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못자리용 비닐을 잘라 머리와 허리에 감는 간이 우비를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그 비닐 우비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것은 소리가 되어 문태준에게 스민다.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마치 잔잔한 음악소리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 같기도 했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자 피곤한 몸에 생기가 돌았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나서의 그런 개운함 같은 것이 온몸에 감돌았다. 극성스러운 염소새끼 “아이들하고 전쟁놀이를 하고 놀 때 쓰는 멋진 나무칼을 갖고 싶어서 아버지를 졸랐지요. 아버지는 목각 재주는 전혀 없는 분이어서, 부엌 부뚜막에 긴 나무를 올려놓고 내가 한쪽 발로 고정해, 낫으로 나무칼 길이로 다듬어준 것이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유일한 나무칼이었지요.” 나무칼을 들고 동네를 아이들과 어울려 쏘다닌다. 세계 명작동화와 같은 동화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책이라고는 교과서가 전부였다. 공부보다는 놀고, 집안의 농사일을 도왔던 유년시절이다. 마을을 벗어나는 일도 드물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경주에 갔다. 화랑백일장에서 장려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정말일까, 아니면 문학적인 수사인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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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형사가 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교실에서 ‘어린 왕자’를 읽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린 왕자’를 읽은 것이 아니라, 친구가 보고 있는 그 책의 표지만을 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지금의 시인이 말이다. 이것이 문태준이라는 시인을 형성하는 데 어떤 요소일까 싶었다. 보통의 글쟁이들은 통과의례처럼 카뮈나 지드, 미시마 유키오와 이광수, ‘어린 왕자’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책들을 ‘보고’ 있던 시절에 그는 교과서만 보고, 대신에 논일과 밭일을 했다고 한다. “꼴 베고, 쇠죽 끓이고, 소 먹이러 다니는 것이 일이었지요.” 각각 자기 집의 소를 끌고 나온 친구들과 들판을 쏘다닌다. 소는 소대로 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았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는 숨을 곳이 참 많았던 문태준의 마을이었다. 한번은 염소를 몰고 아이들과 나갔다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염소를 잃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혼나고, 온 식구가 염소를 찾으러 마을을 뒤졌지만 결국 염소를 찾은 곳은 다른 마을에서였다고 한다. 염소는 ‘음메에에’ 하는 소리를 내면 그 소리에 응답을 한다고 한다. 문태준과 그 식구들이 ‘음메에에’ 하면서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염소는 극성맞다. 김용택 선생의 말에 의하면 염소새끼는 솥뚜껑의 손잡이 부분, 그러니까 겨우 간장종지만한 그 꼭지에 올라가서 울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극성스러운 염소새끼 같은 동네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시와 독자가 만나는 것이 염소 울음소리로 서로 소통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시인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로 소리를 내고, 독자 역시 자신만의 소리로 소리를 낸다. 그것이 만나는 자리에 진정으로 완성된 한 편의 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마치 장인의 도자기가 감상자와 만나는 순간에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소, 염소, 토끼, 개, 닭 등을 키웠는데 특히 토끼를 잘 키운 모양이다. 자신이 기른 토끼를 김천장에서 팔아 개와 바꿔 온 적도 있다고 한다. 토끼가 아주 잘됐다고 자랑하는 모습은 시골의 촌부 같기도 하다. “어릴 때 놀았던 것만 써도…” 그럼 도대체 시는 언제부터 쓴 것일까? 시는 기자가 되고 싶어 입학한 고려대 국문과에서 만났다고 한다. 대학에서 시도 만났고, 평생의 반려자도 만난다. 문예창작모임에 가입하면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첫 시를 발표하고 나서는 혹평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경찰대를 갈 생각도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학교생활을 하다 여름방학이 되면 시골로 내려와서 7월에는 자두를 따고, 8월에는 포도를 따서 추풍령 청과상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시집을 읽었다. 주경야독인가? 그때 읽은 시인은 신경림, 김용택, 고재종, 고은 같은 농촌 정서가 배어 있는 시인들의 시집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지 모른다고, 활활 타오른 시에 대한 열정은 군에 입대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군 생활을 강원도 화천에 있는 부대에서 한다. 첫 휴가를 나와 시집을 한 권 사서 읽었다. 하지만 졸병 시절이어서 군에서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집을 모두 분해했지요. 모두 낱장으로 뜯어 온몸에 감추고 귀대했습니다. 신병이 시를 읽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서, 화장실 같은 곳에서 몰래 낱장으로 된 시집을 읽고 지내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성복, 황지우에 눈을 뜨고, 시를 읽으니 자신도 쓸 것이 많았다고 했다. 생각해보자, 군인이 자신의 몸에 한 장 한 장 분해해서 숨기고 들어온 시를 읽는 모습. 한 편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그는 시에 대한 사랑을 불태웠다. 그 모습이 마치 나뭇잎이 돋아나는 나무 같지는 않은가. 온몸에 한 장 한 장 이파리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 문태준의 그 시절은 한 편의 시를 나뭇잎처럼 매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에 문태준의 시는 피어난다. 열매도 달린다. 그는 시 쓰는 일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어릴 때 놀았던 것만을 써도 되겠더라고요.” 유년시절이 풍성한 사람처럼 부자는 없다. 그의 유년은 가난한 시골이 배경이다. 그의 주위에서 그를 길렀던 것은 세상에서 제일 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태준의 앞마당은 거대한 들판이었으며, 뒷 정원은 산이었고, 흐르는 냇물이 생수였다. 