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를 여행하던 중에 요행히도 어떤 큰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례식을 지켜본 적이 있다. 승려의 다비식과도 같은 방식의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통나무로 만든 5미터 여의 나무 탑 위에 관을 올려놓은 뒤 그 아래에다 불을 놓아 화장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 규모로 보아 그 지역사회에 매우 영향력 있던 인물의 장례식이 틀림없었다. 특이한 것은 각 마을 단위로 그룹을 만들어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인 작은 광주리 위에 꽃이나 쌀, 향료와 같은 갖가지의 물건들을 담고 화장장 앞쪽에 마련되어 있는 제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각각이 마을을 대표해서 정성스레 준비해온 물건들을 죽은 이의 영혼에 바치는 것이었다. 이것이 1994년 당시까지도 예전의 방식과 조금도 변하지 않고 치러지고 있던 발리의 힌두식 장례식 광경이었다.
아쉽게도 회교도들이 어떻게 장례를 치르는지를 지켜볼 기회가 없었다. 아마도 아주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회교도들의 장례는 그 절차가 매우 간단할 뿐만 아니라 사망 직후 늦어도 이틀 안에 시신을 땅속에 묻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이승과의 슬픈 이별이 아니라 그들이 신봉하는 알라(Allah) 신의 더없이 고귀한 부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슬람 신도는 다른 그 어느 다른 이들보다도 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땅속에 시신을 묻는 것은 사시가 항상 무더운 기후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들은 우리의 무덤처럼 둥그런 봉분을 만들지 않고 지표와 비슷하게 평장(平葬)을 한다고 했다. 때문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게 되면 자연스레 그 무덤은 물론 그 죽음 자체가 잊히어지게 된다고도 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독특한 장례 풍습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술라웨시(Sulawesi) 섬의 반도 남단 지역에 사는 또라자족(Torajans)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바람의 장례’ 풍장(風葬)을 치른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산의 중턱쯤에 안치하여 이것이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뒤 바람에 의해 오래도록 사위어지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조사를 해보면 이도네시아의 곳곳에는 이보다도 더 진기한 방식의 장례 풍습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참으로 다양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을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탈것들의 형태에서도 나타난다. 우선은 탈것들을 이용하는 계층에 따라서 그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인도네시아의 알파벹 베 B로 함께 시작되는 탈것의 이름인 베짝(Becak)과 벤츠(Benz)를 일컬어 인도네시아의 양극화된 2중 경제구조를 꼬집기도 하지만 사회적 계층이나 경제적 지위에 따라 탈것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유층의 사람들은 한 집에 독일제 고급 벤츠를 위시하여 몇 대씩의 승용차를 굴리는 집이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더 많은 사람은 오토바이나 바자이(Bajai)와 같은 간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시내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들의 인력거인 베짝(Becak)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탈것들의 다양성은 지역적으로도 쉽게 느낄 수가 있었다. 당나귀나 작은 조랑말이 끄는 마차는 각 지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각각의 지방마다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자바섬의 중남부 지방인 족자카르타(Yoyakarta) 시내에서 관광용으로 거리를 달리고 있기도 한 안동(Andong)이라는 마차는 쉽게 말해서 미니 말 마차라고 할 수 있다. 몸집이 조금은 작지만 그래도 번듯한 체구의 말이 끄는 이 마차는 네 개의 승용차 타이어 바퀴를 달고 있다.
