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2박3일

평 양 관 에 서   블라디보스톡 여행 마지막 날, 점심은 예약된 주마(zuma)에서 킹크랩으로 호화로웠다. 식사 후 신한촌을 찾아 한인들의 항일운동 흔적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졌다. 저녁식사는 평양관이라는 식당으로 거기 오리육계장이 일품이란다. 어느 루트로 정보를 입수했는지 회장의 정보력이 놀랍다. 정보력이란 표현보다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이지 않고 주변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모습이 늘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듯하여 신선하다. 세상사 달관한 듯 매사를 깐죽대고 토 달고 부정하며 미그적대는 스타일이 아니라 관심과 경이로움으로 무언가 일을 만들고 어울리는 것을 즐거워하는 모습이 영원한 청춘이다. 나이 들면 흔히들 아집과 편견으로 고집불통이 되어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데 열린마음에 사소한 것에도 너그러움과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호텔을 나와 걸으니 1Km정도 떨어진 곳 비탈에 별장처럼 아담한 식당이 있었다. 우리가 안내된 방은 안성마춤으로 8인석인데 쾌적하고 정결했다. 우리방을 써빙하는 여자종업원은 상냥하고 발랄하였으며 식사로 오리 육계장을 주문하고 들쭉술에 몇 가지 요리를 곁들였다. 여행이라는 여유로움과 실내의 쾌적함에 모두들 기분이 고조되었다. 참으로 풍성하고 행복한 식탁이었다. 방에는 노래방 기기가 설치되어있어 식대(食代) 외에 소정의 룸차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거리를 쏘다니며 뭔 소린지 알지 못할 러시아어에 주눅들어있던 일행이 스무살 중반정도로 보이는 도우미의 내 나라말에 취해 생기가 넘쳐흐른다. 기계음인양 연방 터지는 호호호 웃음소리와 일행들의 호기어린 목소리가 뒤섞여 방안은 흥이 넘치고 있었다. 도우미에게 노래 한곡 불러보라고 권하자 ‘오늘은 주말이라 바빠서 노래 부를 시간이 없습네다 호호호호’ ‘식당에 종업원이 세 명뿐이라 오늘 제가 많이 바쁩네다. 양해해주시라요 호호호호’ 말끝마다 호호호호를 연발하는 것이 거북스럽지 않고 오히려 정감이 넘친다. 평양관이란 특별함때문인지 내겐 저녁식사자리의 모든것이 황홀하고 신기롭게 다가왔다.    나는 한창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를 일탈하여 혼자 상념의 세계를 달리며 향응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사람과 조직, 기업과 권력, 각종비지니스에 있어서 빡빡하고 힘든 관계에서 향응은 윤활유가 되어 관계를 매끄럽게 만들어준다. 때론 향응, 뇌물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도 성사시켜주곤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그런 문화가 지나치게 만연되어 망국적인 불법과 비리를 양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위산업 관계 분야에서 향응과 뇌물은 그 대가로 부실한 무기납품을 눈감아 주게 되는데 그것은 안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건설회사로부터 향응과 뇌물을 받고 자재와 공정(工程)을 눈감아주었다면 부실 건축이 되어 교량이 무너지고 빌딩이 붕괴되는 참사로 이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향응과 뇌물이란 꿀같이 달콤하나 맛을 보면 볼수록 향락에 빠지게 되고 갈증이 더해질 것이다. ‘우선먹는곶감’이 달다고 독약인줄 모르고 덥석덥석 주워 먹었다가는 추해짐은 물론 불감당의 엄청난 일이 생긴다. 주변이 모두 콩밭인 정치, 언론사회에서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결단으로서는 힘들 것이다. 이들의 향락(享樂)은 결국 국가와 국민의 피눈물로 그 대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남북간에 있어서 교류나 현안문제를 위한 협상을 가상해보면 거기 역시 최고의 예우로 향응의 장이 펼쳐지리라 상상된다. 내가 만약 남북협력 운운하면서 그런 단체의 일원으로 당국의 향응을 받는다고 가정해본다. 거기서는 ‘이제야 진정한 애국동지들을 만났다’ ‘우리가 힘을 합쳐 위대한 역사를 이룩하자’ ‘이 땅에 미제를 추방하고 그 앞잡이 자본가들을 쳐부숩세다’ 는 등 갖가지 덕담과 구호가 오가가는 중에 들쭉술잔이 수없이 비워지고 그 유명한 개성인삼에 북한최고의 미녀들이 동원되어 춤과 가무가 무르익을 것이다. 농익어 요염한 아이들의 갖은 교태에 혼이 빠져 헬렐레해지면 영혼을 지탱해주던 빗장을 스스로 풀어 던져 버린 채 갑자기 조국건설의 전사가 되겠다는 이념으로 심장이 뛸 것이다. 나는 신내림 받은 전사가 되어 삽시간에 배신과 반역의 궤를 달리며 지금까지 나를 강요해왔음직한 지루한 무언가를 부수고 뒤집어야한다는 충동으로 열광했을 것이다. 나라고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려하겠는가? 오히려 그 유혹을 찾아 스스로 머리를 들이밀고 끝없이 달콤함을 탐닉하려 하지 않겠는가?   역사적으로 적대국간에는 최고의 간계의 수단으로 향응을 베푸는 경우가 있다.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월나라는 적대관계로 다투어온 숙적(宿敵)이었다. 그러던 중 회계산(會稽山)전쟁에서 오나라가 승리한다. 월왕 구천은 오왕(吳王) 부차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잡혀 있다가 오나라 간신 백비의 도움으로 귀국한 후 와신상담, 복수의 날을 기다렸다. 