곁에 있는 모든 게 바로 태준의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전부 시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간직하고 있지 않다면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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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94년에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2000년에 첫 시집을 내고, 지난해 낸 것까지 합쳐 3권의 시집을 냈다. 그리고 2007년 현재 그는 한 권 분량의 시집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맑은 물 한 그릇 같기도 하다. 많이 쓴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적게 쓴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시가 담기에 적당한 것들을 담아서 보기 좋았다. 우리는 시를 왜 쓰는지를 이야기했다. 문태준에게 초심으로 돌아가서 시를 왜 쓰느냐고 물었다. 문태준은 소처럼 눈을 꿈벅이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안 쓰면 불편해요. 한 달 정도 시를 안 쓰면 마치 내가 할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목욕을 안 하고 사는 기분이랄까.” 뱀이 온몸으로 지나간 흔적 그는 문득 고향의 큰집에 있던 가죽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시는 가죽나무 같기도 해요.” 가죽나무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나고, 두껍고 어두운 껍질이 있다. 가죽나무 잎으로 쌈을 싸 먹기도 했는데, 맛있다고 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비릿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시의 느낌이 마치 이 가죽나무와 같은 것이라는 은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시인이 시 같다고 한 가죽나무에 대한 시 ‘가죽나무를 사랑하였다’를 읽어보자.
어둠, 울음, 주름, 이 시를 채우고 있는 이미지는 어둡고 우울하다. 그리고 시인은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고백을 한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 사람이 부처말고 누구인가 싶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가죽나무, 사람의 기쁨보다는 고통과 울음소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해서 시인은 자꾸 외로운 쪽으로 가는 자신의 이정표를 길 위에 세워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가끔씩 지게에 꼴을 베어가지고 오시다가, 어느 날은 지겟작대기에 뱀 한 마리를 돌돌 말아서 오시곤 했어요. 시를 쓰는 것이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왜 그런지 설명은 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죠.” 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적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첫 시집인 ‘수런거리는 뒤란’에 뱀 이야기가 여러 편 나온다. 그의 말대로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는 뱀이 온몸으로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하다.
이 시에서는 뱀을 본 누이들이 도망치는 모습, 독에 뱀을 집어넣은 모습이 펼쳐진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쉬이쉬이 숨이 가빠졌는데 능구렁이도 늙으면 쉬이쉬이 휘파람을 불고 그 소리가 끝나는 자리에서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연신 애를 배어, 애를 배게 만든 남정네들이 매번 그녀를 둔덕에서 밀어버린다는 소문이 돈 여자가 동네 길 위에서 죽었을 때에도 늙은 구렁이가 거두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뱀은 그렇게 문태준에게 시로 형상화해 있다. 그의 영혼에 어떤 배암이 물었던 자리라도 있는 것일까? 지겟작대기에 매달려 있는 죽은 뱀. 그리고 가죽나무…. 문태준은 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문태준의 시를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강경희는 문태준의 시에 대해서 이런 글을 보내주었다. “문태준의 시는 풍경의 자연이 아니라 실존으로서의 자연을 형상화한다. 그것은 풍경의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쓴 시의 풍경은 대상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화된 자연’ ‘자연화된 인간’이라는 동일성의 시학을 구축한다. 문태준의 시는 가장 농밀하게 표현된 ‘인생의 사생화’이기에 미와 감동이라는 두 가지 예술적 성취를 모두 이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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應無所住 而生其心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취업공고문을 보고 찾은 불교방송에 입사한다. 그의 시 세계에서 불교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는데, 입사하기 전에 읽은 불교서적이라곤 육조단경 하나뿐이라고 했다. 마침 육조단경의 게송 하나를 잘 외워서 입사시험에 썼더니 합격했다며 웃었다. 불교와의 인연은 어릴 때 집 가까이에 있는 용화사에 어머니 손을 잡고 몇 번 다닌 것이다. 어머니 따라 영문도 모르고 부처님께 절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생의 중요한 고비를 만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의 육체는 죽을 고비를 넘긴다. 중학교 2학년 때, 병명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린다. 환청이 들려오고, 열나고, 정말 죽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유도 알 수 없고, 병원에서도 그 병인을 찾지 못해 포기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무당을 찾아가 밤새워 굿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아버지는 아들을 거적에 말아 마당에 놓고 삽으로 흙을 퍼서 덮는 시늉도 했다. 내 아들이 이미 죽어 매장했으니 어서 역귀는 물러가라는 의식이었다. 그렇게 지독한 열병을 앓아 죽다 살아난 것을 문태준은 불교와의 인연으로 엮었다. 이러한 체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사람들, 죽을 만큼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살아난 사람들은 생의 다른 것을 보는 것 같다.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향한 그들의 열정이 있다. 