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상에서 인식은
2023102109 언론홍보학과 신지우
이미 모든 것에 익숙하고 내가 아는 진실, 혹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들을 진실로 믿고 있는 상황에서 낯선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난 이미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해 익숙한데, 대체 무엇을 낯설어 해야하지? 대학교에 와서 마주친 주제 중 가장 어려운 주제였다. 나는 낯선 철학하기라는 과목의 이름만 보고 보통 사람들에게 ‘낯선’ 철학에 대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철학을 낯설어하는가? 접할 기회가 비교적 적고, 철학을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낯선 철학하기’는 오히려 반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과목이었다. 접할 기회가 많고,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 즉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생각해보기 때문이다.
도저히 주제에 대해 생각이 나지 않아, 내가 이미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지 못하는 이유, 그 근원부터 떠올려 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인식”이었다. 인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 지각, 기억, 상상, 개념, 판단, 추리를 포함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물에 대하여 가지는, 그것이 진이라고 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개념 또는 그것을 얻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난 이미 익숙한 그것을 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더 이상 낯설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것들을 어떤 계기로 인식했지? 나는 옳게 인식하고 있는가? 과연 진실된 인식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인식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대부분의 인식은 본인의 경험에서 온다고 본다. 경험을 통한 인식에서 낯섦이 오고, 익숙함 속의 낯섦은 자신의 인식과 인식의 충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했더니 내가 겪었던 낯섦이 생각났다. 내가 경험했던 낯섦은 공간에 관한 낯섦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는 제과점에서 일했다. 그 제과점의 주인은 아버지의 친구셔서 나는 그 제과점에서 자주 놀곤 했다. 나는 그 제과점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제과점은 문을 닫았고, 그 자리는 카페가 들어섰다. 그 동네는 내가 사는 곳과 거리가 있어 자주 방문하지 못했지만, 버스를 타고 가끔 지나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 제과점, 그 카페가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그 장소를 낯설게 느꼈던 이유는 그 장소가 현재에는 카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제과점이던 과거 시점의 인식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인식은 현재에 맞게 재인식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인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거의 인식이 본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면 충돌이 더욱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낯섦은 그리움일 것이다. 익숙한 공간이지만 나에게 있어 그 익숙한 공간은 낯선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낯선 공간에서 익숙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낯섦을 느낄 텐데, 나는 그 낯섦이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것에 대한 그리움과 많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현재에 익숙하면 익숙할수록, 더 자주 낯섦을 느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첫댓글 철학 전공자가 아니니 당연히 철학은 낯선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을 생각해보지요. 언론홍보학과에 진학했으니, 언론이나 홍보 분야에 대해서는 익숙하게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언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를 생각해보시지요. 우리는 언론이 국가권력, 시민사회권력과 함께 제3의 권력이라고들 말합니다. 그것은 정론직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요즘은 언론이 정론직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클릭 수에 따라서 이윤이 창출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윤이 되기만 한다면 어떻게 해도 좋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런 생각 때문에 정론직필을 포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퍽 괜찮은 사명감을 가지고, 퍽 훌륭하게 그 일을 하고 있는 언론종사자도 많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