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 박을 생각입니다> 13편에이어 한참만에 심기일전하여
나의 지난 군생활 기억 언저리를 더듬는 세월 여행을 떠나기로했던
<31년 세월의 틈바구니에서>1편을 쓰고 벌써 50일이나 지나버렸다.
작년 6월 1일 306보충대에 아들을 떨구어 놓은 후 조바심으로 시작한
간접 동행이 1년 가까이 흘러 오늘로서 아들의 전역일이 딱 300일 남게되었다.
기억은 치매화되어가고 기록은 남기에 몇자 끄적여보기로 하는데...영 시원챦다.
< 두번째 이야기 - 원조 신병교육대에서>
1979년 5월
그때는 개인이 직접 보충대로 입소하는 것이 아니라 본적지에 입영날짜 이른 아침에 빡빡머리로
집결하여 제대로 군기잡힌 후 영화속 장면처럼 호송 군용열차에 태워지던 시절이었다.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읍소재지 국민학교에 4년간 다니다 서울로 상경하여 나름 종로바닥을 누비며
청춘을 불사르다 군입대라는 파워브레이크로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나는 모든게 포기 그 자체였다.
수많은 장정을 태우고 느릿느릿 춘천으로 향하는 군용열차가 용산역에서 한참동안 정차하는데
하필이면 바로 길건너에 어제 떠나왔던 집(원효로)이 보이는지라 더욱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남들처럼 논산이나 증평훈련소가 아니라 춘천의 103보충대를 거쳐서 당시 최초로 시행했던
방책선 경계요원으로 12사단(원통) 자체 신병교육대에서 8주간의 군인이되는 훈련을 받게되었다.
당시 첫 시행으로 의정부 102보충대는 군번이 2300****로, 춘천 103보충대는 3300****로 시작되었다.
아마 이게 자체 신병교육대의 시행 원조가 아닌가싶다.
첫 시행의 시험대에 오른 나는 아직 선례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여러 해프닝 속의 중심에 있게된다.
103보충대에서 12사단 원통으로 120명 가량이 개 끌리듯 옮겨와 선착순 뜀박질을 몇번 시킨후에
연병장에 키 순서로 대충 일렬로 세우더니 1에서 16번까지 튀어나와 좌우로 정렬하라 우격다짐한다.
당시에 키 184였던 내가 첫번째라 1소대 1번이되었다.
이렇게 16개의 줄로 재편되어 교번과 내무반을 지정하고 따블백을 가지고 내무반에 입장하게된다.
서슬퍼런 조교들은 분주하게 고함치고 주눅든 훈병들은 지남철처럼 잽싸게 반응을 시작하게된다.
" 에라 모르겠다. 때리면 맞고 힘들면 죽어버리자" 이렇게 입술 깨물고 고함속에 민감하기로했다.
103보에서 침상위에 팬티바람으로 세우고 소지품 검사를 하기전에 걸리면 작살낸다는 공포조성도
짧은 순간 갈등속에 지켜낸 어머니가 쥐어주신 짱박은 2만원이 나의 유일한 마음속 위안이되었다.
낡은 군복 한벌과 통일화를 한켤레씩 지급해주곤 착용후 집합하는 저녁식사가 아직은 밥맛이 없다.
지급받은 통일화가 한참이나 작아서 분대장에게 말했다가 "신발에 발맞추라"며 한대 얻어 맞았다.
예나 지금이나 보급품은 숫자만 맞지 사이즈는 대충만 고려하여 지급되기에 사단이 발생하게된다.
다음날 오전에 체력측정을 하였는데 산악나르기(모래주머니 어깨에메고 달리기) 종목 등도 있었다.
억지로 신고 뛴 통일화가 처음엔 긴장하여 몰랐는데 한나절 뛰고나니 아프고 욱씬거리기 시작한다.
마침 어제 잠깐본 중대장이 연병장을 지나가기에 냅다 가로질러 뛰어가서 통일화 끈을 풀어제꼈다.