그가 가까이 하는 불교서적은 많겠지만, 역시 육조단경과 임제록, 그리고 한암 스님의 법문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능엄경은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루는 불경인데, 문학적인 수사가 좋은 불경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기회가 되면 절의 강원에서 스님들과 불경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불교는 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자리를 살피는 종교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마음자리를 살피는 시이기도 하다. 마음을 쉬어라. 자꾸 다른 쪽으로 가려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시 쓰는 쪽으로 마음을 두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쉬어야 시가 나온다. 그러면서 능엄경의 칠처징심(七處徵心)을 이야기했다. 능엄경의 초반부에 나오는 칠처징심은 부처의 제자인 아난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스승의 질문에 대답을 한 이야기다. 아난은 마음이 ‘몸 밖에 있다’ ‘몸 안에 있다’ ‘눈 속에 있다’ ‘어두운 몸속에 있다’ ‘합하는 곳에 있다’ ‘근과 진의 중간에 있다’ ‘안 밖 근간 그 어디에도 없다’고 철학적인 답변을 하지만, 부처가 보기에 그것은 모두 잘못된 집착인 것이다. 제자의 대답에 하나하나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는 이야기인 칠처징심. 그래서 우리는 이 말을 잘못 가고 있는 마음자리의 사자성어로 배운다. 문태준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자리를 잘 보살피려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럼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부처는 그 어디에도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육조 혜능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마땅히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움직여라)이라는 유명한 금강경의 한 구절에서 대오각성하지 하지 않는가. 그런 것 같다. 마음은 가만히 두면 자꾸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그러면 몸도 따라 움직인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문태준의 마음에는 두 개의 큰 공간이 있다. 하나는 직장으로서의 공간이고, 또 하나는 시인으로서의 공간이다. 일이 끝나면 그는 곧바로 시를 쓰는 자리로 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주필하지 말라, 살찌지 말라
두 번째 시집인 ‘맨발’을 내고 나서 그는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한 것이다. 이러한 주목이 그에게는 별로 반가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처음엔 반가웠지만 무거운 짐으로 어깨를 누르는 것 같은 부담감을 가진 것 같았다. 혼자 조용히 머물던 공간이 다친 것일까. 빛이 밝으면 눈이 먼다. 지나친 찬사나 칭찬은 사람의 눈을 멀게도 한다. 그는 수상 이후에 힘들었다고, 남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당연히 생활이 단순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분들이 자신이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지금 시를 쓰는 것, 그것을 견디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처음의 것을 잘 지키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라고 격려해준다고 했다. 밖의 평가에 의존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문태준은 그런 분들의 말씀을 귀담아듣는다. 그리고 대학시절에 은사가 들려준 이 두 가지 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첫째가 주필(走筆, 말 달리듯이 글쓰기)을 하지 말라. 둘째가 살찌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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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살찌지도 않았고, 많은 글을 쓰지도 않는다.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신은 그리 많은 책을 그리 많이 읽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저 겸손한 말 같지는 않았다. 책을 정선해서 깊게 읽는 스타일로 보였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 게 아니라, 한 가지에 천착해서 깊게 파내려가는 모습이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듯 그는 필요한 것만을 한다. 그래서 그는 마음자리를 채우기보다는 비우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날마다 차올라오는 망상을 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대학 동기동창인 그의 아내, 대학 1학년 때 만나 ‘이 사람이다’ 싶었다는 그의 아내도 그에게 책을 많이 읽지 말라고 권했단다. 두 사람은 아들딸 낳고 소박하게 살고 있다. 문태준은 아내가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몇 마디를 비치는데도 두 사람의 금실이 보였다.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모양이다. 시인에게 책을 많이 읽지 말 것을 주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근본적인 고독감을 품고 있어 보였다. 그것은 슬픈 일이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내 시가 슬픈 것 같아요. 살고 죽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 적이 많지요. 사는 것이 즐거운 것 같지 않고, 또 그런 것에는 눈길이 가지 않아요.” ‘가재미’를 닮은 여인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장 선생은 문태준 시인의 부인이 이제 몸이 다 나았냐고 물었다. 사실 부인의 안부까지 알 정도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런 소문을 들어본 적도 없어,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더니, 그의 시 ‘가재미’에 나오는 여인이 부인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고, 나는 아마도 아닐 것이라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가재미’에 나오는 죽어가는 여인에게 문태준의 삶의 쓸쓸한 눈길이 머문다. 사실 나는 ‘가재미’를 읽고 나서 ‘문태준’이라는 시인을 보게 됐다. 그때부터 그를 좋아하게 됐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여인. 그녀가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누워 있다고 시의 초반부는 시작된다. 이 시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도 생의 어떤 순간에 납작해져버린 가재미가 된 느낌이 든다. 시에는 가재미처럼 병상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여인이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누구일까.
