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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삼국카페'를 아시나요?
2010. 6. 24. 목요일
누비팀
최근 가까운 친구가 뜬금없이 <경향신문>을 가지고 가더니, 맨 뒷면을 휙 펼쳐보았다. 이 날의 전면광고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을 띄고 있는 그 모습.
근데 그 친구는 그냥 노무현이 좋아서 펴 본 것만은 아니었다. 이 광고는 자기네 카페사람들이 십시일반 모금으로 낸 광고이고, 그래서 그게 정말로 잘 나왔나 확인하는 거란다. 흠, 자세히보니 아래에 그런 내용이 쓰여있다.
"이 광고는 다음 삼국카페(소울드레서, 화장~발, 쌍코카페)의 모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근데 이런 카페에서 이렇게 정치적인 신문광고를 내다니?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어느 날, 회사 여자동료가 매일같이 보고 있는 카페를 무심코 봤더니, 그 이름이 '소울드레서'였다. 음, 얘들 뭐하는 카페인거지? 궁금하던 차에, 또 다른 오랜만에 만난 여자 친구에게 이런 카페 아느냐고 물어봤다. 허허.. 자기는 두 개나 가입되어 있단다.
알고 봤더니, 나와 가까운 여자 친구들(대부분 20대)의 상당 수가 저 노무현광고를 낸 '삼국카페' 중 하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규모의 카페를 왜 여태껏 몰랐을까;; 왜긴, 이 카페들이 여성만을 회원으로 받아주는 여성전용카페이기 때문이었지;; 카페 특성상 화장, 성형에 대한 프라이버시가 공개될 수 있어 당연히 찌질이 남성들의 가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또 철없는 학생들의 가입을 막기 위해 게시판 접근을 위한 등업(회원등급상승)은 매우 제한적이다. 아니, 가입차단 수준이 아니라 가입을 받아주는 시기자체가 가끔 가다 열리는 수준이란다. 당연히 남자들은 이런 카페의 존재조차 알기 어렵다. 여자들은 이런 카페에 대해 남자들에게 거의 얘기하지 않고. 아무튼 이 카페들이 궁금해져 친구들에게 물어도 보고 검색도 해보니, 광고를 낸 게 이번 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일간지에 광고를 내기 시작한 건, 2008년 광우병사태 때였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조중동 등 수구언론들은 광우병문제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기 급급했다. 그 와중에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언론. 누구였겠나. 당연히 소유가 분산돼있는 <경향>과 <한겨레>였다. 이곳에 몇몇 블로거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생활광고를 냈다.
이 광고를 본 '소울드레서'의 일부 회원들이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우리도 광고를 내보자"는 의견을 낸 것이 시발점이었다. 패션정보를 나누기 위해 모인 20대 여성들이 적극적인 사회활동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일이 시작되자 일사천리였다. 주요 은행별로 모금진행은 물론 장부처리, 신문사와의 단가협상, 광고제작까지, 회원이 많다보니 각 분야별로 실무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거기다가 회원들의 참여. 몇백원단위부터 10만원까지 그야말로 '십시일반' 모금을 한게 1,700만원. 노무현의 희망저금통이 떠오른다.
또한 사이트가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그 힘을 이용해 일부 이해관계자가 그 이득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삼국까페는 재정건전성과 윤리적인 면을 모두 공개하여 회원이면 누구나 검토할 수 있도록 신뢰성있는 공시를 한다. 아래와 같이 실시간 입금을 하면 그 입금 내역을 확인하고, 내가 기부한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말이다.
그리하여 <경향>과 <한겨레> 1면에 이런 광고를 내는 데 성공했다.
눈에 확~ 들어오는 광고다. 카페 회원 중엔 광고전문가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어 이들이 서로 검증하고 만드니, 제법 괜츈한 작품이 나왔다.
소울드레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화장법을 공유하던 '화장~발', 성형정보를 나누는 '쌍코' 카페의 자유게시판도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른바 '삼국동맹'이라는 이름으로 공동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저 노무현대통령 추모 광고이고.
삼국카페에는 여러 가지 장점과 특징이 있다. 대략 정리해 보자면...
첫째, 풍부한 콘텐츠와 실시간 정보공유
삼국까페에서는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인 패션, 화장, 성형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일상생활 전반에 대한 신뢰도 높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더불어, 사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이 카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정보가 오간다.
둘째, 투명한 공개와 감독을 통한 사이트 관리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삼국카페의 파워와 그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소울드레서의 경우 회원만 15만명에 하루 방문수가 몇만명에 달한다.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운영에 있어서 구설수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들은 투명한 운영과 적극적인 공유를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소드의 전신이었던 '베스트드레서'를 운영진이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회원들이 집단 탈퇴해 새롭게 만든 카페가 현재의 소울드레서다. 그만큼 상업성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다.
