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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김재민 50년 동안 못본 초중고 동창을 만났네요
김재민 추천 0 조회 75 24.06.30 09:06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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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6.30 09:20

    첫댓글 ㅎㅎ
    김박사
    '고교 졸업 후 50년 만에 친구와 첫 해후'를 축하함미다
    고교졸업 50주년이라,
    '이산가족찾기' 같은 감동스토리네요
    '이산동기찾기'라는 운동은 없나 불현듯 생각이 떠오르네요

  • 작성자 24.06.30 11:25

    옥자, 축하해주니 고맙네요.. 종성이가 중고교 시절부터 별로 외향적이지 않는 성격이라 우리 동기들과도 광범위하게 교우하지는 못했을거라 짐작됩디다. 내가 아는 친구들의 이름을 대봐도 한 4, 50%만 기억난다 하니 말이지요.

    학창시절은 그렇다 치고, 사회생활에서 연구직으로만 근무하다 보니 더 사람 만나는 폭이 고만고만 했을거라 여겨지데요. 아무튼 초등시절 깊이 알았던 친구를 아주 늦게라도 만났으니 뿌듯했심다. 눈매가 항상 선한 사슴 눈알처럼 기억되었는데 그 흔적도 많아 남아 있데요.

  • 24.06.30 09:47

    고교 1-4반이라면 나와도 같은 반인데 종성이란 이름은 귀에 익히 들은듯한데 얼굴은 기억이 안나네요.
    인생 느지막하게 옛 인연이 있는 친구와 만나 담소하는 장면이 참 보기 좋네요.
    어린 시절의 인연이란 언제 만나도 다시 복원되는 묘한 접점인가봐요.
    당시 일찍 저 세상으로 간 박상훈이 급장을 했었지요.
    상훈이와 나는 오랜 접점을 유지했었고요.^^

  • 작성자 24.06.30 11:22

    이 친구가 나보다 쪼끔 더 큰 30번대 중후반이었을거니 장신급의 강호 교수 눈에는 자주 안 띄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출석 부를 때는 어떻게든 들어봤을테니 귀에는 익었을낌미다.

    말 그대로 어릴 적 깊은 인연은 언젠가 연결된다는 영화 비스무리한 스토리가 내게도 이번에 한편 나타난 것 같네요. 김교수에게는 타계한 박상훈 군이 같은 인생 친구의 역할을 한 모양이구료.. 이번에 책 출간했다는 소식 축하드림다.

  • 24.07.01 11:48

    @김재민 이번에 낸 책에도 토빗이란 이름으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와 대담한 글이 바로 친구 상훈과의 대화였지요.
    상훈이는 질문을 항상하는 탐구적인 성격으로 참 순수한 친구였지요^^

  • 작성자 24.07.01 16:12

    @김강호 와따, 톨스의 대장편 '전쟁과평화'에 대한 얘기도 나옴미까?.. 박상훈군은 1-4반 급장하며, 매사에 희생과 봉사정신이 몸에 배였던 친구라 너무 빠른 타계에 안타까움이 그냥 그득해지네요.

  • 24.07.02 12:59

    박상훈을 동광동 화국반점에서 우연히 만난 후 얼마 안 있어서
    비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부반장은 철각 박치호 원장이...

  • 24.06.30 11:33

    김종성, 학교 다닐때 말 한마디 안 나눈 친군데 사진을 유심히 보니 눈에 익네요.
    차동민은 연대 아닌 서강대 출신...
    글고 연락이 닿는다면 일본 이복 누나 꼭 찾아보셔...만나면 얼마나 훈훈한 스토리일까 ㅎㅎ 조선일보에 대서특필해줄게요...

  • 작성자 24.07.01 12:35

    종성이가 사회 나와서 너무 교교하게 살았는지 알거나 기억하는 우리 동기들 폭이 예상 외로 적은 듯 함다. 하기사 나와도 접점 계기가 거의 없어 50년 만에 만난 판이니.. 지금이라도 동기들 모임에 연락해 얼굴 좀 더 비추게 해야겠심다.

    일본 이복누나 찾았으면 한다는 소생의 바람을 응원해줘 고맙소이다. 뭐 실현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알지만 그래도 어떤 인물로 성장하고 노년으로 가있을까 하는 호기심은 여전하네요.. 우리 파피 소생이라면 용모는 평균 이상 되었을거라 기대되지만..

  • 24.06.30 12:33

    김박, 글고 제발 허세 부리지 마시게...종성이는 대기업 임원지내 재산이 김박보다 10배 가까이 많을건데 차값만 내면 되지...ㅎㅎ

  • 작성자 24.07.01 09:54

    허세는 무슨.. 정상적인 사람 도리를 한거지요.. 50년 만에 보는 친구가 먼저 나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온다면 수인공도 분명히 쌈지돈이라도 털어 대접했을거외다.

