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의 인연
한명란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인연이 시작된다. 부모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형제자매, 선생님, 친구, 배우자, 직장 동료 등 많은 사람을 만난다. 친정어머니는 살아생전 넓고 넓은 것이 세상이지만 좁고 좁은 곳이 또한 세상이라고 하셨다. 살면서 만나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헤아릴 수가 없다. 떠올려보면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눈인사만 했어도 좋은 기억으로 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도 있고, 여러 번 만났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고 고개가 흔들어지는 사람도 있다.
요즘 인연이 꼭 사람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두 달 전에 우리 집 식구가 된 강아지가 있다. 유기견이었고, 우리는 ‘보리’라고 이름 지었다. 언제 태어나 어디에서 누구와 인연이 되어 살아왔는지 모른다.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을 보아 사람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매우 큰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두 달이 되었지만 딸아이 말고는 좀처럼 경계를 풀지 않는다. 실제로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주고 하는 사람은 내 몫이다. 그런데도 아이가 나가면 온종일 현관문 앞을 서성이고 낮잠을 잘 때도 현관문을 향한다. 강아지가 잠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디가 아픈가 했는데 처음부터 식구들 사랑받으며 길러진 강아지도 역시 낮의 절반 이상을 잔다고 해서 걱정을 덜었다.
강아지와의 인연으로 나는 꽤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 한 명 키우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들 하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2주 전쯤 몸에서 진드기 두세 마리가 발견되어 혹시 문제가 있나 싶어 동물병원에 갔었다. 그런데 강아지한테는 가장 무서운 심장사상충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의사는 수술해야 하는 4기가 아니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사람한테만 쓰는 표현인 줄 알았는데 강아지한테도 그런 말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약물과 주사로 치료하며 6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치료순서대로 열흘 동안 약을 먹고 1차 주사를 맞았다. 통증이 심한 근육주사라고 하며 많이 아프다고 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동물병원도 사람이 다니는 병원 못지않게 붐볐다. 말 못 하는 짐승은 질병의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우리 강아지는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단 한 번도 짖어대지 않았다. 대부분 강아지가 최소한 낑낑거리기라도 하는데 아프다는 척주에 주사를 맞는데도 소리하나 내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서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것일까?
낮에는 대부분 강아지와 단둘이 있게 된다. “보리야, 언니 기다리는 거야? 보리야, 너는 어쩌다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니? 보리야, 힘들어도 잘 이겨내라. 어구, 우리 보리 착하지!, 보리야, 어서어서 낫자!” 기진맥진해 있으면서도 강아지는 자기 이름이 들릴 때마다 귀를 쫑긋쫑긋 세웠다.
요즘 들어 부쩍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을 자주 한다. 심장판막증으로 오랫동안 인공심장을 달고 계셨고, 십수 년을 매월 심장혈관센터를 다니셨다. 생각해보니 병원 한 번 함께 가드린 적이 없다. 나는 강아지 병원을 데리고 가고, 보양식을 만들고, 어렵게 약을 먹이고, 하루 두세 번 산책을 시킨다. 물론 정년퇴직을 한 후여서 가능한 일이지만. "엄마, 미안해요. 엄마!"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한다.
친정엄마도 시골에서는 강아지 아니 덩치가 꽤 큰 삽살개를 키우셨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어린 우리들은 그저 사방팔방으로 함께 뛰어놀았지만 어쩌면 어머니한테는 마음 든든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친정엄마 생전에 남동생네는 강아지를 키웠다. 남동생과 조카들은 절대 반대하는 올케의 허락 없이 강아지를 입양해 온 것이다. 집안에 먼지 하나 허락하지 않는 올케는 날마다 신문지를 들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울고 부부싸움도 자주 했다. 어느 날 친정엄마가 웃으시면서 말씀하셧다. “아야, 다솔이(조카 이름) 애미도 인자 짤랑이(강아지 이름) 이뻐할 것이다. 나는 짤랑이를 아무리 봐도 느그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고 했어야.”
올케는 일찍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사진으로만 보았다. 올케는 조상 섬기는 것은 친정엄마보다 더 극진한 사람이다. 놀랍게도 그날 이후 남동생네는 평화를 되찾았다. 침울했던 내 마음에 웃음이 스며들었다.
‘아가, 그 강아지가 살라고 너한테 왔는갑다.’ 강아지가 힘없이 꼬리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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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구성이 탄탄한 글입니다. 구성이 탄탄하다는 것은 글의 흐름이 순탄하고 알 수 있게 논리를 좇아서 조직하였다는 것입니다. 글은 문학이므로 과학과 무관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글은 과학과 가깝습니다. 논리에 맞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거부합니다.
개는 머리가 좋은 동물인가 봅니다. 입양되자마자 새로운 이름으로 불릴 텐데 어떻게 제 이름인지 구별하고 반응하는 것인지, 놀랍습니다. 사람의 말을 대강 알아듣는지도 모르지요. 사람의 표정을 읽고 그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도 물론 알 것입니다.
만일 개가 사람의 말이나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정이 통하지 않겠지요. 우리 인간의 사회에서는 ‘개’를 우습게 보고 멸시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쓸데없는 꿈을 개꿈이라고 하고, 못 먹는 살구는 개살구라고 합니다. 욕하고 싶을 때는 개 같은 자식이라고 하고 자신의 인생을 개탄하고 포기할 때는 개 같은 내 인생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나쁘게 평가할 때는 개보다 못한 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 중에는 정말로 개보다 못한 인간도 있습니다.
개에 대한 미담은 많습니다. 집을 나가 돌아오지 못한 주인을 기다리다가 굶어 죽은 개도 있고 집에 불이 나자, 제 몸에 물을 적셔 주인을 불길에서 건져내고 저는 타 주근 개도 있습니다. 전라북도 오수에 가면 그 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나는 강아지를 오래 키우다가 강아지 나이가 너무 많아지자 사별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작자는 강아지를 돌보면서 친정어머니를 자주 생각합니다. 친정어머니가 계실 때, 심장판막증으로 자주 병원에 가셨지만 한번도 동행해 드리지 못한 것을 뉘우칩니다. 늘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년 퇴직을 했다고는 해도 자주 강아지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한명란씨의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화두는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특히 빛을 내는 것은 올케와 친정어머니입니다.
아내의 허락 없이 강아지를 데려오자 귀찮게 여겼던 올케가 친정어머니의 말씀에 감화되어서 강아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 올케의 시어머님께 대한 순종이며 시아버님께 대한 존경의 마음입니다. 말을 둘러서 며느리를 잘 감싸신 친정어머님의 따뜻한 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좋은 며느리네요. 밑줄 친 부분은 문장을 다시 읽고 수정하십시오. 청색으로 표시한 곳은 내가 어휘를 바꾸거나 조사 혹은 어미를 바꾸어서 말이 더 순조롭게 통하도록 수정한 것입니다.
조금만 더 섬세하게 쓰면 더 빛이 나겠습니다.
몇 번 읽고 수정하면, 다른 곳에 발표해도 좋을 글입니다.
그런데 신문지를 든다는 것은 신문지를 말아 쥐고 강아지를 매로 때리듯이 때린다는 말인가요?
첫댓글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저는 늘 친정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너무 죄송하고 너무 그립습니다.넘친 사랑 받았는데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어서....
선생님,신문지를 든다는 것은 돌돌 말아 강아지가 아무데나 오줌을 싸거나 어지럽히면 그걸로 강아지를 때렸답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질문을 보니 읽는 사람이 이해 못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