셋째, 10~30대의 영향력 있는 여론 형성의 창
현재 젊은 세대들은 단식, 치열한 길거리 농성, 집회활동 보다 더 자유롭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회적 참여를 시도한다. 10~30대 여성 역시 정치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남자들처럼 활동하기보다 그들만의 방식, 인터넷 여론 형성, 모금, 광고 등을 통해 의견을 표출하고자 하며 카페는 이러한 여론 형성의 장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삼국카페 외에도 전혀 정치적이거나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 그 속에서 넷심을 읽을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디시 인사이드, 이종격투기 카페, 엠엘비 파크의 불펜등이 그러한 공간이다.
어떠한 창작물이든, 창작자가 갈구하는 바는 결국 관심이다. 디씨를 비롯한 상기의 공간에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도 결국 관심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올리든, 쓸모가 많은 이야기를 올리든, 대중으로 부터 인정받기 위함이 목적이다. 이 공간에서 조차, 심심치 않게 MB를 까고, 한나라당을 까고, 천안함 공식 조사결과를 불신하는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물론 그들이 알바라 부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인터넷 공간이 생활의 중요한 부분인 젊은 세대에게 인터넷 공간을 통한 의견의 발산과 수렴은 당연한 것이고, 이를 통해 느슨한 형태의 인터넷 커뮤니티가 오프라인에 있어서까지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제 네티즌들이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 끝나지 않고 오프라인 활동에까지 적극 나서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 2002년 월드컵, 그리고 촛불
누구나 웃음을 띄었고, 누구나 자신감을 가졌다. 스포츠가 국가에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여의 가장 훌륭한 모델이라 할 것이다. 그 최면의 과정에 광장이 있었다. 그전에는 뻘쭘해서 안했는데, 어쩌다가 해봤는데, 이게 장난아니게 신난거다.
원래 사람은 주류에 속하고 싶어한다. 알음알음 옆사람과 맞춰가며 '나는 대세에 따르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안심하고 살아간다. 근데 그냥 생각에만 그치던 확인 작업이 오감을 통해 다이렉트로 이루어진 것이다. 열라 캡 짱 재밌었던 거다. 아니나 다를까 "진정해야한다"며 준엄한 훈계를 놓던 조중동마저도,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12번째 태극전사니, 당신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4강이니.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신나게 놀던 시간에 싸가지 없는 코쟁이들이 우리 미선이와 효순이를 죽였다."
민족에 대한 소속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 대~한민국은 다시 광장으로 나왔고, 결국 사과를 받아내고, 이회창이 대신 "반미면 어떠냐"고 하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흘러, 노무현이 추진하고 MB가 각색하여 개봉한 한미FTA가 이슈가 되었다. 원래라면 신자유주의 VS 좌파의 싸움, 즉 이념 대립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런 순리로 보였다. 노조를 비롯한 좌익단체들과 정부의 싸움. 정부 입장에선 방패로 몇대 쥐어패고 나면 별 무리없이 진행될 거라 예상되던. 근데 여기서 사단이 벌어졌다. FTA를 하려면 쇠고기를 개방해야한다는 것이였다. FTA 의제 중의 중요한 협상카드로 쓴 것도 아니고 (뭐 그것도 문제지만) 그냥 FTA 하려고 미리 조공을 바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소가 주저앉는 소, 소위 미친소라는 것이 친구들의 심기를 건드린 거다.
그때, 수백만의 사람들이 대로에서 자동차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점거한 것도 모자라, 생판 처음보는 사람들과 얼싸안고 손을 잡고 몇 시간을 뛰어 놀았던 그때. 효순이 미선이의 어이없는 죽음에 분노하며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었던 그때. 내 아이 먹거리에 광우병 소가 올라올지 모른다는 소식에 유모차 끌고 나온 주부들까지 촛불을 들었던 그때.
그때의 감정을 짧게 표현하면 이렇다.
"아, 이 많은 사람들이 내 편일 수도 있구나".
그것은 386 이후, 젊은세대가 처음으로 느껴보는 '연대'의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함께 공감하는 재미를, 그리고 그 힘의 크기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출처:http://www.egosio.com)
위의 삼국카페에서 본격적으로 정치/사회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한 것도 이 광우병 촛불 이후다. 유사이래 이렇게나 많은 국민이 같은 문제를 두고 분노했을 때가 있었을까. 6월 항쟁 때도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진 못했을 거다. (뭐, 미디어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이 일을 계기로, '된장녀'로 공격당한 20대 여성들이, 오히려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거다. 그것도 패션,성형,화장술 등 '된장녀'의 특징으로 꼽힐 법한 목적으로 모인 카페에서! 촛불과 참여의 힘을 경험한 세대가, 광우병이라는 전국민적 초특급 이슈에 내던져 지면서 급기야 사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거다. 이게 다 이명박 덕택이다.
오오, 이명박 대통령을 찬양할지어다! 민주주의 없던 시절을 몰라 민주주의와 투표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쳐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셨도다! 게다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지역감정이 많이 사라진 선거결과를 이끌어내는 위업을 보이셨노니, 실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훌륭히 해 낸 위인으로 칭송할 만하도다!
지금 카페를 달구는 촛불세대는, 과거 386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눈에 띈다.