그녀는 누구일까? 많은 사람이 질문한 모양이다. 문태준은 자신의 큰어머니라고 아주 조그마한 소리로 대답한다. 들어서는 안 될 대답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뜨끔했다. 큰어머니가 점점 위독해지고 있는 상황이 시에는 잘 나타나 있다. 문병을 간 문태준은 큰어머니의 아픈 몸을 보면서 자신도 같이 아파버린다. 그리고 그의 영혼이 그녀 곁에서 메말라간다. 슬픔은 모래사막 같은 것이다. 황폐해진다. 그때 암투병 중이어서 가재미처럼 납작 엎드린 그녀가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내 마른 몸 위에 가만히 적셔준다.’ 큰어머니는 살아 싱싱한 자신의 몸에 물을 내려준다.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읽었다. 두 번째 시집인 ‘맨발’에 이성복 시인은 다음과 같은 글로 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뛰어난 미문이어서 잘 그린 문태준의 초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시인 문태준에 대한 시 같다. “어찌 보면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그의 시의 목소리는 비 온 다음 뻘밭을 기는 지렁이의 행보를 닮는가 싶더니, 어느새 뿌연 수면을 내리찍는 물총새 부리처럼 날카롭다. 쥐를 삼킨 뱀의 몸통처럼 꾸불텅거리는 그의 시의 행갈이는 기필코, 포획한 대상을 흐물거리는 단백질 덩어리로 만들어놓는다. 그의 시 행간마다 육식 곤충이 내뿜는 끈적한 타액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아니다.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장수하늘소 한 마리가 달빛 없는 밤, 세상의 갈라터진 껍질 사이로 배어나오는 수액을 느리게 음미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억지로 주는 삶을 살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그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과는 달리 그것은 일종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직장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퍼내야 한다. 말라버리면 바닥이라도 박박 긁어내야 한다. 집에서는 자식들에게, 형제들에게,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퍼주어야 한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우울함이다. 그 우울을 견디지 못하면 미치는 것이다. 그럴 때 작은 처방전이 있다. 가장 쉬운 것은 가까이 있는 화분의 꽃이나 나무를 보는 것이다. 짬이 나면 가로수의 큰 나무 아래에서 큰 나뭇잎을 본다. 꽃을 보는 것이 좋은데, 꽃핀 자리에 열매가 맺기 때문이다. 나는 ‘장수하늘소’ 한 마리 같은 문태준을 보면서 꽃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각박한 마음에 문태준의 시는 참으로 많은 것을 내어주는 꽃이었고, 열매였다. 거기에서 어느새 날아오르는 나비였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웃고 있는 할머니의 웃음소리, 걸어가고 있는 노승의 걸음걸이였다. (끝) |
복원된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의 시학
1
좋은 시인을 만났을 때 나는 지도를 펼쳐보는 버릇이 있는데 문태준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그의 시를 하나 둘 접할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지도를 펼쳐 생면부지의 '김천'이란 동네를 짚어보곤 했다. 한 시인이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살림을 차리고, 혹은 유랑하는 그 모든 공간에 별표를 치다보면 어느덧 그 사람의 행로는 하나의 커다란 천체 지도가 된다. 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쳐다보듯 그 천체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삶이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소월이, 백석이 특히 그러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젊은 시인의 시를 접하고 지도를 펼쳐보게 된 것은 참으로 드문 경험이었다. 그만큼 그의 시는 돌올하고, 동년배의 시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을 향한, 삶을 향한 무량한 연민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일찍이 현대시의 본격적인 출발이라 할 수 있는 김소월은 그의 유일한 시론<시혼(詩魂)>(1925)에서 시인을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에 비유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오. 우리는 낮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파릇한 별들은 오히려 깨어 있어서 애처롭게도 기운 있게도 몸을