새로 생긴(나중에 보니 52연대 2대대를 급조하여 신병교육대로 개편) 신교대라 중대장도 조심스럽게
나의 새까매져가는 엄지발가락을 보고 인자하게 내일 사단(205이동외과)에 가서 치료하고 오랜다.
집 떠난지 며칠만에 찦차타고 바깥공기와 접하며 다방 많은 원통 읍내도 차창 밖으로 구경하게된다.
오는 길에 찦차 운전병(일병)이 담배 산다고 잠시 정차하는 틈에 간뎅이가 부어서 잽싸게 따라나서
220원짜리 한산도 담배 두갑을 사서 하나는 운전병에게 와이로 먹이고 한갑 짱박으니 날아갈 것 같다.
이게 바로 어머니가 몰래 숨겨주신 2만원의 은덕이고 조교의 공포감 조성에도 잘 지켜낸 위력이다.
붕대에 반창고로 싸매어진 베일속의 엄지 발가락이 나의 신교대 훈련을 교묘하게 엉클어 놓았다.
이제 본격적 훈련인데 첫 날부터 열외를 실감하며 한쪽 발은 구멍뚫린 영내화와 함께 찔뚝거린다.
후에 알고보니 조교도 군복무 6개월중에 급조하여 차출된 분대장 양성하사이니 나이도 엇비슷하다.
아직 첫 기수의 훈련이라 FM에만 매달리고 경험도 없기에 나는 집합할 때 기준만 서고 빠지란다.
유급 운운은 들었던터라 내심 걱정되지만 운명에 맡기기로하니 뙤약볕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만하다.
훈련병도 가끔은 주워듣는 채널도 있는데 다음 기수가 4주후에 들어온다니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하다.
이렇게 2주를 흘려보냈다. 발가락은 아물어가는데 유급하는지 명확한 답이 없어 혼자 낑낑 속앓이한다.
다음주에는 PRI(사격술 예비훈련)라 교장 이동도 잦은데 결론을 묻기도 뭐하고 아직 포기도 못하고...
심하게 곪지는 않고 거무스렇게 발톱만 변색되었던 왼쪽 엄지 발톱이 아직 남아있는 것에 착안한다.
양발에 영내화를 신은채 엄지발가락만 밖으로 내놓고 찔둑거리며 따라다니는 꼴을 상상해보기로하자.
<요즘은 체력이 달려 요기까지...다음에 계속>
<아들 이제 상병이지 - 나의 상병 시절이야>
아들- 오늘로 딱 300일의 군복무가 남아있다.
이제 쫄병이 느끼던 하나의 아린 겨울을 숨가쁘게 넘어왔고
또 하나의 겨울을 넘기게되는 내년 춘삼월에는 돌아오게 되겠지...
요즈음 상병 진급에 분대장의 견장 무게에 힘겨워하며
결코 높아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되겠지...
높아질수록 삼각형처럼 좁아지고 뾰족해지고 외로와지거든...(나도...)
더구나 중화기 중대개편(JSA편입), 다음주의 유격훈련 준비등
많이 바빠서 전화는 자주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다.
세월이란게 느슨해지면 잡념도 많아지고 긴박함이 떨어지게되는거야...
물론 타의지만 적당히 타이트하게 움직이는게 시간도 더 잘가는 법인건 알지...
그래도 맡은 일 축내지말고 네 자리에서 네 몫을 제대로하는 아들이기 바래....
무슨 잔소리 할줄 이미 알고 있지...
첫 사랑은 잊어도 입대할 때 초심 잃지 말라고...
나중에 아빠 품에 복귀할 때 인생휴가였던 21개월을 레포트로 제출해서
잘 해냈으면 시원한 맥주한잔 축이기로하자.