그때 월왕 구천은 서시(西施)라는 천하절색을 발굴하여 오왕 부차에게 뇌물로 보낸다. 부차는 월나라가 베푼 향응에 매우 만족해하고 이후 오왕 부차는 서시(西施)의 미색에 취해 충신 오자서를 물리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망국에 이르게 된다. 해동증자라는 칭송을 받았던 백제 의자왕이 신라에서 간계로 보낸 미녀 금화에게 정신이 빼앗겨 충신들을 몰아내고 죽여 끝내는 망국을 불러왔다. 김유신이 백제 좌평 임자(任子)에게 ‘나라는 꽃과 같고, 인생은 나비와 같다’라는 선문답으로 회유를 했다. 임자와 결탁한 신라는 점치는 요녀 금화(錦花)를 백제로 보냈다. 일식(日蝕)으로 대낮이 암흑이 되자 놀란 의자왕에게 간첩금화가 접근하여 ‘충자 쓰는 관리를 죽이지 않으면 눈앞에 망국의 화가 있고, 죽이면 천만세 영원히 나라의 복을 누릴 것이다’ 이후 금화의 미색에 홀려 총기가 흐려진 의자왕은 ‘충(忠)’을 돌림자로 쓰는 성충·윤충 형제를 제거하고 의직과 계백을 멀리했다. 망국의 이면에는 그런 기막히고 한심한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무엇에 취해 평정심을 잃으면 의심과 경계가 심해지고 독선과 아집만 늘어난다. 분별력을 잃고 총기가 흐려지면 바른말에 귀를 막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역사는 그런 경우 예외 없이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왕은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장수 우리야를 격전지에 보내 죽게 하는 죄를 범했지만 나단 선지자의 신랄한 책망에 뉘우치고 눈물로 회개할 줄 알았다. 언론이 권력과 결탁하고 권력이 향락에 취해 마비가 되면 나라가 기울어진다. 패권주의가 판을 치는 열강의 틈에 끼어 이 나라가 구태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깜빡하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하게 된다. 북핵문제로 세계의 눈길이 쏠려있는 가운데 열강의 각축이 불꽃 튀고 있는 한반도의 운명이 어느 시대 보다 엄중하게 국민들의 자성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베이징에서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을 했다가 발끈한 정치계에 온갖 수모를 당한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기업은 1류 정치는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어디 정치뿐이랴 더듬이가 부러진 권력마저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유주현의 청기와집 똥개처럼 반역에 눈감고 죄악에 추파를 던지며 선량한 국민을 향해 이빨을 들어내어 으르렁거린다. ‘삼성전자 2분기 14조원이익, 세계를 석권하다’라는 제목의 보도가 국민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정치가 점점 망가지고 있는 나라, 이웃에 빌붙어 추파를 던지고 읍소를 일삼는 정치, 은혜를 배반하고 반역과 배신으로 악취 진동하는 곳에 피어난 찬란한 꽃이 너무나 아름답다. 삼성타도에 혈안이 되어 틈만 나면 뒤집고 엎어버리려 물고 뜯고 발목을 비트는 고약한 풍토에서 세계최고를 석권한 의로운 기업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훈장을 주고 격려를 해도 모자랄 판에 난신적자(亂臣賊子)들이 판을 치는 권력이 죄 없는 기업 총수를 잡아가두어 갖은 모욕으로 행패를 자행하고 있다. 그것은 사화(士禍)가 난무했던 왕조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 개명천지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을 패악질 이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네흘류도프 공작은 재판정 배심원으로 참여했다가 죄수석에 앉은 한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란다. 학생시절 고모집에 갔다가 일시적 충동으로 하녀를 범한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 카추샤가 살인의 누명을 쓰고 죄수석에 앉아있었다. 네흘류도프는 자신이 한 여인을 파멸에 이르게 했다는 죄의식에 통렬하게 회개를 한다. 용서를 받기위해 몸부림치다가 결혼으로 속죄를 하기로 결심하고 중죄인으로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카추샤를 따라간다. 그는 그날 춥고 황량한 시베리아 벽지의 어느 여관방에서 신약성서 가운데 복음서를 읽다가 자신의 영혼을 부활시킬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가뭄에 대지가 메마르면 곡식은 타들어가게 된다. 지금 각 분야마다 근면과 창의가 시들어가고 있고 의욕이 저하되어가고 있다. 불법과 비리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불신과 증오가 팽배해지고 자기비하와 패배주의가 만연되어가고 있다. 타락으로 범죄한 권력의 자성이 필요한 때이다. 부활의 네흘류도프처럼 이 나라에 참회를 통한 영혼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은 주말이라 제가 많이 바쁩네다. 양해해 주시라요. 호호호호’혼자 상념에 젖어있는 가운데 술잔들이 오고가고 도우미의 교태어린 웃음이 연신 이어진다.블라디보스톡의 밤은 깊어가도 비는 그칠 줄 모른 채 주적주적 내리고 있다.   2017.7.14. 石泉 김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