떨쳐 영원(永遠)을 속삭입니다.(...)도회(都會)의 밝음과 짓거림이 그의 문명(文明)으로서
광휘(光輝)와 세력(勢力)을 다투며 자랑할 때에도, 저 깊고 어두운 산과 그늘진 곳에서는 외로
운 버러지 한마리가 그 무슨 설움에 겨웠는지 쉼 없이 울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현대시의 출발이 소월의 이 '버러지 시론'에서 시작 되었다는 게 그리 좋을 수 없다. 서구 현대시의 아버지는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보다 훨씬 소박하지만, 그 소박함이, 절절함이 좋다. 소월은 이 글에서 덧붙이길, 영원한 진리의 세계는 영혼(靈魂)의 세계이며, 영혼은 적막. 고독. 슬픔. 어두움 등과 대면할 때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림자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있지만 낮의 세계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월은 그것을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 에 설 때 비로소 대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문태준 시인의 시는 대부분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우리가 애써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김소월이 말한 영혼의 소리를 듣게 만든다. 그가 보여주고 싶은 존재의 실상이란 환한 빛 속에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그늘 속에서, 적막 속에서, 슬픔 속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최근의 작품들은 김소월이 말한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 를 시인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 또한 보여주고 있어 여간 미덥지 않다.
문태준은 그런 면에서 소월이 그토록 간절하게 전해준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 의 시론,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 에 서자는 권유에 충실한 제자라 할 수 있다. 소월은 비록 젊어서 '불귀(不歸),불귀(不歸)' 의 세계로 나아가고 말았지만, 문태준은 오고 감이 넉넉할 정도로 아직 젊고 건강하여 그 진폭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 시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문태준 시인을 처음 만난 곳은 10여 년 전 춘천에서였다. 그 당시 나는 춘천에서 시보다 밥이 먼저라는 일념하에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장석남 시인이 처음 보는 젊은 시인 하나를 데리고 내려왔다. 당시 장석남 시인은 내가 생업에 치여 시를 잊어버릴까봐 이따금 내려와 잠자는 시심의 콧털을 뽑아놓고 가곤 했었다. 선우(善友)란, 도반(道伴)이란 그런 것이리라.
젊은 시인은 영락없는 '중송아지' 같았다. 눈은 송아지처럼 맑았고, 몸은 어른 소처럼 튼실해 보였다. 나는 단박에 그가 어렸을 때 소꼴 좀 베고 다녔겠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예상대로 말없이 눈을 꿈벅거리며 주로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날 밤, 우리들은 어느 골짜기로 들어가 그냥 뜻 없이 새벽까지 잘 놀았다. 미끄럼을 타던 결빙의 길과 초승달 아래 서성였던 절 마당이 떠오른다.
뜻 없이 잘 놀던 시절은 그 이후에도 간간히 이어졌다. 그는 그가 형이라 부르는 우리 연배 시인들의 술자리에 늘 참석하는 멤버였다. 그는 여전히 눈을 꿈벅거리며 얘기를 듣는 쪽이었으나, 이따금 곰살맞은 이야기를 툭 던져 가라앉는 분위기를 순식간에 업시키는 재주도 보여주곤 했다.
한번은 예의 '뜻 없는 모임' 의 술자리에서 그의 춤을 본 적도 있다. 어쩌다 분위기가 업 되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게 되었는데 그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 어깨춤이라니! 그는 몸은 가만히 있고, 어깨만으로 음악을 타는 곰살맞은 춤의 진경을 보여주었다. 이성복 시인의 표현대로 그는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았다.
3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통로를 지나야 한다. '수런거리는 뒤란' 으로 상징되는 고향의 정경과 그 속에서 살아온 가족사적 내력, 그리고 그가 시의 안팎에 저며 넣는 불교적 사유가 그것이다.
이 세 개의 통로는 각각 개별 시편을 낳기도 하고, 두 개가 모여, 혹은 세 개가 모여 한 편의 시를 낳기도 한다. 그가 고향의 정경과 그 속의 살림살이를 그리는 데 집중할 경우 그의 시편은 평화롭기까지 하지만, 가족사적 내력이 스며들 때는 슬프고, 고달픈 정경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정경 속에 불교적 사유가 저며질 때는 시간과 공간이 무한히 늘어나면서 전생과 후생을 넘나드는 서늘한 적막의 진경을 보여준다. 먼저 뒤란으로 가보자.