첫댓글 ^^ 지기님의 글을 보면서, 오랫만에...아들들을 군에 보낸 1년전 시간으로 돌아간 듯 착각속에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지기님 군생활이 흑백영화처럼...연상도 되고..ㅋㅋ 세영이에게 여전한 맘으로 품고 계신 지기님의 한결같음이 부럽습니다. 전, 제 아이 안세열 상병.. 이젠 완전히 내려 놓은거 같습니다. 녀석의 군생활에 아직은 맘 쓰이는 요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녀석에겐 철저히 혼자 해내라하고... 오히려 중대장님께 몇가지 혹독함과 배려를 주문하고 지낸답니다. ^^
지기님의 31년전의 세월의 흔적 잘 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너무 멋져요. 많이 배웠습니다.
ㅎㅎㅎ때리면 맞고, 힘들면 죽어버리자,,,짱박은 2만원(상당히 큰 금액),,,운전병한테 와이로 등등 가슴에 콱.콱 박힙니다...
전 순간 안경벗은 세영군인줄 알았슴다^^
부자간 상병인 싯점에서 역사는 흐른다.ㅎㅎㅎ멋진 사진과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드님을 많이 믿으시는군요
군 생활 잘 할거 같내요
"에라 모르겠다. 때리면 맞고 힘들면 죽어버리자"명쾌한 결론이며 단순 그자체..ㅎㅎ 여기까는 지기님 훈련병 시절이 별로
힘들지 않은것 같은데요...다음편 빨리 올려 주세요~~~
지기님의 군생활과 지금의 군생활을 비교하며 읽을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사진 간지나네요~~
세영이도 남은 군생활이 인생의 멋진 추억으로 남길 바래봅니다..^^
발에다 신맞추기 (통일화) ,,,때리면 맞고 힘들면 죽어버리자, ㅋㅋ 명언중의명언(?) 이십니다.
글을 보면 너무도 힘들었을 30년전 군대 .. 지기님 표현을 빌리자면 평온해 보입니다요..ㅎㅎ
전아리 만들고
지기님이 젤 수지 맞으셨습니다.
1. 나날이 일취월장하는 컴 실력
2. 르뽀기자 울고 갈 절묘한 필력(筆力)
3. 전아리 꾸나미들이 인정하는 청춘시절의 미모(?)
ㅎㅎㅎ
31년 세월의 틈바구니에서(1) 다시 가서 보았더니
혁민맘께서
지기님을 " 까도남" 이라 칭하셨더군요.
전아리 까도남 -> 스트라이크
어지간하면 함~ 접수하시져~~~
ㅎㅎ까도남 맞네요..^^
지기님의 글 공감합니다 ,,
제가 군 생활 할때도 모든것이 우격다짐이었습니다 ,,,^&^&^
와우 사진 멋지십니다~~~~~~~^^
까도남님 세영군보다 더 멋지네요. ^&^
ㅎㅎ 옜날생각이 사르르르르 떠오릅니다 사람이아니라 짐승이지요.
지기님은 세척장에 가서 밥티끼 찿아먹어보셨는지 모르겟읍니다
저는 73년도 군번이거든요 완전히 돼지였지요 그런돼지가 어디있읍니까.아이고 아이고 눈물이납니다
높아질수록 삼각형처럼 좁아지고 뾰족해지고 외로와지거든...(나도...)
요 글귀가 제 가슴에 쿵 내려 앉네요.
멋진 아버지 지기님 그 단단한 부정이 전아리를 든든하게 지켜내는 힘이라 생각됩니다.
까도남 !!지기님이요?ㅎㅎㅎㅎㅎ
세영군보다 더 멋진 까도남!! ㅎㅎㅎ
세상 어지러울때 군대생활 하셨네요-눈에선하네요 고생했는것이-
신발에 발 맞추라~...요즘 군대도 그런건 아닐테지요~~~....ㅠㅠ...몇십년전 군에 갔다온 남자들은 분명 동질감을 느끼고 아련한 향수에 젖어 보겠네요.....
발에 안맞는 작은 신발,,아휴~~생각만해도~~
요즘군대 많이좋아진거맞죠? 저희아들 큰옷은입었던데, ,세영군 아버님닮아 정리잘하네요~남은 군복무위해 화이팅이요~~!!