발리섬의 동부지역에 위치하여 발리섬 크기만 한 면적을 가지고 있는 롬복(Lombok) 섬에서는 도카르(Dokar) 또는 치도모(Chidomo)라고 불리는 마차가 많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관광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게 이런 마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마차가 그들 일상 교통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장터 근처에는 흔히 있는 마차부에는 수십 대의 마차가 짐을 싣거나 그들을 탈 손님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마스바긱(Masbagik) 시장 부근의 마차부에서 본 치도모의 모습은 매우 화려했다. 색색의 수를 놓은 천으로 만든 말의 장식과 마차의 휘장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보통 마차라고 하는 것은 도카르(Dokar)라고 불렀다. 이 섬에 사는 종족의 하나인 사삭(Sasak) 족들이 부르는 이름이었다. 이 섬의 서부지역에 살고 있는 슴바와(Sumbawa)족들은 이를 그들의 말로 벤후르(Benhur)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차의 이름을 치도모(Chidomo)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손수레를 의미하는 사삭어의 치카르(Cikar)라는 말에서 따온 ‘ci’와 ‘말이 끄는 수레’라는 뜻의 도카르(Dokar)에서 ‘do’를, 그리고 자동차라는 의미의 모빌(Mobil)에서 ‘mo’를 빌려와 ‘Cidomo’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이 마차의 이름을 차츰차츰 치도모라고 더 많이 부르기 시작한 것은 차츰 더 많은 마차가 그들의 두 바퀴를 더욱 편리하기도 하고 성능이 좋은 자동차의 헌 타이어를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바섬의 동부지역에 있는 브로모(Bromo) 산의 활화산은 산의 높이가 2,300M가 넘는 제법 높은 산으로 화산의 불꽃과 용암이 분출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분화구가 있는 산 정상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화산의 불꽃과 용암을 보기 위해서는 산 정상 부군의 작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이른 새벽길을 나서야 했다. ‘모래 바다(Sand Sea)’라고 불리는 고도 2,000M쯤의 평평한 벌판은 아주 오래전에 큰 화산이 폭발하며 만들어진 분화구로 잔모래와 작은 돌들이 깔려있다. 벌판과도 같이 넓은 분화구의 중간에 지도상의 정확한 높이가 2,303M의 활화산 브로모의 봉우리를 오르려면 약 2Km의 길을 걸은 뒤 275개의 계단으로 만들어진 산길을 올라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새벽의 어둑한 길을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었다. 간밤의 잠자리가 워낙 힘들었던 데다가 정확히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길을 걷는 일이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이 술술 새어드는 방에서 고산지대의 한밤 추위를 견디어낸 것만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에서부터인가 어둠 속에서 우리 일행을 묵묵히 뒤따라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들은 그 지역의 산간마을에서 사는 소수 부족의 하나인 땅글족(Tengle)이라고 했다. 그들은 각자가 모두 한 마리씩의 조랑말 고삐를 쥐고 있었다. 새벽잠이 채 깨지 않은 우리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이들이 그들의 조랑말로 대신해 주고자 말없이 우리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이따금 씩 앞으로 나와 말을 탈 것을 권유하고는 했었는데, 서로가 함께 길을 가는 거리와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승마의 삯은 조금씩 내려갔다.
그때 우리는 결국 지쳐 힘들어하는 초등학교 4학년생인 막내를 도와주기 위해 한 마리의 말을 빌렸다. 어른이 타기에는 몸집이 작은 조랑말은 그나마 경사가 없는 벌판 모래밭 길을 안간힘을 쓰며 걸었다. 이렇게 연약해 보이지만 그들의 산간지방에서는 조랑말과 같은 동물이 탈것이나 짐 운반의 수단이 되고 있었다. 그들은 관광객들로부터의 돈벌이 이외에도 그들의 말을 그들의 실생활에 있어서 아주 유용하게 부리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다.