산죽(山竹)사이에 앉아 장닭이 웁니다
묵은 독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 애처롭습니다
구들장 같은 구름들은 이 저녁 족보만큼 길고 두텁습니다
누가 바람을 빚어낼까요
서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산죽의 뒷머리를 긁습니다
산죽도 내 마음도 소란해졌습니다
바람이 잦으면 산죽도 사람처럼 둥글게 등이 굽어질까요
어둠이 흔들리는 댓잎 뒤꿈치에 별을 하나 박아주었습니다
-<수런거리는 뒤란> 전문
그가 그려낸 뒤란에는 산죽이 있고, 장닭이 있고, 묵은 독이 있다. 전형적인 농촌의 뒤란 풍경이다. 시인은 이 뒤란 풍경을 행갈이 없이 한 행 한 행 담아낸다. 초기 시를 장식하는 이러한 시편들은 맑고 투명하고 섬세한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세계는 그가 지닌 감수성의 근원을 이룬다.
시인은 뒤란을 그린 위의 작품을 첫 시집의 표제작으로 삼더니 두 번째 시집에서도 같은 뒤란을 노래한 시 <대나무숲이 있는 뒤란> 을 실었다. "처음 이곳에 대나무숲을 가꾼 이 누구였을까" 로 시작되는 뒤의 작품은 "아, 그 먼 곳서 오는 반가운 이의 소식을 기다려/ 누군가 공중에 이처럼 푸른 여울을 올려놓은 것이다" 로 끝난다. 앞의 작품이 '바람'과 '산죽'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세월을 격해 발표한 뒤의 작품은 대나무숲을 처음 가꾼 '누군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뒤란은 이처럼 문태준 시의 출발점이자 원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앞마당이 아니라 뒤란이 그의 시의 원형적 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뒤란은 퇴색한 잡동사니들이 모여있는 풍물적 공간이며,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이며, 밝음보다는 어둠과 그늘이 지배하는, 존재의 실상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리고 앞마당보다는 무언가 할 이야기가 많은 '수런대는 공간' 이다.
거칠게 분석한다면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차이는 이 뒤란에서 무엇을 보려 했는가에서 빚어지는 차이다. 뒤란을 처음 만든 이가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은 뒤란이 오롯하게 시인의 품속에 들어왔을 때나 가능한 질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가족, 특히 아버지, 어머니, 큰어머니, 고모, 누이들을 통해 이 고적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 하나를 더 만든다.
세상 한곳 한곳 하나 하나가 저녁에 대해 말하다
까마귀는 하늘이 길을 꾹꾹 눌러 대밭에 앉는다고 운다
노란 감꽃 핀 감잎은 등이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암내 난 들고양이는 우는 아가 소리를 업고 집채의 그늘을 짚으며 돌아 나간다
나는 대청에 소 눈망울만한 알전구를 켜 어둠의 귀를 터준다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찬물에 발을 씻으며 검게 입을 다물었다
-<저녁에 대해 여럿이 말하다> 전문
이 작품에서도 시를 지배하는 것은 '뒤란적 시간'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뒤란적 시간' 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들에서 돌아와 검게 입을 다무는 아버지라는 존재이다.
문태준 시의 특질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시선은 그의 시를 동년배의 다른 시인들과 구별 짓는 개성적 세계로 승화 시킨다. 그의 시에서 아버지는 관념적 대상이 아니라 실존적 삶을 꾸려가는 구체적 존재이며, 떠도는 존재로서의 남성 상징이 아니라 도리어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꾸준한 삶을 지속하는 정주(定住)적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는 일찍이 서정주가 <자화상>에서 보여준 남성/여성 상징과는 차별되는 세계이고, 도회의 젊은 시인들이 만신창이로 만드는 상징과는 구별되는 상징이다.
그의 시에서 아버지는 늘 검게 입을 다문다. 아버지는 가난의 세계이고, 침묵의 세계이고, 자연에 순종하는 세계이다. 시인은 아버지를 통해 시간의 육체를 본다.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내고
피어난 꽃은 한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한 호흡> 전문
아버지의 삶,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인은 만물이 피고 지는 것, 오고 가는 것들의 육체를 만진다. 그것은 삶에 대한, 우주적 원리에 대한 '통 이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사유가 지극히 동양적이고, 전통적인 사유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보여준다. 도가와 불가에서는 늘 '한 호흡' 을 삶의 전체와 등가(等價)로 놓는다. 그것은 시간적 단위를 넘어서는 생명의 실존이자, 구체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생애를 철학관에서나 들을 수 있는 '예순 갑자' 라는 시간적 단위로 축약해 냄으로써, 삶의 유구함을 성취해 내고야 만다.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 아버지란 존재는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이다. 반면 그의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 큰어머니, 외할머니, 누나 등 여성들은 연민과 그리움의 존재들로 보다 살갑게 그려진다. 시인은 아버지를 통해 이 세계의 침묵을 읽어내려 애쓰고, 여성들을 통해 나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을 확장시켜 나가려 한다.
