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장씨(結城張氏)
【시조】장사
【인구】21,068명 (2000년 현재)
【주요파】▲영상공파 ▲호판공파 ▲목사공파 ▲공의공파 ▲판결사공파 ▲사재공파 ▲판윤공파 ▲직장공파 ▲의재공파
▲지암공파 ▲신재공파 ▲봉옹공파 ▲주부공파 ▲동주공파 ▲첨사공파 ▲별장공파 ▲참봉공파 ▲익위공파 ▲호군공파
▲사직공파 ▲교위공파 ▲첨지공파 ▲성천파 ▲안악파
시조 장사는 고려 충열왕 때 큰 공을 세워 상호군에 이르고 결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결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결성은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의 지명이다.
한편 결성장씨의 선대는 고려 개국공신 장정필이다.
그는 고려 태조 때 김선평. 권행 등과 함께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통일의 공신이다.
그 뒤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여러 본관으로 갈라진다.
특히 인동장씨는 결성, 울진 등 여러 본관으로 갈라졌다.
따라서 ▲덕수장씨와 ▲절강장씨를 제외한 나머지 장씨는 모두 장정필의 후손이다.
2000년 현재 ▲인동장씨가 591,315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 ▲안동장씨…83,961명, ▲흥덕장씨…44,705명, ▲단양장씨…33,295명, ▲결성장씨…21,068명,
▲울진장씨…20,791명 순이다.
동아일보 초대 주필 설산 장덕수는 결성장씨가 배출한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웅변술에 문장까지 탁월했다.
정치적 식견과 외교적 능력도 겸비한 설산은 해방 후 한민당의 중추로 정국을 리드하다 암살범의 흉탄에 숨진다.
장덕수의 4형제 가운데 둘째 형 장덕준도 언론인이다.
간도에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파견돼 일군의 잔학행위를 취재하다 살해당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직기자다.
아우 장덕진은 상해 임시정부의 행동대원이었다.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인 카지노를 털다가 20대의 나이에 요절한다.
3형제가 모두 조국 광복에 몸바친 의열 집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