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17)] 곱창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2012.01.26
오늘날 같은 곱창, 한국전 이후 출현
아프리카 사자는 먹잇감을 잡으면 내장부터 먹는다. 대부분의 경우 사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먹잇감으로부터 멀어진다. 나머지는 기다리고 있던 다른 동물들이 차지한다. 내장이 가장 맛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조금 다르다. 가장 맛있지만 손질이 쉽지 않고 냄새가 나니 먹긴 하지만 조금 꺼린다. 한반도에서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고기를 먹었다. 당연히 내장을 먹었을 터이나 기록은 별로 없다. 귀족들이나 반가의 사람들은 멀리했다는 뜻이다.
식용 대상은? 대부분이 개나 돼지의 내장을 취했을 것이다. 소는 농사를 짓는데 요긴하다. 개나 돼지를 데리고 논밭을 갈 수는 없다.
조선 중기까지도 소의 숫자는 지극히 적었다. 소는 식용의 대상이 아니고 농사의 중요한 동반자였다. 영정조 무렵 소가 많이 늘어나지만 역시 쇠고기를 먹는 일은 드물었다. 드라마 ‘뿌리깊은나무’에 나오는 ‘가리온이 살던 반촌泮村’은 실제 조선 후기 반촌과 비교적 닮았다. 소의 도축을 전담하고 소, 소고기의 유통에도 개입한다. 성균관에 노역하면서 성균관에 쇠고기도 공급한다. 조선후기에는 전국적으로 소의 매점매석에도 개입해서 사회적인 문제도 일으킨다. 이 무렵이면 대략 쇠고기, 소의 내장을 이용한 기록들이 나올 법하다.
정조대왕의 다음이 순조다. 순조 9년(1809년)에 기록되었다는 <규합총서>에 ‘우미증방’, 소꼬리찜과 더불어 ‘소곱창찜(牛腸蒸方우장증방)’이 나온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인데 퍽 흥미롭다.
“쇠 창자를 깨끗하게 씻어 한자 길이로 썬다. 쇠고기, 꿩, 닭고기를 다져 양념한 다음 창자 속에 넣는다. 끝을 실로 묶고 대나무를 가로 지른 솥에 넣어 찐다. 식으면 썰어서 초장에 찍어 먹는다”
창자 속에 소를 넣었으니 정확하게는 순대인데 막상 내용물이 모두 고기다. 피를 넣는다는 이야기도 없고 곡물을 넣는다는 이야기도 없다. 곱창을 그대로 불판에 익혀 먹지 않으니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곱창과도 거리가 있다. 그저 이름 그대로 ‘고기를 다져 넣은 소곱창찜’이다. <음식디미방>에서도 소의 위인 양을 볶아 먹는 기술들은 있지만 오늘날 같이 곱창을 불판에서 구워먹는 경우는 없다. 어차피 조선시대 음식 관련 책들의 고기에 관한 기록들은 개고기 활용법이 상당수다. 돼지나 소 등은 야생의 동물들과 비슷한 분량으로 나타난다.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의 곱창은 대략 한국전쟁 이후에 나타났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시작된 ‘호르몬구이’와 곱창을 비교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곱창 상업화 길이 시작된 것은 불과 30년 정도다. 대부분의 오래된 곱창전문점들이 20-30년 정도의 업력을 지니고 있다.
부산은 오히려 서울보다는 일본과 더 가깝다.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 일본 오사카, 큐슈 등과는 심리적으로도 가깝다. 부산의 ‘백화양곱창’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든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왔든 어쨌든 부산의 곱창 문화는 일본 혹은 일본관광객과 연관이 있다. 업력도 길다. 이미 50년을 넘겼다.
백화양곱창
‘백화양곱창’은 곱창의 명가답게 ‘스탠드 바 식’으로 운영된다. 큰 공간 안에 작은 식당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백화양곱창’이라 하여 막상 가보면 여러 가게들이 뒤섞여 있다. 물론 자욱한 연기 속에서 자신의 단골집에 찾아가면 된다. 늘 만석이니 단골집이 만원이면 바로 옆집으로 가도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연탄불에 구워먹는 곱창이 아주 싸고 맛있다. 옷을 넣을 비닐봉지를 주는데 반드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연기 쐬고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은 결례다. 양, 곱창과 더불어 볶아먹는 볶음밥도 일품이다.
대구의 안지랑 골목에는 ‘안지’와 ‘충북할매곱창’ 등이 유명하다. 똑같은 간판을 단 가게가 곱창 골목에 30개쯤 열을 지어 모여 있다. 이 지역의 곱창은 돼지곱창이다. 물론 싸고 맛있다. 여름철의 저녁 시간에는 모두 바깥의 길바닥에서 곱창을 구워먹으니 아예 차가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다.
충북할매곱창
전남 함평의 ‘장안식당’은 ‘곱창국밥’이 일품이다. 곱창국밥이라는 독특한 음식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곁에 우시장이 크게 있었다. 선지국도 아주 좋다.
서울에서는 논현동 리츠칼튼 호텔 건너편 골목의 ‘논현곱창’, 역삼동 ‘별양집’, 영동시장 골목의 ‘함지곱창’, 삼성동 ‘곰바위’, DJ가 양을 즐겨 다녔던 ‘양미옥’, 삼각지 ‘평양집’, 지하철 2호선 당산역 6번 출구 무렵의 ‘참굼터’, 서울교대 부근의 ‘교대곱창’과 ‘거북곱창’, 강북구 번동의 ‘황주집’ 등이 유명하다.
함지곱창
평양집
곱창의 신선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신선한 간과 천엽을 주는 집을 손꼽는다. 꼭 그렇지는 않다. 냉장, 냉동 기술의 발달로 곱창이 신선하지 않는 집도 신선한 간, 천엽을 주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오는 곱창들에도 ‘곱’이 가득하다. 미리 손질을 해서 냉동을 하는 경우 외국산 곱창들이 더 맛있는 경우도 많다. 곱창의 맛은 사실은 곱의 맛이나 양에 따라 결정된다. ‘곱’은 한우냐, 외국산이냐가 아니라 소가 먹었던 사료가 곡물인지 풀 위주였는지가 결정한다. 유명 곱창집들은 한우곱창을 고집하지만 식당 주인과 조금만 깊이 있게 이야기해보면 때에 따라 외국산이 더 맛있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과다한 소스를 주는 경우도 있는데 소스보다는 조미하지 않은 천일염에 찍어 먹는 것이 곱창의 맛을 느끼기에 오히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