가난과 쇄락의 농촌공동체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해 간 가족과 친척들의 삶을 그려내는 그의 이러한 시들은 그것 자체만으로 독보적이다. 시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체험과 세계관 속에 불교적 사유를 저며 넣으며 시의 밀도를 한층 두텁게 한다.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맨발> 전문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그가 지나온 시적 세계가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시 속에는 그늘진 뒤란이 있고, 늘 캄캄하게 입을 다물던 가난한 아버지가 있고, 큰 자비와 큰 슬픔을 보여준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가 있다. 시인은 이 세계를 반죽해 묽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어 딱딱해져버리지도 않은, '울음이 목젖에 걸린 세계'를 보여준다. 좋은 시의 실상이란 이런 것이리라.
그가 저며 넣는 불교적 사유는 폭넓다. 이 작품에서처럼 사랑과 연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적막과 극빈을 향한 선적(禪的) 세계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의 시들은 <극빈(極貧)> 연작에서 볼 수 있듯 후자의 세계를 강하게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
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 나도 오늘은 아주 식물
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극빈 2 - 독방(獨房)>마지막 부분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 나는 이르렀네
귀 떨어진 밥그릇 하나 들고
빛을 걸식하였네
-<극빈 3 - 저 들판에>첫 부분
뭐라 할까,<극빈> 연작이 보여주는 세계는 말 그대로 차, 포 다 떼내고 존재의 실상으로 바로 돌입하고자하는 열망이 숨죽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극빈>이란 그곳으로 가기 위한 태도, 혹은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4
시인 문태준의 출현은 좀 돌연한 데가 있다. 도대체 이 남다른 개성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작가론'이란 그런 비밀을 밝혀주는 것인데, 그가 젊고, 말이 드물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난감한 청탁이 올 줄 내 미리 알았더라면 그 많은 술자리에서 앞에 앉혀놓고 시시콜콜 물어볼 걸 그랬지 싶다. 하지만 그나, 나나 별 말이 없는 것으로 말을 삼는 체질이라 길 위에 찍힌 발자국 보며 그냥 방금 소가 지나갔겠거니 생각할 도리밖에 없다.
추측컨대 그가 시를 만난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인 것 같다. 그의 시가 지닌 순도는 그가 서울에 와서야 비로소 시를 만났다는 것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그의 시에는 일찍 시를 만났던 사람이 갖지 못하는 맑음과 순결함같은 것이 배어 있다. 고향을 오롯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은 고향을 처음 떠났을 때,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그의 두 번째 행운은 그가 시골에서 '서당적 사유'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한 신문에서 고등학교 시절 기억나는 은사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그가 든 은사가 다름 아닌 '저승꽃이 잔뜩 피어오른' 한문 교사였다. 시인은 그 은사가 소개한 소동파의 시 한 구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나에게는 신기해 보였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소동파의 시구절을 기억하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덧붙인다는 게 요즘 시절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싶다. 이 '서당적 사유'와 한시에 대한 이해도 그의 시를 이해하는 한가지 좋은 접근법이 될 것이다.
그가 영향 받음직한 시인도 거론해야겠다. 아마도 가장 첫머리에 꼽을 수 있는 시인이 백석이 아닐까 싶다. 백석은 그의 시에 담긴 세계관의 시의 형식에서 안팎으로 영향을 미친 거의 유일한 시인으로 여겨진다. 그는 보다 담백한 백석에 비해 시의 대상을 좀 더 오래 우물거려 꾸불텅꾸불텅 뽑아내는 편이다. 백석이 당나귀과라면 문태준은 소과이고, 백석이 흰 가재미과라면 문태준은 고둥과에 가깝다. 이 외에 한시와 선시를 꼼꼼하게 읽은 흔적들과 서정주, 신경림, 그리고 가깝게는 장석남의 영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문태준 시의 근간을 이루는 직유에 대해서도 말해야 겠다. 흔히 현대시는 직유보다 은유의 힘이 강하여, 은유를 잘 쓰는 시인이 높이 평가받는다고 말한다. 거칠게 비유하면 은유는'바로가는 세계'이고, 직유는 '에둘러가는 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문태준의 시는 이러한 경직된 시론을 훌쩍 뛰어넘어 '에둘러가는 세계'의 진경을 보여주었다. 에둘러가는 것은 옆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그 존재의 실상을 그려내는 시작법이다. 그의 시는 에둘러 가되 끊임없이 인간화(의인화)를 통해 실상에 접근한다.
