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나이 맞추면 증오하는 시대
백영옥의 '트렌드 샷'
어느 날 세수를 하다가 얼굴에서 이상한 자국(들)을 발견했다. 처음엔 뭔가 묻었다고 생각하고 클렌징 폼을 찍어 열심히 마사지를 했다. 근데 가만히 보니 그건 자국이 아니라 주름이었다. 일명 표정주름! 충혈된 눈을 번쩍 뜨고 노려보니 눈 밑에 시커먼 다크서클이 먹구름처럼 잔뜩 끼어 있었다. 아,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고 시인 유하가 말했던가. 이럴 땐 그가 남자라는 사실이 심히 유감스럽다. 여자였다면 그는 분명 다른 시 구절을 찾아 썼을지도 모른다. 화장을 지우다 칼에 밴 것 같은 주름을 본 어느 날, 나는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를 찾아갔다. 그 날 바람이 불었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불었다면 피부엔 별로 좋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들은 하나 같이 상냥했고 친절했다. 하지만 나는 내 얼굴에 이렇게 결점이 많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그들이라면 천하의 황신혜라도 당장 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균형이 좀 맞지 않는군요.”라는 다정한 말 한 마디로 말이다. 당장 프락셀 레이저를 쏘자는 의사부터 한가인 코의 각도가 예쁘니 그렇게 올리면 예쁠거라고 말한 병원 코디네이터까지 충고는 다양했다. 광대를 깎고, 턱뼈를 잘라내고, 필러로 팔자주름과 이마의 굴곡을 채우면 훨씬 동안이 될 거란 말도 잊지 않았다. 어쩐지 꼭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헤이즐넛 향과 에틸 알코올 냄새가 동시에 흐르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 속에 있는 듯한 기분 말이다.
바야흐로 ‘쁘띠성형’이 유행이다. 고통 없이 빠르게! 이게 쁘띠성형의 핵심이다. 그리고 ‘쁘띠성형’의 중심에는 ‘동안’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 미국의 트렌드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쓴 ‘미래생활사전’이라는 책에 보면 ‘코스매틱 언더클래스’(Cosmetic Underclass)라는 말이 나온다. 돈이 없어서 자기 생체 나이만큼을 사는 하층민을 지칭하는 말이다. 내가 만났던 모든 성형외과 의사도 말했다. “트렌드요? 물론 동안이죠!” 피부과 의사도 외쳤다. “안티에이징이 대세죠!” 소개팅을 나갔던 한 선배는 장난삼아 나이를 맞추는 게임을 하다가 ‘서른 넷 아닌가?’라는 남자의 멘트를 듣고 충동적으로 주름제거 수술을 결정했다. 딱 자기 나이를 맞춘 것뿐인데 말이다.
이제 우리는 내 나이를 정확히(!) 맞추는 남자를 증오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동안을 위해서라면 콧망울을 볼록하게 하고, 울퉁불퉁한 잇몸을 잘라 내거나 멀쩡한 생니를 삭제하는 건 이제 특별한 수술이 아니다. 원하면 눈썹을 올리거나 내려 넓은 이마를 만들거나, 머리카락을 이식해 페이스 라인을 다듬고, 자신의 엉덩이 지방을 정제해 동안의 최대 적이라는 푹 팬 볼을 빵빵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과학자 정재승도 한 칼럼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로봇 공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연예인들은 모두 사이보그라고 말이다.
다년간 위트있고 정확한 메디컬 기사를 썼던 지큐의 조경아 기자도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요즘 미용 성형수술은 못생긴 여자가 예쁘게 변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야. 예쁜 여자가 훨씬 더 예뻐지려는 수술인거지.” 말하자면 집착이고 욕망이라는 것이다. 근데 문득 한 때의 웰빙 열풍과 이 이상할 정도의 성형광풍이 동시에 겹쳐졌다. 웰빙과 성형은 전혀 관계가 없는 말인데도 말이다. 웰빙이 트렌드가 되면서 오가닉 식품과 오가닉 제품에 목을 매던 사람들은 대부분 웰빙이 정말 필요한 ‘환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더 건강해지고, 생체 나이를 줄이려는 욕망 때문에 그들은 비싼 한방병원에 입원해 디톡스(해독) 프로그램을 받고, 쓸데없이 장을 청소하고, 유기농 탐폰을 사기 위해 뉴욕의 오가닉 샵으로 날아갔던 것이다.
옥주현은 성공했고, 강혜정은 실패했지만 완벽해지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은 아마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하긴 그 욕망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교묘하게 정치적인 페미니즘을 들먹이며 쌍욕을 해대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근데 재밌는 건 위에서 언급한 ‘미래생활사전’엔 한 가지 의미심장한 단어가 더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리포이드’(Lipoids)라는 단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지방흡입 등 운동이 아닌 수술로 쉽게 살을 뺀 사람들을 비웃는 말이다. 이 저명한 트렌드 분석가가 보기엔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트렌드가 바뀌어도 인공적인 것에 대한 자연적인 것의 반격과 조롱은 늘 있을 거란 얘기다. 아무리 성형수술을 고백하는 게 지금의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양식광어보다는 자연산 송이를 훨씬 더 좋아할테니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