  • 24.07.01 10:24

    @김재민 난 누굴 만나면 대충 상호 재산 가늠해 식대와 차값 내는거 조정하는데 이 기준을 김박에게 디밀어 쏘리...내 계산법이 합리적일듯 ㅎㅎ

  • 24.06.30 22:37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종성이의 옛날 얼굴이 남아있네요.

  • 작성자 24.07.01 08:39

    아, 길영공도 1-4반 같이 했으니 이 친구 옛 얼굴이 기억날거외다. 그건 그렇고 두드러기로 고생한다는데 좀 많이 괜찮아졌능교?

  • 24.07.01 13:53

    @김재민 두드러기는 김 수인 공이 두드러기로
    돌팔이 고약장수 이모씨에게 묻은 바람에
    이모씨가 두드러기로 고생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 24.07.01 02:19

    두 사람의 오랜만의 만남, 좋았겠습니다.
    김종성, 나하고도 한 반 한 적이 있고(2학년 때?) 앉은 자리도 나와 그리 멀지 않아서 이름만 들어도 금방 생각이 났네요. 내 기억에는 나보다는 외향적이었던지 경북 촌놈인 내게 몇 번 말을 먼저 걸어 주었던 생각이 납니다. 옆으로 싱긋이 웃으면서 입을 크게 안 벌리고 좀 우물거리는 말투로 말이지요.
    나도 고교 졸업 직후 종성이를 서울 경복궁에선가 처음으로 동창회 모임 같은 것 했을 때 잠깐 스쳐 봤든가 아니면 아마도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사진 보니 반갑네요. 얼굴도 좋아 보이네요. 차동민이는 1학년 때 우리 반이고 반장을 했는데 오래 못 봤네요.

  • 작성자 24.07.01 16:43

    아, 법사도 종성이와 2학년 때 같은 반 한 적이 있은 모양이구료.. 내향적인 종성이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니 법사도 코르시카에서 사관생도로 파리 유학온 나폴레옹만큼이나 그 당시는 외로움 속 고고한 포즈로 경남고 생활을 한 듯 하외다.

    고교 졸업 후 재경 동창회에서 이 친구를 스쳐라도 봤다니 동창모임에 전혀 안나온 것은 아니었네요. 저그 연구소가 안양에 있다보니 한번씩 서울 오기도 불편해 발길을 끊은 모양임다.

    차동민군은 소생과 경중시절 3학년 때 급장 맡으며 같은 반 한 걸로 기억되네요. 얼굴 많이 가리는 종성이를 하숙집에서부터 잘 챙겨주고 자주 봐주는 친구 역할을 해왔다니 내가 형빨처럼 만나면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듬미다. 무슨 오지라퍼처럼..

  • 24.07.01 05:19

    연결한 장성효 동기도 이름과 얼굴이 그런대로 상상이 되는 동기인데..김종성은 사진을 보니
    희미하나마 학창시절 눈에 많이 익은 얼굴이라..

    교류는 없었으나..아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사람이..나이가 들어도.. 옛 얼굴의 바탕을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디다.

    늦은 나이까지 계속 고생을 하는 탓인지..급작히 근육이 빠지며 얼굴마저
    바싹 말라 비틀어지는 바람에

    심지어는 근래까지 만나오던 지인조차 잘 몰라볼 정도로 많이 변해버린
    서토같은 이들도 있는 반면에 말이지요.

  • 작성자 24.07.01 16:44

    아, 장성효 사장이 학창시절이나 사회 나와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최근에야 강화-김포 동기모임에서 처음 수인사를 나눈 사이였심다. 종성이를 연결시켜 준 인물이라 앞으로 나와도 더 가깝게 지내자고 제안했심다. 강화에서는 김건국이 사장과 당구를 비롯해 여러면에서 니내도리하는 단짝이데요.

    종성이가 초등 때도 유복한 집 아들로 커서 궁상끼가 없었는데 그 후로도 큰 고생은 별로 해보지 않은 듯 어릴 적 그 얼굴이 많이 남아있습디다. 서토도 귀인 자제같은 풍모를 지녔는데 쪼끔 세파를 겪었다고 그 원판이 어데 갔겠소?.. 너무 동정표 의식한 자조적 자기비하 표현은 자중하소. 정상적인 노화를 갖고 말임다.

  • 24.07.01 05:42

    사실 옛날과는 달리.. 다양한 사유로 인하여..어릴적 부랄친구를 나이들어 만나는 일이
    그리 쉽지않은 세상인 바..