이는 우리 시가 너무 일찍 잃어버린, 가치절하시켜버린 부분이다. 문태준의 시는 이의 복원을 통해 시의 품격과 가치를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먼저 시인들로부터 술 한잔 받을 자격이 있다. ♣
文學思想 (2006.5) 특집 제21회 소월시문학상/작가론(문태준)pp58~61 (이홍섭 시인/문학평론가)
[작가와 문학사이] 문태준 | ||
2007년 01월 12일 | ||
1970년에 태어나 1994년에 시인이 되었다. 세 권의 시집을 펴냈고 여섯 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받은 상보다 받지 않은 상을 헤아리는 것이 빠르다. 그래서 혹자는 ‘문사마의 시대’라고 했다. 욘사마만큼 인기 있겠는가마는 욘사마만큼 노곤할 일도 많겠다. 소설가 김연수와 김중혁이 그의 고교동창이다. 김연수가 도서관 타입이고 김중혁이 박물관 타입이라면 문태준은 마을회관 타입이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시인들이 ‘고양이’과라면 그는 비슷한 연배인데도 ‘소’과에 가깝다. 그는 소처럼 ‘마실’ 다니며 끔뻑끔뻑 쓴다. 그런데 그게 너무 아름답다.
부럽다. 자신의 마음을 ‘뒤란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에게 몽땅 내주는 방심(放心)이 먼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그런 것들의 존재를 혼신으로 호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떤 것들이 단지 ‘있다’는 사실만을 지극하게 기록한다. 깨달음의 발설을 자제하고, 감탄문이나 느낌표를 아낀다. 혹은 그럴 때 아름다워진다. 출석을 부르는 시간만큼은 모든 학생들이 평등해지듯, 그가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고 그 존재를 호명해 줄 때 만물은 서정적 사해동포주의로 느릿느릿 물든다. 그가 ‘나’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감응하고 해석하고 교설하는 ‘나’가 겸손하다. “낮과 밤과 새벽에 쓴 시도 그대들에게서 얻어온 것이다”라고 그는 썼다. 이런 겸허함은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의 습관 같은 것이라 감동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의 시가 실제로도 그렇게 씌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감동적이다. 시를 대하는 태도와 시를 쓰는 원리가 일치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가 시를 얻어온 ‘그대들’의 목록은 다채롭지만 특히 ‘나무’에 진 빚이 커 보인다. “내가 다시 호두나무에게 돌아온 날, 애기집을 들어낸 여자처럼 호두나무가 서 있어서 가슴속이 처연해졌다.”(‘호두나무와의 사랑’)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다(…) 바라보면 참회가 많아지는 나무다.”(‘개복숭아나무’) “꽃에서 갓난 아가 살갗 냄새가 난다/젖이 불은 매화나무가 넋을 놓고 앉아 있다.”(‘매화나무의 해산’) 세 권의 시집에서 한 편씩 골랐다. 모아놓고 보니 꽤나 닮아있다. 이 세 편의 시에서 그의 근본 중 하나를 짐작한다. 그의 시는 여자를 슬퍼하는 남자의 시다. 그는 나무에게서 하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잃은 여자, 아이를 낳은 여자를 본다. 이 여자들은 어머니라기보다는 출가한 누이에 가깝고, 시인은 고단한 그녀들 앞에서 조용히 아파한다. 혹자는 그의 시에서 장자(長子) 의식을 읽어냈다. 나는 차라리 철든 막내를 볼 때 누나들이 느끼는 애처로움 같은 것을 느낀다. 그는 따뜻하고 슬프다. 이를 자비(慈悲)라 한다. 그는 불교방송 프로듀서다. 몰인정의 시대에 그의 시는 갸륵하다. 그의 다정(多情) 때문이다. 이조년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라 했다. 병 맞다. 이를 다정증이라 부르려 한다. 문태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다정증 환자다. 이 환자가 우리 딱한 정상인들의 가슴을 찌른다. 저 환자의 눈에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휑하고 빤한 인생일까 싶어진다. 그래서 돌연 아연하여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란 그런 것이다. 언제 그 맥이 끊어질지 모를 이 소중한 환후(患候)를 우리는 아껴 기린다. 그는 낫지 말아라. 그래야 우리도 산다. 〈신형철|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