386하면 정치철학 논쟁, 사회에 대한 분노와 데모, 그리고 진국스러움이 떠오르는 반면, 이들은 여전히 패션, 성형, 화장, 이종격투기, 연예인 등에 관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386이 청바지에 허름한 티(딴지일보 전투복)를 입고 거리에 나섰다면, 이들은 핫팬츠에 슬림한 티(소드의 투표독려 셔츠)를 입고 촛불을 든다.
변했다. 세상이.
● 온/오프라인의 상호 연관성
이 촛불시위는 이제 소수의 힘이 있는 아젠다 세터들에 의해 대중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아젠다를 세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촛불시위는 대중이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선구적이고 선도적인 주체의 역할을 훌륭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었다.
이 촛불시위의 특징을 많은 논자들은 네가지 정도로 보고 있다.
첫째, 담론의 발원지가 인터넷이라는 점에서 ‘사이버스페이스’적이며 새로운 능동적 주체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광우병 소 파동 당시 이들 주체는 17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로 이루어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의 지도를 거부하고 그들 스스로 집회를 만들어갔다.
둘째, ‘생활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념대립의 성격이 강했던 이전의 시위(?)와는 다른 형태, 다른 주제의 집단적 의사표현이란 말이다. 주로 ‘먹을거리’와 ‘교육’ 등 ‘생활’에 보다 밀착되어 있었던 고등학생과 주부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과거의 시위가 소위 먹물 먹은 대학생이나 생존투쟁의 노동자에서 비롯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있었다.
셋째, ‘촛불’ 축제의 양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투(?)의 양상을 띄었던 이전의 모습이 힘이 잔뜩 들어간 비장한 모습이었다면, 촛불은 한결 편안한 모습이다. 그 편안함이 수많은 부동층을 움직인 동인이었다. 즉, 유행이 될만큼 대중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세 가지 특징은 보다 더 근본적인 ‘촛불’의 특성을 보여주는 네 번째의 특성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온/오프라인의 결합!
대중행동에 대한 제안은 온라인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다양한 집회현장의 모습이 온-오프라인의 결합을 통해서 제공되며 여론을 형성하였다. 다음 카페, ‘아고라’로부터 시작된 정보 교환과 취합, 토론과 결정 과정들은 그대로 ‘촛불’ 현장에 반영되었다.
‘아고라’는 5월 24일부터 독자적인 거리 시위를 펼쳤으며 ‘82쿡닷컴’, ‘마이클럽’, ‘소울드레서’등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공동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5월 24일부터는 ‘아프리카’ 등이 24시간 인터넷 생중계를 시작하면서 진보신당 칼라TV뿐만 아니라 라디오 21, 참세상TV, 6.15TV, 오마이TV 등이 이에 참여하였다. 디지털의 힘이 여기서 멈춘 것은 아니다. 휴대폰등으로 보편화된 디지털 디바이스들을 통해서 현장의 생생한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으며 정부가 은폐하거나 감추는 것들을 폭로했다. 심지어 방송 3사와 신문사들도 온라인을 인용해서 보도하였다.
그 순간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서 연결된 정보망은 분명히 기존의 매체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래서 so what?
물론 광장과, 촛불이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거대하게 형성된 집단은 동조하지 않는 소수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하기 쉽다. 얼핏 따돌리는 것과도 비슷한 분위기로, 썩은 주류에 대한 포스트로 나온 대중의 힘이 결국 또 다시 주류의 횡포를 부리게 되는 과정, 프롤레티리아 독재가 결국 봉건제의 냄새를 풍기게 되는 부작용이 여기저기에서 목격되었다. 예컨데, '너희들 이건 좀..' 이라고 말을 꺼내는 사람에게, 차근차근 대답하기 보다는 '이런 가당찮은 알바쉐퀴'라는 딱지를 붙여 매장해 버리는 모습 등이 나타났다. 이런 점은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촛불시위의 어두운 단면이자, 앞으로 고쳐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점을 스스로 자각하고 고민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촛불'은 기득권층에게 대중의 힘을 보여 주었다는 점만으로 위대한 성과다. '대중은 우중'이라는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대중은 뜬소문에 휘둘려 감정적으로 나대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 준 것이다.
지금 시민은 온라인으로 교류하고, 디지털 디바이스로 무장했다. 보통선거제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시민이 직접 세상을 바꿀 수 밖에 없다. 귀찮으니까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 라는 쿨한 척으로는 10년 20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10년 2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그마나 희박하던 가능성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될 테니 말이다. 시민들이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스스로 바뀌어줄 이유가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차리고, 어떤놈이 착한놈이고 어떤놈이 때려죽일 놈인지 구분해둬야지 않을까.
시간은 금방 가니까.
<참고자료>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20262 - 삼국카페운영진이 만든 이해찬팬카페
http://geodaran.com/1307 - 광우병촛불로 정치참여의식 발생 사례
논문 [촛불 논쟁과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사이버아고라의 가능성] - 박영균, 2009
첫댓글 좋은 내용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