    굳이 만남의 기회를 기어이 만들어낸 김박사의 부지런함이 돋보입니다.

    물론 같은 지역에서 근 10여년 이상의 동문수학을 계속하게 된 인연이 무엇보다
    큰 바탕이 되었겠습니다만-

    그리고, 이를 글로써 올려볼만한 훈훈한 내용으로 여겨..분주한 가운데도 이처럼 옛 사진들과
    자료들까지 찾아내어 성의껏 본문 글로 창의,

    동기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 김박사의 따듯한 마음이 크게 가슴에 닿는군요.

    그러고 보면, 옛 부랄친구들과만(?) 자주 만나며 지내고 잇는.. 소위 원조(?) 은둔동문인
    옥자의 말슴대로..

    자칫 김박사의 본문 창의가.. '이산가족 찾기' 아닌 '이산동기 찾기' 운동으로..
    경남고 총동문회 차원에서 새롭게 발화 진행되게 될 지도 모르겟군요.^^

  • 작성자 24.07.01 16:04

    종성이를 만날 때부터 아, 이 만남은 글로 기록해 놓고 싶구나 하는 내적 욕망이 일어납디다. 그냥 만나고 헤어지면 잠깐 기억에 남았다가 바로 사라지지만 글로 남기면 어떤 관계의 지속성을 확인시켜주고 보장해준다는 믿음 때문이었네요.

    예전에 법사가 말했듯 역사적 큰 사건을 기록하는 거시사와는 달리 사람이 숨쉬는 미시사를 써며 어느 시대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도 나름 의의가 있겠다 싶어 필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요런 글을 작성해보려 애쓰는 것임다.

    자꾸 쓰다보니 요령도 늘어 관련 사진이나 이미지 사진들도 저절로 챙겨넣게 되고, 사람을 만났을 때 나 자신의 심리상태와 상대의 생각을 포착해 스토리를 엮어내는 통찰력도 생깁디다. 하지만 만남 파트너가 '오프 더 레코드'를 원하면 글쓰기를 멈춰야하고, 쓴다 해도 스토리 라인까지 짜면서 작성하는게 무슨 창작물 생산하듯 장애요인과 품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임다.

    하지만 서토, 법사, 길영공, 옥자, 수인공, 박국장, 지박사 등등의 열렬 독자들이 풍성한 댓글보시로 소생 글에 우쭈쭈하며 격려사를 보내주니 그 맛에 새 글 쓰는 동력이 다시 생깁디다. 특히 서토의 심혈 가득한 댓글에 항상 고마움을 표하외다.

  • 24.07.01 12:35

    댓글王은 서토!^^(자타 공인)

  • 24.07.01 12:49

    오늘 새삼 느낀건데 김박을 만난 제자들은
    매우 행복한 교습을 받을걸로 짐작됩니다
    우째 옛 학우라지만 인자 에고 허리야 수준의
    할배들끼리 만나서도 이다지도 시시콜콜 오밀조밀
    가려운데 없나 살펴가며 얘기를 풀어나가는지
    그 자상함에 상당히 놀랐기 때문이라오

    훌륭한 스승의 덕목중 하나가 이 자상함인데
    김박한테 배우는 학생들이야말로 이 혜택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생각키 때문이라오

    중간중간 사진까지 알뜰히 박아가면서리~^^

    이글을 보면서 나 또한 옛 친구가 그리워지는데
    요샌 그저 안부 묻기도 겁이나 덜렁 전화하기조차
    조심스러워지는 나이라니 참~

  • 작성자 24.07.01 16:46

    박국장이 또 출몰하여 기운나는 댓글 비타민을 한웅큼 앵겨주는구료.. 옛친구를 만나 이리 글로 한번 엮어보는 것은 말로 할 때 오랜 만에 만난 어색함으로 의사교환이 왜곡되거나 불명료했을 경우를 보완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 믿기 때문임다.

    글로 쓸 경우 그냥 내뱉는 말과 달리 독자들이 명확하게 글쓴이의 의도를 알도록 문장 하나하나 퇴고하며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는가를 확인하다 보니 박국장이 느낀 오밀조밀한 자상함 또는 꼼꼼함 같은게 엿보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문장력있는 문호들이라면 일필휘지로 한 방에 내갈겨 써내겠지만 우리 같은 잔챙이들은 초고를 읽고 또 읽으며 문장을 다듬어야 하기에 그 꼼지락거리는 품이 장난이 아님다.

    글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진들이나 도표, 때로는 동영상 등 시각적 자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소생 글에는 이들 자료가 꼭 삽입되어짐미다. 이러다보니 A4 4~5페이지 글 하나 작성하는데 요즘은 최소 이틀 이상은 걸립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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