자카르타 시내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10Km쯤 떨어진 곳에는 ‘따만 미니 인도네시아 인다(Taman Mini Indinesia Indah)’, 약칭으로 ‘따만 미니’라고 부르고 있는 곳은 현대적 모습으로 건설된 이 나라의 민속촌이다. 이를 해석하면 ‘아름다운 작은 인도네시아 공원(Beautiful Mini Indonesian Park)’이라는 뜻이다. 이 작지만은 않은 이 공원에는 각종 박물관은 물론 대형 스크린의 아이맥스(Imax)영화 상영관이 있는가 하면 관광객을 태우고 공원을 일주하는 미니 기차가 있고, 께옹 이마스(Keong Emas)라는 이름의 남국의 아름다운 꽃 정원이 있다. 그런데,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그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넓고도 넓은 인도네시아 곳곳을 직접 돌아보지 않고도 그 한곳에서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외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일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카르타특별구역을 포함해서 27개의 주로 나뉘어있는 인도네시아 각 지방의 가옥, 의상, 생활 집기 등의 실제 모습들이 각각의 구획으로 구분 지워진 적절히 공간에 자리하여 실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해내고 있다. 날아갈 듯 높다랗게 큰 소뿔의 형상으로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서수마트라(West Sumatra) 지역의 이른바 ‘미낭까바우(Minagkabau)’양식의 가옥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이 민속공원에서는 그 이외에도 이리안 자야(Irian Jaya) 사람들이 원시시대의 상태와도 같이 초막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물론, 맹수들의 위험이나 지표의 습기를 피해 큰 나무 기둥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동티모르(East Timor)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그곳은 우리의 민속촌과 같이 우리를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과거의 장소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각 곳에서 바로 오늘의 생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 한곳에 옮겨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수마트라 지역을 여행하면서 인상이 깊었던 것은 자카르타의 따만 미니(Taman Mini)에서도 두드러져 보였던 미낭까바우(Minangkabau) 양식의 건축물들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그들의 가족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곳은 거의 모든 다른 지역의 부계(父系)의 가족전통과는 달리 모계(母系)의 가족제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모계혈통으로 가계가 전승됨은 물론 남성이 여성 쪽으로 장가를 들어 거처를 옮기며 모든 재산도 어머니를 통해 상속되는 철저한 모계사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이토록 광활하고 그 구성과 문화의 양태가 다양한 사회의 수많은 사람이 어떻게 서로 흩어지지 않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별 탈 없이 원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들을 묶어주는 그 구심점이나 결속력은 과연 무엇일까? 비교적 통일된 정체성을 가지고 어느 정도 국한된 영역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은 서로 반목하고 싸우며 나라라는 서로의 권역을 만들어 가는데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라는 말인가?
그들은 일찍이 그들의 무궁한 다양성을 염두에 두었던 때문인지 그들 국가의 모토를 ‘다양성 속의 통일(Unity In Diversity)’, 즉 ‘비네까 뜡갈 이까(Bhinneka Tunggal Ika)’라는 것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들은 서로 간에 다소의 갈등을 겪기도 하고 또 그들 역시 모두가 크게 만족할 수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못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런 대로의 화합을 이루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극도의 다양성과 이질성을 잘 극복해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서로 흩어지는 것보다는 뭉치는 것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수백 년이 넘는 그들의 오랜 식민 피지배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다양성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각 지역의 적지 않은 민족들은 이제 더욱 가깝게 그들의 자존과 이해를 확보하는데 재빨리 눈떠가고 있는 것 같다. 한층 더 뚜렷한 그들만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서고 있는 듯하다. 거대한 다양성의 나라 인도네시아는 아마도 이제 다양성 속의 통일, ‘Bhinneka Tunggal Ika'라는 국가 모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새로운 다른 것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보다 더 유연하고 폭넓게 포용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가치, ’다양성 속의 조화‘ 또는 ’다양성 속의 화합‘과도 같은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가치를 찾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는 보다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한 위대한 나라로 오랫동안 존재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꽃피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2003. 9. 17.)
첫댓글 지난번도 얘기했지만 내 동생은 인도네
시아는 문화의 다양성은 물론 볼거리
가 많다고 하니 한번 가보고 싶네요
순우는 바람의 남자기 되어 세계 각국을 두루 다녔고, 또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었군요. 인도네시아의 다양성 중 장례풍습 중 화장, 평장, 풍장에 대해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온 국토가 봉분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땅덩어리가 작은 우리나라의 매장문화에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여 보았습니다.
회교 무슬림의 장례는 통상 1일장이지요. 사막의 높은 기후탓 때문이며 콘크리트 관에 그냥 매장합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똑 같습니다. 알라신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죠. 다만 시신의 머리는 모두 메카로 향하고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회교국가에서는 우리처럼 국립현충원 같은 곳이 없습니다. 오로지 왕의 무덤만 특별할 뿐 나머지는 모두 같지요. 인도네시아는 회교국가임에도 불교처럼 화장하는 문화가 있는 걸 보면 정말 다양함 속의 통일된 국가 형태이군요. 젊을 때부터 세계 여러나라를 섭렵한 순우가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